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울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근심 걱정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삶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희망과 연대의 의지
이 시는 부도, 질병, 절망적인 한계 상황에 처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위대한 생명력을 다루고 있다.
시인은 절망의 최하한선인 '가장 낮은 곳'을 지탱하는 힘으로 부사 '그래도'를 제시한다.
역경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의 마음을 하나의 지리적 공간인 '섬'으로 형상화하여 희망의 실체성을 부여했다.
절망을 견뎌내며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연대와 긍정의 의지가 결국 고통의 강을 건너 '빛의 뗏목'과 평화에 도달하게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감동적인 위로의 시이다.禹
김승희 시인 프로필
출생: 1952년 전라남도 목포
학력: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석사·박사
등단: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그림자들의 서성임〉이 당선되어 등단
경력: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임 (현 명예교수)
작풍 특징: 초기에는 초현실주의적이고 격정적이며 환상적인 시풍으로 주목받았으나,
이후 여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생명에 대한 찬가, 일상적 고통을 끌어안는 따뜻한 시선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다수 발표함.
주요 시집: 《태양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달걀 속의 생》, 《희망이 외롭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