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17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17 오랜만의 미담
9월 13일은 홋카이도 우라카와쵸 아자도에이 마을을 수호하는 도에이신사의 제례날이다. 도에이는 어부의 마을이기 때문에 젊은 어부들이 큰 어기를 세운 어선에 가마를 싣고 앞바다를 세 번 돈 후, 가마를 메고 마을을 돈다.
우리 집은 마을 뒷쪽 위에 있기 때문에, 가마는 가장 마지막에 오게 된다. 언덕 위이기 때문에 가마는 트럭에 실려 비탈길을 올라온다. 이 행사는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
“당신들, 트럭 따위를 타고 오지말고, 가마를 메고 올라 와 주세요.” 매년 나는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트럭 위에 실린 가마라니 이삿짐 나르는 것도 아니고, 모양새가 좀 어울리지 않잖아요.
그러나 젊은이들은 언제나 이렇게 대답한다. "뭐요, 메고 올라 오라고요." "무리한 말씀하시네요..." 라면서 가마와 함께 트럭에 타고 돌아가곤 한다. 아~일본의 젊은이들, 제구실 못하게 된 것은 도교 뿐만이 아니구나! 라고 매년 씁쓰레한 마음으로 가마 실린 트럭을 전송하고 있다.
그렇게 올해도 또 트럭가마가 올라왔다. 트럭에서 가마를 내리고, 우리집의 정원에서 '왓쇼이왓쇼이'하며 가마를 흔들다가 , 또 트럭에 태운다. 올해도 나는 예년처럼 젊은이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내년에는 트럭을 타지 않고 아래에서 부터 가마를 메고 오지 않을래요?" 매년 가마꾼의 얼굴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 번 정도 가마를 메고 올라와 주면 어떻겠어요. 도에이의 어부의 기상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그러고 나의 입은 마음대로 움직여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상금 줄게요, 10만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말해 버렸다. 그러자 트럭 위에서 한 명의 젊은이가 말했다. "십만엔, 그렇다면 지금부터 아래서부터 내려서 다시 한 번 메고 올라오는거야." "한 번 더? 지금부터?"
조금 나의 의도에서 벗어났다. 나는 내년에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백만엔이라면 해 볼만 하지만" 이라고 하는 젊은이도 있다. "아니, 돈은 필요 없어. 해보자!" 라고 말하는 젊은이는 일본판 토니커티스 라고 우리집 여자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는 아이스계의 잘생긴 젊은이다.
"정말로 다시 한번 메고 오는 겁니까?" "그럼요." 그런 말을 남기고 트럭은 내려갔다. 나는 멍한 기분으로 트럭을 전송했다. "사토 선생님, 장난으로 해본 말 아닙니까?" 라며 테라스에 남아 있던 제례 주관의 어르신틀은 어이없어 하고 있다.
"정말로 다시 메고 올까?" "아니, 오지 않을 거야." 라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오려면 거의 500m의 자갈길을 걸어 와서 마지막에는 100m의 급경사를 발꿈치를 세워 올라야 한다. 이곳의 가파른 고갯길이 문제인 것이다. 나는 어쩌는지 보러 내려 가 보려고 하니 "승용차로 갈까요?" 라고 승용차로 이곳까지 온 제례 주관 어르신들이 말한다. "아닙니다, 걸어 가겠습니다."
모두에게 어깨에 메고 오라고 말했는데, 자신은 승용차 타고 가는 것은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는 기분이 들어 걸어 가겠다고 한 것이다. 나는 경사길을 걸어 내려갔다. 한적하고 맑게 갠 하늘 아래로 작은 새들의 지저귐만 들리고 있다. 오른쪽은 목초지이고 왼쪽은 길보다 높은 초원이다. 이윽고 길은 90도로 굽어진다. 이곳이 이길의 절반 위치에 해당한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세워보아도 사위가 여전히 조용할 뿐이다.
"도망쳤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들은 오지 않았다. 제구실을 못하는 젊은이는 도쿄에만 있는 게 아니고 시골도 마찬가지구나. 의지도 기백도 없기는... 그렇게 생각하니 동시에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이것으로 10만엔 내놓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는 째째한 생각 말이다. 실은 이런 일에 쉽게 십만 엔을 내놓을 만큼 나는 부자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입을 헛놀린 것이다.
그들이 오지 않는다면 한심하고 화는 나지만, 십만엔은 건지게 된다. 도대체 화를 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스스로도 잘몰라 멍해져 있다. 마침 그 때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왓쇼이 왓쇼이'라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자 마자 내 입에서는 "앗! 왔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10만엔) 가슴으론 기뻐하고 입가엔 웃음이 사라진다. 알 수 없는 젊은이들! 그들이 왔다. 왓쇼이 왓쇼이는 점점 크게 다가오더니 가마가 나타났다.
길폭이 좁기 때문에 길을 꽉 메우고 다가온다. "와아, 잘했어 잘했어!" 나는박수를 쳤지만 젊은이들은 쳐다 보지도 않는다. 눈들이 흐릿해 있다. 와쇼이와쇼이, 회오리바람처럼 내 코앞을 지나쳐 갔다.
가파른 고갯길에 닿자 발걸음이 허트러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그만 두게 되면 5만엔으로 깍아버릴까. 그러나 가마는 왓쇼이왓쇼이의 소리를 높이면서 힘차게 넘어가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가 졌다 졌어, 와아 훌륭해!" 라고 하면서 나는 우리집 정원으로 들어갔다. 젊은이들은 정원 잔디 위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잘했어 훌륭해요. 다시 보게 되었어요. 과연 일본 최고의 도에이의 젊은이들이에요!" 라고 칭찬해 주면서, 그런데 현금 10만엔이 집에 있을까? 걱정이 된다.
딸에게 보리차를 내게 하고 집안으로 들어가 지갑에서 꺼낸 1만엔 지폐, 하나 둘 셋··· 세어 보니 8만엔밖에 없다. 잠깐하고 딸을 불러 2만엔 빌린다.
"아니, 짠돌이 엄마가 하찮은 일에 너무 낭비하는 거 아니예요." "뭔 말을 하는 거야. 젊은이들이 보여 준 이 의기, 이 감동은 10만엔으로는 부족해!" 반쯤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정원으로 나갔다.
"네, 수고들 했어요. 자 상금" 하면서 돈을 내밀자, 눈앞의 젊은이, 갑자기 주저주저하며, "돈은 필요없어요" " 필요 없어? 왜? 자 받아요." "필요 없어요" 그 다음 젊은이도 손을 움추린다.
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 (그렇다고 해서 돈을 거두어 들이는 것은 체면이 아니다.) 결국, 큰부채를 들고 제례를 주관한 어르신이 받아 주었다.
다음날 우리집 돌보미 분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젊은이들은 10만엔을 마을의 노인홈에 기부했다고 한다. "사토 선생님에게 도에이 어부의 의기를 보여줬으니까 그걸로 족하다." 고 하며.
"해내지 않았는가, 도에이의 젊은이들! 일본의 젊은이들도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희망이 끓어 올라와 "일본 제일!"이라고 외쳐보니 10만엔으로, 구멍이 난 것 같았던 가슴속의 답답함이 말끔히 해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