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호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시 언어의 혁명』(1974)에서 현대시학이 음향을 통해 언어를 통한 에너지 방출에 의해 겉으로 나타나는 그 충동 현상에서 자양분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의도적) 재담(wit)’을 테마로 프로이트를 연구한다. 그녀는 문학의 가장 치밀하게 구성된 형태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형태소로 이 테마를 내세운다. 실제로 프로이트의 책을 보면¸ ‘암시에 의한 재담(才談)’이니¸ ‘해방된 난센스의 즐거움’이니 하는 말을 즐겨 사용한 흔적이 종종 보인다. 프로이트 역시 그의 명저인 『꿈의 해석』은¸ 인간의 무의식과 언어 사이에 나타난 희극성을 심미적 즐거움으로까지 발전시켜 분석하고 있다. 인간이 누리는 재치(才致)란 메커니즘의 단초로 돌발 상황에 의한 공격성 등을 상기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사람에게는 상말이나 폭언을 일삼을 수 없는 사회적 억압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의 자연스런¸ 무의도적인 방출을 재담이라고 프로이트는 명명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자신에게 10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정신분석을 받은 스밀리 블랜톤과의 대화에서 ‘분석(分析)의 규칙’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롭게 내버려두세요. 미리 마음먹은 길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어쩌면 늘 같은 곳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로운 연상’이란 개념은 그의 저서에서 매우 중요한 인식적 요소를 지닌다. 블랜톤의 상담의 큰 의미는 프로이트의 임상 실험을 오늘날의 시점에서 엿보게 하는 큰 즐거움에 있다.
2 . 『프로이트는 요리사였다』의 서평을 시작하기에 앞서 두 문단을 제시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책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인 재담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매우 활달한 자유 연상법을 통한 요리법을 흥미롭게 적용하여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프로이트는 위대한 재담가였다. 마치 환자를 다양하게 치료하는 의사의 임상실험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글쓴이들은 저명한 융학파 계통의 정신분석 학자들이다. 특히 제임스 힐만은 정신분석 방향을 환자 개인에게만 적용하지 않고 집단적 무질서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정신생태학>이란 용어를 창시하기도 한다. 처음 책을 넘기는 이들은 읽기에 부담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 정신분석학자인 그의 다채로운 요리법과 그 전문적인 지식에 우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음식을 통해 심리를 분석하거나 치료하는 의도를 뚜렷이 보인다. 요리가 치료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성적 즐거움에서 일탈한 자들에게 그에 대체할 만한 삶의 원칙인 에로스적 욕구를 자신의 구강 기관에서 찾자는 주제의식이다. 곧 식사(食事)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밥먹듯’이란 용어 ‘식언(食言)’이란 단어를 연상시키면서 성적본능의 구강성¸ 즉 ‘먹는 것’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그 주체는 물론 입이다. 입을 사용하는 성행위도 그래서 유아기적 본능으로 풀이한다. 즉¸ 소아기 후반에 리비도 자원으로부터 나온 성기를 그곳에 다시 넣으려는 구강적 욕구와 관련시키며 청소년기의 비만과 식욕부진도 정신 요리학적 발달이나 부진으로 관찰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강이 성적쾌락의 농밀도가 가장 심하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그것은 오늘날 입과 혀를 이용한 자유분방한 성행위법에서도 쉽사리 읽을 수 있다.) 프로이트는 난해한 정신 분석을 일상의 식사나 요리에서 찾아내어 일반인들에게 보다 쉽게 설명해 주려는 의도가 있어 보이지만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성공한 문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유가 너무 많고 단절된 문장과 구성력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마치 롤랑 바르트의 문장을 읽는 듯한 기분이다. 나아가 가끔씩 돌출하는 생소한 용어들이 독자를 간혹 당혹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프로이트의 분망한 성격의 일단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의외의 소득이라 할 만하다.(프로이트는 문학인의 소질이 다분해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역자의 <후기>에서 이 책에 대해 좀 더 소상한 설명이 없었다는 것인데¸ 아마 이 내용이 거의 많은 부분을 비유(환유)법으로 치환한 듯한 태도에 역자들 또한 저으기 풀이 죽은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을 정독하는 데는 문학적 소양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이해를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실상 난해한 저서에 속한다. 사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각종 요리명이나 요리법이 우리들의 음식문화와 너무나도 생소하고 이질적이며 온통 서양요리(음식)의 등장과 그 음식의 구체성에 대해서 선뜩 와 닿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언어 샐러드¸ 실어증 소스를 곁들인 소 혀 요리¸ 성감대 스콘¸ 타나토스 비프¸ 편집증 파이 등의 소제목이 주는 생경함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아무튼 이런 세부사항에 대해 프로이트나 역자의 보충 설명이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3. 읽기의 또다른 즐거움. 프로이트는 무심히(!) 자신과 관련된 비밀스런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예를 들면¸ 루 살로메에 대한 자신의 심경고백이다. 프로이트는 살로메를 유일하게 사랑한 여성이라고 고백하고 있으나 그 이유가 굳이 성적매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심경의 진실성 유무를 따질 수는 없지만¸ ‘그녀의 훌륭한 요리 솜씨에 있었다’는 것이 사랑의 이유이다. 이어서 그는 ‘우리는 많은 요리법을 교환했다. 그녀의 사진을 보라. 진짜 그녀는 <식욕 그 자체인 아줌마>이다. 풍만한 엉덩이를 가진 잘 포장된 미인이며¸ 무엇을 먹어야 할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고 증언하면서¸ 루에게 있어 삶의 의욕은 식생활에 있었다는 사실을 프로이트는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 아내 마르타와의 만남의 가교 역할을 한 촉발제가 음식이라는 점도 꽤나 흥미롭고 시사적이다. 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식탁을 멋지게 장식하고 음식도 정성껏 마련한다. 한번은 그녀가 식탁에서 사과를 멋있게 깎던 모습이 영원한 이미지로 자리했다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음식 문화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은 대단한 것 같다. 이쯤에서는 누구나 자기 아내를 만났을 때¸ 음식을 먹을 때나 독특한 식탁 주변을 유쾌한 기분으로 떠올릴 수도 있겠다. 끝으로¸ 프로이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책의 출간 이유를 대변한다. “그렇지만 맛있는 요리¸ 내일의 메뉴¸ 또 한번 소망이 충족될 가능성이 있는 것. 그것은 긴 생애를 잘 살게 해준 근원이자 늘 만족을 제공해 준 것이다.” 그에 의하면 자신에게 맛있는 요리는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나도 나 자신을 임상실험적 대상으로 삼아 이렇게 증언하고자 한다.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은 식탁에 있다고.
■김 강 태 -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제7회 「한국문학 신인상」 등단. - 시집:『등뼈를 위한 변명』¸ 『비밀번호』¸ 『숨은 꽃』¸ 『혼자 흔들리는 그네』 등. - 문집:『신경림 詩의 신서정성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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