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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함께 강남 2024
수능 1등도 여기 출신이다, 대치동 ‘핸드폰 교도소’ 정체
카드 발행 일시2024.08.13
에디터
심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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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2024
관심
이번 회에선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갑니다. 학원 왕국인 대치동엔 ‘학사’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수험생들의 식사와 숙박, 생활 관리까지 책임지는 곳. 대치동에 이런 학사가 수십 곳 있습니다. 올해로 20년 된 성원학사에선 2024 수능 전국 수석이 배출됐는데, 올해 고교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줬답니다. 입시 경쟁의 생생한 현장, 그 24시를 보여드립니다.
성원학사 수험생들은 일어나면 책상 카메라에 얼굴을 보여야 한다. 평소엔 닫아 놓는다. 김경록 기자
“수험생 여러분들은 자리에서 카메라를 여십시오.”
오전 6시3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성원학사에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자던 수험생들이 몸을 일으켜 책상에 붙은 작은 문을 열더니 카메라에 얼굴을 내보인다. 박옥임(64) 원장이 모니터로 보며 기상 여부를 체크한다.
이어 식사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후드 모자와 반바지 차림의 남학생이 첫 손님. 접시에 밥과 두부, 나물 등을 담은 뒤 주방 이모가 배식하는 오리훈제구이를 건네받는다. 수험생들이 좋아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메뉴.
오전 7시, 박 원장의 시계에서 알람이 울렸다. 기상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을 ‘어린 양’을 찾아 나설 시간. 2층으로 올라가 호실마다 문을 두드리며 이름을 부른다. 한 방에서 반응이 없자 카드로 문을 열고 들어가 학생을 일으킨다. 상습 지각으로 학원에서 ‘근신’ 처분을 받은 학생. 박 원장은 “침대로 올라가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리거나 아예 몸을 일으켜 벽에 북어처럼 세우기도 한다”며 웃는다.
오늘도 이어지는 아웅다웅. “아들 엄마 살려줘.” “어제 늦게 잤니? 조금만 더 잘 거야?” “일어나자. 근신 또 받으면 학원 쫓겨날지 모르잖아.”
박 원장이 3, 4층까지 훑는 동안 국민체조 방송이 나왔다. “운동을 안 하더라도 계속 방송이 나오면 자는 애들한테 자극을 주거든요. 밥 먹고 들어가서 다시 자는 애도 있어 계속 확인해야 해요.”
수험생들 사이에서 ‘핸드폰 교도소’ 라 불리는 성원학사 1층 휴대전화 보관소. 김경록 기자
2024학년도 수능에서 표준점수 449점으로 전국 수석을 차지한 이동건(20)씨도 지난해 이곳에서 공부했다. 고3 때 대구 경신고에서 내신 1.01등급을 받고 수시모집으로 성균관대 의대에 합격했는데, 서울대 의대를 목표로 재수를 택했었다. 성원학사에 들어갈 때 이씨 어머니가 박 원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동건이 휴대전화를 못 뺏었어요. 부탁드려요. 원장님.’
강남2024 10화
📌강남 유흥가 못 지나게 셔틀 운영
📌부족한 과목 특강 강사까지 알선
📌서로 먼저 깨우라던 상산고 1·2·3등
📌10년 만에 학사로 돌아온 N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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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여기 계란 당일 받으면 찐강남… 두 백화점이 부촌 경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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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휴대전화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다 늦잠을 자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모의고사에서 손쉬운 계산 문제를 삐끗하곤 했다. “적재적소에 맞게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일단 선을 그은 박 원장은 이씨가 서너 번 제때 못 일어나자 상담실로 불렀다.
“너 상담할 때 서울대 의대 가고 싶다고 했잖아. 지금 장애물이 뭐야? 휴대전화잖아. 해결할 거야 말 거야.” 마지못해 학사 1층에 휴대전화를 보관했다. 수험생 사이에 ‘핸드폰 교도소’로 불리는 곳.
약속은 했지만, 다음 날 수업을 마치고 또 휴대전화를 보관대에서 꺼내든 채 방으로 갔다. 오후 11시20분, 노크 소리가 들렸다. 굳은 표정의 박 원장이 서 있었다.
