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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3일 오늘의 역사
2024년 브라질 체감 62도 폭염 뒤 300㎜ 폭우…극심한 기상이변 브라질 강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지난주 체감온도 62도(과라치바)의 폭염과 하루 새 300㎜ 가 넘는 폭우가 쏭아졌다 이번 극한 기상 이변에 최소 13명이 숨지는 피해도 잇따랐다.
이런 가운데 진흙더미에 파묻혀 있던 4살 소녀가 16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2023년 사이클론 '프레디' 아프리카 동남부 사망자 600명 넘어
열대성 폭풍 사이클론 '프레디'(Freddy)로 지난 두 달간 말라위,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등 아프리카 동남부에서 누적 사망자가 600명을 넘었다 사이클론이 장기간 이어지며 집, 도로, 농지, 병원을 파괴했으며 세 나라에서 140만명 이상이 영향을 받았고, 이 중 605명이 숨졌다.
2021년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는 이집트 시간(UTC+2)으로 2021년 3월 23일에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Ever Given)이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되어 6일간 통행이 마비된 사건이다. 400 m 길이의 배가 시속 74 km의 모래폭풍을 맞고 넘어진 것이 좌초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당국은 이것이 주된 원인이 아니며, 기술적인 문제나 사람의 실수가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좌초가 이 운하의 남단에서 발생한 까닭에 우회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아, 최소 369척의 선박의 통행이 지연되었다. 3월 29일에는 배를 우측으로 80%정도 회전시키는데 성공한데 이어 현지 시각으로 오후 3시 5분에는 완전히 배를 구조하는데 성공했다. 배는 예인선의 인도를 따라 조사를 위해 그레이트비터호로 이송되었다. 운하 당국은 손실 정도를 조사한 후 통행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현지 시각으로 오후 7시에 통행이 재개되었다.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 헌정사상 네 번째로 전직 대통령 구속됨
2018년 3월 19일 검찰은 뇌물수수, 횡령, 배임, 조세포탈 등 혐의로 이명박에게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청구한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 헌정사상 네 번째로 부패 혐의로 구속된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자신의 재판에서 건강 문제를 호소했으나 '특혜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며 외부 진료를 거부해왔으나, 2018년 7월 30일 구속 4개월만에 당뇨 및 수면 무호흡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였다.
다스 실소유주로 349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검찰이 징역 20년 중형에 벌금 150억원을 구형했다. 이후 2018년 10월 5일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16가지 공소사실 중 7가지를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을 선고하였다.
2017년 박정환 9단 인공지능이 정식 참가한 최초대회 ‘월드 바둑 챔피언십’ 우승
2011년 헐리우드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사망
‘세기의 미녀(美女)’, ‘전설적 여배우’, ‘만인의 연인’ 라는 별칭이 붙은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가 지병인 울혈혈 심부전증으로 2011년 3월 23일 79세의 일기로 숨을 거뒀다.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 테일러는 1932년 영국 런던 햄스테드에서 태어나, 2차대전 직후인 1939년 가족과 미국으로 건너갔다. 10세 때인 1942년부터 ‘귀로’ 를 시작으로, ‘녹원의 천사’ ‘신부의 아버지’(1950년), ‘젊은이의 양지’(1951년) 등으로 이름을 날렸다. 1960년 ‘버터필드8’ 과 1966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로 두 번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1963년 ‘클레오파트라’ 로 미국 영화 사상 첫 단독 개런티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녀는 생애동안 7명의 남자와 8번 결혼하고 이혼했다. 18살 때인 1950년 힐튼 호텔 창업자의 아들인 콘래드 힐튼(Hiltion)과의 결혼을 시작으로, 테일러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로 꼽은 리처드 버튼(Burton)과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하는 등 화제가 되었다. 노년에는 1985년 친구였던 배우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에이즈 퇴치 운동을 하는 등 사회활동에 힘을 쏟았다.
2009년 나리타공항 화물기 착륙실패사고
2009년 3월 23일 오전 일본의 나리타(成田)공항에서 화물기 착륙실패 사고가 일어났다. 나리타 공항 당국은 이 사고에 대해 큰 충격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관문으로 지난 1978년 개항된 이후 처음으로 항공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나리타공항에서는 이날 오전 6시50분께 중국 광저우(廣州)발 나리타행 페덱스 화물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던 중 강풍으로 인해 제대로 착륙하지 못하고 활주로에 충돌, 화염에 휩싸이는 바람에 미국인 기장(54)과 부조종사(49)가 숨졌다. 기체는 불길에 휩싸인 뒤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약 2시간만에 진화됐다.
