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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네 야채가게 인터뷰 내용(노하우맨에서 발췌)
‘야채 파는 총각’이라는 특이한(?) 타이틀을 갖고 계시는데요. 장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장사를 택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말 우연하게 시작하게 됐어요. 아주 우연히.... 제가 원래 레크리에이션 전공자였거든요. 그래서 졸업 후 이벤트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는데 한마디로 세상 더럽더라구요. 학연, 지연 등 빽 없는 사람은 거래업체의 담당자조차 만나기 힘들고... 결정적으로 제가 작성한 기획안을 거절했던 선배가 그 다음날 제 것을 그대로 베껴서 브리핑을 하는 거예요. 배신감, 자책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었죠. ‘즐겁고 정직한 일은 없을까, 그래서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일이 무얼까’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그러다 한강둔치를 갔죠. 평소에도 머리 식히러 자주 찾는 곳이었거든요. 그곳에서 오징어 장수를 만났죠. 그런데 오징어 장수는 장사에 별 관심이 없는 거예요. 제가 다가가도 별 반응도 없고.. “그냥 앉아 있기 심심해서 그러는데 제가 한 번 팔아 볼까요.” 그렇게 재미삼아 행상으로부터 오징어를 원가에 넘겨받아서 그 자리에서 장사를 했죠. 오징어를 2만원에 받아 30~40분 만에 다 팔았어요. 돈이 순식간에 4만원으로 불고 또 무지 재미도 있더라구요. 그 돈을 다시 투자해 1~2시간 만에 8만원으로 불렸죠. ‘야- 이거 장사는 참 정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품질로만 승부하면 되니까요. 새 세상을 만난 것 같았어요. 바로 그 오징어 장수에게 ‘스승’으로 모실 테니 정식으로 장사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매달렸죠. 그래서 1년 동안 오징어 장수를 따라다니면서 사람 상대하는 법, 좋은 물건 고르는 법, 목 좋은 자리 보는 법 등등 장사 노하우를 몸으로 익혔습니다. 이후에 1t 트럭을 구입해 자립해서도 감이면 감, 수박이면 수박. 하여튼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거리를 불문하고 찾아다니며, 심할 땐 뭇매를 맞아 가면서까지 좋은 과일 고르는 법을 배웠죠. 남이 오랜기간 동안 쌓은 노하우... 그거 쉽게 알려주는 거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5-6년간 행상을 하고서 98년 그간 모은 돈 1억여 원으로 5명의 후배들과 함께 대치동에 가게를 차렸습니다.
과거를 떠올리시면 여러 기억들이 떠오르실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힘든 순간하면... 여러 번 있었죠. 점포를 얻은 후에 그동안 사귀던 여자와 결혼하려고 했는데 그 부모님이 야채장수라는 것 때문에 거부할 때도 힘들었고.... 그보다 삭발한 얘기를 할까요. 트럭 행상할 때인데요. 한겨울 물건은 하나도 안 팔리고 겨울비에 몸은 으슬으슬 떨리고 장갑은 젖어 손가락이 곱아들어갈 때 처음 제 일을 후회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제게 장사 힌트를 줬던 꽈리 고추 아저씨를 만나 하소연을 했더니 늘 밝기만 한 그 아저씨가 가슴 아픈 과거를 얘기해 주시는 거예요. 두 아이를 물놀이 때 잃어 죄책감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일, 고아를 양자로 들여 기쁘게 키운다는 사실. 얘길 듣고 나서 전 그 길로 곧장 이발소로 가서 삭발을 했죠. 또 여름에 탈진과 후회가 왔을 때 한 번 더 삭발을 했고. 가장 힘든 건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한 겨울에 새벽 2시에 일어나는 것은 정말 너무 너무 힘듭니다. 언젠가 ‘시장에 가야지, 일어나야지’ 생각만 맴돌고 좀처럼 몸이 말을 들지 않는 거예요. 눈꺼풀은 자꾸만 감기고 누운 방바닥이 한없이 아래로 꺼져 내려가는 것만 같았죠. ‘이제 장사 기반이 다져졌기 때문인가, 내가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다른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나태해진 것인가’ 이를 다시 악물고 일어났어요. 그 날 구매를 마치고 3번째 삭발을 했었죠. 그만두고 싶은 49%의 마음과 51%의 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교차할 때가 많아요. 그러나 하고 싶은 맘 그 1%가 스스로를 잡아줍니다.
