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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땐 뭐하지 홍콩백끼
‘78개 미슐랭’ 홍콩 가봤니…100끼 먹고 찾은 찐 현지식
카드 발행 일시2024.09.19
에디터
손민호
백종현
홍콩백끼
관심
중앙일보·홍콩관광청 공동기획 I 홍콩백끼
홍콩백끼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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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빌딩이 도열한 홍콩섬의 스카이라인과 탁 트인 빅토리아 하버의 풍경. 언제 봐도 가슴 뛰는 장면이다. 구룡반도 침사추이 해안 산책로에 본 풍경을 펜으로 한땀 한땀 재현했다. 그림 안충기 화백
한 도시에서 100끼를 맛보는 여정이 실현될 수 있었던 건, 그 무대가 홍콩이기 때문입니다. 홍콩은 세계가 인정하는 미식의 고장입니다. 2024년 현재 홍콩에는 78개의 미쉐린(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인구(약 734만 명)는 서울보다 적지만, 별 식당은 서울(32개)의 2배가 넘습니다. 오늘도 홍콩에선 2만8000개가 넘는 식당이 각축 중이라지요. 매달 300개가 넘는 식당이 문을 닫고 또 새로 문을 엽니다.
처음 홍콩에 가면 입이 쩍 벌어집니다. 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시야를 꽉 채우기 때문입니다. 100층에 육박하는 초고층 빌딩과 페인트 다 벗겨진 낡은 상가가 조화를 이룬 풍경이라니요. 초행자는 홍콩 거리에서 자주 길을 잃습니다. 명품 매장이 늘어선 센트럴(中環)의 쇼핑 거리를 거닐다가 비린내가 진동하는 해산물 거리로 바로 빠졌을 때의 당혹감은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홍콩 식당에서는 합석이 흔하지요. 한 테이블에서 누군가는 고기 덮밥을 허겁지겁 먹고, 또 다른 누군가는 토스트와 밀크티를 고상하게 즐깁니다. 도로 귀퉁이에서 힘차게 웍을 돌리는 ‘난닝구 아재’와 구운 오리머리 내건 식당, 그리고 그 식당에 붙은 미쉐린 표식. 이 낯선 풍경이 홍콩에서만은 낯설지 않습니다.
홍콩백끼는 모두 20회로 구성됩니다. 홍콩을 대표하는 음식문화 딤섬(點心), 홍콩 외식 시장의 두 풍경 다이파이동(大牌檔)과 차찬텡(茶餐廳), 홍콩 영화 속의 음식, 1만원도 안 되는 길거리 음식과 30만원이 넘는 파인다이닝, 기상천외한 엽기 음식과 480m 상공에서 홀짝이는 칵테일까지 홍콩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룹니다. 그 대장정의 첫걸음을,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가 내딛습니다. 이름하여 ‘박찬일의 한눈에 보는 홍콩 요리사(史)’입니다.
‘홍콩 원정대’는 5월 홍콩으로 떠났다. 2017년 국내 중식당 최초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 오른 ‘진진’의 왕육성 사부,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 펜화가 안충기 화백, 중앙일보 레저팀 손민호‧백종현 기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가 홍콩으로 날아가 도시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사진은 몽콕 파유엔 재래시장을 찾은 왕육성 사부(오른쪽)와 박찬일 셰프의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홍콩백끼 1회 미리 보기
하루 세끼 외식하는 나라
알아두기 : 중국 음식 사대천왕
알아두기 :홍콩 가기 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
패스트푸드가 된 슬로푸드
알아두기 : 홍콩밥상 서바이벌 단어장
길거리 음식 천국
박찬일의 한눈에 보는 홍콩 요리사
1998년 이전에 홍콩 카이탁공항(啓德機場)은 도심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 공항에 착륙하려는 조종사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홍콩 디스커버리’라는 말은 흔한 슬로건인데, 공항부터 모험의 냄새를 풍겼다. 아크릴로 번뜩이는 거대한 카오스 같던 몽콕(旺角)의 가게들, 올려다보면 멀미가 일 것 같던 센트럴(中環)의 고층 빌딩들, 표준어의 혀가 말리는 원만한 권설음 대신 ‘기역 받침’까지 알뜰하게 살리는 광둥어의 독특한 성조가 귀에 익숙할 때면 홍콩 음식에도 푹 젖어들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홍콩의 음식은 큰 변화가 없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테이크아웃하기 좋은 렁쏭반(兩餸飯·도시락점)이 늘어난 정도다. 아, 2023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음식 가격 상승은 홍콩도 피해 가지 못해서, 시내 허름한 식당의 메뉴판에서 급조하듯 앞자리 숫자를 갈아치운 게 보인다는 점도 근래의 변화다.