일본의 주요 방송사들이 전한 사공 당시 화면에 따르면 사고기인 페덱스 80편 MD11는 착륙을 위해 A활주로에 진입, 일단 뒷바퀴까지 닿았으나 두차례 튕겨져 올랐다가 옆으로 뒤집어지면서 불길이 치솟았다.
사고 당시 나리타공항 부근에서는 최대 초당 순간 풍속 20m의 강풍이 불면서 이로 인해 기체가 중심을 잃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나리타공항지방기상대는 전날 저녁부터 공항 주변에 바람의 방향과 풍속이 급변하는 ’윈도’로 불리는 정보를 발령, 주의를 촉구했었다
2004년 박근혜 한나라 대표에 당선, 39년 만에 여성당수 탄생
‘탄핵역풍’에 휘말려 총체적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이 2004년 3월 23일, 4·15 총선을 이끌 새 대표로 52세의 여성 재선의원인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다.
박 의원은 이날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전체 투표의 51.8%인 2614표를 얻어 28.8%인 1453표를 얻는 데 그친 2위 홍사덕 후보를 큰 표 차이로 누르고 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됐다.
여성 정치인이 야당 대표가 된 것은 1965년 박순천 여사가 민중당 대표를 맡은 이후 39년 만의 일로 박 대표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이기에 그 의미가 더 컸다.
박 신임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한나라당은 현재 총선을 앞두고 승리는 커녕 생존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화가 나서 한나라당을 외면하고 있는 국민의 관심을 돌려놓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변해야 하며, 이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수락연설에서 “한나라당은 오늘부터 부패 정당, 기득권 정당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했음을 선언한다”며 ‘총선 후보의 법정 비용 준수와 사용 내역 인터넷 공개’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또한 박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부정부패의 근원인 현 당사를 매각․ 처분할 것임을 밝혔다.
바로 다음날 제2창당 준비위원회는 여의도공원 인근 MBC 사옥 건너편에 500여평 정도의 공터를 임차 형식으로 빌려 그곳에 대형 천막을 쳤다.
우리나라의 버젓한 정당들의 중앙당사가 청과물 공판장(열린우리당)이나 천막당사(한나라당) 등으로 하루 아침에 급변했다.
2004년 한국, 12종목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서 11개 금메달 획득, `금 신기록 달성
2004년 한국 안전표지 6종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채택
2004년 하마스 창설자 야신 후임에 강경파 란티시 피선
이스라엘군에 의해 피살된 팔레스타인 최대 저항단체 하마스의 창설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의 후계자로 강경파인 압델 아지즈 란티시가 2004년 3월 23일 선출돼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 강화를 선언했다.
하마스는 야신 피살에 대한 보복으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암살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앞서 하마스 지도부 모두를 살해하겠다고 공언한 데 이어 레바논 남부의 팔레스타인 게릴라 기지를 공습했다.
소아과 의사 출신의 란티시는 하마스 지도부 내에서도 가장 강경한 반(反)이스라엘 발언을 해왔다. 그는 이날 “팔레스타인 전체가 해방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랍국가 주재 미국 대사관들은 자국민에게 테러 경보를 내리는 등 중동지역에 긴장이 고조됐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다음날 24일 이스라엘의 야신 살해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2003년 전남 신안군 홍도 북서쪽 50km 해역에서 규모 4.9 지진 발생
2003년3월23일 오전 5시38분 전남 신안군 홍도 북서쪽 50㎞ 해역에서 규모 4.9의 지진이 발생했다. 계기 지진관측이 도입된 1963년 이후 5번째 강진이다.
이 지진으로 목포·신안 등 전남은 물론, 서울·경기·충청·전북 등 전국 서해안 지역에서 진동이 감지돼 주민들이 놀라 잠을 깨는 소동을 빚었다.
기상청은 진앙에 가까운 흑산도·신안·목포·함평 등에서는 진도 4, 완도·보성·순천·나주·광주·군산 등은 진도 3, 서울·인천·대전·전주·제주 등 나머지 지역은 진도 2 정도의 진동이 감지됐다고 밝혔다.