제일 보람있을 때는 뭐니뭐니 해도 많은 어머니들이 ‘역시 총각네 과일과 야채가 최고야, 총각네 가게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어, 총각이 참외를 권했는데 사과를 사는 사람은 배신이야 배신!’ 하는 말들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있죠. 아울러 직원이 독립된 매장을 얻어 분가해 나갔을 때도 진심으로 기쁩니다. (웃음)
삭발이라... 고통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결의가 느껴지는군요. 총각네 야채가게는 시대와 맞아떨어지는 ‘감성마케팅’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총각네의 마케팅 전략은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저는 상품이 아닌 즐거움을 판매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도 고된 노동이 아니라 ‘놀이’로 봅니다. 스스로를 ‘광대’라고 생각하고요. 트럭 행상을 할 때 원숭이를 데려다 놓은 적도 있었어요.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원숭이도 맛없는 바나나는 먹지 않아요. 원숭이와 바나나가 왔어요!’ 원숭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고, 한 다발 혹은 몇 다발씩 바나나를 사갔어요. 다른 날보다도 훨씬 일찍 바나나를 팔았고, 웃으며 그 날의 장사를 정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야채 POP문구나 옷차림도 그런 맥락입니다. `어머 쪽 팔려-쪽파, 파 가게에서 제일 대빵-대파, 이문세가 젤 좋아하는 채소-당근, 오메 징하게 맵네-청량고추, 나도 붉은 악마-홍고추', '사장 총각 맞선 기념 대박세일'! 정말 맞선을 봤는지, 진짜 대폭 세일을 하는지 그것에 손님들이 정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이런 팻말 하나에 즐거워합니다.
국군의 날에는 군복, 만우절 날 전 직원이 세일러문 복장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손님들이 함께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영업 마치고 톡톡 튀는 새로운 표어를 고민하고 개그 프로나 유행어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써 먹을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주부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총각네 야채가게에 가면 즐겁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함께 즐거워하기 때문에 쉽게 손님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점점 가족처럼 친근하게 되죠. 직원이 아니라 동생이나 아들처럼 대할 수 있도록 고객들 호칭도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이 등으로 부릅니다. 또 고객이 입었던 옷과 가족 근황 등을 기억해 뒀다가 다음에 다시 찾는 고객에게 먼저 말을 건네죠. '어머님, 오늘은 머리 모양이 바뀌셨네요. '시집간다던 딸은 결혼식을 잘 올렸나요.' ‘어머니, 아드님이 갈치조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오늘 갈치조림 어때요.’ ‘어머니 드시면 기절하는 참외 한 번 맛보세요. 먹었다가 기절하면 어떡해? 괜찮아요. 5분후면 깨어납니다.’ (하하) 재밌죠? 굳이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그냥 오는 분들도 많아요.
물론 이곳 강남 대치동에 점포를 차린 것이 무턱대고 한 것은 아니고요 주부들 교육열이 높고 씀씀이가 경기 변화에 민감하지 않는 곳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모든 것' 8개 매장이 모두 강남지역에 있는 이유죠.
아하, 그렇군요. 가게 별칭이 ‘총각네 야채가게’이고 또 직원은 모두 20~30대 젊은 남자들이예요. 참 특이한데 이것도 마케팅과 관련있나요?
