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감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일일까, 경감의 부인이 경감의 옆 자리로 와 한 자리를 꿰찬다. 무슨 일 이예요? 부인의 표정이 그렇게 묻는다. 경감은 그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뜸을 들인다. 결국 부인의 날카로운 손톱에 의해 입을 연다. 경감 보다 2살 연상인 부인이지만 아름다웠다. 경감보다 어려 보이는 건 물론이고 말이다.
“이번 사건에서 납치 됐던 애가 고아여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있었는데, 위탁 아동 보호 센터에서 위탁할 부모를 찾았데, 김검사한테 일주일 간 맡기려고 했는데, 예상 외로 빨리 입양돼 가겠어. 그 아이를 위탁할 부모는 이번에 미국으로 이민 가려나 봐, 그래서 빨리 호적정리 해야 돼서 내일 빨리 하기로 했어.”
경감의 말에 흐음,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 쌓아둔 반찬 통을 바라본다. 경감은 그 시선을 따라 같이 반찬 통을 바라본다.
“오른 쪽은 김검사님 갖다 주고요, 왼 쪽은 우리 아들 갖다 줘요.”
그녀의 명령에 깨갱,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감. 두 짐을 양 손에 끼어들고는 현관문을 열어주는 자상한 부인의 뺨에 짧게 키스를 마치고는 투덜투덜, 아파트 복도를 따른다.
“누구세요?”
한참 잘 놀고 있는 타이밍에 딩동, 이라는 달갑지 않은 벨이 큰 집 안을 울렸다. 김검사는 문을 열고는 그 달갑지 않은 손님을 내려다 보았다. 경감이 웬일인가? 그저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는 김검사.
“웬일이세요?”
“반찬, 또 할 얘기 있어.”
경감은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어온다. 집 안에서는 예쁘장한 아이가 경감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경감은 미소를 보이며 반찬 통 하나를 우악스럽게 냉장고에 넣고는 아이의 옆에 수욱, 앉아버린다. 김검사는 현관문을 닫고는 쇼파로 달려오 듯 자리에 앉는다.
“무슨 일이세요?”
김검사의 물음에 경감은 문득, 말을 꺼내기를 꺼려한다. 어느 새 이렇게 옷까지 사 입혔을까, 지극정성이네, 라며 말을 시작하려 했지만, 모를 정도로 따뜻한 둘의 분위기에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음, 이 아이를 위탁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 내일 이 아이를 호적에 넣겠다는데, 미국으로 이민을 간데, 그래서, 내일 10시에 위탁 아동 보호센터에서 만나기로 했어.”
뭐 이 또 골 때리는 소리인가. 일주일이라면서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감을 바라보는 김검사. 아이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김검사만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런 게 어딨어요!”
김검사는 자기자신이 말해놓고도 이상하단 걸 느꼈는지, 큼, 한 번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을 꺼내려 하지만 경감이 말을 가로챈다.
“애당초 일주일 이내에 입양되기로 됐던 아이야, 김검사가 키울 것도 아니고.”
경감의 말이 김검사와 아이의 가슴을 후벼 파버린다. 똑같이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는 둘을 보자니 꼭 진짜 혈육을 억지로 떼어놓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괜히 미안해지는 경감이다.
키우고는 싶지만 키울 수 없다. 검사란 게 집에 붙어서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일 하나 터지면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아이를 봐줄 여력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다시 고뇌에 빠지는 김검사. 온통 혼란스러운 표정이 역력히 들어난다.
“내일 10시야.”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경감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나서버리고 그들에게는 또다시 침묵이란 오랜 친구가 찾아온다. 큰 집이 빈 것처럼, 울림 하나 없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아직 대낮인데, 급작스레 피곤해 오는 것을 느낀다. 그냥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싶다.
“나 입양 되는 거예요?”
“응.”
“미국이면 멀죠?”
“응. 시차도 엄청 나.”
“그럼 못 봐요?”
“이민 가는 거면 못 봐.”
김검사의 말이 냉정해진다. 아이를 일부러 겁주려 하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입에서는 모를 말이 튀어나온다. 아이가 울먹거린다. 그리고 조용하던 집 안을 크게 메우는 울음을 들려준다.
“으아아아앙! 싫어! 나 안 가! 으어어엉!”
아이의 울음소리에 김검사는 그저 울고 있는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 손을 뻗어 안아준다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못한다. 아이의 주위에 바리케이트라도 쌓여진 냥.
