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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 오늘의 역사
2022년 박근혜 전대통령 구금사면 병원치료후 경북 달성 사저로 입주
2007년 세월호 침몰 1,073일 만에 인양
2015년 독일 저먼윙스항공 여객기 스페인에서 독일로 가던 중 부기장이 고의로 알프스 산악지대 추락 사망 150명
2014년 경기 파주시 야산에 소형카메라 장착된 무인기 낙하산에 매달려 추락, 북한무인기로 드러남
2011년 삼성화재 프로배구팀 가빈 선수 57점 득점(한 경기 최다득점 신기록
2011년 미얀마 네피도 북동쪽 진도 7.0 지진 사망 75명 부상 110명
2009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제2회 WBC 대회 준우승
한국은 2009년 3월 2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일본에 3-5로 석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10회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결국 스즈키 이치로를 넘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다. 안타수에서도 15-5로 크게 뒤졌다.
이로써 연속 4강 이상의 쾌거를 이룩했던 한국은 6승 3패를 기록하며 이번 대회를 마감했다. 이 3패는 모두 일본에게 당한 것이다. 한국 대표팀은 공(攻)·수(守)·주(走)에서 다른 팀을 압도했다. 홈런(11개·4위)·득점(53점·1위)·타점(50점·1위) 기록은 공격의 파워와 집중력을 보여주며, 도루(9개·2위)·볼넷(50개·1위)은 한국 야구 특유의 기동력과 끈질김을 나타낸다. 막강 투수진은 평균 자책점(3.00·3위)·탈삼진(60개·2위) 순위에서 드러난다.
특히 4번 타자 김태균은 홈런(3개)·타점(11점) 부문을 석권, 2관왕에 올랐으며, '일본 킬러' 봉중근은 2승, 평균 자책점 0.51의 성적으로 수많은 메이저리거들을 제쳤다.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200만달러(약 27억6000만원)의 상금을 챙겼다.
2004년 신라 시조 ‘박혁거세’ 실존여부 증명하는 신라초기 유적 발견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실존 인물이라고 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뒷받침하는 유적이 발견됐다. 중앙문화재연구원(원장 윤세영)은 지난 2002년부터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가 깃든 경북 경주시 탑동 700의 1번지 나정(蘿井·사적 245호)을 발굴조사한 결과 신라 초기 우물과 건물의 흔적인 구상유구(溝狀遺構·고랑 모양 유적) 등의 유적을 발견했다고 2004년 3월 24일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유적은, 직경 14m, 너비 2m, 깊이 2m의 원형 유구와 이 유구 바깥을 두른 목책의 흔적, 유구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8각 건물지 등이다. 원형 유구에서는 우물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의 흔적으로 보이는 기둥 구멍이 발견됐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2대 남해차차웅 3년(서기 6년)조에는 “시조의 사당을 세웠다”, 제21대 소지마립간 9년(487년)조에는 “나정에 신궁(神宮)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연구원측은 “원형 우물과 건물은 제사시설인 8각형 건물보다 앞서 지어진 것”이라며 “출토된 두형 토기가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볼 때 ‘삼국사기’ 기록인 박혁거세 사당·신궁의 건립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2003년 타이거 우즈, 베이힐 인비테이셔널 단일대회 4연패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베이힐골프클럽(파72)에서 끝난 PGA투어 베이힐 인비테이셔널(총상금 450만달러)에서 ‘황제’ 우즈는 골프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단일 대회 4년 연속 제패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우즈는 이날 이글 1개와 버디 2개로 4타를 더 줄여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타이틀을 세 번째 방어했다. PGA투어가 기록하고 있는 단일대회 4연패는 월터 헤이건이 PGA챔피언십(1924∼1927)에서 처음 달성했고, 지난 1930년 진 사라센이 마이애미오픈으로 뒤를 이은 이후 73년 만이다.
우즈는 전날 먹은 음식이 잘못돼 플레이 중간 배를 움켜쥐어야 했고 가끔 으슥한 곳을 찾아가는 등 고통스런 표정이었으나 승부사답게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코스는 젖어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5번홀(파5)에서는 265야드를 남기고 3번 메탈우드로 컵 3.6m에 붙여 이글을 잡아내는 등 탁월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전날 워낙 타수 차이를 벌려 놓기는 했으나 커크 트리플릿(41), 브래드 팩슨(42), 케니 페리(43), 스튜어트 싱크(30) 등 공동2위 선수들을 무려 11타나 앞섰다. 그것만으로도 25년이 된 이 대회의 최다 타수차 우승 기록인데, 만약 그의 컨디션이 정상이었다면 어떤 기록이 나왔을지 모를 일이었다.