수험생을 깨우러 다니는 박옥임 원장. 심석용 기자
“몇 개월만 참으면 되는데 그걸 못 참아. 서울대 의대, 나는 보내고 싶고 너도 가고 싶잖아. 네가 굳이 안 준다면 억지로 뺏을 순 없어. 잘 생각해 봐. 이게 너를 위한 건지, 나를 위한 건지.”
결국 반납했는데, 며칠간 손이 덜덜 떨렸다. 금단 현상이 이런 건가 싶었는데 다행히 몸이 적응했다. 휴대전화가 사라지니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집중력이 높아졌다. 이씨는 “6월 모의고사 일주일 전 높은 표준점수를 노리고 과학탐구 선택과목을 화학 II로 바꿨는데, 휴대전화를 계속 썼더라면 무모한 도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수능 전국 수석 학생의 부모가 보내온 감사 화분. 김경록 기자
불수능이었던 지난해 수능에서 이씨는 생명과학 II 한 문제만 틀렸다. 국어 150, 수학 148, 화학 II 80, 생명과학 II 71로 역대급 표준점수를 받았다. 수능 성적 발표 날, 서울대 의대 수시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는데 상관없었다. 표준점수 전국 수석이어서 정시로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학사에서 짐을 빼던 날 이씨는 박 원장을 꼭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휴대전화가 신의 한 수였어요.”
지난해 성원학사에서 공부하며 수능 수석을 한 이동건(왼쪽)씨와 박옥임 원장. 사진 이동건씨
성원학사 식당은 민속집처럼 생겼다.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이 한양 가는 길에 주막에 들르는 모습에서 착안해 박 원장이 생각해낸 구조다.
성원학사 식당은 민속집처럼 꾸며놨다. 조선시대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기 전 주막을 들르는 모습에서 착안했다. 김경록 기자
강남역 유흥가 못 지나게 셔틀 태운다
오전 7시30분. 창밖으로 차량 경적이 들렸다. 수험생의 등원 시간을 줄여주려고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운전대는 베테랑 운전사 엄모(63)씨가 9년째 잡고 있다. 시대인재나 강남 대성, 강남종로학원 등 대부분의 학원이 도보 10분 이내라 학사 수험생 상당수는 운동할 겸 걷는다. 하지만 강남역 등에 있는 학원에 다니면 차량으로 이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메가스터디 러셀을 지나 강남역까지 아침과 밤에 두 번씩 갑니다. 처음엔 아침만 셔틀을 운영했는데, 엄마들이 ‘애들이 강남 먹자골목 유흥가를 걸어서 지나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해 밤 운행을 시작했어요.
성원학사 앞에 셔틀버스가 주차돼 있다. 심석용 기자
보충할 과목 특강 강사까지 연결
단과학원 수강생은 아침식사를 마치면 학사 식당에 붙어 있는 독서실에 들어간다. 강사를 초빙해 개인 특강을 듣는 이들도 있다. 수험생이 보충할 부분을 이야기하면 박 원장이 적합한 강사를 찾아보고 추천하기도 한다. 특강은 주로 식당 한구석 대나무발이 드리워진 곳에서 이뤄진다.
박옥임 원장과 실장 이모씨. 이씨는 이름 공개를 원치 않았다. 김경록 기자
올해로 20년 된 성원학사는 실장을 맡고 있는 대치동 주민 이모(72)씨의 생각에서 출발했다. 외국계 건설회사에서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던 이씨는 1990년대 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30년간 해 온 일을 더는 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이르게 인생 2막 준비에 나서야 했던 이씨는 대치동에서 숱하게 봐 온 수험생들에게 공부하기 좋은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입시 얘기를 주고받던 이웃 박 원장에게 제안해 대치동 한 고시원 건물을 인수했다. 그 자리에 6층짜리 새 건물을 지어 학사를 열었다. 처음 만든 학사의 이름은 달랐는데, 인근 성원학사가 폐업하자 그곳 수험생을 받아들이면서 이름까지 넘겨받았다. 지금은 월 150만원을 받는데, 당시엔 한 달 이용료가 60만원이었다.