아이들의 최고의 무기는 울음이다.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없다. 답답함에 숨이 막힌다. 누군가가 목을 옥죄고 있는 듯 하다.
“울지마.”
그저 말로 어를 뿐이다. 아이라고 울고 싶겠는가, 서럽고 가기 싫어 우는 거지. 아이는 김검사의 말을 듣지 않기로 작정한 건지 울음소리를 더 크게 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의 말이 없다. 입양 되어 가면 이민을 간다는데, 이민을 가면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건데. 경감이 야속해진다.
김검사도 울고 싶다.
“다 울었어?”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흘러버렸다. 아이는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는지 아예 김검사에게 등을 돌려 앉았다. 김검사는 아이를 번쩍 안고서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아이의 발길질도 난무 했지만, 아프지 않았다. 솜방망이로 맞는 느낌이라는 표현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난 너를 봐줄 수 없어.”
대뜸 아이를 침대에 앉혀 놓고는 한다는 말이 현실직시다. 아이의 동공이 흔들린다. 그 무서운 와중에 자기를 구해준 사람이 김검사라는 사실은 뻔히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날 구해 줬으면 좋겠다, 라고 간절히 바란다.
“삼촌은 바쁜 사람이야, 너 같은 아이들 구하러 다닌다고 한 달 동안 넥타이 한 번 풀지 않고 밤새고……..”
너 같은 애라니, 자기가 말해놓고도 아차 하는 김검사이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미안한 표정을 내비치는 김검사. 그런 김검사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는 원망이 담겨있다.
“밥, 더 잘할 수 있어요. 반찬도 잘 할 수 있어요, 혼자 있는 날 오래 돼서 더 이상 무섭지도 않아요.”
그랬구나, 그래서 납치범 앞에서도 두려움 없는 모습으로 있을 수 있었구나, 김검사는 살짝 고개 짓을 했지만 어쩔 수 없다며 완강히 밀어붙인다.
“벌써 그 사람들이랑 약속한 걸 어쩔 수 없어.”
김검사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어쩔 수 있었지만, 자신이 없는 김검사이다. 아이는 일어나서 김검사의 손을 잡았다. 조그마한 손이 김검사의 손등에 올려져 있다. 따뜻한 아이이다. 김검사의 손이 금방 따뜻해 져버릴 정도로.
“미국 가기 싫어요.”
울먹거리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제발, 울지만은 않길 빌고 빌며. 아이를 감싸 안았다.
난 도저히 너의 이름을 지어줄 수 없어.
“어머, 예쁜 얼굴에 상처가!”
호들갑스러운 아줌마와 아저씨, 곧, 서류상 아이의 부모가 될 사람들.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김검사는 그런 부모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몰래 넥타이를 스윽, 느슨하게 푼다. 이런 사람들에게 맡겨도 되는 걸까, 또다시 아이 걱정이 든다.
어제 또 밤새 운 아이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 퉁퉁 부은 얼굴은 김검사나 아이나 매한가지였다. 아이는 자신의 앞에 놓인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볼에는 불만을 가득 넣고는 입을 떼지 않았다. 앞에 앉아 호들갑만 떨고 있는 부모가 무색해질 정도로.
“애 이름은 뭔가요?”
나왔다. 이름. 아이와 김검사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김검사와 아이를 동시에 바라보는 부모. 김검사는 우물쭈물, 대답 못하지만 아이는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아,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가네요. 호적 서류는?”
호적서류라는 말에 둘 다 눈이 절로 떠진다. 이 때까지 부어서 잘 보이지도 않던 눈이 정확하게 보인다. 위탁 아동 보호센터의 직원이 서류를 가져다 준다. 도장을 인주에 꾹꾹 누르는 부모의 모습이 보인다. 안 돼, 안 돼, 김검사와 아이가 입 모양을 그린다.
“안 돼!”
역시 행동이 빠른 김검사이다. 호적서류를 멋지게 뺏어 들고는 부욱, 소리가 나게 찢어버린다. 눈 앞에서 두 갈래 길로 나눠지는 종이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 하는 부모. 김검사는 자신의 행동에 아차, 하면서도 잘 됐다. 싶은 마음으로 부모 두 사람에게 고개를 조아린다.
“죄송합니다. 무례하지만, 이 아이, 제가 키우겠습니다.”