우승상금 81만달러를 받아 계좌에 넣으면서 시즌 상금은 284만1000달러가 돼 랭킹 1위를 되찾았다.
2003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담배와의 전쟁’ 선포
자크 시라크(Chirac) 프랑스 대통령이 2003년 3월24일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시라크는 암과의 투쟁을 위한 정부 대책을 발표하면서 “담배와의 전쟁을 우선 순위에 두겠다”며 “담배 규제법은 공공장소에서 예외 없이 적용돼야만 하고, 담배 없는 학교의 원칙이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시라크가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매년 프랑스에서 15만명이 암으로 사망하며 그 중 3만명이 흡연으로 인한 사망이기 때문이다.
올 1월부터 담뱃값이 평균 15% 인상된 것과 관련, 시라크는 “가격 인상은 확고하게 계속될 것”이라며 “담뱃값 인상에서 얻는 재원은 암과의 투쟁과 공중보건 사업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청소년 금연을 돕기 위해 학교에서 금연 교육뿐만 아니라 양호 교사가 니코틴 대체품을 나눠주도록 했다. 프랑스 의회는 최근 16세 미만에 대한 담배판매 금지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2003년 19세 임동혁군, ‘월드 피아니스트’에 초청
2002년 제74회 아카데미 남녀주연상 흑인 첫 동시 수상
2002년 3월 24일 로스앤젤레스 코닥 극장에서 5시간 가까이 진행된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상최초로 흑인 배우들에게 남녀 주연상이 주어졌다.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몬스터스 볼`에서 남편이 사형당한 뒤 아들마저 잃은 엄마 역할을 열연한 할 베리가 차지했고, 남우주연상은 `트레이닝 데이`의 악질 형사역을 맡은 덴절 워싱턴이 수상했다.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아카데미 74년 사상 흑인 배우가 상을 받은 것은 손꼽을 정도다.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뚱보 유모역을 맡은 해티 맥대니얼이 처음 여우조연상을 받은 이래 시드니 포이티어가 1963년 `들의 백합`으로 첫 주연상을 기록했다.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뷰티풀 마인드`가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감독상(론 하워드), 여우조연상(제니퍼 코넬리), 각색상(아키바 골드먼) 등 주요부문 상 4개를 휩쓸었다. 총 13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던 `반지의 제왕`은 분장상·촬영상·시각효과상·음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올해 신설된 베스트 장편 애니메이션상은 드림웍스의 `슈렉`에 돌아갔다.
2001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빈소에 북한 조문단 방문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 일행 네 명이 정주영 현대 전 명예회장의 빈소에 조문하기 위해 24일 고려항공 편으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서울에 도착, 청운동 빈소를 조문했다. 북한 당국이 남한 인사의 빈소에 조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문단은 송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강종훈 서기장·리재상 참사·리명일 참사 등 네 명으로 구성됐다. 북측은 이와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화도 함께 가져오겠다고 밝혔다.
한편 북측은 23일 각각 김 위원장과 아·태평화위,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명의로 된 조전 세 통과 조문 계획을 알리는 통지문 한 통 등 문서 네 장을 현대측에 보내왔다.
북한 조문단은 24일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력, 민족대단결과 통일 애국사업에 기여한 정주영 선생의 사망에 즈음하여 현대그룹과 고인의 유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 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전 원문과 영전에 바치는 조화를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2000년 이등휘 대만 총통 선거패배에 책임지고 국민당 주석직 사임
집권 국민당의 총통 선거 패배로 당 주석직 사퇴 압력을 받아온 이등휘 대만 총통이 2000년 3월 24일 사임했다. 지난 1988년 장경국 총통의 뒤를 이어 12년 간 총통직과 당 주석직을 맡아 대만을 이끌어온 이등휘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등휘 총통은 3월 18일 총통 선거에 국민당 단일 후보로 연전 부총통을 내세웠으나 선거에서 야당 민진당의 진수편 후보에게 패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주석직을 사퇴하게 된 것이다.
