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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 길어요 읽기 부담 스러우실 지도 몰라요.
이건 우리반 학급 문집에 실었던 글이랍니다.
아름다웠던 금강산의 기억
청소년들의 북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운 좋게 뽑혀 금강산에 가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 말로만 듣던 북한을 직접 가 볼 수 있다니. 그 생각에 많이 설레었다. 금강산에 가려면 마침 겨울이기 때문에 따뜻한 방한복이 필요하고 아이젠과 스틱(지팡이)같은 등산 도구도 필요했다. 며칠 전에 그런 준비물들을 미리 준비해 두고 선생님들께도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 드렸다. 기념품을 사오라는 친구들의 요청 몇 가지를 수첩에 적어두고 출발일자를 기다리며 며칠이 지나갔다.
첫 번째 날
드디어 1월 21일 월요일 출발일이 되었다. 아침 6시 30분에 출발이라기에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버스는 전주학생들을 한번 태우고 익산에서 또다시 태우고 가는 모양이었다. 6시 30분되기 10분쯤 전일까 익산 보석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다. 버스는 좀 늦는지 도착 예정시간이 좀 지나서 도착했다. 부모님의 잘 다녀오라는 말씀을 뒤로 하고 1호차 버스에 올랐다. 기본적으로 인원은 전라북도의 각 학교마다 약 1~2명씩 인 듯 했고 우리학교에서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이 갔다. 우리학교에서 함께 가는 애가 잘 모르는 애여서 아쉬웠다. 그 애와 난 출발부터 차가 갈렸다 난 1호차 그 애는 2호차 사실 가기 전에 여학생들도 많이 간다기에 기대를 많이 했었다. 무슨 기대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도통 모르겠다. 후훗
차에 오르니 이미 전주에서 먼저 탄 아이들이 있었고 어디 앉을까 고민하던 중 창 쪽과 통로 쪽 모두 비어있는 자리가 있기에 냉큼 창 쪽에 앉았다. 누군가의 옆에 내가 가서 앉기엔 뭐랄까 쑥스럽기도 해서 그랬다. 사실, 여자애와 같이 앉고 싶었으나 그럴 용기가 안 나고 그렇다고 남자애 옆에 앉기는 또 싫었다. 하하... 어쨌든 그렇게 창 쪽에 앉아 창밖 부모님께 손을 흔들던 사이 옆에 한명이 앉았다. 탁보니 남자애라서 약간 실망을 하고 모르는 애라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있었다. 출발, 아침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차안 사람들은 대부분 잤다. 물론 서로 잘 모르는 것도 한 이유인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휴게소를 한둘 지나고 옆자리 아이와 말을 트기 시작했다. 서로 동갑이었는데 이름은 이유로다. 이리공고를 다니는 친구 솔직히 금강산에 가는 게 싫었단다. 상당히 쾌활한 성격 서로 재밌게 이야기하며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은 아주 길었다. 일정표를 보니 금강산에 도착할 때쯤이면 거의 9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 사이에 버스는 눈이 엄청 내린 강원도로 들어섰다. 강원도 간성에서 군복무중인 우리 형이 생각났다. 그런데 마침 버스가 간성시내를 지나치는 것이었다. 눈 치우느라 고생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형이 있는 부대가 있을까 창밖을 유심히 봤다 그랬더니 어느 군부대 하나가 보이기에 사진으로 한번 찍어뒀다. 나중에 형에게 맞는지 물어봐야지. 형이 근무서고 있을 산 어딘가를 향해 한번 바라봤다. 버스는 어느 덧 민통선을 통과하려 했다. 