하루 세끼 외식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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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는 하루 세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좁은 주거 환경과 더운 기후 탓에 집밥보다 외식을 선호하는 홍콩인이 대부분이다. 백종현 기자
홍콩은 인구 700만 명 이상을 헤아리는데, 거주 가능 지역은 좁아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인구 과밀 지역이다. 영국 지배에 놓인 후에도 지속해서 중국 본토로부터 인구가 유입됐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시기와 1950~60년대에 걸친 대기근과 문화혁명의 파도에 많은 수의 중국인이 홍콩으로 밀려들었다. 한때 주택 1㎡당 1명의 인구가 산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주택 안에 충분한 조리시설을 갖추지 않고 간단한 식사 외에는 매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동남아 지역의 보편적인 관습이기도 하다. 하루 세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 홍콩만의 독특한 상황이 더해져 현재의 식문화를 구축했다.
홍콩은 크게 광둥(廣東) 요리에 속하는 권역으로,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쓰촨(四川) 등 중국 내 주요 음식문화가 더해졌다. 또 홍콩 음식을 특징짓는 가장 큰 요인인 영국의 오랜 지배는 서양 요리의 자장을 강력하게 입혀 놓았다. 빵 문화가 현지화하면서 보통 사람의 아침식사와 간식의 일부가 됐고, 이는 홍콩의 음식문화를 보편적인 중국 음식과 구별하는 핵심이 됐다.
홍콩은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금융과 무역으로 번성하면서 세계인이 몰려들어 단순히 ‘광둥 요리+영국식 요리’를 넘어 홍콩만의 개성 강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냈다. 수준급으로 요리하는 이탈리아·일본·베트남·태국·인도 요리를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홍콩의 경제적 위상을 말해주는 특징이다.
🍜 중국 음식 사대천왕
음식은 결국 땅의 역사다. 지역 풍토가 음식에 매겨져서다. 중국은 덩치가 워낙 커 지역마다 지리 조건은 물론이고 기후, 심지어 민족도 다르다. 하여 음식 문화도 상이하게 발전했다. 중국 음식을 하나의 문화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이를테면 서울의 홍콩반점에서는 짜장면을 팔지만, 홍콩에서 짜장면을 사 먹는 건 대구에서 홍어삼합 사 먹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중국 음식은 지역에 따라 크게 광둥(廣東)‧산둥(山东)‧쓰촨(四川)‧장쑤(江苏) 네 개로 나뉜다. 이른바 ‘중국 4대 요리’다.
광둥 요리 : 중국 남부 지방의 요리. 홍콩 요리가 여기에서 기원했다. 바다가 지척에 있어 예부터 해산물 요리를 즐겼고, 바닷길을 통해 세계 각지의 식재료를 받아들였다. 다리 네 개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재료에 한계가 없다. 심지어 거머리도 먹는다. 1965년 광저우 요리전람회에서 소개된 메뉴가 5457개에 달했다고 한다. 더운 기후의 영향으로 저장성 높은 바비큐 요리가 발달한 게 특징이다. 주요 양념은 간장. 거의 모든 광둥 요리에 간장이 들어간다. 대표 음식은 차씨우(叉燒·돼지고기 바비큐)를 비롯해 돼지‧거위‧비둘기 등을 활용한 바비큐, 제비집 수프, 딤섬, 생선찜, 뱀탕 등.
