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업부 초임대리 시절
작성자: 행우 제갈종한
행번:196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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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국제영업부 1호봉 초임 대리 시절의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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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의 봄, 최루탄 냄새와 광주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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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도 봄, 서울 소공동 거리는 유난히도 최루탄 가스 냄새로 얼룩졌고 눈물 나도록 매웠다. 곧바로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피나는 민주화 운동이 광주에서 발생해 그 절정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외환계 이 차장을 모시고, 3명의 외환 책임자 중 출납 대리를 마친 뒤 중간 환전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려고 용쓰고 있던 그때 그 시절, 모든 언론 매체는 완전 사전통제를 받아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그곳 내 고향 소식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막 여행 온 외국인 젊은 남자가 창구로 다가오기에, 나는 낮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건넸다.
"혹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영자 신문이 있다면 나에게 보여줄 수 없겠소?"
신문 한 장을 얻어 감사하다고 목례하고 환전을 바로 해주었다. 영문으로 나온 광주 보도를 접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수십 장을 복사해서 직원 및 관심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돌렸다. 참으로 간 큰 짓을 했다! 만약 정보원에게 발각되었으면 줄줄이 상사들과 함께 목이 나갔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2. 자존심을 건 독학, 그리고 나만의 텔렉스(Telex)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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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계의 모든 업무는 새로웠다. 첫날 OD Rate(Overdraft Rate)를 몰라서 창구 여직원한테 물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책임자가 주임들에게 물어서 업무 결재를 받아야 하는 그 자존심 상함과 창피함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창구 주임들이 가지고 있는 연수과 발행 업무지침서를 빌렸다. 귀가 후 책을 펴놓고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업무지식은 해박해졌으나, 마지막 끝자리인 외환송금 담당으로 이동했을 때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텔렉스(Telex)를 작성하고 해독하며, 편지(Letter)를 조리 있게 쓰는 문제였다.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간단하고 요령 있게 핵심을 상대방 은행에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내용을 순서적으로 배열하는 구성 능력이 당면 과제였다.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관련 서적을 몇 권 사서 남몰래 작성 방식을 연구하고 좋은 문구를 암기했다. 또한 업무 중에 외국계 은행에서 날아온 텔렉스 등을 카피해서 모으기 시작했다. 미래를 위해서! 나는 새로운 업무에 매우 의욕적이었고 재미가 있었으며, 또한 도전적으로 해결해 나갔다.
그 바탕은 행원 시절에 얼마나 애타게 외환 업무를 그리워했던가에 근거를 둔다. 수입계로 계 이동을 하면서 인내성 있게 참고 협조해 준 창구 주임 문 양에게 감사드리며, 근 7개월의 기간을 마치고 외환계를 떠나야 했다.
3. 엘리트 숲속에서 살아남기•••••••
국제영업부(1, 2, 3층)에 근무하는 행원, 대리, 차장들은 매우 열심히 근무했으며 자부심들도 강했다. 다들 뽑혀서 온 직원들로서 과히 인상적이었다. 학부 출신(서울대, 연대, 고대)들과 비서실, 인사부, 연수과, 노조 출신과 해외 지점에서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직원들….
또 인사발령에서 항상 밀리지 않고 원하는 부서를 어떤 줄을 써서라도 자유자재로, 마음대로 전전하는 직원들이라고 느꼈다. 행원이나 대리들은 미래 지향적이어서 "지점장을 하려면, 아니면 후발 은행에 전직하려면 외환이 필수적이다"라고 입을 모아 사석에서 말하곤 했다.
가방끈 짧고 연줄 없는 나로서는 이런 엘리트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지키며, 성실히 책과 씨름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4. 일본 은행과의 한판 승부 (U통상 사건)•••••••••
2층 수입계로 올라와서는 서 차장을 모시며 대리 4명 중에서 원자재 수입 개설 신용장과 선적서류 인수, L/G 등을 담당했다. (Usance, D/A, D/P 관련은 고참 대리가 담당했다.)
그 당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안 있어 한일관계가 매우 냉각되고 악화되었을 때였다. 원자재 피혁을 수입하여 자기 공장에서 가공해 일본으로 재수출하는 U통상의 수입 과장이 면담을 신청해 왔다. 미화 4만 불 상당의 도착된 선적서류를 부도내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저질 가죽을 보내 놓고 당사자에게 재수출하면 빈번히 제품이 불량하다고 수출 신용장에서 부도를 맞는다는 하소연이었다. 도착된 선적서류를 확인해 본 결과, 일본 토카이(Tokai) 은행에서 클린(Clean)하게 매입해서 이미 상업은행의 예치(Depo) 은행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갔고, 가격 조건은 CIF로서 송장(Invoice), 패킹 리스트(P/L), 보험증권(Insurance Policy)만이 첨부된 간단한 서류여서 아무리 보아도 하자를 잡을 수가 없었다.
사정은 딱했고…. 그래서 내일 다시 만나자고 해놓고, 퇴근 후 집에 와서 재조사하며 내가 탐독했던 '신용장 통일규칙'에 따라 서류 하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보험 조건에 희미한 하자 조건이 발견되어 싸워보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각서를 징구하고(부도 거절 시에는 U통상에서 무조건 대지급 결제한다), 여직원에게 부도 텔렉스 작성을 지시한 뒤 결재 후 국제부에 올렸다. 그땐 모든 텔렉스 결재는 대리 전결로 끝났었다. (하자를 2건 정도 명기했다.)