신안군 홍도관리사무소 직원 임채근(43)씨는 “잠에서 막 깨어나 누워있는데 갑자기 자동차에 탄 것처럼 집이 심하게 흔들렸다” 며 “상당수 주민들도 진동에 놀라 잠을 깼다” 고 말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진도 4는 조용한 실내에 있을 경우 흔들림을 느낄 수 있는 강도” 라며 “현재까지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고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계기 관측이 시작된 78년 이후 규모 4 이상 지진은 모두 30회 발생했으며, 그중 피해가 가장 컸던 것은 78년 10월 규모 5의 홍성 지진이었다. 당시 건물 118개동이 파손됐고, 1000개소 건물에 균열이 일어났으며, 2명이 부상했다. 재산피해는 1억9995만원이었다. 2001년 1월 2만여명의 사망자를 냈던 인도 구자라트 지진은 규모가 7.7이었다
2002년 40년 만의 최악 황사. 초등학교·유치원 휴교
2002년 3월 23일 사상 최악의 황사현상으로 서울·인천·경기 및 대전, 충북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전면 휴업 조치가 내려졌다.
황사로 인해 학교 휴업령이 내려진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미세먼지 농도가 평소(60㎍/㎥)의 34배가 넘는 시간당 최고 2046㎍/㎥에 달했으며, 서울의 평균 미세먼지 농도도 평소보다 21배나 높은 1290㎍/㎥를 기록하는 등 1962년 황사 관측을 시작한 이래 40년 만에 최악의 황사가 발생했다.
이날 전국을 뒤덮은 황사로 85편의 국내선 항공편이 결항하고 눈과 호흡기 환자가 급증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황사는 보통 고비사막이나 중국 북서쪽 타림분지 타클라마칸 사막 등에서 발생한다. 지표면 모래입자가 바람이 센 저기압 후면과 고기압 전면 사이의 한랭전선을 만나 상승해 형성된다. 북서풍을 만나면 황사는 중국 해안지역을 거쳐 한반도, 일본으로 이동한다. 발원지에서 우리나라까지 오는 데는 2∼3일 걸리며 가끔은 캐나다와 미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2001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빈소에 북한 조문단 방문
2001년 그린피스 공동 창설자 데이비드 맥타가트 사망
세계 최대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의 공동 창설자 데이비드 맥타가트(68)가 2001년 3월 23일 이탈리아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맥타가트는 이날 오후 자신의 올리브 농장이 있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역 시골길을 혼자 운전하고 가다 반대편 차와 정면 충돌, 그 자리에서 숨졌다.
캐나다 태생인 그는 1972년 그린피스를 창설, 소형 보트를 타고 프랑스의 핵실험 장소인 태평양 무루로아 환초를 항의 방문, 국제 환경보호운동에 불을 당겼다. 이후 유럽 내 여러 환경단체들을 규합, 지난 1979년 그린피스 세력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해 1991년까지 의장직을 맡았다. 고래 보호·핵폐기물 해양투기·유독 폐기물 생산·핵실험·남극 대륙의 석유·광물 개발 방지 등 그린피스 환경보호 운동의 산 증인이었다. 미 경제지 포브스의 표현대로 "그린피스를 세계 최대 환경보호단체로 만들고, 환경보호 산업 붐을 일으킨 신화 창조자"였다.
맥타가트는 1932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나 20여년 간 건설업에 종사하다 196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청부업자와 택지개발업자로 일하던 1971년 자신이 건설한 스키휴양지에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크게 낙심, 배 한 척에 몸을 싣고 남태평양을 떠돌았다. 이듬해 프랑스가 핵실험을 위해 태평양의 국제해역을 봉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린피스 창설에 나섰다.
2001년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호 남태평양에 추락(활동 종료)
러시아 우주 정거장 미르가 2001년 3월 23일 당초 예상대로 피지섬 인근 남위 40도, 서경 160도의 남태평양에 추락하고 15년 생을 마감했다. 미르호는 이날 동체에 부착된 화물선 `프로그레스`의 역추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폐기 과정에 들어가 모두 세 차례의 역추진 점화를 거쳐 오후 2시 44분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대부분 불타 없어졌으며, 약 1500개의 파편들이 남태평양에 추락했다.
