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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혼자 떠났던 첫여행지, 몽산포 |
저물녘에야 도착한 태안 버스터미널은 적막했다. 다시 올라탄 안면도행 버스는 조도 낮은 실내등을 밝히고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따금 촌부들이 보따리를 들고선 타고 내리고, 좀 전에 탑승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피곤한 기운이 역력한 모습으로 마을의 점점 불빛을 찾아들었다. 눈은 수북수북 내렸다. 몇 남지 않은 승객들이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차창에 비친 나는 뾰족한 성에처럼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버스는 한참을 가서야 안면 읍내에 나를 부려놓았다. 상점의 불빛도 다 꺼져버린 읍내의 풍경과 귓가에 유령 소리를 내며 스치던 바닷바람과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그리고 하룻밤을 어디서 묵어야 할지에 대한 집채만 한 막막함. 그것이 내게 있어 태안에 대한 첫 느낌, 그리고 기억이다. 그때 난, 스무 살이 막 되던 때였고, 다시 태안을 찾아온 지금은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다. 스무 살이 되던 날 아침, 내 심장 같던 해는 아직 그곳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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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사람들이 하나 둘 대문을 열고 나와 새날로 걸어든다. 빛이 가장 먼저 드는 큰말에서도, 해가 가장 늦게 뜨는 응달 마을인 은거지에서도, 겨우 두 가구만 사는 살막금에서도, 황도에선 가장 늦게까지 배를 댈 수 있는 새시랑에서도. 마을 이름만큼이나 소박하고 순박한 사람과 살림살이들이 볕을 받는다. 밤새 몸을 키웠던 처마의 고드름도 쨍하고 빛난다. 고샅에서 걸어 나오는 푼더분해 보이는 한 할머니를 따라가니 황도보건소로 들어선다. 91년에 이곳으로 부임 와서 딸 둘을 낳고 눌러앉은 여자 보건소장은 잇바디를 드러내며 환하게 첫 환자와 나를 맞아주었다. 이십대엔 핀셋 하나 들고 아프리카로 달려가고 싶었다는 그녀는 이제 황도에선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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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자연휴양림의 쭉쭉 뻗은 적송은 하늘 끝까지 닿는다.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곧은 소나무숲으로 들어서자 길섶에 고여 있던 마지막 안개가 내 발길에 자취를 감춘다.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아이의 손처럼 햇빛이 나무 사이사이를 파고든다. 어깨에 얹힌 눈을 툭툭 털어내는 소나무들, 그 눈 더미에 다시 묻히는 숲길. 백여 년을 넘나드는 나이의 소나무 천연림답게 그 고즈넉함이 가볍지 않고 마음 안쪽까지 편안함을 들여놔준다. 조선왕실에선 이곳의 소나무들을 궁궐을 짓는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산감을 두기까지 하고 배를 만드는 데 쓰기도 했다니 오래도록 귀한 숲인 것이다. 휴양림 안엔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통나무집들이 곧은 소나무 아래 어여쁘게들 앉아 있다. 집은 그 집터나 그 근방에서 자란 나무로 짓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같은 기후조건 속에 있기 때문에 비틀림이 적고 견고하다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나무는 단지 집으로 몸을 바꾸고 같은 바람을 들이마시고 같은 숨을 내뱉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안에 드는 사람도 편안할 수밖에. 솔숲을 빠져나와 이제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가기로 한다. 태안(泰安), 이 길쭉한 땅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마치 섬이라고 해도 될 만큼 어느 쪽으로 가도 바다가 나타난다. 주변엔 120여 개의 유인도와 무인도들이 즐비하고, 리아스식 해안이라 들쭉날쭉 바다가 들고나는 곳마다 차려진 해수욕장이 30여 개에 달하는데 개개마다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꾸지포, 백리포, 천리포, 만리포, 어은돌, 파도리, 아치내, 몽산포, 밧개, 꽃지, 샛별, 바람아래…. 입안에서 오물거리기만 해도 좋은 이름들. 그리고 그 이름만큼이나 각양각색으로 바다와 모래와 자갈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 삼봉해수욕장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줄지어 선 소나무가 만들어주는 길을 다 빠져나가자 바다가 펼쳐진다. 다시 작은 눈발이 흩날린다. 파도는 얼른 눈송이를 받아먹고 달아났다가 다시 와서 모래 위에 쌓인 눈을 밀고 다시 달아나곤 한다. 그렇게 자꾸만 눈을 삼키는 바다처럼 나도 몸을 활짝 연다. 몸을 통과하는 바람과 눈발이 더러워진 상념의 방을 깨끗이 쓸고 간다. 그러자 모래 위의 조개와 소라와 불가사리와 나는 바람에 밀려온 모래에 덮이고 덮인다. 저 아래 지층을 지나 지구의 심장을 향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추억도 화석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해변에 오래도록 서서 바람에 묻힌다. 드넓은 몽산포 갯벌, 썰물 때가 되자 바다는 물을 밀어내고 알몸이 된다. 바다에서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은 대륙붕이고 그 중에서도 갯벌이 단연 으뜸이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갯벌은 면적으로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지만 생태적인 면으로는 최고로 꼽힌다. 