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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경기전(全州 慶基殿, 사적 제339호)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0에 조선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의 초상화(肖像畵)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御龍殿)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太祖 眞殿)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全州)는 경기전(慶基殿), 경주(慶州)는 집경전(集慶殿), 평양(平壤)은 영흥전(永興殿)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慶基殿)’이라는 이름은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를 의미한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지었다.
경기전 건물의 구성은 본전(本殿)·헌(軒)·익랑(翼廊)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內三門)과 홍살문(紅箭門), 외삼문(外三門)으로 둘렀다.
전주 경기전 정전(全州 慶基殿 正殿, 보물 제1578호)은 사적 제339호 전주 경기전의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다. 태조 어진을 모신 곳을 어용전, 태조진전 등으로 명명하던 것을 1442년(세종24년)에 경기전이라고 명명하였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1614년에 중건했다. 1872년 태조 어진을 새롭게 모사하여 봉안하면서(조선 태조 어진 보물 제931호, 2012년 6월 29일 국보 제317호로 승격) 경기전의 전반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정전(正殿)은 다포계 양식으로 외3출목, 내3출목이고, 5량 구조의 맞배, 겹처마 지붕이다. 살미의 쇠서가 발달되어 있고 내부에서는 초각 처리되어 안정된 조선 중기의 형식이 반영되어 있다. 배례청은 이익공을 가진 익공계 양식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배례청의 박공면은 정전의 정면 모습이 된다. 정전과 배례청은 화강암 원형 초석 위에 민흘림의 원기둥을 세웠다. 내부의 5.8m나 되는 2개의 고주는 종보를 직접 받고 있으며, 양측면의 기둥도 대들보를 받는 고주로 되어 측부재 구조가 간결하고 견고하게 짜여있다. 포작의 내부 살미 조각과 보아지 및 종도리를 받는 파련 대공의 섬세한 조각과 우물천정 단청 등의 의장이 화려한 편으로 다른 유교 건축과 차별화된 권위성을 볼 수 있다. 구조 부재들의 이음과 맞춤이 정확하며 견고하고 조선 중기의 전통 건축 기법이 잘 전수된 안정된 구조와 부재의 조형 비례는 건축적 품위를 돋보여준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어진이 봉안된 정전 기능과 품위에 기준한 내신문 내의 신로 및 향로의 엄격한 격식, 그리고 정전과 배례청 평면 조합 및 어방구조 등이 보물로서의 문화재 가치가 인정된다.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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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어진(朝鮮 太祖 御眞, 국보 제317호)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초상화(肖像畵)로 가로 150㎝, 세로 218㎝이다. 태조의 초상화는 한 나라의 시조(始祖)로서 국초(國初)부터 여러 곳에 특별하게 보관되어 총 26점이 있었으나 현재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초상화 1점만이 남아있다.
이 초상화는 임금이 쓰는 모자인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정면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全身像)으로 명나라 태조 초상화와 유사하다. 곤룡포의 각진 윤곽선과 양다리쪽에 삐져나온 옷의 형태는 조선 전기 공신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또한 바닥에 깔린 것은 숙종 때까지 왕의 초상화에 사용된 것으로, 상당히 높게 올라간 것으로 보아 오래된 화법임을 알려준다. 의자에 새겨진 화려한 용무늬는 공민왕상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왕의 초상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익선관은 골진 부분에 색을 발하게 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고,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음영법을 사용하여 얼굴을 표현하였다.
고종 9년(1872)에 낡은 원본을 그대로 새로 옮겨 그린 것인데, 전체적으로 원본에 충실하게 그려 초상화 중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소화해 낸 작품으로 조선 전기 초상화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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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慶基殿, 사적 제339호)의 부속건물들은 경기전 서쪽에 각기 기능을 지닌 수복청(守僕廳), 경덕헌(慶德軒), 마청(馬廳),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제기고(祭器庫), 어정(御井), 전사청(典祀廳), 용실(舂室), 조병청(造餠廳) 등이 있다.