산둥 요리 : 산둥 지역은 문명을 일으킨 황허(黃河)가 흐르고, 공자·맹자가 태어난 땅이다.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일찍이 인류가 번성해 베이징(北京)을 비롯한 화북(華北) 지역에 음식문화를 퍼뜨렸다. 이른바 ‘북경 요리’도 산둥 요리에서 파생했다. 산둥 요리는 한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국내에서 중화요리를 이끈 1세대 대부분이 산둥성 출신 화교다. ‘진진’의 왕육성(70) 셰프는“산둥 요리는 재료 본연의 맛을 중요히 여기기 때문에 진한 양념보다는 육수를 두루 활용하고 센 불에서 빨리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대표 음식은 탕추(糖醋‧탕수육의 원형), 작장면(炸醬麵‧짜장면의 원형), 총소해삼(蔥燒海蔘‧대파 해삼찜) 등.
쓰촨 요리 : 얼얼할 정도의 매운맛으로 유명하다. 습도가 높은 쓰촨성 지역의 사람은 예부터 땀을 빼기 위해 매운 음식을 즐겼다. 생강·마늘·고추·후추·산초·감주 등 다양한 조미료와 향신료를 활용한다. 대표 음식은 마라샹궈(麻辣香鍋), 훠궈(火鍋), 마파두부(麻婆豆腐), 라조기(辣椒鷄), 어향육사(魚香肉絲‧중국식 고추 잡채), 딴딴면(擔擔麵) 등. 2010년 유네스코가 쓰촨성의 성도(省都) 청두(成都)시를 ‘맛있는 음식의 도시(美食之都)’로 지정했다.
장쑤 요리 : 장쑤성과 상하이(上海)‧난징(南京) 등의 지역 음식을 아우른다. 상하이가 대도시여서 ‘상해 요리’로도 알려져 있다. ‘생선과 쌀의 고장’으로 통할 만큼 식재료가 풍부하고, 해산물과 육류를 두루 사용한다. 삶거나 찌거나 재우거나 하는 식으로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는 요리가 많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특징. 대표 음식은 동파육(東坡肉), 남경오리(鹽水鴨·소금에 절인 오리를 찐 요리), 돼지 다리 냉채, 샤오룽바오(小籠包·육즙이 많은 만두) 등.
5성 특급호텔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 25층에 자리한 고급 칵테일 바 ‘더 오브리’. 백종현 기자
2000년대 들어서는 와인 허브를 자처하면서 품질 좋은 와인의 경쟁력을 갖춘 아시아 최대 도시가 된 것도 최근의 흐름이다. 원래 영국은 와인을 거의 생산하지 않지만, 유럽의 주요 와인을 유통하는 최대 국가로 자리매김한 영국의 역사적 조건이 홍콩에도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인이 많이 거주하면서 그들의 음주 문화인 위스키와 칵테일을 파는 바 문화가 오래전부터 성행한 것도 중화권에서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원래 차 문화의 거점이었던 홍콩이지만, 미국 커피 문화의 첨병인 ‘스타벅스’가 일찍이 진출한 것도 이종 문화의 전시장 같은 홍콩의 모습이다.
😋홍콩 가기 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
김경진 기자
홍콩은 항구다. 한자 표기로는 향항(香港). ‘향기 나는 항구’라는 뜻이다. 무슨 향일까. 홍콩은 명나라 때 향나무 중계무역항에서 출발했다. 향나무 향 가득한 항구여서 ‘샹강(香港)’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콩이 샹강의 광둥어 발음이다.
1842년 난징조약 이후 홍콩은 영국 식민지로 155년을 보냈고, 1997년 중국에 반환돼 지금은 중국에 속한다. 정확히 말하면 중국 특별행정구. 하여 광둥어가 기본이지만, 영어도 두루 쓰인다. 다만 전통시장이나 노포 같은 서민 식당에서는 오로지 광둥어만 통하니 생존 광둥어 몇 문장은 외우시라 권한다.
홍콩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인구는 734만 명인데, 면적(1105.6㎢)은 제주도(1848㎢)보다도 작다. 현재 홍콩은 구룡반도와 홍콩섬‧란타우 등 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콩과 홍콩섬이 종종 혼용되는 까닭이다. 한국하고는 비행기로 약 4시간 거리, 시차는 한국이 1시간 빠르다.