어제 저녁에 아이가 흘렸던 눈물은 뭐란 말인가, 이렇게 황당하게 말을 꺼내다니, 부모와 아이 모두 놀란 눈으로 김검사를 바라본다. 이내 부모는 호호호, 웃어버린다.
“많이 아끼나 봐요. 알았어요, 여보, 비행기 타러 가요.”
“죄송합니다. 좋은 일 하시려고 하셨는데.”
김검사의 어깨를 잡고 일으킨 두 사람은 바쁜 듯, 캐리어를 끌며 위탁 아동 보호센터를 나가버렸다. 아이는 의자에서 훌쩍 내려와 김검사의 다리를 꼬옥, 끌어 안았다. 주름이 잘 잡혀있는 바지는 순식간에 쭈글쭈글 구겨져 버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빠.”
아빠라고 불렀다. 아이가 김검사를 향해 아빠라고 불렀다. 김검사는 입이 째질 정도로 웃고는 아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경고 하듯 말한다.
“아빠 늦게 들어온다고 투정부리지 말고, 밥도 잘 챙겨야 해.”
“네!”
아이의 대답은 당찼다. 앞으로 있을 걱정 따윈 모두 잊게 해준다.
직원에게 호적 서류를 받았다. 그리고 도장을 찍으려 보니, 아이의 이름이 써져 있었다.
바 다. 우리 나라 성씨 중 바씨 없을 텐데 말이다. 이름을 뭐 이렇게 해놨어. 투덜거리는 김검사는 바다를 바라본다.
“이름 없다며.”
눈을 동그랗게 뜬 바다는 김검사를 바라본다.
“수녀님께서 지으셨나 봐요.”
“아, 김바다네, 이제.”
김검사의 미소에 바다는 크게 웃음을 띤다. 성씨가 생겼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라지만, 행복하다.
그렇게 서류 정리를 끝내놓고는 바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울어서 둘 다 힘이 빠졌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거였으면 괜히 울었다 싶지만, 안 울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며 침대에 누웠다.
“아빠.”
“응.”
“내가 매일 아침마다 깨워주고 밥해주고 다 해줄게요.”
“응.”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세요.”
바다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김검사는 바다의 뺨을 어루만져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로써 가족이 됐다. 아, 부모님께 전화 들어야겠구나.
“바다야, 할머니, 할아버지 뵙고 싶지 않아?”
“뵙고 싶어요!”
역시 가족의 형성에는 알릴 곳이 너무 많다. 김검사는 휴대전화를 들고는 고향집 번호를 눌렀다. 고향 집이라고 해도 바로 옆 동네이지만.
-어, 승후야.
김검사의 이름이다. 김승후.
“응, 엄마.”
-웬일이야?
“나 딸 생겼어.”
앞뒤 거두절미 하고는 부모님 뒷목 잡게 만들 말을 한 김검사. 학창시절부터 충격적인 말을 많이 해대던 아이였지만, 이렇게 충격적인 말은 처음 듣는지, 어머니는 함부로 말을 내뱉지 못한다.
“사고친 게 아니라, 나 이번 사건 때, 애 한 명이 납치 됐거든, 근데 그 애를 음, 그랬어. 내가 찾아갈게, 맛있는 거 해놓고 기다려.”
무작정 전화를 끊은 김검사는 쉴 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옷은 아직 갈아입지 않아서 바로 나갈 수 있었다. 바다는 그런 김검사를 빤히 바라본다. 김검사는 바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게 말한다.
“가자.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진짜요?”
그런 것 가지고 사기칠 만한 김검사는 아니다.
“엄마.”
“그….. 그래, 우리 아들 왔니?”
깨나 시간이 흘렀는데도 패닉 상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듯 보이는 어머니. 말까지 더듬으며 김검사와 바다를 방 안으로 안내한다. 바다의 얼굴에 이리저리 나있는 상처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지만, 워낙 어른스럽고 귀여운 아이라 절로 웃음이 났다.
“안녕하세요. 김바다 입니다. 할머니.”
할머니랍니다. 어머니는 살짝 현기증이 도는 지 자리에 앉아 살짝 비틀거린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외동아들을 빤히 바라본다. 김검사는 그저 재킷을 벗어놓고는 바다의 인사성을 칭찬해준다.
“바다, 인사 잘 하네.”
“네!”
그 둘의 모습은 완벽한 부녀의 모습 이였다. 아들 나이가 몇 인데 엄마 없는 아이라니, 어머니는 김검사의 허벅지를 찰싹, 때린다.
“웬 아이야?”