러시아어로 `평화`를 뜻하는 우주정거장 미르는 `하늘 위의 집`을 갖고 싶었던 인류의 오랜 꿈을 이뤄냈다. 미르는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간의 우주개발 경쟁의 산물로 태어났지만 오히려 상호협력을 통해 더 큰 과학적 진보가 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소련은 1961년 최초의 유인우주선 `스푸트니크`를 발사해 우주시대의 기원을 열었지만 8년 후 미국에 달을 선점당했다. 우주정거장 건설을 통해 이 패배를 만회한다는 전략을 세운 소련은 1971년부터 7차례에 걸쳐 소규모 우주정거장 살류트를 발사했다.
1986년 2월 마침내 미르의 20t짜리 중앙모듈이 우주로 발사됐다. 미르에는 1996년 4월까지 생물학실험실, 생명지원장치 등이 설치된 모듈 5개가 추가됐다. 이후 미르는 소련 우주개척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이날 태평양에 폐기될 때가지 미르는 8만8000여회 지구궤도를 돌았고 36억km를 날았다. 12개국의 우주인 105명이 이곳에서 1만6500여건의 과학실험을 수행했다. 1994년에는 미·러간의 우주협력합의에 따라 미르에 미국 우주선의 도킹을 위한 모듈이 건설됐다. 다음해 미 디스커버리호를 타고온 미 우주비행사가 미르에 승선했다. 소모적 경쟁 일색이었던 인류 우주개발사에 협력의 장이 열린 것. 러시아 우주비행사 발레리 폴야코프는 1995년에 438일 연속체류 기록을 세웠고 세르게이 아브데예프는 3회에 걸쳐 2년 이상 우주에 머물렀다.
영광의 이면에는 미비한 시설과 잦은 사고 등 부끄러운 과거도 있었다. 1991년에는 소련 붕괴 직후의 재정난으로 승무원 귀환이 수개월 연기되기도 했다. 1997년에는 산소재생기 폭발로 인한 산소 부족, 화물선과의 충돌, 통제컴퓨터의 고장과 전원차단으로 인한 2차례 궤도이탈 등 자칫 치명적일 수 있는 사고가 계속됐다.
이 위기관리의 경험은 국제우주정거장 계획의 수립과 실행에 값진 자료가 됐다. 러시아는 1년에 2억달러 이상 드는 유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기업의 투자유치 등 상업화를 시도했으나 실패, 결국 2000년 11월 폐기 결정을 내렸다
2000년 문화재청, 안동 봉정사 대웅전 후불벽화가 현존최고(1428년 제작)로 확인
경북 안동 봉정사 대웅전의 후불벽화(불상 뒤 벽체에 그린 불화)가 1428년 제작된 국내 최고의 후불벽화인 것으로 밝혀졌다. 봉정사 대웅전은 최근 「1361년 고려 공민왕 10년 불단 조성」이란 묵서가 발견됨으로써 국내 최고의 목조 건축물임이 확인됐었다.
문화재청은 23일 “대웅전을 해체 수리하던 중 지붕 속 종보받침 장설에서 ‘1428년에 미륵하생도를 그렸다’는 묵서가 발견됐다”며 “이 묵서의 발견으로 봉정사 후불벽화가 그동안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 후불벽화(1476년)보다 48년 앞선 것임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김창균 문화재전문위원은 “석가삼존상을 중심으로 화면을 상·중·하로 구분한 3단 구성법의 구도를 갖고 있는 석가영산회상도로, 고려시대의 양식과 기법을 잘 간직한 우리나라 최고의 국보급 벽화”라고 평가했다. 이 벽화는 크기면에서도 가로 387.5㎝ 세로 380㎝로 국내 최대규모다.
문화재청은 봉정사 대웅전이 고려시대에 건축된 최고의 목조건물임이 확인됐고, 이어 후불벽화도 현존 최고로 밝혀짐에 따라 국보 지정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0년 북한, 서해5도 `통항질서` 일방적으로 공포
북한 인민군 해군사령부는 1999년 9월 일방적으로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획정 발표한 데 이어, 2000년 3월 23일 그 후속 조치로 서해 5도에 대한 `통항질서`를 공포했다.