김영옥 기자
“2000년대 초중반은 본격적으로 대치동 학원가가 형성되던 시기였어요. 2004년에 강남종로학원이 문과관을 새로 지었고, 크고 작은 학원들이 하나둘 생기더라고요. 당시 대치동 땅값이 주변보다 저렴했거든요.”
수험생이 빠르게 유입되면서 성원학사도 반사효과를 누렸다. 남녀 합쳐 서른 명으로 시작했는데, 이내 갑절로 늘었다. 대치동 학원에 다니려고 지방에서 온 수험생들이 주로 학사 문을 두드렸다.
방학 때면 단기 학습을 위해 자립형 사립고에서 단체로 오기도 했다. 아침이면 종로학원, 메가스터디, 하이퍼, 청솔, 강남 대성 등으로 흩어져 공부하다가 밤에 학사로 돌아와 야간 공부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성원학사 5층 특실. 화장실과 냉장고가 방안에 있다. 김경록 기자
서로 먼저 깨워 달라던 상산고 1·2·3등
2010년께 여름방학 때 상산고 학생 셋이 한번에 입소했어요. A학생이 오전 5시 30분에 깨워달라고 했는데, 이튿날 B학생이 그러더라고요. ‘A보다 20분 먼저 깨워달라’. 그다음 날엔 C학생이 ‘쟤들보다 15분 더 빨리 깨워달라’고 하고. 알고 보니 학교에서 A학생이 1등인데 2, 3등 애들이 방학 때 따라온 거예요. 셋이서 경쟁한 거죠. 수능에선 3명 성적 순위가 조금 달라지긴 했는데, 결국 모두 의대에 갔어요.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아는 후배한테만 여기 학사 위치를 알려준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고시원 수준으로 밥과 기본 반찬만 줬다. 학부모들이 “제대로 아이들에게 끼니를 챙겨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학사 1층에 식당을 만들었다. 박 원장이 오전 4시에 나와서 식사를 준비하고, 평촌에서 출퇴근하는 주방 이모가 돕는다. 평일은 아침식사만, 휴일은 세끼를 모두 만든다. 추가 요금을 내면 평일 점심과 저녁식사도 먹을 수 있다. 단과 수업만 듣는 학생을 위한 형태다.
지난달 25일 성원학사 아침 반찬. 메인 메뉴는 오리훈제구이가 나왔다. 심석용 기자
1등 엄마에게 말도 못 걸더라, 성적이 계급?
하루는 자사고에서 학부형 5명이 상담하러 왔는데 한 분이 따로 앉고, 다른 분들은 그 엄마에게 말도 잘 못 거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전교 1등 엄마였어요. 아들 성적이 일종의 계급이 된 것 같더라고요. 자사고 학부형들은 학사에 찾아와 다양한 요구를 많이 하세요. 덕분에 수험생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나갔죠.
주축은 역시 N수생이다. 지난달 기준 재수생 39명, 3수생 16명, 4수생 2명이 학사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는 재학생이나 수험 판으로 되돌아온 직장인. 집이 수도권에 있는 수험생이 15명. 나머지는 광주나 대구, 경남 산청군 등 다양하다.
김주원 기자
전국에서 모였으니 에피소드가 많죠. 앉아서 오래 공부하다 보니 변비로 고통받는 애가 많았어요. 고구마를 잘게 썰어 억지로 먹이기도 했죠. 하루는 한 학생이 화장실에 갔다가 너무 힘을 주다 보니 쓰러진 거예요. 이 선생님이 업고 병원으로 뛰었죠. 걔는 병원에서 정신 차리자마자 공부해야 한다며 퇴원하겠다고 우기더라고요.
수능을 치른 뒤 학사에 남아 정시 전형을 준비하던 정모양은 처음으로 귀를 뚫었다가 병원에 실려갔다. 연세대에 진학한 정양은 지금도 절대 귀걸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택시에 주민증 태워 보내 의대 합격
7년 전 재수하던 김모군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기도 했다. 그는 수시모집 전형으로 부산대와 경상대 의대를 지원했었다. 그런데 수능을 보고 가채점해 보더니 지원한 의대의 수능 최저등급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울해 했다. 좌절한 김군은 학사에 틀어박힌 채 수시 2차 전형인 면접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 전남 광양에서 엄마가 찾아와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부산대 시험 날짜가 지나버렸다. 남은 건 경상대 의대뿐. 2차 전형 전날 박 원장이 방으로 찾아갔다. “일단 면접을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지, 안 보면 기회도 없잖아. 내 말이 맞는 건지 판단은 네가 해야 해. 당사자는 너야.”