첨부터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됐어요. 언젠가 젊은 아가씨를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적이 있었어요. 그 아가씨 역시 밝게 웃으며 상냥하게 손님들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여전히 총각 직원들에게 몰리는 거예요. 아줌마는 총각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죠. 하하.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한결같이 "생동감 있고 젊어서 좋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젊은 남성' 효과 덕인 것 같습니다. 총각에게서 느껴지는 열정, 에너지, 활력 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웃음)
아줌마들을 공략한 총각 마케팅 얘기를 들으니 안 먹힐(?)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그 아줌마들의 주머니에서 돈 꺼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요. ‘나 이영석만의 판매 노하우는 이것이다!’ 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대한민국 최고의 과일과 야채를 가장 적당한 가격으로 가장 즐겁게 판매하는 겁니다.
그 최고의 맛과 신선도가 보장되는 물건을 고수하기 위해 날마다 가락동 새벽시장을 찾아 일일이 뒤집어 보고 자르고 먹어 보죠. 트럭 행상 때보다 수십 배 더 많은 야채가 필요하게 된 이상 물건 떼 오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 때쯤 시장 사람들이 제게 붙여준 별명이 바로 '가락시장 칼잡이' 였어요.^^ 과도 하나 가지고 가락시장 도매상을 돌아다니며 무턱대고 과일상자를 거꾸로 뒤집어 칼로 갈랐죠. 윗부분과 바닥의 과일 크기와 질을 비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윗부분은 좋은 것, 아랫부분은 불량한 것들을 섞어 파는 상인이 있거든요. 터프한 도매업자들은 주먹다짐도 일쑤였지만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아가며 배짱으로 계속 밀고나가니까 결국 그들도 제게 손들고 말더군요. 그런 방식으로 알짜 도매상을 구별했고, 맛이 없으면 아예 물건을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이 찾아도 맛이 없어 안 가져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좋은 물건 나오면 연락주겠다고 한다든지 다른 좋은 물건을 권합니다. 맛없는 걸 팔았다가는 단골을 잃거든요. 한두 번 겪은 손님들은 저희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희가 권하는 과일을 두말없이 사 가세요. 과일이나 야채를 사기 전에 상태를 살핀 뒤에 사는 것도 없고요. 저희 가게 물건은 그만큼 믿을 만하다고 인정하는 거죠.
품질은 곧 신선도에서 좌우되잖아요! 그래서 모든 과일, 생선, 야채 등은 단 하루에 다 팝니다. 단골 아줌마에게 공짜로 주면서라도 '일일 재고 0%'는 지켜냅니다. 보시다시피 저희 ‘총각네’의 모든 매장에는 냉동고가 없습니다. 값보다 맛과 품질로 승부해 당일 구입한 제품은 100% 그날 다 팔아치웁니다. 그날 물건이 잘 안 나가면 저희들 용어로 ‘도보’를 나갑니다. 직접 야채를 들고 주변 식당에 약간 싼 값에 팔러 나가죠. 이렇게 해서라도 ‘무재고 경영’을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날 떼 온 것은 그 날 다 파니 며칠 지난 야채나 생선이 있을 리 없고 날마다 신선한 물건을 제공하니까 당연히 손님들이 찾고, 손님들이 많이 찾아 주니까 또 재고가 남을 수가 없습니다. 선순환인 셈이죠!
재고를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상품을 조금씩 적게 들여놓습니다. 우선 일기, 주변 상황, 물건의 특성, 손님들의 선호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하여 그날 구입할 물품의 양을 결정하고요. 그렇게 결정한 양의 90%만 가져오는 거죠. 여러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것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러면 재고가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약간 모자란 듯 가져오니까 늦게 와서 원하는 상품을 사지 못한 고객은 다음날에는 일찍 올 것이고 이렇게 되면 물건을 사려는 고객들은 모두 영업시간 내에 가게를 찾게 됩니다.
무재고 원칙과 조금 적게 상품을 가져온다는 것을 아는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사기 위해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가격 면에서 사실 우리 가게는 그간 제품을 싸게, 많이 팔아서 성장했어요. 도매시장에서 가격이 폭락한 품목을 집중적으로 사서 팔았죠. 제철 과일이 쏟아져 가격이 많이 떨어지면 이를 대량으로 사서 고객에게 이윤을 적게 남기고 팔았습니다. 시세가 싼 제품만 갖다 팔면 고객들은 제가 파는 상품은 항상 싸고 질이 좋다는 인식을 하거든요. 상품 한 개 팔아 1천원 남기기보다는 10개 팔아 1천원을 남기겠다는 전략입니다.