북한은 서해 5도가 북측 영해에 있으나 미군이 관할해온 섬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등 3개 섬 주변 수역을 제1 구역, 연평도 주변 수역을 제2 구역, 우도 주변 수역을 제3 구역으로 구분하고, 미군측 함정과 민간 선박이 `적대적 운항`이 아닌 경우에만 자유롭게 운항하되, 반드시 정해진 수로를 따라 운항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군 당국은 `이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한편, 서해 5개 도서 지역에 경계강화 지시를 내리고 이 지역의 여객선 및 어선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2000년 IMF 이사회, 독일 호르스트 쾰러를 신임 총재로 선출
호르스트 쾰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재가 2000년 3월 23일 국제통화기금(IMF)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신임 IMF 총재에 선출됐다. 쾰러 신임총재는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기민당 정부에서 성장한 경제 관료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줬다.
쾰러는 콜 총리의 이른바 ‘셰르파’(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실무교섭을 하는 고위관리)로서 서방선진7개국(G-7) 회담이나 EU의 단일통화 ‘유로’ 협상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자 1990년 7월 1일 동서독 통화 통합의 청사진을 마련한 주인공이었다. 또 통일 후 옛 동독 국영기업들의 민영화를 다룬 ‘투자 신탁청’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쾰러는 독일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양대 금융기구중 하나인 IMF를 책임지게 됐다.
1999년 제2차 정부조직개편안 국무회의서 확정(중앙인사위원회, 국정홍보처 신설)
1999년 태국정부, 홍순경 참사관 일가 납치사건과 관련된 6명의 태국 주재 북한 외교관 추방령
태국 정부가 1999년 3월 23일 전 태국주재 북한 참사관 홍순경씨 일가 납치사건과 관련된 6명의 태국 주재 북한 외교관을 `기피인물`로 규정하고 추방령을 내렸다.
홍순경 일가 납치 사건은 북한 공관원들이 홍순경씨와 그의 가족을 납치해 북송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홍씨는 1999년 2월 공금횡령 혐의를 받고 잠적해 북한의 수배를 받아오다 3월 9일 북한 요원들에게 납치되던 중 고속도로에서 차량 전복 사고로 극적 탈출, 태국 경찰의 보호를 받아왔다.
수린 피추완 태국 외무장관은 이날 오전 "우리는 신중히 고려한 끝에 홍순경씨 일가 납치사건에 관련된 6명의 북한 외교관들을 72시간 내에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추방령이 내려진 6명의 북한외교관은 김기문, 김경철, 염종철, 김종기, 현종섭, 이석남 등이다.
1996년 유럽연합(EU), 광우병과 관련 영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
영국 정부가 자국산 소고기가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광우병에 오염됐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유럽연합(EU) 1996년 3월 26일 영국산 소고기 전면 금수 조치를 내렸고 대륙과 영국은 긴장 상태에 빠졌다.
소에게서 나타나는 광우병(BSE)이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크로이츠펠트 야콥병(CJD)과 긴밀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새로운 증거를 발견한 것은 영국 학자들이었다.
1996년 봄 옥스퍼드대학 크라카워 박사는 소와 인간의 뇌 단백질 프리온이 서로 상당히 유사한 유전학적 동질성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광우병과 CJD의 공통점은 뇌 세포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리온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독성단백질로 변해 발병한다는 것. 뇌가 광범위하게 파괴되면서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처럼 변한다.
1998년 11월 26일 영국산 소고기 금수 조치가 공식 해제됐다.
1996년 대만 최초의 총통 직접선거에서 이등휘 총통 당선
이등휘(리덩후이) 총통이 대만 초대 직선 총통에 당선됐다. 이총통은 1996년 3월 23일 약70%의 투표율을 보인 대만사상 첫 직접선거에서 최종개표결과 유효투표의 53.99%(5백81만여 표)를 얻어 제9대 총통에 당선됐다. 대만은 지난 연말의 총선에 이어 대선을 실시함으로써 정치 민주화를 이룩했고 이총통은 1988년 권력을 승계한 이래 12년 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대만 초대 민선총통에 당선된 리등휘는 정치 민주화와 경제 기적을 동시에 이룩한 최초의 대만인 총통이다. 그는 지난 1988년 총통취임이래 추진해온 민주화 장정을 이번 대선을 통해 순조롭게 마감, 장개석-장경구총통 시절의 권위주의 체제를 국민들이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는 민주체제로 이전시켰다.