군인 하나가 올라와 사람숫자를 확인한 후 충성! 경례를 하고 내려갔다. 이후 남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서 소지품에 대한 확인과 본인 확인 을 하고 북측 버스에 갈아탔다. 물론 현대아산이 남쪽에서 가져간 버스이지만 말이다. 버스에 올라타 이동하면서 관광 조장에게 설명을 들었다. 남한 북한이라는 표현은 싫어하기 때문에 남측 북측, 또는 남쪽 북쪽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한다. 버스기사 아저씨도 아마 북쪽 사람인 것 같았다. 남쪽 인이 지키는 마지막 지역, 군인 형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 버스는 동해안을 따라 올라갔다. 도로 옆엔 기차 길도 하나 있었다. 북부 동부선이라고 하던 가 관광 조장의 말에 따르면 현재 선로는 연결이 다 되었고 나중에 언젠가는 기차를 타고 금강산 관광을 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오른 쪽 동해바다는 해금강이라고 한다. 바다 해 자를 써서 금강산이 바다까지 이어져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파도치는 모습이 강렬했다. 중간에 군사 분계선 말뚝도 보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남과 북을 갈라 놓았던 말뚝이었다. 남쪽 군인이 있던 곳에서 1분정도 갔을까 아주 가까운 거리에 북쪽 군인들이 있었다. 이쪽은 대조적으로 군인들의 표정은 경직 되어있었고 AK소총에 대검을 착검한 채 총을 앞으로 즉 우리 버스가 지나가는 쪽을 향하여 두고 있었다. 남과 북사이의 거리는 불과 1.7Km 너무도 가까웠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이렇게 지척이라니 남과 북이? 비로소 내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남과 북의 거리감을 실감했다. 그랬다. 내가 생각해왔던 남과 북은 멀리 떨어져있었던 것이다. 실제론 이렇게 가까운데 어째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군인이 있던 곳을 지나 북쪽 출입 사무소에 도착했다. 그 곳에선 남쪽에서도 익숙했던 ‘반갑습니다’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오가는 북쪽 군인들, 아까 관광조장의 말로는 북쪽 군인 앞에서는 절대 장난치면 안 된다고 했다. 북쪽에선 선군정치라나 뭐라나 는 것 때문에 군인을 최우대 한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북쪽 군인들은 우리에게 반말을 썼다 남쪽군인들이 일반인들에게 대하는 것에 비하면 대조적이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 남쪽 사람들에게만 그럴 지도 모른다. ‘북쪽의 인민들은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어 가는데 남쪽의 동포라는 사람들이 띵가띵가 관광이나 온다니’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만도 했다. 그러나 일단 표면상으론 ‘반갑습니다’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CIQ(출입사무소)는 나름대로 열렬한 환영이었다. 눈은 펑펑 내리고 있었고 특이하게 눈이 더 성긴지 톡톡 소리 내며 옷 위에 떨어졌다. 남쪽에선 소지품 검사라든지 얼굴 확인을 군인들이 하진 않았는데 북쪽에선 군인들이 했다. 별 문제는 없었지만. 뭐랄까, 역시 남쪽과는 사뭇 달랐다. 그렇지만 일단 내가 그 때 들었던 생각은 일단, ‘뭐 북쪽군인들이라고 별로 다른 건 없네’ 였다. 정말로 그들에게 딱히 이질감이라든지 그런 위화감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냥 동네 어딘가에서 만날 것 같은 얼굴들, 역시 같은 민족이라 그런가?
