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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4: 16. 양육자 - 룻 4: 17. 오벳
룻 4: 16. 양육자 -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
1]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혹자는 나오미가 그 아이의 보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Hervey), 이것은 보아스와 룻을 통해서 난 아이가 엘리멜렉의 가문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나오미가 그 손자를 자신의 양자(養子)로 삼았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크다(Keil).
2] 그의 양육자가 되니
나오미는 말년에 본 아이를 자기의 생활권에 두고 그를 양육하였다.
룻 4: 17. 오벳 -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
1]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이름을 짓는 행위는 소유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모가 이름을 지을 수 있다.
여기서는 특이한 행동이 나타났다. 이웃 여인들이 이름을 지어준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아이는 성읍 모든 사람들이 오벳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2]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보아스와 룻이 낳은 아들은 '계대 결혼'에 의해 태어난 아이이다. 곧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 가문을 잇게 될 아이였다(10절).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렇게 간주했던 것이다.
한편 이 아이의 이름 '오벳'(히)은 '섬기다'에 해당하는 '아바드'(히)의 분사형으로서 곧 '섬기는 자'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탈굼 역(the Targums)에서는 '오벳'을 '여호와의 종'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오바댜'(히)가 있으므로 그렇게 의역될 필요는 없다. 단지 여기서 '오벳'이란 이름은 늙은 나오미를 봉양하고 섬기는 자라는 의미에서(15절) 그처럼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Matthew Henry, Hervey).
3]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본서의 저자가 다음에 이어지는 다윗의 족보를 열거하기 전, 본서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특별히 본 구절을 삽입시킨 것은 저자가 본서를 기록한 목적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Keil).
온 세계가 경악한 일본 고베시에서 일어난 지진의 엄청난 재난을 보면서 저는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할 수 있었다.
(1) 인간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크심이다.
(2) 인류의 과학 문명의 허상이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이 시급하다.
안타까운 것은 무너진 건물보다 그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생명이다. 급작스러운 사고가 너무나 많은 위험한 시대이다. 우리나라도 대형 사고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언제 갑작스럽게 죽게 되어도 그 영혼이 천당에서 영원히 살게 되지만 그냥 죽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는 오늘 룻기의 마지막에 와 있다.
룻기는 울고 들어갔으나 웃으며 나온다. 죽음으로 시작하였다가 생명으로 나왔다. 죄와 사망으로 들어갔다가 의와 생명으로 나온다. 절망으로 들어갔다가 소망으로 나오며 화를 당했으나 복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모압 땅에서 육체적인 풍요만을 찾았던 엘리멜렉은 두 아들과 함께 모두 죽었다.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죽는다. 뿌리 잘린 나무처럼 생명의 근본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살 수 있다. 뿌리에 접붙은 가지가 살듯이 다시 살게 된다.
사람들은 교회 다녀서 얼마나 착한 사람이 되었느냐에 관심이 있으나 하나님은 교회를 다녀서 새 생명을 얻었느냐에 관심이 있다.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애쓰기보다는 새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자연스럽게 수준 높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에는 옛 생명과 새 생명이 있다. 옛 생명은 자연인의 생명으로 육체의 생명이 다 인줄 알고 육체만 붙잡고 살다가 늙어서 꼬부라져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돌아가시는 분들이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영원한 고통의 지옥이다.
그러나 새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셔드린 사람으로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셨던 하나님 이시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임 받은 생명을 가졌으니 죽을 수 없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과 한 몸이 되었으므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린다.
기독교는 윤리와 도덕의 종교가 아니다. 생명을 얻는 은혜의 종교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무리 노력을 하고 고행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죄씻음을 받지 못한다. 불교에서 존경받던 성철 스님도 죽을 때 “나는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철저한 금욕 생활이나 수도 생활을 했어도 자기 죄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시며 신이시기에 인류를 지옥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죗값을 치렀다. 죗값은 생명을 지불해야 하며(창 2: 17),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레 17: 11) 죗값의 지불은 곧 피를 흘려 죽는 일이다(히 9: 12).
예수님이 이 일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저와 여러분의 죄, 아니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다. 그리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은 인간이셨기에 죽으셨고 하나님이시기에 다시 살아나셨다.
누구든지 주 예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신 공로로 나의 죄가 완전히 씻겨졌음을 믿는 사람은 죄를 씻음 받고 심판의 지옥 불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죄를 씻을 수 있다. 죄를 씻음 받은 후, 당장 육체의 죽음을 당한다해도 그것은 껍데기가 죽은 것이다. 그 영혼은 슬픔과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이야말로 인간에게 다가온 최고의 충격이자 최상의 복된 소식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으로 「룻기」의 중심 내용도 바로 이 십자가의 복음이다.