김군은 고민하다 마음을 바꿨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고속버스를 타러 갔는데 웬걸, 학사에 주민등록증을 두고 간 게 아닌가. “급하게 택시를 불렀죠. 기사한테 주민등록증을 주고 동서울터미널까지 가달라고 했어요. 사람이 아니고 주민등록증이 타고 간 거죠.” 다행히 김군은 신분증을 들고 시험장에 갔다.
며칠 후 수능 성적표가 나왔는데 가채점 때와 달리 의대 수능 최저등급을 충족하는 결과가 나왔다. 김군은 경상대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얘가 짐을 빼러 학사에 왔는데, 민망한지 빼빼로 한 뭉치를 주더라고요. 자기가 공부가 잘 안 될 때면 매일 먹던 거라면서요.”
성원학사 복도. 김경록 기자
10년 만에 학사로 돌아온 N수생
10년 만에 돌아온 수험생도 있다. 정모(29)씨는 2014년 부산에서 올라와 대치동 재수 종합반에 다녔다. 수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성적에 맞춰 진학했다. 이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판교의 한 연구원에 들어가 일했는데, 지난해 ‘U턴’을 감행했다.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있던 차에 재수를 같이 했던 친구가 수년간 시도 끝에 목표했던 의대를 갔다며 재도전에 나선 것.
9년 전 살았던 성원학사에 지난해 6월 찾아왔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박 원장은 집인 부산에서 공부하다가 주말에만 대치동으로 와 단과수업을 들으라고 조언했다.
목표만큼은 아니지만, 수능 성적이 괜찮아서 서울대 사범대를 지원했더라고요. 그런데 면접을 보다가 자기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길로 학사에 찾아와 ‘후회 없이 풀타임으로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올 초부터 어느 학원에 다닐지 등을 상담해 주고 있어요. 요새 감기에 걸렸는데 어서 나아야 할 텐데….
신재민 기자
식을 줄 모르는 입시 경쟁에 대치동 학원가의 불은 꺼질 줄 모른다. 문을 닫는 학사도 있지만, 이내 새 학사가 자리를 채운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대치동 학사’만 최소 32곳. 고시원까지 합치면 세 자릿수. 그만큼 수요가 많다.
목표한 게 있어서 N수나 상경 방학 특강을 택했을 테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게 박 원장과 이 실장의 생각이다. 다만 언제까지 학사를 운영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수험생들을 철저히 관리하는 건 다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하는 건데, 나이가 들어서 예전보다 벅찹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때가 되면 그만둬야죠. 물론 아직까진 아들딸 같은 학생들이 좋아서 하고 있지만요.
강남 2024 시리즈
① 여기 계란 당일 받으면 찐강남… 두 백화점이 부촌 경계 그린다
② 신강서 1억 써도 못 들어간다… 999명만 허락된 ‘비밀의 방’
③ 손주 입학에 아리팍 내줬다… 강남 할마할빠 ‘대물림 3종’
④ 강남서 녹물 20년 버텼다… 의대 보낸 ‘마통맘’에 온 행운
⑤ 남향·한강뷰 둘 다 얻었다, 아파트 고정관념 바꾼 아리팍
⑥ MB 단골 압구정 신사시장… 앙드레김 흰옷 ‘변색 참사’도
⑦ 콜의 성지서 800만원 찍다… 그들의 ‘강남이어야 하는 이유’
⑧ “내 새끼 상속세 물리기 싫다” 1000억 부자 포르투갈 간 이유 [강남 부자 절세법①]
⑨ 20억 물려주고도 0원 냈다…강남 아빠 늙기 전 큰그림 [강남 부자 절세법②]
에디터
심석용
관심
중앙일보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0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