이쪽에선 라디오, 핸드폰 등 통신장비는 엄금한다. mp3는 괜찮지만 핸드폰은 가져가면 안 되고 PMP도 네비게이션 기능이 포함된 것은 가져갈 수 없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또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 이름은 이창훈, 익산고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 동창이며 친한 친구인 최혜성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애 친구였다. 말 그대로 친구의 친구였고 곧 편하게 말을 했다. 특이하게도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왜냐고 물어보니 학교 선생님한테 속았단다. 거참, “풉”하고 웃음이 나왔다. 북쪽 출입사무소를 통과하고 버스를 타고 갔다 가다보니 김일성인지 김정일인지 모를 사람의 커다란 사진이 붙어있는 건물을 지났다. 도로 옆으론 마을도 있었고 중간 중간 지나가는 북쪽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남쪽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지나가면 구경 할만도 하지만 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마 그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겠지. 도로 바깥쪽엔 철책이 있었는데 그 바깥쪽은 북쪽사람들이 다니고 안쪽 길은 남쪽사람들이 출입할 때 쓰는 길이라고 한다. 그렇게 한동안 버스를 타고 얼마 쯤 가며 금강산의 남쪽 봉우리들을 감상했다. 작은 봉우리들이 참 많았는데 그런 작은 언덕 같은 봉우리들 까지 모두 모여서 1만 2천 봉우리를 이룬다고 한다. 그걸 누가 다 세어봤는지 참 할 일도 없는 사람인가 보다. 그렇게 한동안 가다보니 온정각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금강산 관광의 본부정도 되는 곳인 모양이다. 금강산 기념품과, 외국제품들을 살 수 있는 면세점이 있었고 여러 식당들도 있었다. 농협에서 환전할 수 있게 농협 지점이 있었다. 온정각을 지나치고 먼저 숙소에 짐을 놓기로 했다 이미 시간은 5~6시가 되어 어둑어둑 해지려 하고 있었다. 숙소는 금강산 바로 앞의 장전항가에 있는 패밀리 비치호텔과 무슨 펜션타운이었다. 이른바 펜션은 관광조장들이 소위 통나무집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펜션타운에서 자게 되었다. 먼저 패밀리 비치호텔에 한번 버스가 서서 호텔에서 잘 사람들이 내리고 다음에 펜션으로 가서 그곳에서 잘 사람들을 내렸다. 패밀리 비치호텔은 잠깐 가봤는데 꽤 멋들어져 보였다. 북측사람들로 보이는 호텔 직원들, 깔끔한 실내 나중에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호텔은 한방이 2층으로 되어 있고 그 방에서 3명이 자고 침대도 모두 있고 TV도 두 개씩 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에 비해서 펜션은 꽤나 열악했다. 거의 우리학교 기숙사를 방불케 했는데, 3~4명 정도가 쓰게 되어 있어 보이는 크기에 7명 정도가 자야 했고 침대는 없었고 TV는 하나 수건과, 뭐 이것저것 완비라고 했는데 실상은 수건은 겨우 4개 뿐 비누는 쓰다 남은 것이었고 찬장엔 달랑 컵들 뿐 이었다. 냉장고엔 물통하나만 있을 뿐이었고 그나마 물도 맛이 이상했다. 같이 자게 된 아이들은 죄다 불평했다. 그러나 일단 짐만 두고 모두들 나왔다 바로 식사하러 가게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온정각으로 이동했다. 온정각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커다란 광장이다. 온정각은 서관과 동관으로 나누어져 있고 가운데에 돔 형태의 문화회관이 있다. 동관과 서관에는 각각 여러개의 식당과 환전만이 가능한 농협, 면세점등이 이 있었고 옆엔 금강산 병원이 있었다. 우리는 온정각 동관에 있는 백세주라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바로 남쪽의 술 이름인 그 백세주다 그렇지만 일단 밥은 김치찌개 같은 묵은 김치 찜이었고 술도 나오지 않았다. 그 식당의 직원들은 전부 북쪽 사람들 인 듯 했는데 여직원들이 모두들 키가 작고 아담한 체형이라 상당히 귀여웠다. 므흣... 아무래도 북쪽사람들은 잘 먹지 못해서 키가 작은 건가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밥맛은 괜찮았고 그세 사귄 친구들과 함께 잘 먹었다. 