또 상품 판매 단위를 크게 했습니다. 오렌지의 경우 낱개로 팔지 않고 바구니나 박스 단위로 팔죠. 오렌지 값이 싸고 질이 좋지만 양이 많다고 느끼면 이웃 친구를 데려와 한 박스를 산 뒤 반으로 나눠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고객이 생기게 되는 셈이니까요.
어찌보면 단순하지만 정말 치밀한 판매전략이군요. 차별화된 서비스도 총각네의 또 다른 성공요인인데요. 이영석씨가 생각하는 서비스는 무엇인가요? 또한 단골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제가 아는 서비스는 손님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게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웨이터처럼 격식을 갖추거나 엘리베이터 걸처럼 한껏 모양을 낸 차림새도 아니지만 손님들이 무얼 원하는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객관리 카드는 없지만 손님의 외모, 옷차림, 행동, 잠깐의 대화 등을 통해 고객의 신상, 가족사항, 대소사 등 정보를 기억해 두죠. 그랬다가 손님이 왔을 때 먼저 아들이 기숙사에서 나왔는지, 계단에서 미끄러지셨다는데 건강은 어떠신지, 보낸 과일은 잘 드셨는지 등 개인적인 자연스런 대화를 하고 좋아하는 과일을 먼저 챙겨 드리면 깜짝 놀라죠. 웨이터가 친절하게 대하지만 손님들의 집안사정까지 알지는 못하잖아요! 그래서 저희 가게 손님들은 총각 직원들 가운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습니다. 꼭 그 총각과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죠. 대략 직원 1명이 2백명 가량의 단골고객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손님들의 신상을 알고 있거든요. 특별히 암기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무언가 애정을 갖고 손님을 친누이처럼, 어머니처럼 여기고 대하기 때문에 쉽게 외워지는 것 같아요.
인사를 하더라도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처럼 상투적으로 안하고요 고객이 기억할 수 있는 즐겁고, 신선한 말을 하려 합니다. “어머니 오늘 머리 올리셨네요? 저희 과일을 드셔서 그런지 살결도 더 부드러워지신 것 같아요.” “어머니, 오늘 패션 끝내주시네요. 어디 외출하시나 봐요. 양귀비가 울고 가겠습니다.” 이런 정도의 농담을 손님들은 결코 싫어하지 않거든요.
또 한 번 찾은 고객은 반드시 ‘단골’로 만들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서비스에도 장인정신이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과일도 A/S를 해줍니다. 작은 이익에 정신이 팔리면 더 큰 이익을 놓치게 마련이거든요. 대부분 손님들은 물건이 이상하면 일단 물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화를 내세요. 물품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하거나 보관법 등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경우도 말이죠. 이럴 때는 설득하기보다 먼저 손님의 불만을 들어주죠. 그리고 나서 물건이 잘못된 이유를 설명해 드립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수를 깨닫게 되면 그 손님은 저희 가게의 단골손님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손님이 만족할 때까지 항상 교환, 환불한다는 게 저희들의 서비스 원칙입니다.
총각네는 야채만이 아닌, 마음을 파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모든 직원들에게 그런 서비스 정신이 무장되어 있어야 한결같은 총각네의 이미지가 가능할텐데. 직원관리는 어떻게 하시며 또 직원을 뽑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하루 천 명 되는 손님들 중에는 성미 급한 분들도 간혹 섞여 있기 마련인데요. 한 번은 ‘돈 좀 벌었다고 이 따위로 장사하느냐?’ 며 인신공격적인 말을 하는 손님이 있었어요. 그런 욕설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적이 있었는데 조금 뒤 다른 직원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는 거예요. 중국산 버섯을 왜 속여 팔았느냐며 힐난하는 손님에게 그 직원은 제가 그랬던 것처럼 금세 얼굴을 붉히며 감정제어를 못하는 겁니다. ‘아뿔사 내 일거수일투족이 직원들에게 거울이구나’ 깨달았죠.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얼굴을 씻고 모든 감정을 털고 다시 즐거운 맘으로 손님을 대했습니다. 말보다 보여 주는 것으로 관리하고 있는 셈이죠.
