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은 돌려주고 상자를 사다
정작 필요한 것은 구슬인데 구슬을 담은 상자는 사고
구슬은 파는 사람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말을 買櫝還珠(매독환주)라 한다.
본연의 일은 잊고 지엽(枝葉)적인 일을 추구하거나
사물을 제대로 보는 혜안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초(楚) 왕이 묵자는 학식이 넓다고 알려졌소
그런데 품행은 단정하지만 언설(言說)을 보면
장황하기만 할 뿐 능변이 아닌데 그 이유는 무엇이오?
어느 초 사람이 자기가 가진 구슬을 팔러 정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목란(木蘭) 상자를 만들어 계초(桂椒)의 향을 칠하고
보석을 박고 붉은 옥과 물새 털로 장식했습니다.
정나라 사람이 그 상자만 사고 옥은 돌려주었습니다.
이는 함을 잘 판 것이지 구슬을 잘 팔았다고 말할 수 없지요.
또, 옛날 진(秦) 왕이 그 딸을 진(晉) 공자에게 시집보내면서
온갖 장식과 아름답게 수놓은 옷으로 꾸민 시녀 수십 명을 딸려 보냈는데
공자는 오히려 그 시녀들을 사랑했습니다.
진 왕은 딸이 아니라 시녀들을 시집보낸 꼴이 되었지요.
세간의 학자들도 이처럼 능란한 변설로 꾸미기를 잘하고
군주는 그 화려함만 보았지 실질을 잊고 있습니다.
만약 언설을 꾸미게 되면 사람들은
그 꾸민 말에만 관심을 둠으로 실질을 흐리게 될 것입니다.
묵자의 언설은 성왕의 도를 전하고
성인의 말씀을 논함으로써 사람을 감동시키기는 하나
그 말은 장황하여 능변은 아닌 것입니다.
이는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에 전한다.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말이 있다.
이는 주인과 손님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뜻으로,
사물의 경중이나 선후, 완급 따위가 서로 뒤바뀜을 이르는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왕왕 일어나기도 한다.
앞과 뒤가 바뀌는 현상은 당사자로서는 상황이 난감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여러 문제가 발생되고 처리할 일이 복잡하게 꼬인다.
이런 일들은 생명이나 재산, 권리나 명예 등 쉽게 넘기지 못 할 일이 많다.
예로 자동차 사고가 났는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바뀐다든지
싸움이 났는데 먼저 이유도 없이 맞은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등 상황이 뒤바뀐 일들이 일어난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도 심심치 않게 사용하는데
잡힌 도둑이 도리어 주인에게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못이 없는 사람을 꾸짖는다는 말이다.
똥을 싼 놈이 방귀만 뀐 놈을 나무란다거나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도 있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실생활에서 만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런 일도 겪는다.
돈이 필요하다며 조르고 졸라서 어렵게 빌려주었더니
나중에 한다는 소리가 내가 돈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그 돈을 쓰게 되어 채무자가 되었다는
말도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대략난감(大略難堪)한 말도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당혹(當惑)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상대가 그 문제를 물고 늘어지거나 꼬집는 경우에
경황망조(驚惶罔措), 당황망조(唐慌罔措)라 하여 당황(唐惶)스런 경우가 있다.
내 명의 땅을 팔아 집을 짓고 등기는 다른 사람에게 해 주었더니
후일에 이것이 문제가 되어 아파트 당첨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지니
왜 그 집을 자신의 명의로 해서 이 사단을 만드느냐는 웃지 못 할 사연도 있다.
본말(本末)을 호도(糊塗)한다는 말도 있다.
일의 결말을 명확하게 결론짓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감추거나 시간을 끌어 흐지부지 덮어 버리는 의미로 사용한다.
이런 유형은 정치권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경우를 본다.
자신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에는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하다가 그 선거에서 당선되고 나면
불리한 공약들은 점점 뒤로 밀며
유야무야(有耶無耶) 없어지고 마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아온 터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買櫝還珠하는 실수를 할 수가 있다.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혹 있겠거니와
일반 범인들이야 이런 우를 범하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다.
이런 경우에 상대를 배려하여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직접적으로 하게 되면 상대가 미안해하거나
거부할 상황이니 아주 자연스럽게 일을 처리한다.
느낌은 읽을 수 있지만, 진위를 파악하기 쉽지 않게 일이 진행된다.
진주는 진주 자체로써 가치가 있다.
진주에 어떤 장식이나 꾸밈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선물을 하려면 그 가치에 어울리는 포장은 필요하겠지만,
본 물건인 진주보다 더 아름답게 꾸밀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삶이 그러할 것이다.
누가 보아도 기본이 있는데 무슨 명품 하나 걸치거나 취한다고
그 본래 가치가 크게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 한국은 명품에 미친 듯 하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이루어가면 길거리에서 단돈 만 원짜리 옷을 걸친다고
누가 그 자체를 가지고 시시비비할 것인가?
겉으로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속으로는 부러워할 것이다.
현실의 상황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채우며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진주처럼 자연 그대로의 수수한 멋이 우러나는가 말이다.
첫댓글 댓글 놀이
과학과 역사 철학을 망라 해서 쓴 글에
해학과 은유로 댓글을 달아 놓고
기다리다
어울리지않는
대댓글이 돌아 올때
실소를 어금고 되돌아 서는 때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