한 가지 그 직원들이 밥먹을 때 옆에 우두커니 서서 빤히 보고 있다는 점이 좀 불편했지만 뭐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개의치 않고 식사했다. 식사 후 시간이 약 40분 정도 남았는데 뭐할까 하면서 돌아다녔는데 정말 눈이 엄청나게 많았다. 전라도에 살다보니 그렇게 많은 눈을 정말 처음인 것 같다. 발이 거의 20~30센티가 싸이는데 그곳이 차도 자주 지나고 사람도 자주 지나는 온정각 이라는 걸 감안 하면 정말 징그럽게 눈이 많다. 그런데 갑자기 창훈이 녀석이 눈을 던지는 게 아닌가? “오호! 갑자기 기습이라 이거지!” 라고 외치며 나도 바로 눈을 던지며 응전했다. 그렇게 서로 눈싸움을 한창 하다가 창훈이가 눈을 엄청 뭉치기에 온정각 동관으로 재빨리 피신 했다.아까 밥을 먹고 난 후 백세주(식당)가까이에 농협 환전소가 있어서 환전하려고 했었는데 마침 숙소에 지갑을 놓고 와서 못했다. 결국 창훈이를 피해 면세점으로 도망오긴 했지만 그냥 눈으로 구경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면세점은 조금 특이한 게 난 북쪽상품이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실상은 거의 70%이상은 외국상품 또는 남한 상품이었고 심지어 지난 수학여행 때 샀었던 제주감귤초콜릿까지 있었다. 거참.. 황당 그 자체였다. 그런데 특이하게 그것들 위엔 금강산 관광기념 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으니 황당함을 한층 더해줬다. 나이키, 노스페이스 같은 메이커, 로렉스 시계, 여러 보석 반지, 목걸이까지. 전혀 북쪽과는 상관없는 상품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북쪽 상품은 따로 있었다. 여러 건강 식품이라고 하는 것들, 담배, 술, 과자, 등등 뭐랄까 신기하기도 했고 재밌어보였다. 약간 남쪽의 옛날 물건들 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와서 창훈이가 벼르고 벼르던 내 몸통보다 큰 눈덩어리 세례를 맞고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묵게 된 사람들은 모두들 고등학생이었는데 총 7명이었다. 한명은 89년생 또 한명은 91년생 나머지는 모두 90년생이었다. 익산고 여산고 이리공고 기계공고 남성고 그리고 과학고... 헉 과학고.... 이찬힘이라는 친구 였는데 나랑 같은 반 친구인 다훈이랑 친구라고 한다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들 나와 친구를 공유하고 있는 친구의 친구였다. 숙소인 펜션은 큰방과 작은방 그리고 화장실로 이루어졌는데 난 일찌감치 작은 방을 차지하곤 책 펴고 공부 했다. 모두들 별로 친하지도 않고 해서 어색한 것도 그렇고 이제 3학년이라고 생각하니 금강산에 있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렇게 책펴고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보니 착훈이 녀석이 보곤 89년생 광태형에게 “형 인호 좀 때려요. 공부하고 있어요.” 했고 광태형은 “뭐!!? 헉 으아 진짜 심하다 심해. 너 남성고라고 그랬지? ... 그래 이해한다....” 했다....
남성고라서 이해한다.... 남성고가 어떻길래? 나도 좀 알 것 같기도 했지만 애써 그런 생각을 물리쳤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하려하는데 1시간도 안돼서 실증이 나버렸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모두들 프로레슬링을 보고 있었다. TV는 KBS, MBC SBS정도 나오는 것 같았고 나머지 채널은 프로레슬링 말곤 볼게 없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 프로레슬링..... 얼마안가 모두들 잤다. 시간은 9시 정도 됬을까 금강산 까지 놀러와서 이렇게 일찍들 자다니 뭔가 아쉽지만 나도 졸리고 하기에 잠자려 했다. 옆에 91년생 서연이는 MP3에 애니메이션 ‘최종병기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킁. 나도 보고싶었다. 심심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친하지도 않은데 같이 보자고 하기도 뭐하고 그러는 차에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야 우리 방으로 놀러와!”
어떤 여자 소리였다.
“어떻게 남자가 여자방에 놀러가냐?”
어떤 남자 소리였다.
“...........”