1995년 러시아 우주비행사 발레리 폴랴코프가 미르 우주 정거장에서 437일의 우주
체류 기록을 세우고 귀환
1994년 인물상 문양 청동기 시대 암각화 발견
1994년 멕시코 대통령 후보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피살
1994년 러시아 항공기 아이들 장난으로 추락 75명 전원 사망
항공 역사상 가장 어이없고 비극적인 ‘비행기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기장이 자신의 두 자녀를 조종석에 앉힌 게 추락사고의 원인이었던 것.
쿠드린스키와 피스카레프가 조종실을 지키고 있을 무렵, 쿠드린스키의 두 자녀인 12살 딸 야나(Yana)와 16살 아들 엘다(Eldar)가 조종실을 방문했다. 자녀가 조종실에 들어가고 싶다는 의향을 비치자 쿠드린스키는 “자동비행 중이니 잠깐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한다. 쿠드린스키는 먼저 야나를 왼쪽 조종석에 앉혔다. 야나는 조종간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치 조종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비행기는 자동비행 중이었으므로 실제로 비행기를 제어할 수는 없었다. 이후 엘다도 왼쪽 조종석에 앉아 야나처럼 조종간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엘다는 야나보다 4살이나 많았고 남자 아이였기 때문에 힘이 셌다. 그래서 엘다가 조종간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자 자동조종장치는 그만 풀려버리고 말았다. 당시 아에로플로트 593편의 기종인 에어버스 310의 자동조종장치는 수십초 이상 일정한 힘을 가하면 일부 시스템이 해제돼 수동 제어로 전환되는 장치였다.
엘다가 조종간을 잡은 뒤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하자 곧바로 무음 경고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기장과 부기장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초기대응을 하지 못해 비행기는 점차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기장과 부기장이 문제를 발견했을 땐 이미 기체가 180도 뒤집힌 상태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기체가 45도 각도에서 90도 각도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골든타임을 놓친 593편은 양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실속 상태에 빠진다. 두 사람의 안간힘도 상황을 뒤집긴 어려웠다. 결국 593편은 70m/s(14,000ft/min)로 추정되는 높은 수직 속도로 추락했다.
아에로플로트 593편은 이륙한지 약 4시간 30분 만에 러시아 케메로보주 쿠즈네츠크 알라타우산맥의 언덕에 추락했다.
1993년 새로운 혜성 발견 `슈메이커-레비 혜성`으로 명명
미국 천문학자 슈메이커씨 부부와 그들의 조수 레비씨에 의해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1993년 3월 23일 발견됐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개인천문대에서 밤새워 찍은 천체사진을 분석하던 이들은 목성근처에서 이상한 점들을 발견했다.
일직선으로 늘어선 이 물체들은 놀랍게도 으깨진 혜성의 일부였고 슈메이커 부부는 이 사실을 국제천체연합에 보고함으로써 이 혜성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이는 영예를 안게됐다.
이 혜성은 원래 거대한 하나의 얼음 덩어리였으나 1992년 7월 목성 주변을 지나는 도중 목성의 강력한 중력에 이끌려 지름 1-3Km 크기의 21개 파편으로 조각이 났다. 이 파편들은 1994년 7월 17일부터 6일간 목성과 충돌, 1천만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장대한 우주쇼를 연출하고 최후를 마쳤다.
1992년 한국-아제르바이잔 국교 수립
1992년 서재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발표
1992년 3월23일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음반인 ‘난 알아요’가 발매 되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산업적, 음악적 전환점이라고 평가 받는 앨범이다
이 음반은 3개월동안 약 100만장의 음반이 판매 되었다
1990년 한국-불가리아, 국교 수립
1989년 화학연구소, 신약 항생제 `KR-10664` 개발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전략방위구상(SDI) 연구ㆍ개발을 지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3년 3월 23일 새해 들어 처음 가진 백악관 TV연설에서 우주병기를 포함한 핵미사일 공격방어시스템인 전략방위구상(SDI:Strategic Defence Initiative)의 연구ㆍ개발을 지시했다.
