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응달에도 꽃이 피고 산청 무덤에도 꽃이 핀다 얼어붙었던 산청 개골창에도 꽃이 핀다 산기슭 한 뭉텅이가 풀썩, 무너져 내린다 송장 마다하는 땅이 어딨누 송장 마다하는 땅이 어딨어, 봄이 오면 또 산청 언덕에 새 무덤이 생겨난다 무덤 없는 산언덕은 볼품없는 언덕이다 축사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이고 또 고인 저수지, 눈이 뻘건 잉어는 아직도 살아서 입을 뻐끔거린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피우는 농부는 또다시 빈 논에 물을 잡고 있다(물을 잡다니? 여자도 아니고 택시도 아니고 물을!) 아직 울음이 익숙하지 못한 산청 개구리들 울음이 목구멍에 걸려, 울음이 목구멍에 걸려, 꾹꾹 첫울음을 울어보고 있다
-『서울경제/시로 여는 수요일』2023.03.15. -
봄볕이 겨울왕국의 얼음 문을 노크하면, 가장 연약한 것들이 달려 나온다. 방금 움튼 씨앗부터 묵은 알뿌리의 새순까지 나선다. 가까스로 나오는 게 아니라 힘차게 흙덩이를 들추고 나온다. 응달에도 무덤에도 개골창에도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나온다. 산청 개구리들은 와글와글 조만간 득음에 성공할 것이다. 얼음 천정이 열린 호수 위로 물고기들이 튀어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