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단 동쪽을 정복하다
민 21:21-35
21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22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
23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24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25 이스라엘이 이같이 그 모든 성읍을 빼앗고 그 아모리인의 모든 성읍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에 거주하였으니
26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라 시혼이 그 전 모압 왕을 치고 그의 모든 땅을 아르논까지 그의 손에서 빼앗았더라
27 그러므로 시인이 읊어 이르되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28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
29 모압아 네가 화를 당하였도다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멸망하였도다 그가 그의 아들들을 도망하게 하였고 그의 딸들을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포로가 되게 하였도다
30 우리가 그들을 쏘아서 헤스본을 디본까지 멸하였고 메드바에 가까운 노바까지 황폐하게 하였도다 하였더라
31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주하였더니
32 모세가 또 사람을 보내어 야셀을 정탐하게 하고 그 촌락들을 빼앗고 그 곳에 있던 아모리인을 몰아 내었더라
33 그들이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35 이에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더라
민 21:21-35 / [시혼왕을 쳐부수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이런 부탁을 하였다. 22) `당신네 땅을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는 큰길만을 따라 당신 나라를 통과할 작정입니다. 밭이나 포도밭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당신 백성들이 농사지은 것에 피해를 입히지 않을 생각입니다. 혹시 우리가 지나가다가 물을 마시더라도 그냥 마시지 않고 물값을 내겠습니다. 그러니 당신 나라를 지나갈 수만 있게 해주십시오.' 23) 그러나 시홀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나라 땅을 지나가겠다는 청을 거절하였다. 오히려 백성을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내보냈다. 드디어 야하스에서 아모리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싸움이 붙었으나 24)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 백성을 무찔렀다. 이스라엘은 아르논강에서부터 얍복에 이르는 곳까지 아모리 땅을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암몬 땅까지 다다르게 되었으나 암몬땅은 매우 튼튼하게 수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쳐들어갈 수 없었다. 25)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아모리 땅을 점령하고 아모리 사람들이 살고 있는 헤스본과 그 주변 마을들까지 차지하여 그곳에 자리 잡았다. 26) 헤스본은 아모리의 수도로 시혼왕이 차지하고 있었다. 시혼왕은 전에 모압의 왕을 무찌르고 아르논강까지 이르는 땅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27) 그래서 시인들은 이러한 시를 읊었다. `헤스본으로 오너라. 시혼왕의 수도로 오너라. 다시 세워 튼튼한 헤스본을 보고 싶구나. 28) 이 성읍 헤스본에서 막강한 군대가 불같이 일어났도다. 하여 모압 땅에 서 있던 성읍 아르를 쓰러뜨렸도다. 아르논 위쪽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던 이들을 마구 집어삼켰도다. 29) 모압아, 너 어찌 두려워 떨지 않으랴! 그모스를 섬기며 사는 무리야, 너희 성읍이 아주 망하여 먼지만 흩날리는구나. 너희 신 그모스가 아들이라는 너희를 사로 잡히게 하였구나. 딸이라 하는 너희를 끌려가게 하였구나. 아모리 왕에게 포로되게 하였구나. 30) 이제 그 후손들이 사는 곳 헤스본에서 디본까지 메드바에 가까운 노바까지 우리가 모조리 쓸어 버렸다. 아예 못쓰게 망가뜨려 버렸다.' 31)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아모리 땅에서 살게 되었다. 32) 모세는 야셀의 형편이 어떠한 지, 또 어디로 쳐들어가야 야셀을 쉽게 정복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냈다.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야셀뿐 아니라 그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거기서 살고 있는 아모리 사람들을 몰아냈다. 33) [옥왕을 쳐부수다] 이스라엘 백성은 발길을 돌려 바산을 향하여 올라갔다. 그러자 바산 왕 옥이 이스라엘 백성을 맞아 싸우려고 군대를 거느리고 에드레이로 나왔다. 34)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산 백성을 무서워하지 말아라. 내가 이미 너희가 바산 왕 옥과 그 백성을 이기도록 해놓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땅도 너희 손에 붙이겠다. 헤스본에 살던 아모리 왕 시혼을 맞아 싸우던 때처럼 바산왕 옥과 그 백성을 맞아 용감히 싸워라' 35)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바산 왕 옥과 그의 아들들과 또 싸우러 나왔던 백성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이고 그 땅을 점령하였다.
시혼과 바산의 왕도 에돔처럼 이스라엘이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출 23:23). 그러므로 이 전쟁은 이스라엘에는 승리가 보장된 전쟁이었습니다.
