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 예찬론
신길수
하늘이 온통 노란 카페트로 뒤덮여 있다.
그 지독한 술독에 빠졌다 탈출한 뒤에 하늘을 바라보니 곁에 누가 있었는지,
내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술에 취한 채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와 만났는지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말 엄청나게 마셨나 보다.
평소 애주가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술을 좋아하던 나. 술이 나를 따라 다녔는
지, 내가 쫓아다녔는지 항상 가까이 했던 술, 하지만 이젠 술마시는 것이 무섭고
두려워진다. 술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실수라도 할까 봐서다.
과음을 하고 난 다음날이 되면 술을 쳐다보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런데도 또 다
시 술자리를 해야 할 경우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하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함께 자리한 일행들이
“어휴, 이 쓰디쓴 술을 왜들 마시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쓴술을 마시는 사람들
이 이해가 안돼."하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함께 자리한 일행들이
“나도 그래.”
하면서 하나 둘씩 동조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런 의미에서 한잔하자고 건
배 제의를 하면 사양하지 못하는 술좌석.
몇 년전,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해 전세금마저 날리고 난 후 마땅히 갈곳이 없
어 아내와 6개월간 별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서울 사무실에서 기거를 하면서
명예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토요일이 되면 아내가 있는 청주로 내려와 월
요일 아침에 올라가곤 했다.
여러 달이 지나면서 나는 혼자 있는 것에 어느덧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 당
시 하루에 라면 한끼, 어떤 날은 하루종일 식사를 거른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
다. 사무실이 집 주변에 있었던 터라 향우회다, 친구들 모임이다 하여 술자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청주에 내려왔을 때 아내는 외롭다는 말을 했다. 이제까지 잘
견뎌 주었던 아내에게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은 나로서는 고민스러웠다. 가정이
냐, 일이냐를 선택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인간 관계, 터전을 뒤로한 채 서울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여러 사람들에게 서울로 다시 오마 약속을 하고
짐과 함께 트럭에 몸을 실었다. 그날은 바람에 낙엽이 뒹굴고 산 속에는 형형색
색 단풍들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청주로 내려와서는 당분간 마음을 비우고 형님이 경영하던 갈비집에서 시키지
도 않은 숯불 피우는 일을 도와 주고 있었다. 영업이 끝나고 돼지 목살에 소주
한잔 마시는 것으로 만족을 느끼면서.
가을바람이 몹시 부는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숯불을 피워 손님 테이블에
가져다주려고 방안으로 들어설 때, 아내가 와서 나를 바라보더니 어이없다는 표
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를 부둥켜안더니 “당신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된거냐”며 울기 시작했다. 순간 나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
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숯불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 동안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그날, 초라한 나의 모습을 잊으려고 애꿎은 술만 하염없이 마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가끔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그때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회는 성실하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이해
타산을 잘 따지는, 사리사욕에 밝은 사람들에게는 너그러운 사회가 된 것 같아
너무도 아쉽다.
남자들 세계에서의 술은 경우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론 술로 인해 일
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지만 적절히 활용하면 가치 있는 수단으로 만들 수 있다.
나는 다방에서 차 한잔을 마시는 것 보다 막걸리 한잔을 마시는 것이 낫다고 생
각한다. 이것이 애주가의 마음일까.
애주가들의 사연도 가지가지다.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해 전봇대를 붙잡고 실례
를 하는데, 갑자기 뒤가 축축해져 돌아보니 자신을 전봇대 삼아 볼일을 보는 사
람이 있어 술이 번쩍 깼다는 일, 또는 봉고차 옆에서 볼일을 보는데 갑자기 차가
달아나더라는 얘기가 결코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요즘은 술취한 사람들을 대상
으로 하는 범죄수법이 다양해졌다고 하니 자제를 해야 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
을까 생각된다.
폭주(暴酒)한 다음날은 고통스런 날이 되고 그러면 꼭 먹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다. 최소한 다섯 개는 먹어
야 숙취가 사라진다. 이런 나의 숙취법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20여년전 군에서 휴가를 나와 친구 두 명과 함께 가장 많은 술 행군을 한적이
있다. 점심때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무려 열한차례를 마셨다. 남
들이 알면 엄청난 녀석들이라고 하겠지만 젊은 혈기로 그렇게 마셨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우리 인생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문화가 있듯이 술에도 문화가 있다. 의미가
없는 술좌석, 술마시는 기본이 없는 사람은 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얼마전,
경주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문화 엑스포 행사장을 다녀오면서 나보다도 더 술을
좋아하는 인간문화재 한 분과 네 차례나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내 나름대로 자
제를 했다. 구경보다는 술잔이 더 기다려진다는 그분의 말씀에는 술에 대한 의미
가 담겨 있는 듯 했다.
일단 술을 마시면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그러나 마시다 보
면 실수를 하는 것이 인간이다. 많이 마시는 것보다 애주가들의 운치있는 술자리
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다 떨어진 인생길에서의 ‘술’이란 등불과 같다.”라고.
그렇게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 술, 자신의 올바른 술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인생살이의 조화가 아닐까. 내가 마시지 않아도 그 누군가 마실 술의 적절
한 조화는 인생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생활의 활력소로서, 원만한 인간 관계를 설계하는 동반자로서.
1998
첫댓글 일단 술을 마시면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그러나 마시다 보면 실수를 하는 것이 인간이다. 많이 마시는 것보다 애주가들의 운치있는 술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다 떨어진 인생길에서의 ‘술’이란 등불과 같다.”라고. 그렇게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 술, 자신의 올바른 술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인생살이의 조화가 아닐까. 내가 마시지 않아도 그 누군가 마실 술의 적절한 조화는 인생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생활의 활력소로서, 원만한 인간 관계를 설계하는 동반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