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들
최복선
어머니는 일을 하고 있는 장성한 아들의 주변에서 서성이고 계신다.
시부모님이 서로 살 맞대고 사셨을 때에는 마음으로 느껴지는 추위가 조금은 덜
하였을텐데. 아버님의 빈 자리로 어머님께 찾아 든 시린 가슴은 자식들이 다가가
풀어드려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시아버님은 운명하실 것을 예견이나 하시었는지 어머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집수리를 서두르셨다. 방마다 깨끗하게 도배가 되었고 아궁이의 군불로 까맣게
그을린 천장과 벽의 그을음을 벗겨내어 페인트를 칠하였다. 부엌의 낮은 바닥은
돋우어지고 군불을 지피던 아궁이를 뜯어내 보일러도 설치하였다. 오래 전
쏟아지던 폭우로 방까지 차 오른 빗물에 잠겨 문틀이 맞지 않고 빛까지 바래버린
낡은 장롱도 소나무 위에 학이 여유롭게 쉬고 있는 자개농으로 사들이셨다.
그리고 어디 나들이라도 가시는 양반처럼 세상을 등지고 떠나가셨다.
홀로 되신 어머니가 적적하실 것을 염려하여 아들들이 교대로 찾아 뵙고 집안
이곳, 저곳을 살펴드렸다.
화장실이 마당 끝에 있고 여름에도 밖의 수돗가 외에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아
겨울이 되기 전에 어머님의 생활하시기에 편리하도록 변소도 목욕탕도 집안으로
들이고 주방도 입식으로 바꾸기로 형님내외와 상의를 하였었다. 지금은 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대문안으로 들어서는 현관의 낡은 챙을 뜯어내어 새것으로
교체하는 일을 형제가 하고 있다. 반듯하고 환하게 집의 외향을 만들어 놓은
새생을 바라보면서 만족한 웃음을 형제가 웃고 있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쏟아지는 햇살을 막아보지만 아들의 턱밑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값진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형제를 바라보면 남자도
인간이 가장 아름답게 모습이 더욱 저렇듯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기쁨으로 느껴졌다.
보일 때가 땀을 흘리며 일에 몰입해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
형제이기에 아름답고 부모님을 위해서 흘리는 노동의 땀이기에
아름다우리라.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가을을 찬미하듯 날개 짓한다.
장독대의 크고 작은 항아리에는 자식들에게
담겨져 볕을 받으며 익어가고 있다.
나누어 줄 고추장,된장 등이
멀리 사는 맏형이 찾아와 두 아우의 노고에 고마워하며 매운탕을 끓이느라
분주하다. 마당가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삼형제가 둘러 앉아 얼큰한 매운탕에
소주잔이 오고 가고 한다. 나누어 마신 소주로 형제들의 얼굴엔 붉게 노을이
져가고 어깨 너머로 보이는 야산에 어스름이 찾아들고 있다.
이집 저집 담밖으로 저녁밥을 준비하는 음식냄새가 풀풀 흘러나와 콧속으로
스며든다. 어디에선가 개짖는 소리도 들려온다. 밤이면 쏟아질듯 빛나는
별들이 낮게 드리우고 지천으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가 있는 곳.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아들을 생각하며 아랫목에 밥 한그릇을 이불로 덮어 놓으시는
어머니의 숨결같은 고향은 그리움이다.
언제나 어머니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남편의 형제들. 고향을 떠올리면
어머니가 계시기에 항상 푸근하고 편안하다는 남편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왜그리 아들에 집착하며 낳으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얼마전까지 아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정한수를 떠놓고 백일치성을
드렸었다. 부적을 써서 베개와 침대밑에 넣었고,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말에 입에 침이 괴는 헛헛함까지 참아내었다. 체질개선약도 먹고 아들을 낳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할 수 있는 온갖 정성을 다하였지만 임신초기와 똑같은
두 번의 상상임신으로 몸이 급속히 잦아들었다.
한번도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사람처럼 배부른 임산부를 보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졌다.
잘아는 주변사람들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가 갖지
못한것에 대한 질투와 시기로 생각이 뒤틀려 있곤하였다.
나에게 아들은 절실한 대상이었다.
아들을 낳아 키워서 덕을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 그것이 꼭 아들만 될 수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아들의 어머니가
되어보고 싶었다.
시어머님께서는 아들 샘을 내는 나에게 이 다음에는 딸이 더 좋다며 아들없는
며느리보다 딸이 없는 큰 며느리를 걱정하셨다.
특별히 아픈곳도 없이 허물어지듯 잦은 병치레를 하는 내가 안돼 보였는지
남편은 나이를 들먹이며 그만 포기하고 취미생활하면서 자신을 위해서 살으라고
했다.
팔자에 있다는 아들을 왜 갖지 못하는지 속이 상하고 낳을 수 있을것만 같아
단념하기가 몹시 이 들었었다.
지금은 건강하게 잘 성장해 주는 두 딸을 보면서 아들 탐을 끊어내어 살고
있다.
딸들이 제 할 일 야무지게 처리하면서 멋진 여성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다 할 생각이다.
열 아들 못지 않는 딸들 제 몫을 다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 먼훗날 두 딸이
각자의 길을 찾아 우리의 둥지를 떠나더라도 무엇으로든 자리매김을 하지는
않으리라.
까실까실한 손으로 남편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젖어들었던 시어머님의 눈빛,
마주 잡은 손을 빼지 못하고 등지고 돌아서서야 눈물을 훔쳐내던 남편.
오래전 그 때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첫댓글 딸들이 제 할 일 야무지게 처리하면서 멋진 여성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다 할 생각이다.
열 아들 못지 않는 딸들 제 몫을 다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 먼훗날 두 딸이
각자의 길을 찾아 우리의 둥지를 떠나더라도 무엇으로든 자리매김을 하지는
않으리라.
까실까실한 손으로 남편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젖어들었던 시어머님의 눈빛,
마주 잡은 손을 빼지 못하고 등지고 돌아서서야 눈물을 훔쳐내던 남편.
오래전 그 때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