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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들 중 제일 오해하기 쉬운 내용들 중 하나가 아래 본문의 비유이고, 또한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증거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증거된 부분에 있어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것으로 비유된 구원에 참예케 된 자에 있어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그러한 탕감이 취소되어 옥졸에 넘겨지게 되고 다시 빚을 갚아야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마치 용서를 하지 않으면 구원이 돌이켜 진다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고, 사실상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듯 구원이 취소되는 것으로 충분히 오해가 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데 그러한 해석은 정말 말 그대로 오해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실제로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용서를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참으로 많곤 하고, 그와 같은 용서를 전적으로 모두 다 하는 자들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며, 사실 용서를 하지 못하는 이런 저런 이유와 사연과 실상들이 한두 가지들, 한두 사람들이 아닌 것이고, 따지고 보면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결코 적을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쩌면 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용서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만일 그렇게 용서를 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다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라면 아마 단 한 사람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며, 끝까지 구원 받은 자로 남게 되는 경우는 아예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실상은 완전히 불가능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증거된 말씀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참예케 된 구원에서도 돌이켜 질 수 있는 것으로도 비칠 수 있고 실제로 적지 아니 오해가 되곤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인데..
그 또한 마찬가지로 그 어떤 인생들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며 살 수는 없고,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도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늘 깨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 자체로는 그 반대가 되기 쉬운 현실인 것이고, 잘 통찰해 보면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으로 늘 승리하기보다는 크고 작은 죄악들을 범하는 경우들이 더 허다한 것이며, 심지어는 가장 대단한 믿음의 선배들이라 할 수 있는 다윗이나 솔로몬,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 등도 얼마나 큰 죄악을 어느 정도로까지 범했는지를, 심지어는 비록 한 때였긴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흔치 않거나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죄악들까지 범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만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살지 못한다고 해서 구원이 불가능이고 돌이켜 지며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이라면 모든 인생들 중 단 한 사람도 끝까지 구원이 가능하거나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들이 없게 되는 것이고, 다른 그 누구보다 다윗이나 베드로 등부터 천국에 갈 수 없고 구원이 돌이켜 져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실상 예수님의 이러한 비유나 강조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 천국 백성들에 있어 용서가 얼마나 중요하고 중대하며 절대적이고 시급하며 어느 정도로까지 최우선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것인지,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중대하며 절대적이고 시급하며 어느 정도로까지 최우선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것인지, 더 나아가 죄악들과 싸우는 것, 범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며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중대하며 절대적이고 시급하며 어느 정도로까지 최우선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것인지를 가장 강경하면서도 단호하고도 극단적으로 알려 주시고 강조하시며 명령하시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다른 측면으로 보면 이미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으로 뒤바뀐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 이 땅에서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의 순간순간 주목하고 기준으로 삼으면서 힘껏 흔들 수 있는 깃발이자 나참반이며 푯대를 알 수 있게 해 주신 것임과 함께 그러한 살아 있는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의 절대적인 목적지, 성화에 있어서의 최종 종착지를 엄중하고도 긴장스럽게 좌표처럼 찍어 주신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구원에 참예케 된다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의 영원한 하늘나라의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천국을 누린다는 것에 있어 그와 같은 용서를 위시한 하나님의 말씀과 어느 정도로 직결되고 절대적인 것인지, 반면 죄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상반되고 반대되는 것인지를 각인시켜 주시고 확인시켜 주시며 더 나아가 인 치듯 하시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땅에 구주 예수님과 함께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든지 또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본향인 영원한 하늘나라든지 간에 본질적인 공통은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인 것이고, 오직 말씀이 모든 중심인 것이며, 온전히 말씀으로 다스리고 말씀과 함께 통치하며 말씀대로 누리고 말씀 그대로 성취되는 나라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그 전에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다 실제들이 되고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이며, 그렇듯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것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에 있어서,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인생들 중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가능한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며,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실제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해 이미 새롭게 된 것이며 인 쳐진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영생의 개념까지 포함된 것이며, 게다가 행함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구원에 참예함에 있어서 통로나 효력일 수 없는 것이듯이 마찬가지로 행함이라는 것이 구원을 취소시킬 수 있거나 돌이킬 정도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을 넘어설 수 있는 자체가 아닌 것이고, 만일 그렇지 않고 행함에 따라 중간에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 것이라면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모든 인생들 중 단 한 사람도 끝까지 구원의 자리에 남을 수 없는 현실임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다만 이 땅 가운데 구주 예수님과 함께 임해 있고 오늘 이 시간까지도 변함없이 역사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는 그 속에서의 모든 은혜와 능력과 역사들을 제대로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릴 수 있느냐 그렇지 않고 마치 박탈당한 듯이 되느냐, 더 나아가 옥에 갇히는 듯 그와 반대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에 빠지게 되느냐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여러 결과와 모양들로 결정되어 질 수 있는 사안인 것이고 믿음에 따라 여러 모로 달라질 수 있는 실상인 것으로 그에 있어서는 얼마나 죄악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돌이키면서 용서 등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실해 지고 뜨거워 질 수 있느냐가 전적인 기준과 관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바꾸어 말하면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용서 등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것이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인 것이자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에,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에, 그리고 그로 인한 온갖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응답과 승리와 복과 열매들, 특히 말씀의 절정이자 복합체인 복음의 능력들에, 또한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에 합당하고도 또 합당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18:23~3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7월 24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