어머니의 말에 김검사는 한참 머리 속으로 말을 정리하다가 입을 연다.
“이번 납치 사건에서 납치 됐던 앤데, 고아야, 근데 다시 고아원 가면 안 될 거 같아서, 나랑 같이 살기로 했어.”
김검사의 말에 어머니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아들의 허벅지를 또다시 찰싹, 때린다. 바다가 어머니를 가로막는다.
“때리지 마세요!”
이 무슨 상황인가, 되래 어머니가 혼나는 듯 보인다. 김검사는 크게 웃어버리고, 어머니는 벙쪄 바다를 바라볼 뿐이다. 김검사는 자신의 무릎에 바다를 앉혀놓고는 어머니에게 말을 한다.
“바다 얼굴에 있는 상처가 그 납치범한테서 생긴 거 거든.”
김검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여는 어머니. 폭력 행사는 더 이상 없었다.
“이번은 그렇다 치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또 그럴 거야?”
“아니, 바다는 운명이야!”
운명 같은 소리하네, 어머니의 표정은 딱 그 표정 이였다. 하지만 바다는 마음에 들었는지 후, 한숨을 쉬며 김검사를 걱정스레 바라본다. 한숨 쉬는 모습은 김검사와 많이 닮아있었다.
“다음에도 운명 같은 소리하면 너 정말.”
“죽여 버릴게다.”
어머니의 말을 끊고는 콤비인 냥, 뒷말을 이으시는 아버지. 그 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진 김검사. 고개를 끄덕이고, 아버지는 김검사의 품에 쌓여있는 바다를 안아 든다.
“안녕하세요, 김바다 입니다.”
바다의 인사에 껄껄껄, 평소에 없던 할아버지 같은 웃음을 띠는 아버지. 김검사가 한 것과 같이 바다를 비행기 태워준다. 빙글빙글, 김검사에게 없던 버전까지 추가시켜 바다를 즐겁게 해준다. 정말 아이를 좋아하는 집 안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빠가 늙어서 적적한 가봐?”
김검사의 말에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두 사람을 바라본다. 둘이 살기엔 넓은 집에서 애교 없는 부인과 살기 적적한 듯 보인다.
“자주 찾아와.”
“아, 바다, 엄마가 가끔 봐줘. 내 직업이 직업이잖아.”
“네가 회식이랑 그런 거 빠지면 돌봐줄 시간 충분해. 검사가 머리 쓰면 됐지, 현장에는 나가지 말고.”
바다가 온 김에 잘 됐다 싶을 정도로 잔소리를 늘어놓는 어머니. 그걸 한 귀로 흘려 듣는 아들 김검사. 그리고 그 둘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아버지와 그의 손녀 바다. 아버지는 듣는 것도 진저리가 나는 지 다시 바다와 놀기 시작한다.
“반찬은 있어? 애는 잘 커야 해, 너는 몰라도 바다는 잘 챙겨.”
손녀 덕에 밀려난 아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모를 섭섭함과 질투심이 든다. 자신의 그런 마음에 픽,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김검사. 아버지의 손에서 바다를 빼내어 안는다. 갑작스레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간 손녀를 찾는 아버지의 손.
“바다 이리 주거라.”
“바다가 뭐 아빠 손녀만 돼?”
“아빠, 나 할아버지.”
또다시 싸하게 퍼져 나오는 씁쓸함이다. 딸 키워 놔둬 별 소용 없네. 김검사는 바다를 아버지 품에 안겨준다. 어머니는 그런 바다가 귀여웠는지 김검사가 귀여웠는지 깔깔깔, 오랜만에 크게 웃어 보이신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았어?”
질투가 나는 듯 입을 삐죽이는 김검사. 바다는 그저 미소를 답할 뿐이다.
점심까지 든든하게 얻어 먹고는 집으로 가는 길. 바다는 마냥 기분이 좋다. 하늘은 난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고 우주로 여행을 떠난 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어쩌면, 더더더, 행복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바다야.”
“네.”
“행복해?”
“네!”
바다의 대답에 김검사도 마냥 기분이 좋아지긴 마찬가지인가보다. 묘하게 닮은 두 미소다.
Rrrrr….
“여보세요?”
-김검사님!
“아, 네. 신형사님.”
핸들을 잡고 있던 손을 잠시 놓고는 바쁘게 손을 놀려 한 쪽 귀에 이어폰을 끼운다. 무슨 일로 신형사가 전화를 한 걸까, 궁금하고 다급해 진다.
