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18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18 초록색 모자
초등학교에 둘어갔을 무렵 나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어른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에 모른체하고 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른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다고 나무란다. 그래서 어른이 오면 피해 다녔다.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인사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부끄럽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왜 부끄러운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상한 아이" 라고 수군거린다. 이 "부끄럼쟁이" 라고 하는 병(?)을 안고, 나는 남모르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부끄러운거야, 뭐가?" 라고 어머니는 나무란다. 그러나 무엇이, 왜, 부끄러운지, 나도 모르는 것이다. "말해 봐라 왜 그렇게 부끄러은 가를." 라고 어머니의 추궁에 함께 있던 어른들도 저마다 "아무 것도 부끄러워 할 필요 없잖아? 또랑또랑하게 인사하면 그래 또랑또랑한 착한 아가씨구나 하고 모두에게 칭찬 받을 것인데."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야." 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한 채 눈물만 머금곤 했다. 말해 봐, 왜 말 못해, 라고 어른들이 다그치면, 나는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울고 있는 거야, 참 이상한 아이군" 이라는 말을 주위 사람들로부터 듣는 아이가 되어 버리고 만다.
초등학교 일년 때, 나는 모자를 잃어 버렸다. (그 무렵은 소년은 학생모를 꼭 쓰야 하고, 소녀는 자유였지만, 대부분은 좋아하는 모자를 쓰고 통학하고 있었다.) 그 모자는 초록색의 일종의 '변형 베레모' 라고도 할 수 있는, 가장자리에 가죽이 붙어 있는 조금은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모자였다.
그것이 학교의 '분실물 보관장'의 맨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분실물 보관장'은 큰유리로 된 장으로, 출입 계단의 중앙에 놓여 있고, 교실에 출입할 때마다 눈에 띄게 되어 있었다.
거기에서 초록색 모자를 발견했을 때, 나는 심장이 멈출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그것이 나의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에게 가서 내 것이라고 말하고 그 모자를 받아 와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모자 따위,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해 버리면 좋겠지만, 교실을 출입할 때마다 그것이 눈에 띄는 것이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눈에 들어 온다.
――나는 여기에 있는 거야! 어째서 꺼내주지 않는 거야! 라고 모자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모자가 불쌍해 보여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선생님에게 그것을 말할 수가 없다.
그사이 가족들이 내 모자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된 일이야, 무슨 일이야, 라고 묻는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라고 나는 답한다. 어머니는 "그럼 어쩔 수 없는 일이네." 라는 말만 하고 모자 건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잊어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매일 유리장 안의 모자 앞을 통과해야 한다. 나는 모자를 버리려 하고 있다! 그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마침내 어느 날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의 모자, 학교 분실물장 안에 있는데..." 라고 하니 "그렇다면 선생님에게 말하고 찾아 오면 돼잖니" 라고 어머니는 별일 아닌 듯이 말한다. "그런데.." "뭐가 그런데야? 그 정도 일로 선생님이 꾸중하지는 않을 거야" 라고 어머니는 말한다.
그러나, 나는 꾸중들을 것이 두려워서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가족들은 모르는 것이다. "뭐가 부끄러운 거야, 뭐가? 말해 봐..." 라고들 말한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더는 내게 맡겨 두어서는 않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집안일을 도와 주는 사람을 불러 학교에 보내게 되었고, 이윽고 그는 웃으면서 모자를 찾아 가지고 돌아왔다.
한 시름 놓고 모자를 손에 받아 들자, 한동안의 난관을 돌파했다는 안도와 한편으로는 포기하려던 모자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슴이 벅찼다.
내가 이런 추억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정말입니까" 라고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사토 씨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마음 약한 아이를 가진 엄마였다.
"하지만, 그런 아이였던 사토씨가,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괴물도 제압하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나요?" 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라는 아이'는, 사실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과보호로 자랐기 때문에 나약한 어린이가 되었는지, 아니면 지금의 '강건한 나' 는 나약한 자신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바꿔 놓은 결과인지 잘 모르겠다.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바뀌고 또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백화점 식당에서 6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엉엉 울고 있었다. 젊은 엄마가 옆에서 말하고 있다. "울고만 있으면 모르잖아, 말을 해 봐, 이유를? 뭐라고 말을 해야 알지...속상해 죽겠네, 늘 이 모양이니..." 엄마는 몹시 화가난 상태이고, 초등학교 고학년의 언니 같은 소녀를 되돌아 보았다.
"이 아이, 왜 울고 있다고 생각해?" "몰라요..,"
언니는 무관심하게 대답하고 소중히 여기는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다. "이상한 아이야... 이유도 없이 울기만 하니...엄마는 이런 아이는 싫어." 나는 그 아이에게 참으로 동정심이 갔다. 왜그러니 왜그래 하며 어른은 말하지만 어째서 그러고 있는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모르겠지만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부끄럽다. 그것이 이해될 정도라면, 괴롭지는 않겠는데...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라면 울지 않을 것이다. 라고 나는 그 아이 대신 화가 난 엄마에게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그러나 비록 그렇게 말해 줬다 하더라도 젊은 엄마는 아마 납득하지 못 할 것이다. 사람은 어머니가 되면 왠지 자기가 어렸을 때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