법산리 갯벌에선 사시사철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고 게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간다. 한때는 쓸모없는 땅이라 치부해서 간척지로 만들던 이 갯벌은 그런 생명의 보고다. 이 아름다운 갯벌을 밟고 서서 인간이라는 것이 마냥 부끄러워진다. 저기,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는 아낙들이 간간이 보이지만 추운 때라서 갯벌은 지금 바닷새들의 광활한 놀이터가 돼주고 있다. 작은 바닷새들이 떼지어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날아다닌다. 이들이 이곳에 있는 것도 다 먹이가 풍부한 갯벌이기 때문이다. 새들과 노니는 겨울 오후, 바람에 마음을 널고 갯벌 위를 힘껏 달려본다. 젖어 있던 마음의 옷들이 겨울바다의 햇살에 잘도 마른다. 자그마한 파도리해수욕장엔 말간 자갈들이 깔려 있다. 이곳 사람들은 그 빛이 하도 투명하고 예뻐서 해옥(海玉)이라고 부른다. 성난 파도가 자꾸만 해옥을 뭍으로 밀어 올린다. 박형준이라는 시인은 「파도리에서」라는 시에 “밤새 파도 속에서 물새알들이 떠밀려왔다”고 썼다. 밤이 되면 그가 말한 물새알들이 떠밀려올 것만 같았다. 물새알 같은 자갈들이 파도에 휩쓸리느라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오후다. 바다는 자꾸만 뭍으로 모래를 끌고 왔다. 그러면 파도는 그 여세를 몰아 모래를 자꾸만 밀어 올렸다. 그러면 바람은 그 모래로 언덕을 만들었다. 파도와 모래와 시간의 작품, 그것이 바로 신두리의 모래언덕이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어느 날 생겼다가 어느 날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는 게 모래언덕이지만 신두리의 모래언덕은 주변에 들어선 건물들의 영향을 받아 벌써 반 이상이 사라졌다. 여름이면 갯메꽃과 해당화가 붉게 피고 겨울이면 바람의 흐름이 모래 위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언덕. 고운 모래알들이 바람에 날리는 언덕 정상에 서서 늦은 오후의 바다를 본다. 죽음은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일이라고 했던 티베트 사람들의 말이 문득 저 멀리서 들려온다.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는 모래언덕 위에서 나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생이 한결 가벼워지는 해변의 오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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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고픈 마음, 돌아서 가는 사람의 손목도 붙잡아 새 이불 내어 잠자리 만들어주는 사람이고픈 마음으로 다시 길을 간다.
아무도 없는 저녁. 모두들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있는 꽃지해수욕장으로 일몰 구경을 갔을까. 나는 영목항에서 지는 해를 본다. 갈매기들은 해가 지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저녁에도 먹이 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해는 바다로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붉어진 마음을 먼저 바다에 풀어놓는다. 인기척이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한 아낙네가 굴을 까고 있다. 사리 때가 되면 배를 타고 나가 종일 섬에 들어 굴을 따온단다. 그리고 이렇게 해거름 속에서 굴을 깐다. 무엇을 해 먹느냔 말에 생굴, 물회, 굴밥, 어리굴젓, 굴국… 밤새 까야 할 굴만큼이나 끝이 없다. 그녀가 지펴놓은 불길에 굴을 굽는 동안 해는 더 몸을 낮추고 나도 그 곁에 주저앉는다. 영목항 부두에서 그녀와 나는 해껏 바다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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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민박집의 단칸방, 창문을 뜯어갈 것만 같던 바람 때문에 나는 밤새 사로잤다. 검은 바다가 삼키고 있을 눈보라와 나를 상상했다. 그러고 아침이 밝으면 스무 살의 나는 그 창문을 열고 오래도록 바다를 봤다. 꽃지해수욕장 앞의 민박집이었다. 그 집 마당엔 물질을 하는 해녀가 있는지 잠수복이 걸려 있었고 붉은 뺨의 아이들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떠나오던 날 오후엔 그 집에서 푹푹 삶아지던 감자 냄새가 났다. 햇살이 나른했고 밤새 내린 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삶의 평온이 냄새와 감촉과 풍경으로 한꺼번에 온몸을 파고들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져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새벽 버스를 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떠나기 위해 내딛은 첫걸음은 돌아오는 첫걸음과 맞닿아 있고, 그 걸음들은 얼마나 나를 잘 살고 싶게 만드는지. 오늘밤에도 눈이 내린다. 그 방엔 벽에 걸린 거울 하나와 나뿐이었다. 오늘 밤엔 그 거울 속의 나와 마주앉는다. 그 거울을 보고 또 보는 동안 창 밖에선 누군가 눈길 속으로 사라진다. “잘 가라, 내 청춘!” 이상희 시인의 시 구절인 이 말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기 좋게 외쳐야 하리. 태안에 들던 그때의 첫발과 지금 내 돌아오는 걸음 사이에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낙법쯤? 떨어지는 게 두렵기만 했던 그때에 비해 나는 곧잘 내동댕이쳐지고 곧잘 떨어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벌떡 일어나 다시 걸어가고 있으니까. 내일이면 또 천수만의 새들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그러기 위해 땅에 내려앉았던 것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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