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실패한 사람---한암스님
오대산 월정사에 다녀왔다.
상원사와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내려와 저녁에 지장암에서 정안 스님을 만나뵙고
전나무처럼 푸르고 곧은 오대산 수행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날 오대산을 그냥 나오기 아쉬워 다시 올라간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의 말씀을 만났다.
"참선이란 군중을 놀라게 하고 대중을 동요시키는 별별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다만 자기의 현전일념에서 흘러나오는 마음을 돌이켜 비추어 그 근원을 명백하게 요달하여
다시 바깥 경계를 대함에 부동함은 태산 반석과 같고, 청정하며 광대함은 태허공과 같아서
모든 인연법을 따르되 막힘도 걸림도 없어 종일 담소하되 담소하지 아니하고
종일 거래하되 거래하지 않아야 한다"(한암선사1876-1951)
눈이 번쩍 뜨여 상원사 입구 게시판에 적혀 있던 글을
수첩에 적어 가지고 와서 수시로 보고 있다.
'바깥 경계를 대함에 부동함은 태산 반석과 같고, 청정하며 광대함은 태허공과 같아서',
볼 때마다 구절구절이 패부를 찌른다.
한암 스님 회하로 출가한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쓰면서
한암 스님의 지도 아래 공부했던 스님들을 몇 분 만났다.
그분들을 통해 한암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언젠가 한암스님의 일대기를 쓰리라 결심할 만큼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한암 스님처럼 대중을 외호하는 데 철저했고 복을 아낀 분은 없다고 한다.
군인들이 상원사에 올라왔다가 도시락을 먹고 수각에 밥을 흘려놓으면
스님께서 직접 나가셔서 밥풀을 바가지에 주워서 씻어 가지고는
그 사람들 보는 데서 잡수시곤 했는데,
그러한 노수행자의 모습이 후학들에게 물자절약과 인과에 대한 지침이 되었을 것이다.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냈고 월정사 조실로 있으면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이십칠 년 동안 오대산 동구 밖을 나오지 않았던 한암 스님은
수행과 대중외호에 철저했던 오대산의 한 마리 학과 같았던 수행자다.
대중들에 대한 그분의 자비심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될 만큼 대단했던 것 같다.
어린 사미, 사미니에게도 한없는 자애로움으로 대하셨다고 한다.
한번은 경내를 지나시다가 간장을 떠 담는 사미승을 보시고 다가와
"얘야, 간장은 이렇게 떠야 흘리지 않는단다" 하시고는
간장을 흘리지 않고 떠 담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그리고 철없이 순진하기만 한 사미니 하나가 산딸기를 따와서 내밀고는
시시콜콜 이것저것을 여쭙자,미소를 머금은 채 일일이 답을 해주셨다는 이야기를,
오대산에서 사셨던 노비구니 스님께 들은 적이 있다.
마치 부처님을 뵙는 것 같았다는 게 한암 스님을 직접 뵌 분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한암 스님에 대한 여러 일화를 들어보면 사람에게는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평등하게 대한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도에 대한 푸른 열정을 잃지 않고
승속을 가리지 않고 사부대중을 모아
상원사 좁은 방에서 칼잠을 자게 하며 정진을 독려하셨던 수행자 한암 스님.
수행자라면 참선 외에 염불과 간경과 의식과 가람수호에도 철저해야 한다며
수시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게 하고 해제철에는 직접《금강경》을 설하셨으며,
수행자가 의식을 집전하지 못하면 위의를 지닐 수 없다며
어산(범패)에 능한 스님을 모셔와 의식을 익히게 했던 선사셨다.
그렇듯 품이 넓고 자비로웠던 한암 스님께서도
계율을 어기는 일에 대해선 단호하셧다고 한다.
월정사 회주 현해 스님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다.
상원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민가 두 채가 있었는데. 곡주를 팔았던 모양이다.
하루는 상원사 선방에서 공부하던 한암 스님의 상좌 두 사람이
그곳에서 곡주를 좀 마시고는 상원사로 올라왔는데,
무슨 일인지 조실채에 계셔야 할 한암 스님께서
한밤중에 마당에 나오셨다 상좌들과 맞닥 뜨렸다.
곧, 큰방에 상좌들을 앉혀놓고 물었다.
"술을 마셨는가?"
"예, 마셨습니다."
상좌들의 이실직고를 듣자마자 한암 스님이 시자에게 일렀다.
"회초리를 가져오너라."
시자가 가져온 회초리의 단이 가늘자 시자를 꾸짖으며 다시 명하셨다.
"회초리가 왜 이리 가느냐? 더 굵게 만들어오너라."
평소에 자비롭고 조용하며 화라고는 결코 내지 않던
조실스님께서 그날은 진노하셔서 회초리
한 다발이 다 부러질 때까지 두 사람을 내리쳤다.
"이, 나쁜 놈들아! 평생 공부해도 깨칠까 말까 한데
술 마시고 들어오는 이것이 중노릇이더냐?"
현해 스님으로부터
"최근 한암 노스님께서 쓰신 글을 하나 새로 찾아냈습니다.
당신의 일생을 손수 쓰신 내용인데,
제목이 '일생패궐一生敗闕'이었어요. '내 일생의 실패작'이란 뚯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평생 산문 밖 나오지 않고 그렇듯 엄하게 계율을 지니고 철저하게
수행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일생을 실패했노라'는 글을 남긴 대선사 한암 스님의 삶 앞에서
숙연함을 넘어서 비감한 마음이 든다.
명색이 불자요, '수행하자'라고 무수히 부르짖으면서도
곁에 있는 인연조차 사랑으로 보듬지 못하고 분별을 일삼아
상처를 입히고, 정진에 대한 절박함을 잊은 채 적당히 세월을 보내며,
매사에 정밀하지 못한 채 탐진치 굴레 속을 끝없이 윤회하고 있는
내게 한암 스님께서 이렇게 꾸짖는 듯하다.
"평생을 공부해도 깨칠까 말까 한데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 노릇이더냐?"
(인생을 낭비한 죄 (박원자 著 )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