이후 정적, ‘우씨.... 재밌겟다.’ 난 심심했다. 그렇게 첫날밤이 지나갔다.
두 번째 날
아침 6시 쯤 되었을까
“학쉥두레게 말숭 드림뉘다아~.%^@E%^@^%^&*(#U()&%#."????
갑자기 정말 우리 기숙사가 생각나는 방송이 들렸다. 그렇지만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듣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북쪽 사람이 남쪽 말투로 말하려니 그런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어쨌든 밥 먹으러 나오라는 말인 것 같았다. 전날 관광조장 누나? 가 아침에 버스가 태우러 갈테니 말 해준 시간까지 나오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오늘은 산을 탄다기에 아이젠과 스틱 등을 준비하고 나왔다. 아침식사는 패밀리 비치호텔에 있는 풍악이라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부폐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북쪽 재료들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일단 음식은 남쪽요리 방식이었다. 밥이 일단 좀 눈에 띄는 게 밥알이 약간 남쪽보다 작았다 잘잘하다고 말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밥은 나름대로 맛있었다. 식사 후 나와서 호텔 앞의 장전항의 절경을 사진으로 찍었다. 장전항은 마치처럼 휘어진 모양으로 바다가 육지로 들어온 만이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활에 화살을 장전해 당긴 것 같다고 해서 장전항이라고 한다. 바다와 금강산과 그 위를 덮은 눈이 연출한 그 풍경은 정말 멋있다. 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사진으로 좀 담고. 온정각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엔 사진을 절대로 찍어선 안된다. 찍으면 잡혀간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온정각으로 이동 온정각에 있는 문화회관에서 한 시간 정도 통일교육이라는 것을 받았다. 경희대 교수라는 분이 나오셔서 교육을 하셨는데 “우리 만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남과 북은 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통일교육이 끝나고 모두들 구룡연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구룡연 은 호수 이름이고 구룡폭포라는 폭포가 따로 있다. 일단 우리는 구룡폭포 까지 가도록 되어 있고 그 구룡폭포 위쪽이 구룡연이라고 한다. 눈은 펑펑 내리는데 그 눈이 내려 쌓이는 설봉산을 올라갔다. 꽤나 분위기가 멋졌다 멋진 산의 풍경과 정말 끝없이 펑펑 내리는 눈. 준비해간 아이젠을 신발 바닥에 차고 올라갔다. 정말 그 산의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여러 사진을 찍었다. 아, 금강산은 계절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봄의 금강산 여름의 봉래산 가을의 풍악산 겨울의 개골산. 그리고 한 가지 더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았을 때 개골산이지만 눈이 내린 금강산은 바로 설봉산이다. 난 설봉산에 올라간 것이다. 눈이 많이 쌓였기 때문에 미끄러지기 쉬웠다. 그래서 아이젠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아이젠이 있어도 힘들긴 엄청 힘들었다. 올라갈 땐 괜찮았지만 내려올 땐 아이젠이 벗겨져서 여러번 넘어졌는데 엄청 X팔렸었다. 일단 그 이야기는 좀 있다가 하고, 먼저 올라가다보면 눈에 띄는 건 목란관이라는 음식점인데 바로 등산로 초입에 있어서 산경치를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여러 번의 다리도 있어서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왔다 갔다 한다. 중간에 간간히 김일성, 김정일 등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비석이라든지 바위에 새겨놓은 글귀들이 보인다. 산을 훼손시켜 놓은 것 같아 일면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쪽 사람들에겐 나름대로 중요한 것일 테니 그랬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흥미롭기도 해서 보이는 족족 사진을 찍어 두었다. 가다 보니 금강문 이라고 씌어있는 바위가 있었다. 옆으로 바위 두 개가 서로 비스듬히 걸쳐 있어 마치 문과 같이 되어 있었다. 그 금강문을 지나올라갈수록 점점 풍경은 절경이 되어가서 난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래서 넘어질 뻔 했던 것도 여러 번이었다. 눈과 눈 사이로 들어난 바위와 암벽들, 그 기암 괴석들, 얼어붙은 계곡, 흐르는 물 와~ 그러다 갑자기 드러난 비봉폭포! 흐르던 폭포수가 얼어 붙어 버린 폭포는 아 어쩌면 저럴 수 있을 까 싶게 얼어붙어 있었다. 어떻게 떨어지던 물줄기가 얼어붙을까? 그게 어찌 됐든 멋졌다. 그리고 비봉폭포를 지나 계속 올라가다보니 관폭정이라는 곳이 나왔다. 바로 구룡폭포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었다. 관폭정에 올라가 보니 과연 구룡폭포도 그렇게 얼어붙어 절경을 이뤘다. 그 폭포를 배경으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또 독사진도 몇 장 찍고 친구들도 몇 장 찍어줬다. 그리곤 다시 내려오는데 너무 미끄러워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내려갈 때 사진을 찍으면서 내려가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가다가 뒤로 돌아서 뒤쪽 풍경을 찍자 뒤에서 오던 여자 둘이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야 풍경 찍는 척 하면서 너 찍는다.”