과거에는 영국 식민지였고 현재는 중국 영토인 홍콩이, 화폐는 의외로 미국 달러의 영향을 받는다. 홍콩 공식 화폐 홍콩달러(HKD)가 미국 달러에 연동해 환율을 정하는 이른바 ‘페그제(Peg System)’를 도입해서다(미화 1달러당 7.79~7.87HKD 고정). 2024년 현재 1HKD는 약 170원. 완탄민(완탕면) 한 그릇이 40HKD(약 6800원) 정도다. 미국 달러가 강세면 홍콩 물가도 뛴다. 요즘 한국에서 홍콩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이유 중 하나도 미국 달러가 비싸서다.
홍콩은 세계적인 국제무역 도시이지만, 신용카드를 안 받는 상점이 의외로 많다. 하여 현금은 홍콩 여행의 필수품이다. 전통시장은 물론이고 일반 식당에서도 ‘Only Cash’를 써 붙인 가게가 허다하다. 다행히 ATM과 환전소가 시내 곳곳에 있다.
홍콩은 덥다. 더위도 더위지만, 더 참기 힘든 건 습도다. 평균 습도가 90%가 넘는다. 현지인이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에어컨 끄고 여행 갔다 오니 집 안에 곰팡이 피었더라고. 해서 홍콩에서는 24시간 에어컨을 빵빵 틀어댄다. 한여름에도 가벼운 외투를 챙겨야 하는 이유다. 홍콩은 겨울마다 한파로 사망자가 발생한다. 겁 먹을 필요는 없다. 홍콩의 겨울 평균 기온은 15도 안팎이다. 눈도 없고 땅이 얼지도 않는다. 홍콩 사람이 추위에 약할 따름이다.
패스트푸드가 된 슬로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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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비큐 요리들. 통으로 굽거나 염장한 돼지·오리·거위 등을 주렁주렁 걸어두고 손님을 맞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곧장 토막 내 손님에게 나간다. 백종현 기자
홍콩 요리에는 ‘씨우메이(燒味)’라는 말이 있다. 고기를 양념해 굽거나 찌고 말리는 방식을 쓰되 오븐(화덕)에서 조리해내는 방식을 말한다. 중국의 모든 지역에 이와 유사한 요리법이 있는데 유명한 ‘베이징덕’이 그 한 예다. 홍콩은 이런 요리가 가장 발달한 도시다. 씨우메이는 기본적으로 간장을 쓴다. 된장류가 중심인 북부와 달리 중국의 남부 지역은 간장을 많이 쓴다. 이런 조리법은 씨우메이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다. 홍콩은 동남아의 ‘향신료 벨트’와 가까워 각종 향신료를 빠르게 들여오는 게 가능했다. 씨우메이에 필요한 설탕의 산지 역시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이므로 현재와 같은 육가공의 본고장이 될 수 있었다.
육류의 맛을 좋게 하고, 더운 날씨에 보존성을 높이는 데 오븐에 굽고 소금과 양념을 치는 방식은 매우 유효했다. 홍콩의 씨우메이는 돼지·닭·오리·거위를 주로 쓴다. 보통 관광객에게는 돼지에 달콤하고 진한 양념을 발라 구운 차씨우(叉燒), 바삭한 껍질이 특징인 돼지 삼겹살구이 씨우욕(燒肉), 새끼돼지 통구이 유쭈(乳猪), 역시 바삭한 거위구이 씨우오(燒鵝) 등이 유명하다. 간장을 바르지 않고, 소금에 절여서 쪄내는 방식으로 요리하는 종류도 흔하다. 가금류와 돼지를 요리하는데 이처럼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는 것도 홍콩의 특징이다.
이렇게 만든 요리를 아주 싼값에 빨리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홍콩의 강력한 장점이다. 밥에 곁들여 내거나 덮밥으로 올리는 방식을 고르면 불과 1만원 안팎의 비용으로 언제든지 거리의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은 놀랍다. 차씨우·씨우욕 등의 돼지고기 요리도 좋은데, 한국인은 닭을 제외한 가금류 요리는 상대적으로 덜 좋아하는 듯하다. 하지만 비둘기·거위·오리 같은 가금류로 만든 요리도 권하고 싶다. 홍콩 특유의 향신료에 재워 요리한 가금류는 고기 고유의 풍취를 절묘하게 간직하고 있다. 소금에 절여 찐 것보다는 훈연하거나 양념을 발라 구운 것이 초심자에게 더 적합하다.