아모리인의 땅 정복(21-32) 이스라엘은 사신을 보내 평화를 제안합니다. 그러나 아모리 왕 시혼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광야로 나옵니다. 이로 인해 아모리 인들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만들어집니다(창 15:16). 이스라엘은 암몬 자손의 땅은 점령하지 않았습니다(신 2:19). 그들은 형제의 민족인 롯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모리인의 모든 성읍은 점령하여 그곳에 거주하였습니다. 특히 아르는 근동 지역의 정치 군사 요충지였습니다(신 2:9). 가나안 땅은 우상이 크게 성행한 땅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모압의 그모스는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가는 과정과 이후 경영하는 일에 있어서 우상에 물들어가지 않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습니다.
바산 옥 왕 정복(33-35) 바산은 비옥한 평지라는 뜻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그 지역은 몸집이 크고 강한 르바임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신 2:10-11). 암몬과의 전쟁을 피해 북쪽으로 행진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이미 그 땅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선포하십니다. 바산을 정복하게 되면서 요단 동쪽 전체는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나아가야 할 때와 싸워야 할 때 또는 돌아가야 할 때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얻게 되는 결실은 그 어떤 것보다 보람되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충분한 연단의 과정을 통해 가나안 땅을 경영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적용: 당신의 삶 속에서 나아가야 할 때와 돌아가야 할 때 그리고 믿음으로 담대히 싸워야 할 때는 어떤 때인가요?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그 백성이 수효가 많아서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해준 그 땅도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기업’으로 번역된 단어 ‘나할라’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팔고 살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어떤 가게에서 좋은 물건을 보고 ‘저 물건 얼마입니까?’ 물었을 때 ‘그건 파는게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나할라’입니다. 돈으로든 어떤 대가든 팔지도 않고 바꾸지 않는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할라’입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나할라 정신입니다.
< 설 교 >
두려워하지 말라
민수기 21:21-35 / 코너스톤장로교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편안하고 빠른 길인 ‘왕의 대로’를 통과하고자 했습니다. 왕의 대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에돔의 영토를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에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영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대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에돔과의 전쟁을 통해 얼마든지 왕의 대로에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에돔과 전쟁하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을 통과 해서 왕의 대로로 가지 못하고, 광야 길로 우회하여 가게 됩니다.
예상대로 광야 길은 무척이나 힘들고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에돔의 영토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영토 앞까지 왔습니다. ‘혹시 아모리 족속은 왕의 대로를 통과하도록 허락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에돔 왕에게 부탁 했듯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도 왕의 대로를 지나갈 수 있도록 부탁 했습니다.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21:22)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대로로만 통행하리이다 하나” 아모리 왕 시혼은 어떻게 반응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기 위해서 아모리 백성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아무런 소동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왕의 대로’로 지나가려고 했던 것인데, 아모리 사람들은 이스라엘들이 자신의 영토를 침입하려고 생각했던 것인지 전쟁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을 친 것이죠. 그러나 이 전쟁에서 아모리 전쟁은 이스라엘에게 크게 패하고 맙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이 다스리던 모든 영토와 수도 헤스본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읽어보면 마치 이 사건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왕의 대로로 가기 위해 아모리 족속의 땅을 건너야 했고, 아모리 족속은 이에 대한 반응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이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미 창세기 15장을 보면 ‘아모리 족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죄악으로 가득한 아모리 족속을 유심히 보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오늘 본문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아모리 족속을 전쟁에서 패하게 하심으로 그들은 소유한 땅을 모두 다 빼앗기고 패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죄악이 만연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때가 되면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계획에도 없었던 성읍들과 촌락들을 얻어 마실 물과 식량을 구하게 되고, 아모리 족속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게 된 것이죠.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찰 것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다시 이 땅에 돌아올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예언의 내용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하고 하나님을 대적했던 아모리 족속을 패망 시켜 버리셨습니다. 아모리 족속처럼 하나님께 대적하고 죄악으로 살아가는 세력은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언제나 도와주시고 인생의 어려운 상황과 문제들도 하나 둘씩 풀어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 족속과 싸워 승리 하였습니다.