직원은 제게 직원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생처럼 살갑게 대해요. 직원이 일끝내고 집에 가다 사고로 중상을 입었을 때 3천만원 치료비 전부를 부담한 적도 있습니다. 마음이 쓰이는 걸 어떡합니까? 야채가게치고 4대보험 가입한 곳은 아마 저희 가게뿐일걸요. 야채가게가 일요일에 쉬는 건 별난 건데요. 저흰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에 셔터 내립니다. 평일에도 오후 7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3시까지만 일합니다. 그래야 바쁜 직원들이 일주일을 견딜 수 있으니까요. 몇 년 하다가 힘들어 하는 직원들에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으로 한 달 정도 휴가도 줍니다.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직원 해외 연수가 있는데요. 2년만 경력을 쌓으면 누구나 해외연수 기회를 줍니다. 가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것 등 일정 등을 자신의 책임 하에 정하게 하고 경비 일절을 지원해 줍니다. 야채가게에서 무슨 해외연수냐 싶겠지만 직원들의 재충전, 견문과 지혜를 넓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게 장기적 안목에서 가게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은 시키지 않아도 외국 농수산물 식품점에 들려 진열 방법, 신선도 유지, 서비스 등을 관찰하고 오죠. 들어오시다 간판을 보면 ‘젊음 이곳에...자연의 모든 것’ 이란 상호가 쓰여 있는데요. 이것도 해외연수를 다녀온 직원이 낸 아이디어입니다. 직원들은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으니까 기뻐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게 손님들의 만족도를 높인다고 봅니다. 또 전 직원으로 하여금 종업원이 아닌 사장 마인드를 갖도록 애를 씁니다. 저도 팀장이라 불릴 뿐 지금도 매일 본점에서 물건을 파는 판매팀원 중 한명이죠. 사장이 따로 없어요. 가격 결정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저 혼자 하지 않아요. 혼자 하다보면 금방 지치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죠. 구매팀은 시장변동을 잘 알고 있고 판매팀은 손님들 구매경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해서 적당한 선에서 가격결정을 합니다. 초창기 후배들과 가게를 차렸을 때 어떻게 가게를 알릴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가게 문을 닫고 후배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 아파트 반상회에 과일을 무료로 제공해서 홍보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적중한 경험이 있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좋은 생각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그들에게 암시를 줍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독립해서 따로 점포를 꾸려나가야 한다며,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제가 10년 이상 몸으로 배운 노하우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후배들이 지금 청실, 논현, 도곡, 신사, 개포, 광장 등에 8개 지점에서 독립하고 있어요. 누구라도 더 이상 제게 배울 게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독립시켜 줍니다. 점포를 얻는 비용이며 기타 필요한 것들도 모두 지원해 주고요.
그런 대우면 이 가게에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그래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옵니다. 1년에 대략 2백 명 정도 일해 보고 싶다고 찾아오는데 손만 뻗으면 금새 움켜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 기대만 갖고 왔다가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죠. 이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하루 만에 몸으로 깨닫거든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야채 한 다발 팔기 위해서 스무 가지, 서른 가지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굉장히 피곤한 일인데다 폼 나는 일도 아니고...