홍콩의 육가공 요리는 홍콩의 사회문화적 현실과 맞물려 특색을 보여준다. 약한 불로 오래 요리해야 하는 전형적인 슬로푸드인 씨우메이는 결과적으로 이미 조리된 것을 썰어서 제공하기만 하면 됐으므로 홍콩다운 패스트푸드의 상징이 됐다. 씨우메이는 밥에 올려서 재빨리 먹을 수 있게 곧바로 제공하거나 포장해 파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이런 제공법은 어떻게 보면 패티를 구워야 하는 햄버거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필자는 홍콩에서 이런 씨우메이로 내는 간편식을 즐겨 먹는다. 스티로폼 그릇에 밥을 푸고, 원하는 고기를 썰어서 담아내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바삭한 껍질이 특징인 씨우욕(돼지 삼겹살구이, 사진 왼쪽)과 양념 돼지 바비큐를 올린 차씨우덮밥. 주문하면 웬만한 패스트푸드보다 빠르게 음식이 나온다. 백종현 기자
점심시간에 홍콩 사람은 보통 씨우메이점을 찾거나 씨우추(小廚)라 써 놓고 음식을 파는 일종의 스낵점에 간다. 보통 10개 이상의 요리를 미리 만들어 두고 주문하면 도시락에 담아주는 것을 애용한다. 이런 음식을 렁쏭반이나 쌍쏭반(雙餸飯)이라 한다. 반찬이 두 가지란 뜻이다. 세 가지 반찬을 호화롭게(?) 담아서 삼쏭반이 될 수도 있다.
과거나 최근의 여러 통계는 홍콩 사람이 아주 오래 일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5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이 흔하며, 국제 표준인 40시간을 몇 시간이라도 넘는다는 통계는 아주 많다. 바쁘게 일하는 홍콩 사람에게 스낵은 아주 표준적인 식사라고 할 수 있다.
홍콩밥상 서바이벌 단어장
홍콩 여행에서 뜻밖의 복병은 언어다. 어지간한 관광지는 영어만으로 소통이 가능하나, 가장 중요한 식당에서는 영어가 안 통할 때가 많다. 통역이 없으면 ‘현지인 맛집’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홍콩 먹방 투어를 나서기 전 당신이 알아야 할 용어들을 정리했다. 홍콩백끼 연재 동안 마르고 닳도록 등장할 주요 어휘들이니 잘 기억하시라.
딤섬은 일반적인 교자 외에 찐빵, 찜, 고기 완자, 튀김, 전병, 떡 등 그 종류가 300가지에 이른다. 사진은 딤섬의 왕으로 통하는 새우교자 하가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딤섬(點心) : 딤섬은 만두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딤섬은 대나무 찜기에 담겨 나오는 만두·구이·과자 같은 먹거리의 총칭이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차와 함께 간단히 먹던 음식 문화에서 유래했다. 딤섬(點心)을 우리식으로 읽으면 ‘점심’이 된다!
얌차(飲茶) :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차를 마시다’는 뜻이다. 홍콩에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 쓰인다. ‘차를 마시는데, 딤섬과 함께 마신다’는 의미로 통한다. 다시 말해 홍콩에서 누가 “얌차했다(원어로 ‘허이 쪼 얌차(去左飲茶’)”고 하면 ‘아, 오늘 딤섬 먹고 왔구나’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씨우메이(燒味) : 홍콩식 바비큐 요리. 홍콩 거리 어디에서나 거위·닭·돼지 따위를 주렁주렁 걸고 손님을 맞는 식당이 늘어서 있다. 광둥어로 씨우(燒)는 불에 태운다는 뜻으로, ‘씨우’로 시작하는 홍콩 음식이 많다. 우리가 아는 ‘차슈’의 홍콩식 발음인 차씨우(叉燒)는 돼지고기 바비큐, 씨우메이판(燒味飯)은 바비큐를 올린 덮밥을 가리킨다.
