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 주요 내용 및 입법 동향
지난 10년간 OECD와 G20을 중심으로 140여 개국이 참여하여 논의한 새로운 국제조세체계가 2024년 1월 글로벌최저한세의 최초 시행을 필두로 서막을 열었다. 그간 다국적기업은 ‘세원잠식과 소득이전(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BEPS)’이라 일컬어지는 국제적 조세회피전략을 통해 세금 납부를 회피해왔다. 특히 별도의 고정사업장 없이 인터넷망을 이용해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글로벌 빅테크기업은 저세율국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소득을 이전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세금 없이 수취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전통적인 제조기업 평균 실효세율이 23.2%에 달하지만 디지털기업의 평균 실효세율은 9.5%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세제는 논의 시작 단계에서 디지털 빅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뜻에서 ‘디지털세(Digital Tax)’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조업을 포함한 일정 규모 이상 다국적기업에 적용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대됐다. 2016년 6월 출범한 ‘OECD/G20 포괄적 이행체계(Inclusive Framework, IF)’는 디지털세를 포함한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방지대책(BEPS프로젝트) 논의를 주도한 협의체이다. 현재까지 145개국이 G20 및 OECD와 동등한 자격으로 동 국제조세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OECD/G20 IF는 다수의 논의를 거친 끝에 2023년 7월 제16차 총회에서 138개국의 승인을 거쳐 디지털세의 주요 내용 및 이행조치를 담은 성명문을 최종 발표했다.
디지털세는 필라1와 필라2 두 축으로 구성되어있는 세제이다. 필라1은 다시 Amount A와 Amount B로 나누어 볼 수 있다. Amount A는 고정사업장 유무와 관계없이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과세권을 재배분한다. 이로서 기존의 과세원칙에 따라 고정사업장이 없어 과세하지 못했던 거대 디지털기업에 대한 과세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Amount B는 통상적인 마케팅 및 유통활동에 대하여 이전가격 책정을 간소화·효율화하여 납세자와 과세관청의 분쟁을 감소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프레임워크이다. 수익성이 높은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Amount A와 달리, Amount B는 필라1 이행역량이 부족한 저역량관할권을 배려하는 관점에서 모든 납세자를 대상으로 이전가격세제의 단순화를 모색한다.
필라2는 흔히 ‘글로벌최저한세’로 불리는 조치로, 일정 규모 이상 다국적기업의 소득에 대해 최소 15% 이상의 실효세율로 과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동 제도는 최종모기업이 모든 추가세액을 납부하는 ‘소득산입규칙’, 최종모기업 소재국 실효세율이 15%에 미달하는 등의 경우에 적용하는 ‘소득산입보완규칙’, 소재지국에서 소득산입규칙 및 소득산입보완규칙에 우선하여 과세하는 ‘적격소재지추가세액’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한편 필라2 ‘원천지국과세규칙(Subject to Tax Rule, STTR)’은 행정력이 낮은 일부 개발도상국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으로, 다국적기업이 해외특수관계자에게 지급한 이자, 사용료 등이 9% 미만으로 저율과세되는 경우 개발도상국에 추가 과세권을 부여한다.
우리나라는 2022년 12월 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 제60조 내지 제86조를 신설하여 세계 최초로 글로벌최저한세를 입법했다. 입법당시 소득산입규칙과 소득산입보완규칙을 2024년부터 시행하기로 했으나, 주요국의 시행시기에 맞추어 소득산입보완규칙 시행을 1년 유예했다. 현재까지 EU,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일부 국가가 2024년부터 글로벌최저한세를 도입하기로 확정했다. 한편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를 중심으로 디지털세 협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나, 입법부에서 공화당의 반대로 필라1,2의 비준 및 입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필라 1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미국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필라1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최소 30개국 이상이 협정에 비준하여야 하며, 해당 국가에 소재한 다국적기업의 최종 모회사가 전체 적용대상 모회사의 60% 이상을 차지하여야 하는데 미국에만 40% 이상의 모회사가 소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2023년 내에 필라1 비준이 어렵다고 밝혔다. 뒤이어 OECD는 회원국간 이견으로 인해 필라1 다자조약안 확정 및 서명 시점을 6개월 연장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처럼 필라1 도입이 늦어지자 캐나다는 독자적으로 디지털서비스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는 등 개별 국가들의 디지털서비스세 과세가 확산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디지털세가 OECD/G20 등 선진국의 이익을 반영한 조치라며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소재국 중심의 개발도상국들이 반발하는 것도 디지털세 합의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이다. 개발도상국들은 2023년 11월 UN 결의안을 통해 OECD/G20 IF가 주도한 디지털세 프레임워크에 대응하는 새로운 국제조세 실무그룹 설립에 합의하였다. 동 결의안은 125개국의 지지를 받아 통과되었으나 한국, 미국, 영국 및 EU 국가 등 48개국이 반대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디지털세 논의는 양분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다수의 국가에서 도입이 확정된 필라2 글로벌최저한세에 우선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일부 2차전지와 태양광 업체들이 1조원 이상의 세제혜택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글로벌최저한세의 영향으로 해당 세액공제의 입법효과가 축소될 수 있다. 즉, IRA 등 투자세액공제를 적용받아 현지에서 15% 미만의 실효세율을 부담할 경우 필라2에 따라 국내에 상당한 추가 세액을 납부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글로벌최저한세를 도입하는 국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각국의 입법 동향을 지속적으로 확인하여야 한다. 그룹사 차원에서는 해외자회사들의 실효세율을 계산·관리하고 세부담 최적화를 위한 방안을 다방면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변화된 기업환경을 고려하여 효과적인 외국인 투자유치정책을 마련하는 한편 과세당국간 소통을 통해 국가차원에서의 분쟁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국내연구에 따르면 필라 1, 2를 모두 도입할 경우 외국인 투자 유입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나는 등 디지털세 도입으로 외국인 투자유치가 늘어날 수 있다. 디지털세의 복잡성으로 인해 과세당국의 규정 준수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가 간 지속적인 정보 공유와 협력을 통해 발생가능한 과세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는 정부의 역할도 요구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붙임의 원문 보고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