그러나 며칠 후, 일본 매입(Nego) 은행에서는 하자가 안 된다고 완강히 입금 거부하고, U통상은 "은행이 책임져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건…? 나는…? 음… 물렸군! 허허허.
하다못해 서 차장석에 보고하니, 서 차장은 결재를 보류하면서 "이런 것을 부도냈다고 상업은행을 국제적으로 망신시켰다"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혼자 알아서 해라"며 서류를 팽개쳤다. 미쳐, 미쳐!
5. 배짱과 실력으로 얻어낸 사과••••••••
그러나 난 소신이 있었다. 서류상 절대 하자이다! 그래, 쪽발이들하고 한번 싸워보자. 그래! 내가 4만 불 책임진다! 뱃심이 생겼다. 곧바로 서울에 상주한 외국계 은행 리스트를 뒤져보니, 아! 토카이 은행 서울지점이 파견 나와 있지 않은가! 서울에 해당 은행이 파견 나온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대단히 큰 행운이었다.
외출부에 등재하고 바로 해당 점포를 찾아나섰다. 모든 부도 관련 서류를 보이면서 일본인 지점장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신용장 통일규칙 위반이니, 귀 은행 본점 국제부에 전화해서 원금하고 연체 이자를 상업은행에 다시 환급(Refund) 시키시오!"
라고 지점장을 다그쳤다. 내가 아는 일본인들은 예의가 바르고 자기가 잘못이 있으면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민족들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후, 국제부에서 부도 대전이 원리금 합쳐서 입금되었음을 최종 확인받고서 난 마음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저녁에 U회사 과장이 사주는 시원한 맥주를 기분 좋게 담소하며 들이켰다. 다음 날 서 차장에게 사후 결재를 올려 받아내었다.
6. 해결사로 거듭나다 (H상사 사건)•••••••••
며칠 만에 나는 수출입 인증 담당이 한 달간 연수를 가는 바람에 그곳으로 파견 나가 인증 업무를 마스터하게 되었다. 원대 복귀해서 수입계 이동 시 수석 고참으로 승격되었고, 총괄 수입계 계도장을 찍으며 초보 외환 대리로서 특수신용장 업무를 마스터하게 되었다. 차석 대리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몇 달 후에 자원해서 본부로 발령을 받아 수입계를 떠났는데, 나는 괜히 그에게 죄지은 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전체 점포 내 계 이동으로 난 수출계 J종합회사 및 기타 네고 담당자로 1층으로 내려갔다. 업무를 인계받자마자 S상사의 네고 서류에 큰 사건이 터졌다. 깨알 같은 중동 신용장을 주임과 대리가 해독하지 못해, 중계무역 H상사 수출신용장 서류를 매입 후 타 은행으로 발송했는데, 거의 배가 넘는 이익 차액을 중개업자가 착복한 것을 원수입상이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이건 완전히 상업은행의 업무상 책임이었다. 즉 네고담당자가 중계무역 신용장 / 조건을 간과해서 매입서류를 바로 신용장개설 은행으로 잘못 보내서 / 무역 원가가탄로난 큰 사건이 였다/그래서 나는 부도당한 수출환 매입 서류를 해결해야만 했다. 매입 금액은 근 백만 불 정도! H상사는 부거래처였고 상업은행이 매일 섭외해서 얻어먹은 입장이었으며, 사건을 저지른 대리는 승진해서 C급 점포 차장으로 부임해 버려 데려올 수도 없는 처지였다.
나는 그간 연마했던 텔렉스를 직접 작성해서 근 2달간 교신하고, 부거래처인 H상사도 설득했다. 결국 선적서류 하자로 인한 부도 취소가 완전히 타결되었을 때, 난 벌써 국제영업부 2년 근무 만기가 차기 시작했다!!!!
7. 떠나는 뒷모습, 그리고 남겨진 유산•••••••••
나는 그간 내가 모아두었던 텔렉스 카피와 국제부 텔렉스 실을 드나들며 연구한 자료로, 은행에서 쓰는 '텔렉스 모범집'을 케이스별로 300여 개 정리해 실례집을 완성했다. 한 달 후 차장석에 보여주었더니 연수과에 연락해서 등록시키라고 지시받았지만, 난 용기가 나지 않아 주임들에게 주면서 효율적으로 업무에 사용하라며 복사본을 만들어 주었다.
저 건너편! 금융계를 남겨두고 나는 만 2년이 넘어 정기 인사이동 때 원치도 않았던 외환 C급(?) 점포인 광희동 지점으로 수평 이동 부임을 해야만 했다. 내 마음속엔 국제부에 부임해서 대외 외환 업무를 마스터하고 싶은 큰 포부가 있었지만, 아무도 나의 깊은 뜻을 헤아려 주질 못했다. 나는 인사발령에 대한 연줄이 없었고, 나의 미래를 받쳐주는 직장 선배도 한 명 없었다.
인사를 잘 받아야 월급쟁이들은 그 집단에서 잘 나가고 성공한다는데, 나는 알면서도 인사에 받쳐주는 상사가 하나도 없어서 흘러가는 인사 물속에 포류 당했던
바보 은행원이였다!!!!!
대신에, 난 국제영업부에서 외환 초임 1호봉 대리로서 외환업무를 확실히 체계적으로 배웠고, 노력하며 후회 없이 근무했었다고 자평하면서 새부임지 초라했던 C급 외환점포 장충지점(광희동지점)으로 부임해야만 했다!!!!
▪︎ 끝까지 읽어주심에
힘을 얻습니다!
국제영업부/외환계팀
삼악산 등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