수복청(守僕廳)은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낮은 직급의 벼슬아치들이 있던 곳이다. 살림집의 안채와 같은 형식이지만 주로 큰 일이 있을 때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정기간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다.「세조실록」세조 8년 8월 6일조에 전주경기전에 수복의 수가 관노(官奴) 1명, 양민(良民) 18명이 교대로 지켰다고 한다. 경덕헌(慶德軒)은 경기전을 지키는 수문장이 일을 맡아보는 곳이다. 경기전의 규모와 연혁, 제향(祭享)를 맡은 관원의 역할과 각종 제향 절차를 기록한 경기전의(慶基殿儀)에 조선시대 궁궐문을 지키던 수문장들의 소속 관청인 수문장청(守門將廳)을 갑자년에 신설하여 을축년 준공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보아 경덕헌은 수문장청에 붙여진 이름이다. 마청(馬廳)은 의식이나 관청 관리의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청을 두었다. 특히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정치를 의논하고 집행하는 조정(朝廷)에서 참례(參禮)하기 위해 내려온 관리들의 말[馬]을 관리하는 곳이다.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어진 무덤이나 사당의 옆의 재각(齋閣)으로 제향(祭享)을 맡은 관원들이 제사에 임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신(神)을 맞을 재계의식(齋戒儀拭)을 하는 곳이다. 제기고(祭器庫)는 제향(祭享) 때 사용하는 각종 그릇, 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제사 에 사용하는 그릇은 일반 그릇과 달리 정갈하고 성스러운 물건이어서 별도의 건물에 보관하여야 하는 것이다. 대개 제기고와 같은 건물은 지면과 분리되어 있어 습기가 차지 않아 기물을 보관하는 데 적합한 마루바닥으로 만들었다. 어정(御井)은 임금의 음식을 만들거나 마실 물은 기르는 우물이다. 그리고 역대 여러 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왕실의 사당인 종묘(宗廟),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토신(土神)인 사(社)와 곡신(穀神)인 직(稷)에게 제사 지내던 사직단(社稷壇) 등에서 임금이 참여하는 제례(除禮)에 사용하는 우물도 어정이라고 한다.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셨던 경주집경전, 평양영숭전, 전주경기전 우물도 어정이라고 하였다. 어정은 깨끗하고 성스럽게 취급해야 하므로 주위에 담을 두르고 문을 설치해 두기도 한다. 전사청(典祀廳)은 국가의 제수에 쓸 제수 준비와 제사상 차리는 일을 담당하는 전사관(典祀官)이 사무를 행하는 곳이다. 용실(舂室)은 제사에 사용할 음식을 만드는 방앗간이다. 디딜방아와 절구를 두고 경기전 제례에 사용되는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경건하고 신성한 장소이다. 제사에 쓰는 여러 가지 재료의 준비를 위하여 조과소(造菓所)나 전사청과 인접해 있고 주변에 불결한 시설이 없어야 한다. 조병청(造餠廳)은 떡이나 튀겨서 꿀을 바른 약과와 비슷한 다식(茶食) 곡물가루를 꿀에 반죽하여 판에 박아 만드는 과자인 유밀과(油蜜果) 등의 제사 음식을 만들고 보관하는 장소이다. 국가와 왕실, 왕과 신하와의 관계 등을 규정하여 제도를 도식으로 엮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기록된 진전(眞殿)의 제사음식을 차리는 방법을 그림으로 그린 찬실도(饌實圖)에는 중박계(약과), 붉은 산자, 흰 산자, 다식, 과일, 각색떡, 탕(湯) 등을 사용한다고 되어있다.
전주 경기전 하마비(全州 慶基殿 下馬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2호)는 임진왜란 후 경기전이 중건되던 1614년(광해군 6)에 처음 세워졌으며, 1856년(철종 7)에 중각(重刻)되었다.
비석에는 ‘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이라고 새겨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경기전 하마비는 여느 하마비와는 다르게 판석위에 비를 올리고 그 판석을 두 마리의 사자(혹은 해태)가 등으로 받치고 있는 특이한 형태로, 단지 하마(下馬)의 의미로서만이 아닌 경기전 수호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비석의 형태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형태여서 조형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경기전이 어떤 곳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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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묘(肇慶廟,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는 전주 이씨의 시조(始祖)인 이한(李翰)과 그 부인의 위패(位牌)를 모신 곳이다. 이한은 신라 때 사공(司公)이라는 높은 벼슬을 지냈고, 그 부인은 경주 김씨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이한으로부터 21대 후손이다. 조경묘는 조선 영조 47년(1771)에 세워, 영조가 세손(正祖)으로 하여금 쓰도록 한 시조 이한 내외의 위패를 봉안했다. 철종 5년(1854)에 경기전과 함께 보수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조경묘는 경기전과 함께,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임을 상징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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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대왕 태실 및 비(睿宗大王 胎室 및 碑,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6호)는 조선 제8대 예종대왕의 태(胎)를 묻은 석실과 비이다. 왕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태를 소중히 석실에 묻었는데, 이를 태실이라 한다. 원래 완주군 구이면 원덕리 태실 마을 뒷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이 태실은 팔각형 돌 난간 안에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돌을 얹은 다음 지붕돌로 덮었다. 비석은 태실과 함께 옮긴 것으로, 예종대왕의 태실임을 알리는 글과 비석의 건립연대를 앞 뒷면에 각각 새겼는데, 건립연대는 선조 11년(1578)이다. 잘 보존된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뿔 없는 용의 모습을 새긴 머리 돌이 돋보이는 비석이다. 이 태실과 비는 왕실에서 태를 처리한 방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전주사고(全州史庫)는 1439년(세종 21)이 설치되었다. 여기에 실록을 비롯한 국가 중요서적을 보관하였다. 현존 건물은 1991년에 새로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는 전주사고의 역사에 관한 전시물과 조선왕조실록이 전시되어 있다.
전주 풍남문(全州 豐南門, 보물 제308호)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 1에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정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이다. 지금은 이 문만 남아있다. 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으로 고려시대에 처음 세웠으나,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明見樓)라 불렀다. ‘풍남문(豐南門)’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洪樂仁)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읍성은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는 고을을 둘러쌓았던 성을 말한다.
「풍남」이란「풍패(豊沛)」의 남쪽이란 뜻이며,「풍패」란 중국 한(漢)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全州)를 그 곳에 비유한 것이다.
풍남문(豐南門)의 규모는 1층이 앞면 3칸·옆면 3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평면상에서 볼 때 1층 건물 너비에 비해 2층 너비가 갑자기 줄어들어 좁아 보이는 것은 성문 위에 세운 누각 1층 안쪽에 있는 기둥을 그대로 2층까지 올려 하나로 연결하여 점모서리기둥으로 사용하였다. 이 같은 수법은 우리나라 문루(門樓)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방식이다.
옛 문루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부재에 사용된 조각 모양과 1층 가운데칸 기둥 위에 용머리를 조각해 놓은 점들은 장식과 기교를 많이 사용한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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