시기적으로 삼국은 아직도 통일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신라를 중심으로 통일될 것 같았다. 비록 겉으로는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내면으로는 전쟁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설사 통일이 되어 전쟁이 없어진다고 해도 집집마다 전몰병사와 상이병사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국민들은 큰 고통을 안게 되고 나라는 폐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마땅히 한 보살이 나타나 그 상흔들을 달래 주고 그들을 구제해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 삼국에서는 보살 한 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준비 없이 통일부터 먼저 되고나면 그 반목과 원성은 걷잡을 수 없었기에 그들을 하나로 묶어 줄 큰 보살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전쟁을 치르며 적대시해 오던 국가들끼리 한 민족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라라는 뜻은 새롭게 펼친다는 뜻이다. 인도에서 부처님이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지역이 사위성인데 그 성의 이름이 서라버시티Sravasti다. 그 발음은 신라의 수도 이름 서라벌과 너무 흡사하다.
서라버시티는 풍덕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풍덕은 풍요와 공덕을 말한다. 외적으로는 풍요를 바라고 내적으로는 공덕을 쌓는 도시라는 뜻이다.
그 성 남쪽에 기타태자와 수달장자가 세운 유명한 사원 하나가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원정사다.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기수급고독원이라고 했다. 기타태자가 소유한 숲에 수달장자가 수도원을 지었다는 뜻으로 기수급고독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효성사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의미로 元이라는 단어를 썼다. 원단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한해의 첫 날 첫 밝음을 元旦이라고 한다. 성사는 그분의 이름에 걸맞게 전쟁의 고통에 신음하던 중생들에게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삶의 길을 열어 보여 주시고자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분은 남양반도 바닷가에서 탈중생하는 목욕을 하고 다시 근원인 신라의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북쪽 서라벌 성문으로 들어봤을 때 뜻밖에도 성사를 제일 먼저 맞이해 주신 분은 대안대사였다. 대안대사는 서라벌에서 파계승이면서도 기이승으로 유명했다. 파계는 파괴와 비슷한 발음이라서 계율을 파괴하면 자신이 파괴되고 중생이 파괴되어 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파계승은 기이승이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파계한 스님은 중도 아니고 속도 아니다. 그래서 그 행위가 기이할 수밖에 없다.
사실 불교는 원천적으로 세속의 윤리나 도덕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한 조건하에서 스님이 된다.
그러므로 스님들에게 유교에서 제정한 법도나 윤리, 내지는 세속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이나 도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스님들은 이미 세속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머리를 깎고 일가친지 모두를 등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속의 도덕이나 윤리를 대신하여 새로운 세계를 향한 계율을 받는다. 계율은 불교의 세계에 나아가기 위한 율의다. 그러므로 이것을 깨면 세속인도 아니고 스님도 아니게 된다. 하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다.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계율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원효성사는 멀리서 대안대사를 보았다. 그런데 그분이 옛날의 그분으로 보이지 않았다. 유학을 떠날 때까지는 그분의 언행이 정말 싫었다. 시장터에서 거침없이 술을 마시고 아무 곳에서나 유숙하며 헛소리처럼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술파는 여자들과 희희낙락거리며 걸림없이 방탕생활을 하던 그가 정말 싫었다.
그런 그를 마주칠 때는 사람들에게 덤터기로 욕을 얻어먹을까 봐 저 멀리 피해 도망가기도 하였다. 그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 성사 자신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분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성사는 그분을 다시 보았다. 그분은 미치광이 스님이 아니었다. 그분의 신분은 이미 삼현보살의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성사는 반가운 마음에 그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분은 정색을 하면서
''십지보살이 저에게 무릎을 꿇으면 저는 어떡해야 합니까?''
하면서 도리어 공손히 성사에게 엎드려 공경과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대안대사는 횡재를 했다. 원효가 보살이 됨과 동시에 그에게 따라다니던 미친스님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성사가 보살의 눈을 가지지 못했다면 누구도 그분을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냥 방탕한 떠돌이스님으로 끝났을 텐데 성사가 나타나 그를 삼현보살인 줄로 알아주었으니 그 얼마나 신이 나고 기뻐하였겠는가.
신라는 이 두 분의 보살들 때문에 귀족불교에서 대중불교 국가로 전환될 수 있었다. 그 은덕으로 고려를 거쳐 이날까지 한국에 대승불교가 존재하도록 하는 데 심대한 영향을 끼치셨다.
첫댓글 붇담 사라남 가차미.🙏🙏🙏 담맘 사라남 가차미 🙏🙏🙏 상감 사라남 가차미 🙏🙏🙏
석가모니부처님과 한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게 되었구나 하면서 삼세가 끊어진 바닷물을 마음껏 희롱하신 원효성사.
의상대사조차 함께 공유할 수 없었던 것을 대안대사는 보셨군요.
부처님 오신 날 저도 지혜의 등불을 밝혀 감히 제 삶의 대안을 원효라는 바다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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