황당‘.......미친....’
이라고 나는 생각 했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뒤 돌아 보지 않고 말했다.
“아니거든요?”
맘같아선
‘미췬 착각 즐쳐드셈凸!!’ 해주고 싶었으나
일단 좋은 말로 그렇게 말했으나 그 쪽 반응은 짜증났다
“뭐? 뭐라고 야 뭐?”
아씨... 뒤돌아서 다시 말해주기도 뭐하고 아무튼 짜증나서 막 내려갔다 그렇게 나도 짜증나서 눈에 보이지 않다보니 넘어지기도 쉬웠다 보다 아까 그 여자들 앞에서 3번이나 넘어졌다 마침 아이젠이 벗겨저서 다시 신기도 귀찮고 해서 막 갔는데 그러다보니 더 쉽게 넘어졌다. 아.. 정말 넘 X팔렸다. 하필 그 미친 여자들 앞에서 그 여자들은 열심히, 매우 열심히 키키키키킥! 거리면서 웃었고 마침내 날 지나쳐 가며
"천천히 오세요~ㅎㅎ"
해버렸다. 아 젠장....
그렇게 넘어져서 고생 창피해서 고생 쌍으로 고생하고 힘들게 내려왔더니 함께 올라갔다가 중간에 떨어졌던 친구들도 죽을 뻔 했다고 아이젠 안 신어서 엄청 위험했다고 했다.
다행히 그래도 모두들 살아서 금강산에 있는 온천으로 향했다 중간에 보기로 했던 신계사라는 절이 있었지만 너무 차가 많아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는 상태였고 힘든 산행으로 지쳤던 우리는 “바로 온천으로 고고!”를 외쳤다. 아 금강산온천에 가기 전에 우린 그 이산가족 상봉할 때 TV에서 자주 나오는 금강산 호텔에서 밥을 먹었다. 오우! 정말 난 호텔이란 곳엔 수학여행 갈 때 가봤던 에메랄드 호텔 말고는 첨이었는데 정말 엄청 고급스러웠다! 역시 에메랄드 호텔이랑은 비교가 안 됐다!! 멋들어진 샹들리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마저 멋진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예술작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양쪽에 서서 인사하는 북쪽직원 누나!! 친절하더라! 역시 귀엽더라! 북쪽여자를 예쁘다고 할 순 없다 아무래도 성형수술이 너무나 보편화되어 미인이 많은 남쪽하고 비교하면 아무래도 아니다. 하지만 순수해 보이고 작은 키와 체구, 얼굴에서 나오는 귀여움은 확실했다. 금강산 호텔에서 먹은 밥은 북쪽 음식 이었는데 조미료를 적게 써서 담백하고 맛있었다. 식사 후 온천으로 이동 했다.
