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8. 주일 큐티
요한일서 2:12 ~ 17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관찰 :
1) 각 대상에게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밝힘
※ 사도 요한은 세 부류로 이 글을 수신하는 이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자녀, 아비, 청년. 이 분류는 교회 전체를 이 편지의 수신자로 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A. 자녀들에게
- 12절.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a. 여기서의 “자녀들”(τεκνια, 테크니아)은 부모와 유아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아이가 약하여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 죄가 사함을 받은 이들입니다.
b. “사함을 받음”(αφεωνται, 아페온타이)은 완료시제입니다. 즉,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처음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죄사함을 경험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이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이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표현입니다.
- 14절a.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a. 하나님의 자녀된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 이들입니다. 14절의 “아이들아”(παιδίον, 파이디온)는 12절의 “아이들”과 다른 표현인데, 아이의 미숙함에 초점을 맞추어서 교육과 지도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b. 그래서 아비들을 통하여 이들이 태초부터 계신 이 곧 예수 그리스도 즉 아버지를 알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B. 아비들에게
- 13절a.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a. “아비들”은 교회의 중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참된 지식을 가진 이들입니다.
b. 여기서 “태초부터 계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c. 사도 요한은 당시에 영지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선재하신 말씀, 즉 로고스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 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태초부터 계신 이’임을 선포하는 것을 통해서 이단들의 논리를 깨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깊이 아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 14절b.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a. 사도 바울이 이들,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글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있기 때문에 더욱 온전히 알도록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C. 청년들에게
- 13절b.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a. 청년들은 영적 에너지가 넘쳐서 영적 전투력이 강력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악한 자를 이기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b. “악한 자”(τον πονηρον, 톤 포네론)는 남성명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탄을 가리키는 것으로 악을 인격화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사탄은 빛과는 상관이 없으며 어둠의 세계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존재입니다.
c.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이 어두운 가운데서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영적으로 어둡게 되고 결국은 완전히 사탄의 노예가 됨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d. “이기었음이니라”(νενικηκατε, 네니케카테)는 현재완료시제입니다. 과거에 성취한 승리가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승리를 통해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근거로 오늘날도 지속적으로 사탄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악을 향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기에 청년으로 불리웁니다.
- 14절c.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a. 청년들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함으로 인하여 흉학한 자를 이기는 데에까지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b. “강하고”(ισχυροι, 이스퀴로이)는 육체의 강함보다는 영적인 강건함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청년 된 그리스도인들이 강하여서 흉악한 사탄을 이기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실체로서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영적으로 강건하여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악에 대한 승리를 공유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2)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
-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a. 15절 ~ 17절에서 “세상”이 6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에 의해 통제받는 체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며 대적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거부하며 대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b.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는 의미는 첫째,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과 둘째는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상호 보완되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 16절a.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a.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세 가지로 분류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육신의 정욕”(η επιθυμια της σαρκος, 헤 에피두미아 테스 사르코스). “육신”(σάρξ, 사르스)은 일반적으로는 신체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영적인 것’과 대조를 이루는 악한 욕망의 근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때문에 “육신의 정욕”은 타락한 사람의 본성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만족만을 추구하는 자세를 의미하는 것입니 다. 둘째, “안목의 정욕”(η επιθυμια των οφθαλμων, 헤 에피두미아 톤 아포달몬). 이것은 외적인 것을 봄으로 유혹을 일으키는 성적인 욕망과 모든 사물을 욕심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셋째. “이생의 자랑”(η αλαζονεια του βιου, 헤 알라조네이아 투 비우). 세상적인 물질이나 명성에 대해 허세를 부리는 것, 그리고 세상적인 것에 대한 자랑을 의미합니다.
- 16절b.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a.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사도 요한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상, 곧 사탄이 지배하는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b.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하나님 아버지는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는 중대한 이유입니다.
- 17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a.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입니다.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b. 주님이 원하시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영생을 소유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성도는 자녀, 아비, 청년의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자녀 된 자는 말씀에 전심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기를 힘씀으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아비된 자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더욱 공교히 할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자녀들에게 증거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청년 된 자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승리의 유일한 관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함으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승리를 쟁취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전한 자가 되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사도 요한은 강변하고 있습니다.
2)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곳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를 결코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사탄에게 눈이 어두워져서 결국은 완전히 어둡게 되어집니다. 하나님 안에, 그 빛 가운데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3)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영원히 거하는 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말로만이 아니라 삶의 행동 속에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감당하는 자. 세상의 손해를 무릅쓰고 하나님의 원하심을 감당하길 원하는 자, 바로 그러한 사람이 영원한 소망이 있는 자입니다.
적용 :
1)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빛의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려면 주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어찌 그리도 잘 알았을까?
2)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것을 떠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속에서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진리의 빛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세상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포기하는 것, 떠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