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한번 지켜보라. “난 너랑 안 놀아!” “엄마, 쟤들이 날 안 끼워준대.” 다른 아이와 놀지 않겠다는 것은 다른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아이를 받아주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남을 받아주지 못하는 것은 비단 아이들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른도 오래 사귀어 친한 사람은 끼워주고 새로 온 사람은 따돌린다. 같은 고향 출신이니까 끼워주고 다른 지방 사람이니까 따돌린다. 실력이 너무 뛰어나 따돌리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친해지면 속속들이 알게 되고, 깊이 알면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발견하면 실망하면서 말하기 싫고 보기 싫어진다. 내 기준에 안 맞아서 싫다고 생각되면 따돌리되, 심지어 집단적으로 따돌리기도 한다.
우리는 따돌림의 세상에서 서로 받아주고 끼워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일 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셨다. 수용의 품을 넓히도록 하자.
당신의 공동체에서 소외 당하는 사람들은 없으십니까?
행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의 사역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좋은 인간관계
성경 : 눅 16:19~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 16:25).
오늘 본문에 보면 세상에서 부자로 잘 살던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가고 그 집 문간에서 얻어먹던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가서 있는 모습을 보게된다. 이 이야기의 내용을 보면 사람은 잘 살거나 못 살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죽음 후에는 반드시 내세가 있음을 볼 수 있고, 영혼이 거처하는 곳은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생전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영혼의 거처가 결정됨을 본다. 부자가 지옥에 들어간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웃에게 무관심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행복만을 알았지 남의 불행은 모르고, 자기의 부를 누리는 동안 이웃에게 무관심했으며 무책임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우리에게 이웃이 되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주고, 우리가 좋은 이웃을 만나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먼저 우리를 만나는 이웃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시간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져 한다. 첫째, 상대방에게 좋은 말을 해야한다. 사람은 어떤 사람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긍정적인 사람의 말을 들으면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되고, 부정적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되며, 불평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자연히 마음에 불평이 싹터서 좋지 아니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 롬 12:14에 보면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고 했는데, 여기에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우리를 핍박하고 미워하는 자에게 어떻게 축복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것 같지만 우리가 부지런히 복을 빌어야한다. 이 말씀을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저주하여서 그 사람이 저주를 받을 사람이면 그 저주가 그에게로 가겠지만 만일 저주받을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저주가 결국은 우리에게로 오기 때문에 함부로 저주하면 안 된다 는 말씀이다. 우리가 때로는 남의 말만 듣고 좋은 사람을 나쁘게 평가 할 수도 있고, 우리가 오해하고 잘못 판단할 수도 있으며, 우리가 보기에는 형편없는 사람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인정받는 사람일수도 있으므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한다. 그리스도인은 남을 유익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좋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늘 기도하는 생활을 하기 바란다. 둘째,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해야한다. 엡 4:31-32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고 하셨는데, 인간의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를 베풀어야한다. 부부는 남남끼리 만났지만 같이 살 수 있는 비결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상대방을 이해하여 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였으니 서로 다른 입장이다. 그러나 피차 이해할 때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함께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 좋은 사람과 기쁜 마음으로 만나면 우리의 기쁨은 배가 되고 괴로울 때 만나면 그 고통은 반감되는데, 어떤 사람은 만나면 기분 나쁜 사람이 있고 슬퍼지고 괴로운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되면 불행하다. 현대인이 자꾸만 각박해지는 것은 우리가 남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입장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거칠어지고 살벌하기만 하다. 그러므로 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 서로 인격을 존중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셋째, 상대방에게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울은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여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롬 12:16)고 했는데, 영어 성경에 보면 live in hamony"로서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좋은 인간관계란 항상 자기자신을 죽이고 상대방을 존경하면 잘 될 수 있다. 백스터 목사의 설교 중에 보면 우리는 상대방을 존경해야하며, 존경하지 못하면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불쌍히 여겨야 한다. 단 무시하거나 미워하지는 말아야 한다 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주는 사람이 되라 (요 13:15)고 하셨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 7:12)고 하셨다. 우리는 서로 좋은 이웃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인사하면 그가 우리에게 인사하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존경하면 그도 우리를 좋아하고 높여 줄 것이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하면 우리가 그에게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법칙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는 동안 주안에서 원수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명언]
부자는 날마다 연락하였고 나사로는 극심한 고통을 당했으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장 하시는 영원한 미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