룻은 죽은 자의 아내로 불쌍한 과부였다.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여인이다. 출신도 비천한 이방 족속인 모압 사람이었다. 죄인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런데 룻기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비천한 여인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므로 다윗 왕의 가문에 들어갈 수 있는 새 사람이 되었다. 더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라가는 축복을 누리는 새 생명의 사람이 되었다.
이방 여인, 모압 여인 룻의 인생이 새 인생을 이루는 전환을 가져왔다.
어떻게 새 인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었는가?
(1) 생명의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하십시오.
룻은 죽은 자의 아내로서 절망적인 여인이었으나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자비와 사랑이 하나님을 기대했다. 시어머니를 붙좇으므로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로 달려왔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 16).
여러분들이 자의(自意)로 교회에 오셨든 인도를 받아오셨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시라는 말입니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이 되기를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부터 왔다. 정든 고향과 친척을 버리고 찾아왔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파고, 배고픈 자가 식당을 찾고, 아픈 자가 병원을 찾는다.
「나의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우리 민족의 하나님, 우리 교회의 하나님, 우리 가정의 하나님도 좋습니다. 그러나 먼저 개인적으로 만난 「나의 하나님」이라야 놀라운 인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2)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소원하십시오.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왔으나 가난한 룻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 남의 밭에 나가 이삭을 주워 연명 하였다. 하나님을 찾아 멀리 타국에서 온 룻을 버려두시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그녀를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였다.
룻이 보아스를 만남이 바로 룻의 일생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나므로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보아스를 통하여 사랑의 손길을 펼치셨다. 여러분도 「나의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나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요, 그 일생의 놀라운 대 반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사울이라는 이스라엘 청년은 열심히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열심을 낼수록 하나님을 만나기는커녕 자신의 죄만 드러날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천박한 사람들임에도 ‘하나님을 만났다’라고 외치며 기뻐했다. 사울은 그들의 행위가 미웠다. 유대교의 이름으로 그들을 잡아죽이는 일에 선봉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후 그는 변했다. 놀라운 인생의 전환을 이루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핍박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평생 예수님을 증언하다가 순교를 당했다.
교인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만난 증거가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어떻게 만납니까?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관자요, 왕으로 모셔드리십시오. 이제부터 예수님의 말씀에 내 인생을 맡기시고, 순종하며 주의 종의 인도함에 잘 따르십시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거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어떻게 새 인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3)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기를 소원하십시오.
룻을 보십시오. 룻은 보아스에게 자신을 맡아달라고 간청하였다. 보아스는 마침내 소망 없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새롭게 아들을 낳았다. 죽은 자, 엘리멜렉의 가문을 이을 아들을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가문에 증조모가 될 수 있었다.
신앙생활이란 그리스도와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룻에게 보아스가 구세주요, 신랑이라면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요, 신랑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다(엡 5: 22-33).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맡긴 사람이다.
룻은 보아스와 동침하므로 새 생명을 낳았다(13). 그리스도는 우리와 동침하여 한 몸이 되기를 원하신다. 누구든지 마음의 문을 열면 들어와 동거하시기를 원하신다(계 3: 20). 그리스도는 이제 보이지 않는 성령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영원히 사신다. 성령의 체험은 그리스도와 동침의 사건이다(요 3: 5).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인생의 대 전환을 이룬 사람이다.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분명히 외모는 그대로인데 마음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졌다. 가치관이 달라져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교회 생활을 모든 삶의 중심으로 삼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죄와 짝하던 생활 습관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결하게 살아가게 된다. 이런 변화를 「거듭났다」고 한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새 생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엘리멜렉의 가문에 입적이 되어 죽어버렸던 엘리멜렉의 가문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끊어졌던 대를 잇게 되니 자연히 잃었던 가문의 재산인 토지를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다시 난 사람은 다시 태어난 「새 생명」의 아들이다. 거듭난 자로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잃었던 천국의 기업, 천국의 처소를 회복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떠난 죄와 사망으로 완전히 멸망해버린 사람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로운 새 생명으로 태어난 것이다.
18절부터 22절까지의 족보는 이스라엘의 가장 신망 받는 다윗왕의 족보다. 룻이 낳은 아들 오벳으로 인하여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그리고 그 후대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룻은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가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18-22/마 1: 5-6).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제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천국은 그 호적이 준비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 20)
결언: 놀라운 인생의 전환,
모압 여인 룻은 죽은 자의 아내요, 절망적인 사람이었으나 보아스를 만남으로 이렇게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 영접한 사람은 놀라운 인생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 「나의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십시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활철학으로 삼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삼고 순종하며 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사십시오. 날마다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3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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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넉넉한 사람은~ 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 불만이 없는 사람이지요.
싱그러운 봄 향기와 더불어 기분 좋은 미소가 바람과 함께 솔 솔 솔 ~~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행복한 하루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