다이파이동(大牌檔) : 포장마차 형태의 노천 식당.높은 화력이 필요한 볶음 요리를 주로 낸다. 과거에는 길거리 음식점만 칭했으나, 요즘은 포장마차 느낌을 살린 실내 식당도 다이파이동이라 부른다. 홍콩에서 “오늘 저녁 다이파이동?”은 보통 “오늘 저녁 간단하게 한잔할까?”란 의미로 통용된다.
차찬텡(茶餐廳) : ‘홍콩의 김밥천국’ 또는 ‘국적 불명의 페스트푸드점’. 밀크티와 유엔양(鸳鸯, 커피와 밀크티를 섞은 것), 프렌치토스트와 파인애플번, 덮밥과 라면 등 별의별 음식을 초저가에 내놓는다. 대부분 아침 일찍 문을 연다. 출퇴근 시간 홍콩 사람이 가장 즐겨 찾는 서민 식당으로, 홍콩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차(奶茶) : 홍콩식 밀크티. 홍콩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음료는 커피도 아니고 콜라도 아니다. 차찬텡의 필수 메뉴 나이차다. 티백을 우려내는 영국식 차와 다르게 홍콩의 밀크티는 스타킹처럼 기다란 거름망으로 홍차를 거르고 우유 대신 무가당 연유를 쓴다. 홍콩에서 매년 9억 잔의 나이차가 소비된다는 통계도 있다. 박찬일 셰프는 인스턴트 설탕 3봉지를 넣어야 진정한 나이차를 즐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완탄민(雲呑麺·완탕면) : 홍콩을 대표하는 국수 요리. 쉽게 말해 새우만두 ‘완탄’이 들어간 국수를 이른다. 다만 면이 우리네 국수와 다르다. 밀가루 반죽에 달걀이나 오리알을 넣어 만든 생면(딴민·蛋麵·egg noodle)이 들어가 전혀 낯선 맛을 낸다. 면이 제대로 익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식감이 꼬들꼬들하다. 처음엔 밀가루 냄새도 나는 것 같아 부대끼지만, 한번 맛 들이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체자이민(車仔麵·Cart Noodle) : 수레(車)를 끌고 다니며 즉석에서 만들어 팔던 국수. 노점 영업이 단속되면서 수레는 다 사라졌지만, 면·토핑·육수를 마음대로 조합해 먹는 고유의 문화는 건재하다. ‘車仔麵’이나 ‘Cart Noodle’이라는 간판을 건 식당에 그 문화가 내려온다. 만두 말고도 선지·곱창·오징어 등 20가지가 넘는 토핑이 준비돼 있다. 체자이민 가게에서 당신이 원하는 메뉴를 정확히 주문하는 데 성공한다면, 당신의 홍콩 음식 공력은 인정받을 만하다.
바오(包) : 빵을 뜻하는 중국어. 용례가 풍부하다. 이를테면 딤섬집의 ‘차씨우바오(叉燒包)’는 차씨우를 넣은 찐빵을 가리킨다. 차찬텡에서 흔히 먹는 파인애플번은 광둥어로 ‘보로바오’라 한다. 보로(菠蘿)가 파인애플이다.
딴탓(蛋撻) : 홍콩식 에그타르트. 홍콩에서 가장 즐겨 먹는 간식이다. 포르투갈식 오리지널 에그타르트와 영국식 커스터드 타르트가 결합해 홍콩 특유의 주전부리가 탄생했다. 커스터드를 감싼 파이가 쿠키처럼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길거리 음식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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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불쇼에 가까운 웍질을 길가에서도 목격할 수 있는 도시다. 저녁 시간이면 길가 다이파이동에서 시작된 불향이 골목 곳곳으로 퍼져 유혹을 참기가 쉽지 않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홍콩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인구의 집중이 이루어졌다. 동남아 지역의 기후에 걸맞게 노점이 발달했는데, 더 많은 사람이 더 싸게 먹을 수 있는 절묘한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홍콩은 노점이 성행하며, 노점이 아니더라도 많은 서민 식당이 반(半)개방형으로 설계된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주방의 열기를 가둬두지 않고 열어둠으로써 요리사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가게 안이 덥지 않도록 조절하려는 의도다.