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던 논과 밭, 성과 집, 가축 등 모든 소유가 이스라엘의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껏 애굽을 떠나 수십년 동안 마실 물 없고, 먹을 식물 하나 없는 황량한 광야를 헤매며 살아오다가, 드디어 사람이 살만한 땅에 들어가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살아가다가 나와, 수십 년 동안 광야에서 밤낮으로 죽을 고생으로 하고, 이제야 전쟁에서 땅 다운 땅을 차지 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제의 현장 입니다. 이들은 말로 다 표현 못할 기쁨에 쌓여 몹시 흥분해 하고 있습니다. 온 도시에 크게 울려 퍼지는 기쁨의 승전가로 가득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른 승전가의 내용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민 21:27) 그러므로 시인이 읊어 가로되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27절에 ‘시인이 읊어 가로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27-29절까지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아모리 사람들이 부른 노래 입니다. 본래 아모리 사람들이 거주하던 헤스본 땅의 주인은 아모리 사람이 아니라 모압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모리 사람들이 와서 모압으로부터 땅을 빼앗았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 사람들이 어떻게 모압 땅을 빼앗았는지, 모압에 어떤 화가 임했는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28-29절을 읽겠습니다. “(민 21:28) 헤스본의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 (민 21:29) 모압아 네가 화를 당하였도다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멸망하였도다 그가 그 아들들로 도망케 하였고 그 딸들로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포로가 되게 하였도다” 29절에 나오는 ‘그모스’란 이름은 모압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 신의 이름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압이 아모스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것을 이야기하며 거짓 신인 그모스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우상 신을 섬기던 모압 사람들이 아모리 왕 시혼의 포로가 되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왜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승전가를 부르며 모압이 아모리에게 패한 역사 적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 모압 족속을 정복한 아모리 족속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다시 정복 했기 때문 입니다. 이스라엘의 승전가는 모압을 쳐부순 아모리인의 승전가를 먼저 인용하고, 이어서 이러한 아모리인들을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무찔렀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 헛되며, 그들의 신이 무기력한 존재임을 조롱하며, 하나님께서 참 신이시며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강한 민족임을 승전가로 지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아모리 왕 시혼이 이스라엘에게 정복 당했다는 소식이 주변 국가들에게 퍼지게 됩니다. 이에 아모리와 인접 해 있던 국가 중 바산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군대를 일으키게 됩니다. 33절 보십시오. “(민 21:33)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바산 왕 옥… 이 사람에 대해서 신명기서는 아주 흥미로운 대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의 침대는 철로 만든 었습니다. ‘침대가 철로 만들어진 것이 뭐 대단한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이 기록은 바산 사람들에게 철기 문화가 벌써 보급되었다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에 무기가 농기구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철검을 가진 민족과 싸워야 한다니 엄청난 부담감에 놓일 수 밖에 없는 거죠. 무기에서부터 이미 상대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이이서 신명기 3장 말씀을 보면 이 바산 왕 옥이란 사람이 자는 침대의 크기가 무려 아홉 규빗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 규빗은 손가락 중지 끝에서 팔 꿈치까지의 길이 입니다. 대략 45 cm 정도 됩니다. 바산 왕 옥이란 사람의 침대 크기가 아홉 규빗이라고 했으니 계산해보면 그 침대 길이가 무려 4M나 됩니다. 이게 어느 정도 큰 것인가 가늠하기 어려우실 수 있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King size 침대 세로 길이가 2미터 5센치 입니다. 그러니까 바산 왕 옥이 사용하던 침대는 2배나 더 큰 거죠. “뭐 침대가 큰 것이 그리 대수인가?” 하고 반응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바산 왕 옥의 침대 크기에 대한 기록을 해 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바산 왕 옥은 거인족의 후손이었던 것이죠. 훗날 아모스 선지자도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거인이라고 말합니다.
현대 전쟁이야 총으로 싸우니까 몸이 크던 작던 사실 별 상관 없습니다. 키가 작아도 먼저 총 쏘면 이깁니다. 그러나 고대전은 육탄전 입니다. 상대가 긴 팔을 가지고 있으면 상당히 유리합니다. 덩치가 큰 거인이라는 사실 하나만 해도 불리한데, 아까 검이 무슨 재질로 되어 있다고 했어요? 철검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무기류가 철검하고 부딪히면 반으로 동강 잘리거나 엿가락처럼 휘어 버립니다. 게임이 안 되는 거죠. 이게 끝이 아닙니다. 신명기 1장 28절을 보면 바산 사람들은 “장대하고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새가 얼마나 큰지 난공불략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어딜 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는 전쟁이라는 거죠.
자, 그러나 이미 바산 왕 옥은 이스라엘과 전투를 할 마음을 먹고 온 백성을 거느리고 에드레이라 이름하는 곳에서 싸우려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마 이 때 큰 거인들이 철칼을 들고 오는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 “아, 이제 좀 땅 다운 곳에서 사나 싶더니…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덜덜덜 떨었을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승전가를 부르던 기쁨이 온데 간데 사라지고, 마음에 있던 가득 찼던 힘과 용기가 얼음 녹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미 전쟁을 하기도 전에 진 것이나 다름 없는 싸움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입니다. 여기서 지면, 이스라엘 백성은 전멸 입니다.