이 총통은 5월 20일 진수편 당선자에게 총통직을 이양했다. 18일부터 국민당 중앙당사 주변에서 이 총통의 퇴진을 요구하며 만 4일간 시위를 벌여온 국민당 지지자들은 이날 오후 이 총통의 사퇴 소식이 전해진 뒤 자진 해산했다.
1999년 프랑스-이탈리아 간 몽블랑터널 내 화재, 39명 사망
1999년 미군 주도 나토군, 코소보 평화안 거부한 유고 폭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폭격기들이 3월24일 오전 영국 서부 페어포드 공군기지를 이륙했다. 이탈리아 북부에 정박중이던 전함 8척은 아드리아해로 발진했다.
영국 국방부는 크루즈 미사일 20기씩을 장착한 미 공군 b52 폭격기 8대가 오전 10시 42분부터 2분 간격으로 발진했다고 밝혔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유고연방 코소보 주도 프리스티나에는 한국시각 밤 10시 공습사이렌이 울려퍼졌다. 나토군 전투기 400여대는 공습 준비를 완료했고, 전함들은 크루즈미사일 발사 태세에 들어갔다.
cnn방송은 한국시각 24일 밤 공습이 수시간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으며,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즉각 행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afp통신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공습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지 로버트슨 국방장관은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오늘은 영국과 나토 동맹국에 가장 중대한 날”이라고 말했으며, 앞서 19개 동맹국 대표들은 공습에 대한 마지막 정보를 교환했다.
미국 상원은 이날 나토의 코소보 군사행동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58대 41로 가결했고, 유엔 안보리는 공습에 대비한 긴급 회의 소집을 위해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러시아와 중국은 나토의 공습이 국제법과 유엔헌장 위반이라며 기존의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프리마코프 러시아 총리는 이날 미국 방문을 무기 연기시킨 뒤 급거 귀국했으며, 셀레즈뇨프 러시아 하원의장은 러시아가 공습 이후 유고에 대한 군사원조를 개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유고 베오그라드 주재 자국 공관을 폐쇄하고 공관원들을 철수했으며, 유럽 주요 항공사들도 24일부터 유고 지역 운항을 중단했다.
1997년 남원 버스-열차 충돌사고
1997년 3월 24일 오전 8시55분쯤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수촌마을 앞 철도건널목에서 순천발 서울행 282호 무궁화호 열차와 전북 74자1032호 시내버스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탔던 최정용씨 등 사매면 서도 인화리 주민 16명이 숨지고, 버스운전자 양씨와 나머지 승객 등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남원시내에서 20여분 거리인 인화마을(80여가구)로 전주 최씨 집성촌이며 사망자 16명중 8명이 이 동네 주민이었다. 이 마을은 버스 출발지에 있어 버스에 탄 주민들이 뒷자리에 앉았다 변을 당했으며 사망자 대부분은 이날 남원 5일장에 손수 가꾼 고추나 채소 등을 내다 팔아 생필품을 사러가는 중이었다.
이 충돌사고는 철도건널목 앞 일단정지라는 기본적인 수칙만 지켰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어이없는 사고였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 - 일본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총리 정상회담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1992년 3월 24일에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자당은 당초 예상에 못미치는 1백49석을 획득하는데 그쳐 원내 과반수에 1석 모자라는 `여소야대` 상황이 재연됐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97석을 얻어 성공을 거뒀으며, 신생 국민당은 31석으로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다. 총선투표율은 71.9%였다.
선거결과 전체의석 299석(전국구 62석 포함) 가운데 민주자유당 149석(전국구 33석), 민주당 97석(전국구 22석), 통일국민당 31석(전국구 7석), 무소속 21석, 신정치개혁당이 1석을 확보했다. 각당 득표율은 민자당 38.5%, 민주당 29.2%, 국민당 17.4%등이었다.
1986년 미국-리비아 무력충돌
1983년 인류최초의 인공심장수술 받은 바니 클라크 박사 112일 만에 사망
1982년 소련 브레즈네프, 중국에 화해 제의
1982년 방글라데시 쿠데타, 에르샤드 육군참모총장 정권장악
1981년 미국 행정부, 중동평화유지군을 시나이에 파견
1980년 엘살바도르, 로메로 대주교 피살
1978년 청록파 시인 박목월 사망
청록파는 주로 자연을 제재로 활동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을 가리킨다. 그 중 향토적 서정시인으로 불린 박목월이 1978년 3월 24일 사망했다. 본명은 영종이며 경북 주에서 태어났다.
