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3:7-11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내용분해 : A. 이스라엘의 범죄와 메소포타미아 왕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 (7-8절)
1.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고
가나안의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악을 행함 (7절)
2.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심 (8a절)
3.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김 (8b절)
B. 이스라엘 자손들의 구원 호소와 초대 사사 옷니엘의 활약(9-10절)
1. 메소포타미아 왕의 압제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구원을 호소함 (9a절)
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초대 사사로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을 세우심 (9b절)
3. 여호와의 신이 옷니엘에게 임하므로 그가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과 싸워서 이김(10절)
C.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이스라엘의 초대 사사 옷나엘이 죽음 (11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며, 우리의 기쁨이 되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제 오늘도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 다함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사기 3:7-11절 말씀으로 메소포타미아 왕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한 초대 사사 옷니엘의 활약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 문단은 3:7- 16:31절까지의 이스라엘의 지역별 사사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본론 가운데서도, 남부 사사에 대한 기록인 3:7- 31절 부분의 첫문단으로서, 이스라엘의 초대 사사 옷니엘의 활약에 관한 기록입니다. 사사기 본론은 ‘범죄(Sin) → 징계(Chastisement) →회개(Repentance) →구원(Deli verance) →망각(Foregetting) → 재 범죄(Sin Again)’ 라고 하는 순환이 여섯 차례 반복되어 지는데, 본문은 여섯 차례 반복 죄는 타락과 구원의 순환사(備環史)의 첫번째 주기로서, 이후 다섯 차례의 순환 과정의 한 전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가나안 신들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배교(背敎)의 죄를 범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으며, 이스라엘을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셔서, 8년 동안 압제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본문의 메소포타미아는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본 영토가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북부와 동부의 시리아, 즉 가나안 땅의 북부 지역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옷니엘은 가나안의 남방인 유다에 살고 있었으므로 메 소포타미아와 그의 거주지는 거리상 상당히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옷니엘이 사사로 나서게 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이스라엘에 대한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미쳤던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죽음 이후 아직 한 세대도 채 지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정복자의 입장에서 피정복자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8년 간의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하에 신음하던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구원을 호소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하시기 위해 옷니엘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옷니엘은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용맹을 떨쳤던 갈렙 (Caleb) 의 조카로서, 이미 유다 남방의 성읍 드빌을 정복하여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1:13). 옷니엘 (Othniel) 은 이스라엘 최초의 사사이면서 다음과 같은 면에서 사사의 직책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전형 (example)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자 였습니다. 옷니엘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을 구할 자로 세우셨기 때문이며 (3:9), 사사는 스스로의 능력이 출중해서 사사로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에 의해 세움을 입은 자라야 했습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통치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사 직분의 기원이 오직 하나님께로서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성직(聖職)을 소원하는 모든 자들이 먼저 ‘신적 소명 (divine calling)’ 을 확인해야 한다는 원리를 시사해 줍니다.
둘째, 사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는 자였습니다. 10절을 보면 여호와의 신이 옷니엘에게 임하셨으므로, 옷니엘이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성령이 임하셨다”는 표현은 옷니엘 뿐 아니라 사사로서의 활약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 되어 있는 기드온 (6:34), 입다 (11:29), 삼손(13:23) 의 경우에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사사의 직임을 수행함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의 성령만이 사사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구속사의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사사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였다는 것은, 비단 사사직 뿐 아니라 선지자, 왕, 제사장 등 하나님에 의해서 세움을 입는 직분에 모두 공통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 왕, 제사장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여호와의 성령의 임재의 의식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사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재하였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참된 왕, 선지자, 제사장이시며 영원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기름부음을 예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께서 메시야의 공적 직임을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신 것과, 광야 시험 후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메시야 직무를 시작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수행하는 것은 철저히 성령의 능력과 주도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복음 사역에 종사하고 있는 일꾼들은 자신들의 사역 속에서 무엇보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도록 기도하고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1:1-3:6 은 본서 전체의 배경을 설명하는 서론부에 해당합니다. 그에 이어지는 3:7- 16:31 은 본서의 본론부로서 사사 시대의 범죄의 악순환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각 지파의 구원자로 등장한 사사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연대기적 순서에 따른 것은 아니며, 각 지역 순서를 우선으로 하여, 그 지역 내에서 시간적 순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3:7- 31에서는 남부 지역 사사들의 행적을 중심 으로 한 이스라엘의 범죄의 악순환과 하나님 의 구원 사역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남부 지역 사사들의 행적을 중 심으로 기록하고 있는 3:7- 31의 전반부로,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통한, 8년간의 징계와 이스라엘 초대 사사인 옷니엘을 통한 구원을 소 개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한 이스라엘을 메소포타미아의 왕 구산 리사다임에게 붙이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8년 동안을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 아래서 신음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갈렙의 조카이자 사위로 드빌 정복에 공을 세운 바 있는, 옷니엘을 이스라엘의 초대 사사로 세워,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이후 40년 동안 평안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사사기 전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상을 기록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2:11 ; 3:12 ; 4:1). 그렇다면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보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신들을 섬길 때, 공공 장소는 물론이고, 산의 깊은 곳이나, 신전의 내실에서도 제사와 같은 종교 행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도 설마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의 목전’ 곧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성경 기자의 표현이 과장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유다 왕국 말기 이스라엘의 장로 칠십인은 하나님의 성전 가운데 우상의 신전을 따로 지어놓고, 어두운 곳에서 제사를 지내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신다”고 말했습니다(겔 8:1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것을 보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를 선지자 에스겔에게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므로 하나님이 안 계신다거나, 하나님이 계셔도 은밀한 곳에서 일어난 일은 볼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유한한 인간의 제한된 사고에서 나온 어리석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귀와 눈은 누가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귀를 지으신 자가 어찌 듣지 않겠으며, 눈을 지으신 자가 어찌 보시지 않겠습니까(시 94:9) ?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전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초월자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아실 수 있습니다. 옛날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다시스행 배를 타, 그 배 밑층까지 내려갔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곳에도 계셨으며 심지어 그가 깊은 바다 속에 잠길 때에도 여전히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욘1:3-17).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실로 우리가 하나님의 낯을 피할 다시스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앉고 일어섬과 우리가 행하는 선악간의 모든 일을 은밀하게, 그러나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공과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장차 임하실 주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