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3-17)
- 매일미사 2024.9.14(토) https://missa.cbck.or.kr/
십자가를 곳곳에 두고 살다 보니 무덤덤하여졌습니다. 길거리를 다녀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십자가를 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성당이나 수도원 안에는 거의 방마다 십자가가 있고, 어떤 경우는 장식품처럼 놓여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나 이스라엘 사람이 현대에 와서 이 모습을 보면 몹시 놀라고, 어쩌면 눈을 뜨고 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고통을 뜻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수치를 뜻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형의 여러 방법 가운데서도 십자가형은 특수한 형벌로 여겨졌고, 유다인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 자체를 하느님께 저주받은 표지로 여겼기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실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사건을 ‘현양’이라고 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이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되시고 모든 이를 당신께 모으시는 때입니다. 그분께서 높이 들어 올려지는 그때가,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때입니다.
수치를 피하려 하고 다른 사람의 눈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의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온 세상을 정복하시고 모든 통치자를 굴복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까지 끌어안으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어디까지 가시는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의 영광이고 구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세상 어느 임금에게도 바치지 않을 깊은 경배를 드립시다.
- 안소근 실비아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학교), 매일미사(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24.9.14 오늘의 묵상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