아 금강산온천은 정말 끝내줬다. 물도 참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눈 내리는 노천 온천 정말 최고였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눈을 맞으며 온천을 했다. 아 정말 분위기 최고! 따듯한 물인 줄 알고 들어간 냉탕도 뭐 춥긴 했지만 괜찮았고 노천온천 벽 반대편은 여탕일거야!! 라고 외치는 친구 녀석도 재밌었고 노천 온천에 쌓인 눈으로 눈싸움 한 것도 재밌었고 가위바위보해서 지는 사람 눈 위에서 구르기도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옥돌보행탕(옥돌을 깔아놓고 그 위를 걸어 다니도록 만들어 놓은 탕)에 서 놀았던 것도 재밌었다. 온천 후 나와서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교예를 관람했다. 우리말로 하면 서커스인데 북쪽에선 교예라고 해서 예술로 취급한다고 했다. 예전에 수학여행 때 봤던 중국 서커스단보다 훨씬 잘하고 대단했다. 저런 수준의 묘기를 선보이려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정말 상상이 되질 않을 정도였다. 교예가 끝난 후 어제 밥을 먹었던 식당 백세주 옆의 광개토라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번엔 불고기가 나왔다 북쪽 재료로 만들었다지만 아무래도 남쪽 요리라 친숙했다. 그래도 뭔가 다르달까 북쪽 재료라는 생각을 하고 먹었더니 뭔가 느낌이 달랐다. 맛있었다. 이후 또다시 통일교육 한 시간을 받았다. 금강산 관광을 하는 현대아산의 총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를 했다 그 중에 상당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이 금강산 관광을 10년 동안 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에 금강산 관광을 시작했을 때 북쪽 사람들은 이일에 비협조적이었다고 한다. 남쪽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까 의심하고 경계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처음에 금강산 관광에 쓰려고 버스를 70대를 가져갔는데 북쪽 사람들이 “남쪽에 있는 버스를 다 가져 왔습네까?” 했단다. 남쪽에서 사람들이 관광을 오면 “이번엔 어디에서 동원했습네까? 광주에서 동원했습네까? 서울에서 동원했습네까?”하면서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기가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동원 했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 그러다 10년 동안을 하니 이제 서로를 점점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남쪽사람들이 잘살고 그 돈을 쓰려고 온다는 것을 ale게 되었고 이 사람들이 자신들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번에 남쪽사람이 산에 올라가다 계곡물에 빠졌을 때도 남쪽가이드나 남쪽 사람이 먼저 달려가 구한 게 아니라 북쪽 사람들이 먼저 달려가서 구했다고 한다. 그전엔 비협조적이 었던 사람들이 이젠 뭐 도와줄 것 없냐고 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뭔가 희망, 그런 것을 느꼈다. 아 정말 이렇게 하다보면 통일이라는 게 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믿지 못했던 남과 북이 서로를 점점 믿는 다면 정말 통일이 꿈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이야기는 그 뿐 아니라 내 인생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서로를 믿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서로를 대하면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것 큰 교훈이었다. 통일 교육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 숙소가 싫증난 89년생 광태형과 친구 창훈이가 비치호텔에 있는 동생방에 가서 잔다고 갔다. 그래서 우린 5명이서 자게 되어서 나름대로 자리는 넉넉했다. 과자라든지 음료수 사다가 함께 먹기로 했다. 금강산까지 놀러와서 그냥 자고 가긴 아깝지 않은가 라는 나의 적극적 주장과 함께 였다. 매점은 패밀리 비치호텔에 있어서 우리 숙소인 펜션에서 호텔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멀진 않았다. 매점에 있는 누나도 북쪽 사람인 것 같은데 남쪽 말투를 능숙하게 잘 썼다. 근데 그 누나가 꽤 예뻐서 흥미가 생겼다.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아 틈이 없었다. 정말 아쉬웠다. 보니까 맥주도 있어서 친구들에게 야 너네 술마실래? 했더니 모두들 고개를 젓는다. “고3이 되도록 술 한번 안 먹어 봤나? 이 착한 것들 하며” 과자와 음료수만 사서 돌아왔다. 먹다보니 너무 많이 사서 다 못먹었다. 나름대로 재밌게 이야기 했다. 뭐 찬힘이에게 과학고 생활은 어떠니 하고 물어보고 “게임은 하니?” 했더니 “하는 애들도 있어.”라는 대답도 듣고 카이스트에 합격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겁!? 했다. 나름대로 즐거웠고 이리공고 기계공고 두 공고생의 공고자랑을 듣는 것도 재밌었다. 중간에 가만히 있는 제일고생 명진이가 가장 점잖았다. 그렇게 재밌게 놀다가. 티뷔 좀 보다가 잤다. 그렇게 두 번째 날이 지나갔다.