-재판이 내일 모레인데, 어떻게 하죠?
수사진행 중, 덜컥 휴가를 내 버린 김검사 덕에 이래저래 피해가 많은 듯 하다. 김검사는 한숨을 푹, 내쉰 후, 신형사에게 말한다.
“음, 제가 내일 가겠습니다. 경감님께 말씀해 놓아주세요. 다음에 또 휴가 쓰게요.”
김검사의 장난기 어린 말에, 신형사는 네! 라며 우렁찬 대답을 외치고는 전화를 끊는다. 김검사도 이어폰을 빼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통화내용이 궁금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야, 어떡하지?”
“왜요?”
“아빠, 내일 출근해야 할 거 같아. 범인 아저씨 감옥에서 썩게 해야 할 거 같은데.”
“네.”
살짝 시무룩한 듯한 바다의 대답에 김검사도 시무룩해진다. 일 따윈 필요 없어! 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시점이기에, 바다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아빠 해준다고 했는데, 이렇게 무책임한 것 같아서.
“아빠.”
“응?”
“내가 아빠 딸 하고 싶다고, 떼쓰고 울었으니까, 그렇게 나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 밥도 잘하고 혼자 있는 것도 잘하고, 안되면 할머니 찾아갈 수도 있으니까.”
발음도 잘 되지 않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어떻게 이렇게 안심시켜 주는 건지, 김검사는 바다가 귀엽고 대견스러웠는지 바다의 머리를 또다시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살짝 입을 연다.
“나도 바다가 아빠 딸 했으면 좋겠다고, 떼썼으니까, 걱정해야 해.”
바다는 김검사의 큰 손의 느낌이 좋았는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손을 꼬옥 잡고 놓아줄 생각을 않는다. 김검사도 바다의 온기가 좋았는지, 한 손으로 멋나게 핸들을 돌린다. 어느 새 생긴 유대감은 핏줄 그 이상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런 게, 이제껏 느끼지 못한 행복이란 걸까.
“근데, 출근이 몇 시 예요?”
“뭐? 큽-“
바다의 말에 당황하고도 웃긴 김검사는 웃음이 새어 나오기 전에 입을 막아보지만 이미 소리가 흘러 나와 바다의 귀에 들어갔다. 꼭 연애를 짧게 하고, 결혼 한 마누라가 신랑에게 묻는 소리 같았다. 물론 가족이라는 면에선 같지만, 너무 애늙은이가 되어 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왜 웃어요?”
바다의 눈이 땡그래졌다. 곧 튀어나오진 않을까, 김검사는 목구멍으로 다시 웃음을 역류시켜 보내며 출근시간을 생각해본다. 이 때까지 잠복근무며, 야근이며 해서 출근 조차 하지 않았다. 강력반에서 한 달 가까이를 보냈으니, 출근시간이 가물가물 해온다.
“아, 8시 50분까지.”
“그럼 몇 시쯤에 일어나면 될까요?”
“딸, 딸은 늦게 일어나도 돼. 내년에 학교 갈 때나 빨리 일어나고.”
바다 걱정에 김검사는 살짝 말을 흐렸지만, 바다는 그 흘린 말을 도로 흘려버린 듯, 7시 30분에 일어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할 일을 꼬박꼬박 정리하고 있다. 그 생각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김검사는 절로 미소를 띤다. 양 손을 꼭 쥐고 눈빛을 불 태우는 바다는 인기가 많을 것이다, 요즘 애들은 빠르다는데, 덜렁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지? 집에 아무도 없는데! 라는 조금 지나치게 빠른 생각도 하며 말이다.
“바다야, 점심도 두둑히 먹었고, 날씨도 좋은데,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
“그냥 집에 가요.”
순간의 착각일까, 바다의 목소리가 떨렸다는 건, 바다의 얼굴이 굳었다는 건. 김검사는 운전대를 잡고는 바다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바다는 그런 김검사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는지, 그저 김검사가 보지 않는 앞을 보고 있다.
“바다야, 나가는 거 싫어?”
김검사의 물음에도 대답이 없는 바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애늙은이가 될 걱정은 없겠다, 라는 철 안 맞는 생각을 하며 앞을 바라보는 김검사. 후둑, 12월의 겨울비가 한 방울씩 내리고 있다.
“아, 비 온다!”
“그러게.”