그래서 직원을 뽑을 때는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성실성을 봅니다. 일부러 힘든 일을 주죠. 점포 청소하기, 손님 차에 과일 실어다 주기, 물건 배달하기 등등 허드렛일을 맡깁니다. 이 일에 일단 합격해야 본격적으로 장사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참~! 하나 특별한 게 있다면 직원 뽑을 때 장기자랑 시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어머님들께 그 정도 넉살 떨려면 장기자랑 정도는 통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야채가게에 장기자랑이라... 과연 괴짜 이영석 사장의 면접답습니다. (웃음) 최고의 맛을 유지하는 총각네만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트럭행상을 했던 저도 처음에는 많이 속았어요. 사과를 믿고 샀는데 윗쪽 것은 맛있고 바닥으로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죠. 해서 앞서 말씀드렸듯 눈을 믿지 않고 발품을 팔아 반드시 먹어보고 맛있는 과일만 구매합니다. 대충 맛있어서 안 되고 확실히 입맛에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저희 가게에 하루 약 천 명 가량 손님이 오는데 제가 그 천명의 입맛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죠. 천 명이 모두 오케이를 할 수 있으려면 대충해서는 안 되잖아요. 보통 새벽 3시부터 시작해서 10시까지 청과물 시장을 돌아다니며 품목마다 일일이 잘라 맘에 드는 것을 찾을 때까지 맛봅니다. 그렇게 해서 먹는 과일이 보통 사과 두 상자 쯤 될걸요. (하하)
그리고 새벽에 눈 뜨자마자 밥을 먹어요. 배가 고프면 어떤 과일이든 맛있을 수밖에 없는데 배가 부르고 더부룩한 상태에서는 정말 맛있는 과일만 맛있게 느껴지니까요.
또 저는 포도주 감별사가 혀를 아끼듯 혀를 소중히 다룰 수밖에 없어요. 담배, 술은 삼가고요 청량음료를 비롯해 자극적인 음료수나 음식들은 되도록 조심합니다. 시장에서 과일 살 때도 중간 중간 생수로 입안을 헹궈서 이전에 먹었던 과일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다른 과일을 맛봅니다. 그렇게 해야 혀가 감각을 잃지 않거든요.
일반인들이 신선하고 맛있는 야채(과일)를 고를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 주신다면요?
우선 손님이 많이 가는 가게는 재고된 야채나 과일이 적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손님이 적은 가게보다는 신선하다고 판단할 수 있어요. 또 맛배기를 통한 품질 검증을 하는 가게 과일은 그만큼 맛에 자신이 있다는 증거이구요. 보면 저녁에 떨이를 하지 않는 가게가 있는데요 대개는 며칠 된 것을 싼 값에 다 처분하려고 하는 것이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맛있는 과일을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먹어보고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을 사는 거겠죠.
참고로 저희들이 ‘야채가게 총각들 부엌으로 들어간 이유’란 책을 냈는데 그걸 참고하셔도 될 듯 합니다. 책 장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웃음) 우선 몇 가지 말씀 드리면 과일은 맛 50%, 보이는 것 50%라서 초보자인 경우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사과는 상자로 살 때 굵기가 일정해야 해요. 알이 잘거나 굵어도 맛이 없게 마련입니다. 표면이 매끄러운 건 주의해야 하는데 그건 보기 좋으라고 왁스칠을 한 것일 수도 있거든요. 오히려 껍질이 까칠까칠 할수록 맛은 좋은 법이죠. 수박은 껍질 부분이 색깔이 연하고 거칠면 토양이 좋지 못한 지역에서 올라온 겁니다. 특히 수박도 왁스 처리를 많이 하기 때문에 표면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은 피하는 게 좋고요. 수박을 갈랐을 때 가운데 과육을 맛보지 말고 껍질과 가까운 부분을 맛봐서 전체적인 맛의 평균을 내야 합니다. 과육의 색깔은 선분홍색이 제일 좋아요. 토마토는 꼭지가 마르지 않은 걸로 사되 손에 쥐어서 단단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익지 않죠. 바나나는 끝에 검은 반점 있는 게 좋은 것이고 참외는 색깔이 짙어야 좋습니다.