세 번째 날
세 번째 날엔 해금강과 삼일포에 갔다. 아침을 마찬가지로 비치호텔의 풍악에서 먹고 나서해금강에 갔는데 해금강은 바다해자를 써서 금강산이 바다까지 이어져있다고 해서 해금강이라고 한다. 멋졌다. 산과 바다의 어울림은 정말 환상이었고 바다위에 떠있는 해와 바닷물에 비친 햇빛도 눈부셨다. 중간에 설명해주는 북쪽 가이드 누나에게
“누나, 누나랑 사진 찍어도 돼요?”
하고 묻자
“안 됨다.”(북쪽 말투 예전에 드라마에 양국화(구혜선)말투)
하고 귀엽게 대답했다! 상상해볼 수 있나 볼에 살짝 홍조가 뜬 얼굴로 안 됨다 하고 국화씨 말투로 말하는 북쪽 여자가이드! 짱이에요! 아무튼 귀여웠다.
해금강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삼일포로 향했다. 삼일포는 조선에 어느 임금이 하루만 묵고 가려다가 너무 경치가 좋아서 삼 일을 묵고 갔다고 해서 삼일포라고 한다. 삼일포는 호수인데 겨울에 얼어붙은 호수와 금강산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길이 험해서 좀 힘들었다. 삼일포에 갔다가 다시 온정각으로 와서 중식을 먹고 기념품을 샀다. 약 2~3만원 정도를 달러로 환전에 기념품을 샀는데 기념품 중 가장 싼 것이 2달러였다. 비싸기도 하고 그래서 가진 달러를 다 샀어도 기념품이 많지 않았다 볼펜, 핸드폰 줄 몇 개 북쪽 과자 몇 개 이렇게 사서 가져왔다. 이 후 북쪽 직원들과 남쪽직원 모두 나와 손을 흔들어 주는 배웅을 받으며 버스를 타고 온정각을 출발해 남쪽으로 향했다. 다시 북쪽 출입 사무소에 도착했을 땐 헤어지는 내용의 북쪽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잘있으라 잘가시오~”
다시 북쪽 군인들의 굳은 표정을 보며 소지품 검사 신원 검사 후 버스를 타고 다시 DMZ 비무장지대로 갔다 중간에 보이는 군사 분계선 말뚝도 봤다 돌아오면서 금강산의 남쪽 봉우리를 구경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참 아쉬웠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엔 사지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남쪽 군인이 있는 지역으로 넘어왔을 때 군인 형들이 눈을 치우다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을 우리 형이 생각나 그 형들을 향해 버스 창문을 열고
“형들 파이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친구들이 놀랐지만. 우리 형이 그 사이에 있던 것만 같아서 개의치 않았다.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긴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약 저녁 10시가 다 돼서야 익산에 도착했다.
꽤 피곤하긴 했지만 즐겁고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북쪽사람들이 이젠 멀어 보이기만 하진 않다. 언젠가 통일이 될 거라는 희망이 생겼고 통일교육에서 배운 것처럼 “앞으로 어른이 되면 통일을 위해 힘껏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다음에 다시 갈 때는 출입 사무소 같은 것은 거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