바다의 외침에, 살짝 미소를 비치는 김검사. 와이퍼를 돌린다. 겨울 비를 유독 싫어하는 김검사. 1년 전, 비슷한 유괴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범인을 잡지 못 했다. 그리고 아이는 죽어버렸다. 그 때 맞은 비는 너무 무겁고 차가웠다. 살을 에이고 뼈를 깎는 듯한 추위 속의 수사.
“예쁜데.”
바다가 입을 다신다. 비를 좋아하나 보다, 이렇게 반대된다. 김검사는 바다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연다.
“안 돼, 옆 창문으로 봐. 앞 길 막으면 사고 나!”
“네.”
김검사는 엑셀을 세게 밟는다. 후두둑, 빗물이 조수석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선명하다. 분명, 그 때도 이런 소리가 들렸다. 비슷한 소리지만, 그 때가 더 아픈 소리였다.
“다행이야, 바다야.”
“네?”
김검사는 미소 짓는다. 바다는 그런 김검사를 바라본다. 뭐랄까,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는 표정이다. 화가 난 것도 아닌데, 무섭다. 왜 그런 걸까? 바다는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본다. 창문을 도화지 삼고, 빗물을 물감 삼아 그린 점묘화는 제법 그럴싸한 작품이 되었다.
“근데, 빨래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내가 너 때문에 웃는다.
“아빠, 일어나세요, 오늘 출근 하신다면서요!”
작은 웅얼임이 김검사의 의식을 깨운다. 슬며시 일어나는 김검사. 눈 앞에 있는 바다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뜬다. 어디서 찾은 건지, 자기 보다 몇 배는 큰 앞치마를 질질 끌며, 바닥 청소를 하고 다니는 바다.
“바다야.”
“네?”
“몇 시야?”
“8시요!”
바다의 말에 어기적 거리던 행동은 시원하게 바뀌어 버린다. 덮고 있던 새하얀 이불을 걷어내고 화장실로 튀어가듯 달린다. 어제 밤 바다와 함께 꼭 껴안고 자니, 피곤이 모두 가셔 한결 밝은 얼굴이다. 그런 얼굴을 고양이 세수하고는 분홍색 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닦아내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뭐가 그렇게 바쁠까, 바다는 하얀 쌀밥을 퍼 담으며 김검사의 행동을 묵묵히 바라본다. 어느 새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색 넥타이, 검은색 정장바지를 입고 나온 김검사. 조끼를 간신히 걸치며 식탁에 앉는다. 그리고 바다와 마주 보며 웃는다.
“아, 바쁘다!”
“왜요?”
바다의 커다란 눈이 김검사의 멋진 모습을 잔뜩 담는다. 그런 느낌, 좋다.
“원래 아침 안 먹고 출근하니까, 이렇게 바쁠 거 없었는데, 이제부터 밥 먹고 출근해야지.”
김검사의 자상함에 바다는 김검사의 밥 위에 된장찌개의 두부를 올려준다. 서투른 젓가락질이지만 그 누구보다 예쁜 모습이다.
“잘 먹었습니다!”
밥 빨리 먹기에 이골이 난 건지, 숟가락질 몇 번 안하고 금방 배를 채운 김검사. 바다의 밥그릇에는 아직 반이나 남아있는 하얀 쌀알들. 바다는 그저 멍하니 김검사를 바라본다. 김검사는 씽긋, 웃으며 정장 재킷을 휙, 둘러 걸치고는 바다의 뺨에 뽀뽀를 한다.
“갔다 올게.”
김검사의 행동에 바다도 숟가락을 놓고는 김검사의 뺨에 뽀뽀를 하고는 손을 휘젓는다. 김검사의 뒤 태가 멋있다. 하지만 바다는 그 뒤 태가 싫다. 그저, 꾹 참고 있을 뿐.
“갔다 올게, 최대한 빨리!”
“다녀오세요!”
바다의 미소에 마음을 놓으며 손을 흔드는 김검사. 문이 잠긴다. 김검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욱, 내려가 차에 올라탄다. 생각했던 것 보다 의젓한 바다의 모습에 또다시 안심한다. 그렇게 어린 애가 밥을 하고 국을 데우고, 아침에 깨워줄지는 상상하지 않고 있었는데, 새삼 이렇게 닥쳐보니, 애늙은이가 그리 나쁜 건 아니구나. 생각하며 시동을 건다. 그리고 오피스텔 단지를 빠져나간다. 외형이 아름다운 오피스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