목월은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단에 데뷔했다. 1939년 ‘문장’지 9월호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로 1회 추천, 그해 12월호에 ‘가을 어스름’과 ‘연륜’이 3회 추천 완료됨으로써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동심의 소박성, 민요풍, 향토성 등이 조화를 이룬 자연 친화와 교감의 짧은 서정시를 계속 발표해서 그만의 전통적 시풍을 이룩했다. 그의 서정에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이 살아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일제 말기 한국인의 정신적 동질성을 통합하려고 했다. 그의 민요풍의 시형식도 그러한 민족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저서에 ‘문학의 기술’ ‘실용문장 대백과’ 등이 있고, 시집에 ‘청록집’ ‘경상도 가랑잎’ ‘사력질’ ‘무순’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시’ ‘밤에 쓴 인생론’ 등이 있다.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 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1978년 케냐, 사파리 자동차 경주 열림
1977년 거물간첩 강우규 사건
1976년 2차대전의 영웅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 사망
1975년 북한 제2땅굴 발견
제2땅굴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서 1975년 3월 24일 발견되었다.
육군공병대가 굴착으로 발견, 도달한 이 땅굴은 아치형으로 정확한 크기는 폭이 상부 2.1m, 하부 2.2m, 높이 2m였다
1973년 11월 이 지역의 북괴 땅굴작전을 낌새 챈 전방부대에서는 각종 시설로 땅굴굴착폭음을 포착, 이 지하작업이 진행중인 지점을 철원동북방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남쪽의 낮은 구릉지대로 추정하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지하 100m남짓의 굴착작업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제2땅굴은 지하 50~160m 지점에 있고 총 길이는 3.5km이다. 땅굴 내부에는 대규모 병력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있고, 출구는 세 개로 갈라져 있다. 제2땅굴이 발견 될 당시 수색하던 한국군 7명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 땅굴을 이용하면 1시간에 약 3만 명의 무장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탱크까지 통과할 수 있다.
1974년 근대적 스키야 양식의 선구자 일본의 건축가 요시다 이소야 사망
1971년 네덜란드, 간척공사 시작
1969년 한국-필리핀 항공협정 체결
1966년 매일경제신문 창간
1966년 서울서 한일무역협정 조인
1964년 라이샤워 주일 미국대사 피습 부상
1963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 클레이 보고 채택
1962년 박정희 최고회의의장, 대통령권한대행
1962년 기구 탐험가 오귀스트 피카르 사망
1961년 파평산 무장공비사건
1951년 맥아더, 38선 이북 진격을 명령
1951년 3월 24일 맥아더가 북진 명령을 내렸다.
공산주의 중국과 대대적인 한판을 꿈꾸며 확전을 원했던 맥아더는 만주에 원자폭탄 26개를 투하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해 맥아더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북진 명령을 내린 것이다.
결국 트루먼 대통령은 4월 11일 맥아더를 해임하고 후임에 리지웨이 중장을 임명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전설적인 영웅으로 존경받았다. 국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맥아더는 4월 19일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뒤로 한 채 은퇴했다.
맥아더는 일본의 2,000년 가까운 역사에서 유일한 외국인 통치자였고, 3년에 걸친 한국의 미군정 또한 그의 영행력 아래 놓여있었다. 1936년 필리핀의 군사고문으로 좌천되면서 아시아와 인연을 맺은 맥아더는 일본의 전쟁 도발을 기회로 기사회생해서 20세기 중엽의 아시아 역사는 맥아더와 함께 쓰였다고 할 정도로 활약했다.
1948년 국제무역헌장 조인
1927년 중국 난징(南京) 사건 발발
1927년 3월 24일 오전 5시반. 청천백일기(현 대만 국기명)를 든 혁명군이 난징(南京)에 입성했다. 전투가 끝난 시내에 는 정적만이 감살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입성한 지 2시간이 경과한 시각. 약 200명의 중국인 병사들이 일본영사관을 습격했다. 육군무관, 경찰서장들이 중상을 입고 이렇다할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중국인 병사들은 한 손에는 총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지갑, 시계, 반지를 뺏어 들었다. 그 뿐 만이 아니었다. 침구, 가구, 조리기구 등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빼앗아 트럭과 마차에 실었다. 같은 시각, 영국영사관도 습격을 받아 의사와 항무장 그리고 금융대학의 미국인 부학장이 암살됐다.