이 전략방위구상은 소련의 핵전력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한 소련의 핵미사일을 비행 도중에 격추시키는 방법에 관한 연구계획을 의미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이 소련보다 훨씬 우세한 핵전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한 종류의 군사력만으로 그 통제가 충분히 가능했으나, 소련이 모든 종류의 지상미사일을 일소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정확한 핵무기를 가지게 된 지금 새로운 종류의 군사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민을 설득할 더 좋은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는 서부쿠바에 배치되어있다는 소련제 미그23기와 미그21기의 현황을 찍은 미인공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그의 사진 퍼레이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리브해일대의 소련 전력 증강 현황을 보여주는 항공사진들까지 공개했다. 이는 당시 극심한 불경기 때문에 미처 ‘안보’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미국민들의 여론을 자극하기에 더없이 충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 SDI계획은 발사장치를 우주 또는 지상에 배치, 미사일이나 핵탄두를 각각의 비행단계에서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향후 약 10년동안 총 300억달러가 투입됐다. 이에 대해 소련과 서방국가는 물론 미국내 일부에서도 SDI가 우주군비확장을 초래하는 별들의 전쟁 이라며 비판했다
1983년 미국, 미사일킬러 초무기 개발
1980년 한강하구 수중침투 무장간첩사건
초병이 경기 고양 법곳리 한강변으로 침투하는 공비 3명을 발견, 전원 사살
1977년 영국 멘트모어 장원 경매
1974년 북한, 미국에 4개항 평화협정 제의
1973년 주월 한국군사령부 철군 완료 개선 환영식
1972년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발렌시아가 사망
1970년 한글학자 최현배 사망
외솔 최현배는 주시경의 뒤를 이어 김윤경, 이희승, 정인승 등과 함께 일제하 및 해방 후 국가건설기에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보급 발전시키는데 온 생애를 바친 학자로, 1970년 3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지은 ‘우리말본’(1937년), ‘한글갈’(1940년) 등 20여종이 넘는 한글에 대한 저술과 4백여편에 이르는 각종 논문과 논설,수필 등은 한글학자로서 그의 뛰어난 공헌을 보여준다.
경남 울산에서 시골선비 최병도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3세까지 한학을 공부하다 상경, 한성고보(경기고의 전신)에 진학해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의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잠시 국내에 있다 다시 도일해 경도제대 문학부와 대학원을 수료하고 귀국, 1926년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됐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 작고 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받았다.
1965년 미국 제미니3호 발사, 지구를 3바퀴 비행
1963년 학사고시 및 대입자격고시 폐지
1961년 중앙관상대 신청사 준공
1956년 파키스탄 회교공화국 수립
1955년 조선일보 지령 1만호 발행
1950년 세계기상기구(WMO)발족
1949년 초대 주한미국대사에 무초 임명
1946년 김일성 사회주의 정강 발표
1940년 히틀러-무솔리니 동맹 체결
1933년 독일 의회 바이마르헌법 폐기
1932년 신의주 비행장 설치
1919년 이탈리아 무솔리니 파시스트당 결성
1912년 로켓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 출생
1910년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출생
1908년 전명운,장인환의사, LA서 일제의 한국보호정치 찬양한 미국인 스티븐스 사살
1908년 3월 23일 오전 9시 20분, 미국인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 페리역 플랫폼에 들어서는 순간 한국인 청년 전명운이 방아쇠를 당겼다. 두번에 걸쳐 방아쇠를 당겼으나 두발 모두 불발되자 전명운은 곧 권총을 거꾸로 잡고 스티븐스를 가격했다.
스티븐스가 곧 달아나려 하자 이번에는 한국인 청년 장인환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첫 발은 전명운의 어깨에 빗맞았고 나머지 두발의 총알은 스티븐스의 등과 허리에 명중했다.
스티븐스는 1882년 주일 미국 공사관에 근무하며 일본을 두둔해 왔으며 피격 당시에는 한국 통감부의 외교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피격 직전 샌프란시스코 기자회견에서는 "한국민은 일본의 보호정치를 환영한다"는 망언을 하는 등 당시 스티븐스에 대한 재미한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피격 당시 쓰러진 스티븐스와 전명운은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스티븐스는 이틀 뒤 복부탄환 제거 수술 도중 사망했다. 전명운은 병상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가 증거부족으로 석방됐으며, 장인환은 2급 살인죄로 2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1919년 1월 가출옥했다.
1894년 청-일강화조약 조인
1894년 김옥균 일본 망명중 상해로 향발
1862년 러시아 외무장관 칼 바실예비치 네셀로데 사망
1842년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 사망
1749년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 출생
1674년 아일랜드 정치가 헨리 크롬웰 사망
502년 신라에서 처음으로 우경법 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