야채는 맛 10%, 보이는 것 90%입니다. 무를 고를 때는 가로로 잘라서는 안 되고 세로로 잘라봐야 됩니다. 어느 부위에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기 때문이죠. 마늘은 쪽이 굵을수록 좋지만 마늘에 매달린 두 대가 얼마나 잘 건조되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두 대가 잘 건조되어 있을수록 썩지도 않고 오래가기 때문이죠. 배추는 끝이 오므라져 있으면 좋지 않고 해바라기처럼 끝이 벌어져야 해요. 손으로 들어봤을 때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서도 안돼요. 잎이 흐느적거리는 건 물을 많이 먹은 것이므로 피해야 하고 속을 갈라 보았을 때 배추 뿌리 부분에서 올라온 쫑이 짧아야 합니다. 양파를 고를 때는 끝이 뾰족한 수놈은 피해야 합니다. 둥글둥글한 암놈이 맛이 좋아요. 특히 같은 망에 들어 있는 것들의 크기가 일정해야 합니다. 이거 노하우를 너무 많이 알려드렸는데요. (하하) 이 정도면 됐겠죠?
앞으로 총각네를 뒤따르는 많은 경쟁업체들이 나올텐데 그에 대한 대비책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끊임없는 변화가 요구됩니다. 저희 가게가 많이 알려졌어요. “총각네 야채가게 교육프로그램”운영으로 마케팅 성공요인 분석, 서비스 리더십 점검, 감성서비스 실천, 변화 계획 짜기 등등 많은 부분이 분석되어 소개가 됐어요. 벤치마킹하는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있고요. 그래서 저희 가게는 더 적응력 있는 변화가 요구됩니다. 직원들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을 위해서 매주 금요일 회의 때 지나칠 정도의 자기반성을 하고 컨설팅 전문가와 함께 워크샵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요. 무너지지 않는 총각네를 구축하기 위해서죠
매년 매출이 20~30%씩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흡한 점이 적지 않아요. 하지만 10년 안에 100호점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불감자는 철저히 현재 하는 일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아주 철저히! 어느 중수기업 사장님과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주인도, 종업원도 우리가 들어와도 시큰둥하고 반찬이 떨어져 종업원을 몇 번씩 불러도 오지 않아요. 저 같으면 그렇게 안합니다.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필요할 만한 반찬을 미리 가져다 줄 거예요. 손님들이 원하는 것을 미리 알고 제공해 주는 것이 중요하죠.
그리고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생각을 고정시키지 마시고요. 장사는 결국 사람들 이목을 집중시켜 하거든요. 품질은 그 다음이죠.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사람들이 알아 줘야 하잖아요. 저희가게 옆에 정육점을 낸 아저씨가 어떻게 해야 장사를 잘 할수 있겠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한우 한 마리 가게 옆에다 두시지 그래요 그랬죠. (하하) 풍기 문란 문제가 있어 이뤄지지 않았지만...
창업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철저한 시장분석’, ‘최고의 품질’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인터뷰 하면서 제 안에서도 뜨거운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감사합니다.
‘한 낮에 꿈꾸는 사람은 무섭다.
왜냐하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제 행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혜의 일곱가지 기둥’이란 책에서 로렌스가 한 말이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그 꿈을 위해 달려간다.
그러나 피나는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포기하고 싶은 것을 이기며 기본을 지키는 치열한 삶,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배우면서 이 자리까지 온 끈기와 배짱, 철저한 자기관리 속에서 이영석, 그는 한낮에 꿈꾸었던 것을 실행하고 있었다.
서울창업스쿨 커뮤니티에서 발췌 불펌금지요
첫댓글 예전에 동영상으로 얘기 하시는 것 봤는데 배울게 참 많은 것 같았습니다^^
결혼해서 총각 아닌데.
결혼했어요 ? ㅋㅋ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이 사람 잠도 안자는 괴물이에요 새벽에 칼들고 과일 맛 골라낸다잖아요. 대단. 보통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것 같아요.
주소 : 강남구 대치2동 992-2번지 현대상가 101호 (대치동 은마아파트 후문) << 주소라는데.. 한번 가서 좀 보고 배울라 했는데... 참 핑계지만 시간이 안나네요... 진짜 멋진 사람인데... 이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