이윽고 오후 4시경이 되자, 양쯔강에 정박중이던 미국ㆍ영국 함대로부터 성내로 불과 1시간 만에 200발이 넘는 포탄이 쏟아졌다. 영국ㆍ미국ㆍ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 등은 외국인을 모욕하고 살상하였다는 이유와 거류민을 수호한다는 구실로 군함을 동원,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해 2000명이 넘는 중국인을 살상했다.
이후 외국열강들이 이날의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자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정부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사건 발생 원인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날의 외국인에 대한 모욕과 살상은 장제스의 국민정부와 여러 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공산당의 음모였음이 밝혀졌다고 주장, 공산당을 공격했다. 그후 장제스는 외국과 관계를 맺고, 4월 12일 상하이ㆍ난징 등에서 공산당을 탄압하는 쿠데타(4ㆍ12쿠데타)를 일으켜 대외 협조방침을 취함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됐다.
1924년 그리스, 공화정 선포
1915년 총독부, 사립학교 규칙 공포
1909년 영국 극작가 싱 사망
1905년 대동강철교 준공
1905년 3월24일,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에 철교가 들어섰다. 서울 용산에서 신의주까지 499km의 경의선 공사구간 중 760m의 대동강 철교 구간이 이날 준공된 것이다. 대동강은 길이가 450.3km에 달하는 우리나라 5대강 중 하나이고, 경의선은 일본이 1904년 3월에 공사를 시작해 1906년 4월에 준공 테이프를 끊은 우리나라 세번째 철도선이다.
경부선에 이어 경의선이 완공됨으로써 섬나라 일본은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확실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대동강 철교가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6ㆍ25전쟁 때, AP 사진기자 막스 데스포가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이 전세계로 전송되면서였다. 미군을 따라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따라갔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남하하던 데스포의 눈에 평생 잊을 수 없는 현장이 목격된 것은 1950년 12월12일, 피란민들이 이미 폭파(12월4일)된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데스포는 이듬해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현재 대동강에는 청류다리ㆍ능라다리ㆍ옥류교ㆍ양각다리 등 6개의 다리가 놓여있고 양각다리와 나란히 하고 있는 대동강 철교는 서평양과 동평양을 이어주고 있다.
1905년 SF문학의 창시자 프랑스 작가 쥘 베른 사망
1899년 의학교관제 반포
1895년 독립운동가 거평 채원개 출생
1891년 영국-이탈리아. 아프리카 국경조약 체결
1886년 한-청나라, 부산전선가설조약 체결
1882년 독일 세균학자 코호, 결핵균 발견 발표
1869년 프랑스 장군 조미니 사망
1849년 독일 화학자 요한 볼프강 되버라이너 사망
1603년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 사망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1세는 세 살 때 친모(親母)가 간통과 반역죄로 참수당하고 수개월 후 그도 의회로부터 사생아로 지목받으면서 순탄치 않은 성장기를 보냈다.
런던탑 유폐와 반역을 꾀한다는 근거없는 의혹을 묵묵히 이겨내며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25세 때인 1558년. 아버지 헨리8세가 죽고 두 명의 이복형제들이 엘리자베스보다 먼저 차례로 왕위에 올랐으나 이들은 영국에 신·구교간의 대립만 키운 채 각각 6년·5년 만에 죽고 만다.
막상 즉위는 했어도 극심한 종교분쟁과 침체된 경제, 약화된 왕권이 엘리자베스 앞에 놓여 있었다. 스페인·프랑스 등 인접 국가들과의 적대적인 관계도 간단치 않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위협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와 단호한 결단력, 과감한 추진력의 소유자였다.
먼저 국왕을 영국 교회의 ‘유일 최고의 수장(首長)’으로 내세워 교황의 주권을 부인하는 ‘수장령’을 부활시키고 가톨릭과 청교도를 억압해 종교통일을 꾀한다. 분노한 교황들이 그를 파문하고 살해까지 사주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오히려 그의 왕위 후계자이자 가톨릭교도인 스코틀랜드 메리여왕의 참수를 묵인하며 왕권을 안정시켜 나간다.
스페인의 펠리페2세가 메리의 처형을 구실로 무적함대를 동원해 영국 해군과 격돌했으나 자멸만 재촉했을 뿐 영국은 오히려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1603년 3월 24일 재위 45년 만에 숨진 엘리자베스를 뉴욕타임스는 지난 1000년간의 최고지도자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