자, 바로 이 다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21: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산왕 옥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산 왕 옥과 그의 모든 백성, 그리고 그들의 땅을 모세의 손에 넘겼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고 앞서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쳐 승리한 것과 같이 바산왕 옥에게도 동일하게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고 “이미 승리를 네 손에 주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 입니까? 3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21:35) 이에 그와 그 아들들과 그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 땅을 점령하였더라”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인 후 그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이 바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이 그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기 눈 앞에 다가오는 거인족들의 철검에 의해 곧 죽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시지만 언제나 이들과 함께하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직접 이 전쟁의 주관자가 되셔서 바산 과의 전쟁을 지휘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셨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참 구원자요, 도움인지 드러내셨습니다.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삶이란 전쟁을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한 번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는 사람의 힘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이미 네 손에 넘겼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계심으로 염려 붙들어 매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에 갇혀 살게 됩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결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을 버리고, 전쟁의 승리를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십시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살아가시기를 구하십시오. 이미 최후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오늘 이 하루도 온전히 주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 우주는 겁나 우아하다
민수기 21:21~35
이스라엘은 비스가 산 골짜기에 이르렀습니다. 비스가 산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던 느보산과 같은 산입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그 땅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모리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들은 모두 함의 후손입니다.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었잖습니까? 셈, 함, 야벳. 이스라엘은 셋의 후손이지요. 그러니까 셋의 후손과 함의 후손이 만난 것입니다. 셋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함의 후손인 아모리에게 당신들의 땅을 지나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함의 후손은 땅의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합니다. 오히려 지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셈의 후손과 전투를 벌이러 군대를 끌고 나왔습니다.
이런 적반하장의 경우,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좀 지나가게 해달라는 말에 폭력을 휘두르는 이 예의없는 민족을, 이스라엘은 칼날로 무찌르고 넓은 영토를 얻게 됩니다. 아모리는 지나가면 안된다고 묻는 사람과 되려 싸우려고 했다가 자기 집만 잃은 꼴입니다. 그리고 이 우스운 꼴이 시인들에 의해 노래로 전파되었습니다.
"헤스본으로 오세요.
그걸 다시 지어봅시다,
모압의 도시였지만
이젠 아모리의 왕 시혼의 도시입니다.
헤스본에서부터 나온 불들이
시혼의 도시에서부터 나온 화염이
아르논 신을 섬기는 모압을
죄다 집어 삼킵니다.
노래는 우스운 꼴을 당한 아모리의 왕을 띄워주면서 시작됩니다. 아모리 족속이 모압을 정복했습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도 모압은 정복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롯의 후손들에게 살 땅을 마련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신명기 2:9). 그런데 이 롯의 후손들은 온갖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아르논 신도 섬기고, 그노스 신도 섬깁니다. 그리고 우상들을 섬기는 이 롯의 후손들을 시혼 왕이 이끄는 아모리 족속이 침략한 것입니다. 그래서 헤스본이란 도시를 빼앗았습니다. 그 다음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 이걸 어쩌나, 모압이여!
그모스 신도 섬기는 이들이여!
당신들은 멸망당했군요,
아들들이 도망가고
딸들이 포로가 되었네요,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이스라엘은 모압을 걱정해주는듯 노래하지만 사실 비꼬는 내용입니다. 모압은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아르논 신을 섬긴다고 노래했던 모압이, 이 구절에 와선 그모스 신도 섬깁니다. 지금 이 노래를 부르는 이스라엘의 시인은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상들을 섬기더니 결국 우상들은 모압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상들이 지켜줄줄 알고 열심히 숭배하더니 꼴 좋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시혼의 사람들을 이겼습니다,
헤스본이 디본에 이르도록.
모조리 멸망했습니다.
우리는 시혼의 사람들을 없애버렸습니다,
메드바에 닿은 노바에 이르도록.
노래의 절정은 이 부분입니다. 이스라엘이 대단히 신나있다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앞에서 띄워준줄 알았던 아모리의 왕 시혼도 이스라엘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일타이피, 모압도 디스하고 아모리도 디스합니다. 이스라엘은 모압을 이긴 아모리를 이겼습니다. 그래서 모압이 빼앗겼던 도시, 하나님께서 롯의 후손에게 마련해주셨던 도시들을 이스라엘이 다시 되찾아 왔다는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이 모압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압을 이긴 아모리 족속을 이스라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우상숭배의 도시는 심판을 당하고, 자신이 강해서 이긴 줄 아는 교만한 심판의 도구도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최종 승자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 이름처럼 이기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이긴 자"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스라엘은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그러니 이 교회가, 오늘 우리가 이긴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신약의 구절들을 읽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7, 개역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일서 5:5, 개인번역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에 신실한 사람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의 전쟁
민 21:21-35 / by 단보미
1. 요단 동쪽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이 왕의 큰길을 내어주지 않았기에 우회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수많은 백성이 먼 길을 돌아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또 한 번의 위기를 겪는다. 21-35절은 아모리 왕 시혼과의 전쟁과 바산 왕 옥과의 전쟁에서 승리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10절부터 20절까지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마에서부터 어떻게 어떤 노정으로 모압 평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여행 기록이다. 20절에 보면,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니라”라고 했다. 비스가 산에서 모세가 죽는다. 이 지명은 모압 땅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까지 이른 것이다.
