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목고개 너머로
이월 넷째 일요일이다. 한 달째 지속되는 신종 코로나 확산 기세가 심상찮다. 대구에서 감염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지더니 급기야 우리 지역도 환자가 발생했다. 내야 시내 병원이나 상가로 나갈 일 없지만 바깥 생활은 움츠려들기 마련이다. 운전을 하지 않는 나에겐 시내버스가 발이나 마찬가지인데 타기가 멈칫해진다. 택시도 타기가 겁이 난다. 오직 두 발로 걸을 수밖에 없다.
사실 봄방학 때 청도로 한 번 걸음해 볼 계획이었다. 겨울방학에 찾지 못한 운문사 사리암이나 계곡을 다녀올까 생각하고 있었다. 밀양 산내 아랫재에서 운문 계곡으로 내려가거나 청도역에서 군내버스로 운문사로 가 사리암을 찾으면 된다. 그런데 청도의 한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가 집단 감염된 사태가 발생해 관계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제 그 근처는 얼씬도 못하게 되었다.
그제까지는 창원에서 시내버스 안에서나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보기가 드물었는데 하루 사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외출하기는 어려운 지경이다. 그럼에도 집에만 갇혀 갑갑하게 지낼 수 없는지라 자구책을 찾아야 했다. 일단 집에서부터 걷기가 가능한 곳으로 행선지를 정해 길을 나섰다. 난 비염이 심해 마스크를 오랜 시간 착용함도 한계가 있다.
빈 배낭을 둘러메고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를 벗어났다. 아파트와 인접한 중학교와 교회를 지나 퇴촌삼거리로 향했다. 외동반림로는 높이 솟구쳐 자란 메타스퀘어가 나목인 채 잎이 돋을 봄날을 기다렸다. 반송공원 산언덕 비탈에 무성하게 자라던 개나리 줄기는 환경 인부들이 몽당하게 잘라 놓았다. 수 년 전까지 이른 봄이면 화사하게 피던 개나리꽃은 볼 수 없게 되어 좀 아쉽다.
퇴촌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사림동 주택지로 들어 사격장으로 올라갔다. 그곳도 메타스퀘어 가로수가 미끈하게 하늘 높이 솟구쳐 있었다. 사격장 약수터는 평소 물을 받아가던 사람이 줄을 잇는데 아무도 없었다. 연전에 세계 사격선수권대회를 치른 사격장은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당분간 시설 개방을 중단한다는 알림이 붙어 있었다. 창원시설공단의 다른 시설도 그렇지 싶다.
사격장을 돌아 등산로로 드니 산불감시초소가 나왔다. 이른 시각이라 감시원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약수터에 이르니 역시 신종 코로나 관련 알림이 있었다. 표주박에 해당하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쓰지 마시고 개인 용기로 물을 떠 마시라는 내용이었다. 소목고개 쉼터에서 몇 지인들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 당분간 대중교통 이용은 자제하고 집에서부터 걸어 산책을 나선다고 했다.
고개에서 정병산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소목마을로 내려섰다. ‘소목’이라는 마을은 감계를 넘어 함안 칠원 무릉산 산기슭에도 있다. 거기도 소목고개라고 한다. 정병산 북서쪽 소목마을로 갔다. 근래 창원대학 뒤 25호 국도와 복선화된 경전선 터널이 뚫리면서 동읍 일대는 예전과 사뭇 달리진 풍광이다. 맞은편 구룡산에 감계 신도시와 통하는 터널을 굴착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수형이 잘 잡히고 연륜이 오랜 당산나무를 지나 마을 앞으로 갔다. 볕이 바른 농수로 언덕에서 따뜻한 겨울을 나면서 예년보다 웃자란 쑥을 찾아냈다. 배낭을 벗어두고 문구용 칼을 꺼내 쑥을 잘라 모았다. 검불이 붙은 채 주섬주섬 잘라 봉지에 담았다. 토양 오염이나 차량 매연으로부터 염려하지 않아도 될 청정지역이었다.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양이 제법 되는 쑥을 캤다.
코로나 감염이 걱정 되어 남산마을 앞으로 가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 고개로 올라갔다. 바위더미에서 배낭을 풀고 아까 서둘러 캔 쑥에 붙은 검불을 가려냈다. 많이 캔 쑥을 하산하던 산행객들이 보고는 모두 놀랐다. 검불을 다 가려 배낭을 추슬러 짊어졌다. 사격장으로 내려가면서 같은 아파트 초등학교 친구에게 문자를 넣었다. 쑥을 나누었더니 배낭이 가벼웠다. 20.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