노점의 역사에서 두 가지 ‘업태’를 홍콩인은 기억하고 있다. 하나는 체자이민(車仔麵)이고, 다른 하나는 다이파이동(大牌檔)이다. 체자이민은 영어로 ‘카트 누들(Cart Noodle)’이라고 하는데, 이름에서 연상하듯이 원래는 한국의 포장마차처럼 길거리에서 카트에 조리시설을 싣고 면을 삶아서 팔던 방식까지 아우른다.
다이파이동은 일종의 거리 포장마차 개념이다. 한자를 잘 보면 큰 패(大牌·허가증)를 붙인 가게란 뜻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겼다. 당시 홍콩 정부는 전쟁 중에 죽거나 다친 공무원의 가족에게 면허를 발급해 공공장소에서 노점을 운영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엔 술집이 아니라 국수 같은 간이 음식을 팔았다. 지금은 친구나 친한 동료가 여럿 모여서 술을 마시는 집으로 통용된다.
현재는 야시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노점 영업은 하지 않으며, 대부분 고정된 업장의 형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조리 방식이나 제공법, 먹는 관습은 과거와 흡사하다. 미리 조리된 십수 가지의 고명을 차려 놓는다. 대개는 한두 가지의 육수를 준비하고, 원하는 국수와 고명을 손님이 선택하면 재빨리 말아준다. 어묵과 흡사한 위단(魚團), 소 내장(牛雜)과 돼지 내장(猪雜)이 별미며, 소 뱃살(牛腩·양지머리)이 특히 추천할 만하다. 채소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토스트와 나이차 그리고 고기 국수. 낯선 조합 같지만 차찬텡에서는 흔한 상차림이다. 백종현 기자
홍콩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은 다 파는 형태로 진화됐다. 나이차(奶茶, 우유를 넣은 진한 차. 홍콩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했으며 이 차 달이는 노포 기술자가 있을 정도다), 윤영(鴛鴦, 밀크티와 커피의 혼합차. 가장 홍콩다운 이종 혼합차다), 버터에 지져서 꿀을 무지막지하게 듬뿍 뿌려 먹는 프렌치토스트(사이토시(西土司)라고도 한다), 유명한 파인애플번, 그리고 커피가 차찬텡의 핵심적인 음식이다. 홍콩 사람이 좋아하는 닭발과 소내장조림, 소시지·햄·밥·국수를 파는 것은 물론이다. 2007년 홍콩입법위원회의 한 의원은 차찬텡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등재는 되지 않았지만, 얼마나 홍콩다운 식당인지 증명해 주는 대목이다.
차찬텡의 특징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도 기억하는 ‘호마이카’ 탁자가 있다. 값싸고 가벼운 탁자를 의미하는 이것은, 원래 미국의 포마이카(Formica)라는 상표의 신소재를 의미한다. 미국의 가구나 인테리어 소재로 개발돼 널리 쓰였는데 아시아에도 전해져 홍콩에서는 차찬텡의 핵심 가구로 사용됐다. 홍콩 시내를 다니다 보면 뺑삿(氷室)이라는 다실이 많이 보이는데 이 또한 차찬텡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우리는 ‘중국 요리=웍’으로 기억한다. 이 보편적인 대명사는 사실 홍콩과 광둥 요리의 전통에서 퍼져 나온 말이다. 웍은 ‘wok’이란 홍콩식 발음으로 표기돼 중국 요리를 세계에 알리는 상징어가 됐다. 웍 안에서 익어가는 요리처럼 홍콩은 맛의 유혹으로 충만하다. 사실 홍콩은 작고 오밀조밀한 도시 자체가 맛있는 냄새와 향기를 풍기는 다층구조의 찜솥 같다. 딤섬집 만두 용기처럼 하나씩 통을 열어갈 때마다 놀라운 맛과 다채로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홍콩을 떠날 때는 다시 돌아올 것을 결심하게 된다. 또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백끼’ 2회는 홍콩 음식의 대명사 ‘딤섬’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
에디터
손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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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팀장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8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