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쓰기 공부
노인대학에서 유서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유서를 한번 써 보았다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찻잔을 놓고
오늘 유언장 쓰기 공부 했어
유언장을 내 밀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제.”
“단디 살아라”
남편을 두고 한 마누나의 넋두리였다. ‘어떤 양심’인지 물었다.
“양심이 있어야 사람이제.” 결국 그 말이 그 말이었다.
이 명제가 수없이 되풀이되고서야 그 의미를 깨우쳤다.
짐승은 양심이 없다는 것, 사람이니까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그 양심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오래지 않았다.
가난한 공무원으로 늘 돈 걱정
교회 집사란 놈이 날마다 술로 고주망태
서러운 시집살이부터 시작해
노름판에서 돈을 잃고 자살 소동을 벌인 일,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속 썩인 일,
직원에게 돈 빌려줬다가 떼인 일.
레퍼토리는 다양했고 소상했다.
경상도 사내라 ‘아는. 먹자. 자자’가 다 이다
평생 다정하게 말하면 맞아 죽는지
다정 다감함은 눈뜨고 찾아 봐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정작 마누나에게 잊히지 않는 일은 따로 있었다.
‘아픈 데는 좀 어떠냐’고 따뜻한 말 한마디 청했다가 단박에 거절당했다.
돌아온 답은 서늘했고 아팠다.
“그런 남자 있으면 찾아가 살아라.”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
마누나는 내게 유언장을 밀쳐 버리면서 한마디 하신다.
“징글징글 맞다.”
“지랄 깨똥, 미에 친놈, 지랄용천 떨고 있네”
그래도 유언장 이라기에 뜯어 보았다.
어디 숨겨 놓은 돈이라도 있으려나 했지만‘역시나’였다.
‘상주(喪主) 석민에게’로 시작된 유언은 어머니 봉양 잘하라.
마누나는 내죽고 뒤처리 잘 하고 3일후에 죽어라
맏이 석민아
어머니 잘 봉양 하라
孝(孝弟慈)에 대해 깊이 생각하여 헤아려라.
아버지[父]는 의(義)롭고, 어머니[母]는 자애[慈]로우며,
형(兄)은 우애[友]하고, 동생[弟]은 공손[恭]하며, 자식은 효도[孝]해야 한다),(孝弟慈)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浩然之氣).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光風霽月).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옳은 것을 추구한다.(唯是是求)
仁義 옳고, 바른 길을 가르친다(삶의 大道)
어짊이 사람의 마음이고(仁人心也)
올바름이 사람의 길이다(義人路也)
급여의 10분의 1은 남을 도우는 데 사용하라
다산의 가훈 처럼
五敎이다(경천, 공경, 조화, 의로움, 책임 원리)
①하늘을 경외(敬畏)하며 살아간다는 敬天愛人 ‘경천의 원리’
②타인을 사랑하고 공경한다는 ‘사랑과 공경의 원리’
③타인과의 관계 및 조화를 잘 한다는 ‘관계 및 조화의 원리’
④덕망과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덕성과 의로움의 원리’
⑤자기에게 성실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다한다는 ‘자기성실과 책임의 원리’
사는 것은
날마다 배우고 익혀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공자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고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대학은 성의(誠意: 자기 뜻을 정성스럽게 함) 다하여,
수신(修身: 몸을 바르게 갈고 닦는다) 修身之要(言忠信 行篤敬 徵念窟慾 遷善改過)
중용(中庸)은 篤行(독행)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여 독실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篤行(독행), "戒愼乎 其所不睹, 恐懼乎 其所不聞"
참고, 기다리고, 견디는 것이다 忍之爲德, 堪忍待 盡人事待天命
사람답게(人人人人人人) 산다는 것이다 君君臣臣 父父子子
어진 마음인 인(仁)과 옳음인 義로 사는 것이다 義在正我
날마다 6경으로 자신을 다듬어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사시니 남의 본이 됩니다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인간이면 자연의 無情說法을 듣고,
지금하고 있는 일이 옳은지 6경에 비추어 보아라
明鏡(깨끗한 마음, 양심에 비추어 부끄럼 없는가?), 物鏡(탐진치), 心鏡(부끄럼 없는가),
史鏡(역사에 어근 나지 않는가) 業鏡(윤리에 어근 나지 않는가)
天鏡(하늘의 도에 어근 나지 않는가)
6경에 비추어 사시니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내 마인숙에게!”
