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자 승어사정승(活狗子 勝於死政丞) - 살아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
[살 활(氵/6) 개 구(犭/5) 아들 자(子/0)
이길 승(力/10) 어조사 어(方/4) 죽을 사(歹/2) 정사 정(攵/5) 정승 승(一/5)]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통이 가득 찼다 하여 苦海(고해)로 자주 비유한다.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세상이 파도가 휘몰아치는 거친 바다와 같다고 봤다. 그곳에 빠진 채 살아가는 사람은 苦海衆生(고해중생)이다. 고해에 빠져 허우적대다 삶을 포기하는 소수도 있겠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은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여기에 적합한 적나라한 속담이 있다. 아무리 천하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다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이다. 유사한 속담도 많아 ‘땡감을 따 먹어도 이승이 좋다’,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 등이 그것이다.
훨씬 더 와 닿는 비유로 살아있는 개새끼(活狗子)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勝於死政丞)란 말이 있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의 ‘松南雜識(송남잡지)’에 나온다. 아무리 천하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가르친다.
세상을 비관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과 함께, 대감 죽었을 때는 문상가지 않는다는 말대로 존귀했던 몸이라도 한번 죽으면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세상인심이라는 것도 함께 깨우쳐준다. 조선 중기의 문신 盧守愼(노수신, 1515~1590)의 문집 ‘蘇齋集(소재집)’에 고위직과 귀양살이를 거듭하며 나중에 사직을 청하는 상소에 이 말이 사용됐다고도 한다.
우리 속담을 한자 8자로 표현하고 그 아래 뜻을 풀이한 丁若鏞(정약용)의 ‘耳談續纂(이담속찬, 纂은 모을 찬)’에는 약간 달리 비유했다.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비록 아무리 고생스럽고 욕되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뜻이다(雖臥馬糞 此生可願 言雖苦辱 猶善於死也/ 수와마분 차생가원 언수고욕 유선어사야)’라고 설명하고 있다.
거북이가 죽어서 점치는데 귀하게 쓰이는 것보다 살아서 꼬리를 진흙에 끌고 다니기를 더 좋아한다고 한 莊子(장자)의 曳尾塗中(예미도중)도 같은 의미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겐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사는 것이 소중하다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갈수록 계급에 따른 빈부격차가 커지는 세상에선 노력해서 상위 계층에 이동하는 ‘개천의 용’은 사라졌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번 생애는 망했다고 ‘이생망’이라며 희망을 놓는다.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으로 살아갔던 옛날과는 달리 목숨만 부지하는 삶이 아니고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한 이들을 힘차게 이끄는 정책은 없을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