2. 우회함으로 얻은 덤
우회하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크게 불만을 표했고 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1절 이하의 본문에서 보게 되는 두 번의 전쟁은 우회하는 바람에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지도 않은 영토를 얻게 된다. 아모리 왕 시혼의 영토와 바산 왕 옥의 영토는 본래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 아니었다. 이 땅은 트랜스요르단이라고 불리는 모두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회하게 하심으로 이들과 맞닥뜨리게 하시고 전쟁을 피할 수 없게 하신다. 자기 백성에게 덤으로 요단 동편의 땅을 허락하여 주신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 삶에도 많이 일어난다. 본문은 우리가 어떤 상황이 악화된다고 여겨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습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최상의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 때문에 우회함으로 덤을 얻은 것이다.
3. 아모리 왕 시혼과의 전쟁(21-32절)
모세는 처음에는 에돔에게 그렇게 했듯이, 아모리 왕 시혼과도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가도록 허락해 줄 것을, 사신을 보내서 부탁했다. 왜냐하면 이들의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모리 왕 시혼은 악한 왕답게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겠다고 길목인 야하스로 군대를 이끌고 나와서 먼저 이스라엘을 쳤다. 이것은 큰 실수다. 이스라엘은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들의 모든 성읍을 빼았고 거기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왕도는 헤스본이었다. 사실, 이 본문에는 28-30절에 하나의 시가 나오는데, 이것은 과거에 아모리 왕 시혼이 모압을 쳐서 그 땅을 삼켰을 때 한 시인이 그 승리를 찬양한 시이다. 이런 용맹한 왕 시혼을 굴복시키고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편의 아모리 사람들의 땅에 거주하게 된다.
4. 바산 왕 옥과의 전쟁(33-35절)
두번째는 바산 왕 옥이다. 이번에는 외교적 사신을 보내기도 전에 바산 왕 옥이 군대를 거느리고 에드레이로 나와서 싸움을 걸었다. 이것은 이미 아모리 땅을 점령하여 거주하는 중, 그곳에 남아있던 아모리 사람들을 몰아내게 되었는데 이들이 바산으로 올라가면서 바산 왕 옥이 걸어온 전쟁이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전쟁하기 전에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신다(34절).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나가 싸워 바산 왕 옥도 굴복시키고 그 땅을 점령하게 된다. 여기서도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35절). 이것은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말이다.
5. 두 전쟁의 의미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싸워 이긴 전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구약 성경에서 “그가 많은 나라를 치시고 강한 왕들을 죽이셨나니 곧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가나안의 모든 국왕이로다”(시 135:10~11),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8~20). 느헤미야도 이 사건을 회상한다.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느 9:22). 두 전쟁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여기서 승리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을 얻기 시작했다. 이 두 전쟁의 사건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르우벤과 갓 두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강 건너 동편에 기업을 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말한다. 광야에서 죽어야 할 세대가 거의 죽었고 이제 새로운 세대, 2세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기업을 얻게 될 세대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는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승리를 주셨다. 이것은 단지 그들의 전쟁이거나, 그들이 땅이나 부를 얻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임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순종하기만 한다면, 그 승리는 보장될 것이다. 승리의 시리즈가 시작된 것이다. 그들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싸우게 될 모든 전쟁의 서곡이고 예고편이다.
6. 적용
하나님의 백성이 싸우는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과거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여전히 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우리가 싸우는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단지 우리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싸우며 살아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인생이란 탐욕을 만족시키는 아간의 삶이 아니다. 우리는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서, 더 큰 부를 얻기 위해서, 더 많은 소유를 누리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우리의 싸움은 하나님의 전쟁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는 마음의 간구를 안고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꿈이고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쟁을 싸우는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리스도인의 삶의 승리는 이렇게 주어진다. 자기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탐욕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면서 얻는 것은 이스라엘의 1세대가 경험한 호르마에서의 쓰라린 패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