글씨는 정갈했고 내용은 간절했다.
“거친 삶을 옆에서 지켜주느라 고생했네
당신에게 무슨 염치로 유언을 하겠소.
유언장이라기보다는 내 참회문이라 생각하면 좋겠소.
자식 키우랴! 남편 뒷바라지하랴!
평생을 한시라도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당신에게
사랑 주지 못한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그저 용서를 바랄 뿐이오.”
참회문은 살아온 세월에 걸맞게 길었다.
마누나를 보살피고 헤아리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와 탄식이었다.
지금까지의 남편이 아니었다.
술 태백이 날라리 집사였던 남편은 성경도 잘 인용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헐!’
참회록은 마누나 이름 석 자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사랑하는 마인숙에게!” 이어진 고백은 이렇다.
“사랑하는 마인숙에게!”
평생 처음 하니까? 부끄럽다
“남남으로 만나서 사랑하기로 굳게 약속하고 일생을 나와 함께한 나의 사랑 당신!
당신 이름 부를 날도 며칠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의 부름은 나이 순서대로 부르는가 봅니다.
아마 하나님은 당신보다 나를 더 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께 무거운 짐만 맡기며 다시 돌아오지 못할 외롭고 쓸쓸한
머나먼 길을 당신만 남기고 혼자 가려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으오.
살다가 괴롭고 외로우면 꿈속에서 저를 꼭 부르세요.
‘꼭’ 당신을 만나러 오겠습니다. 약속합니다.
내 인생의 전부였던 당신! 멀고 먼 저 하늘나라에 가서
가장 밝게 빛나는 큰 별이 되어 당신 앞길을 밝혀주며 당신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여뽕!
미안해!
너무 고집 부려서
잘 난 채 해서!
고마워!
고난과 역경을 잘 참아 주어서
감사해!
가정에 평안과 평화를 지켜 주었어
사랑해!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 가정이 행북했어
덕분이야!
모두가 아내 덕분 이어서
하늘이 맺어진 인연으로, 사랑으로
배필과 아름다운 삶을 산다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우리 그래도 잘 살아제이’
여뽕!
보배같은 여보!,
내 몸보다 귀한 당신!,
마주보고 누었다고 마누나!,
옆에 누었다고 여편네!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네! 偕老同穴(해로동혈)
여뽕! 고마워!, 미안해! 감사해! 사랑해! 행복해! 안녕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미워 미워 미워하면서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며
말없이 기다려 온 세월
당신은 언제나 눈물을 감추었지
백만송이 배만송이 꽃을 피웠지
순수한 사랑을 할 때 피운 백만 송이 꽃이여
사랑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사랑한다
아름답다
덕분이야
감사하다
귀천 할 때 소풍은 아름다웠다고 말하리
內助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눕기로 했네
“여보, 당신! 부디 몸조심하고 남은 인생을 잘 보내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길 바라겠소.
이 모든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오.
여보, 당신이 분명히 용서해 준다면 조용히 눈을 감겠소.
날 보내고 뒷 정리 잘 한후 삼일만 있다 오시오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 날 아침 그문에서 만나자”
사랑의 서사이다.
마누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돌린다.
‘헐!’
“큰 별? 쥐똥별이면 모를까?”
삶의 흔적이 숨쉬는 앨범을 하염없이 들여다 본다
“그래도 신랑이라고 양심은 있는가 보다?”
마누나의 일갈(一喝)이다. “푸하하하.”
나도 웃고 마누나 따라 웃는다.
마누나 눈망울에 진주 보석이 주렁주렁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짐승’과 ‘사람’ 사이에서 허우적거린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