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형이 돌아가신 날 누나가
'세근아"
"예 누나"
"너 용인 큰 집에 좀 다녀오너라"
고 하십니다.
"예"
나는 버스터미널로가서 용인 이동면으로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내가 오후 늦게 돌아가신 매형의 형님집에 이르자 큰매형인 할아버지와 부인할머니와 아직 시집가지 않는 큰 딸이 나를 반깁니다
이 큰 매형은 아주 훌륭하신 선비같은 분이시기에 이곳 이동면 사람들이 존경을 하고 그를 길에서 만나면 모두 겸손하게 예를 갖춥니다.
그들은 내가 갑자기나타난 것에 대하여
`왜 왔느냐?`
`쫒겨났느냐?`
`도망쳤느냐?`
물어볼 수도 있을 테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모두 몸에 밴사람들이기에 전혀 그런 질문은 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이야기 하기를 바라는것 같습니다.
"모두 잘 계시냐?"
"예 잘 계십니다."
저녁을 우리 4사람이 함께 겸상을 하는데 양반집에서는 대부분 어르신이 먼저 하십니다.
나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참느라고 애를 먹습니다.
가까스로 저녁을 다 먹고 밥상이 치워지고 모두 내 입을 가만히 쳐다 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누나, 놀라지 마셔요"
"........................"
"매형이 돌아가셨어요"
그러자 모두 굳어버린듯이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이 떨어졌으니 놀랄만도 합니다.
한참있다가 할아버지가 진정하며 가만이 묻습니다.
"동호가 죽었단 말이냐?"
"예"
그러자 할아버지가
"어허허허허 이 무슨 청천하늘에 날벼락이냐 어허허허......"....."
목이 메이는 소리가 터져나오고 통곡을 하기 시작하는데 온 식구가 다 웁니다.나도 눈물을 쏟으며 울었습니다.
그날 밤
새벽이 올때까지도 매형의 통곡 소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나는 큰 매형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돌아가신 매형은 경전병원의 옥상 시체실레 모셔져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영안실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시체실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큰 매형을 모시고 시체실로 들어갔습니다.
넓은 방에는 매형의 시신이 하얀 홋이불로 덮혀져 있습니다.
큰 매형이 다가가서 홋이불을 벗깁니다.
거기에 그토록 사랑하는 동생이 차디차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시더니 동생의 뺨을 자꾸만 만지십니다.
"이놈아, 나 보다 네가 먼저가면 난 어쩌란 말이야 어허허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큰매형의 울음소리가 오랫동안 울려퍼집니다.
다음날 성당에서 장레미사를 치루고 트럭에 매형과 우리들 모두가 타고 잠실 공동묘지로 갑니다.
그렇게 나의 짧은 서울 생활이 끝이 납니다.
누나 식구들은 다시 용인으로 내려갔고
나는 청주 도립병원에서 일 하는 작은 형에게로 갔습니다.
(계속)
첫댓글 매형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르신도 다시 고생이 시작되는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이란 만족이 없지요.다시 시골로 내려가셨으니
걱정이 됩니다.수고 하셨습니다.
어서오세요 푸른잔디님이 보시기에도 담담하시지요?
충북 청주시는 인구 6만의 큰 도시입니다. 하하하
매형의 사망으로 더큰 아픔을 체험하시게 되는군요.
서울을 떠나서 다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군요.
시련은 우리주변에서 항상 맴돌고 있나봅니다. 힘내세요
아유 스잔님 제 마음이 아직도 이렇게 아픈것은 매형이 나를 아들처럼 사랑해 주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