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
전라남도 화순 출생. 1931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직후,
서울에서 김주경(金周經) 등이 주동이 된 녹향회(綠鄕會) 동인전에 참가,
사실적 자연주의 수법의 유화를 발표하였다.
그후 1935년부터 10년간 개성 송도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밝고 투명한 색채와 가득한 빛살,
경쾌한 붓놀림의 인상주의 화법으로 한국의 자연미와 풍정미 표현에 주력하였다.
특히 1938년에 자비로 출판한 《오지호 ·김주경 2인화집》은 1930년대 중반 당시
국내의 양화계에서는 새로운 회화방식이던 서구의 인상주의를 확실히 수용하였음을 보여준다.
1949년부터는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호남지역 양화계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68년부터 다년간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73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1976년 국전운영위원에 추대되었다.
1977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하였으며, 2002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74년 유럽 각지의 문화계와 1980년 아프리카의 미술계를 시찰하였다.
대표작으로 《나부(裸婦)》(1928) 《아내의 상》(1936) 《사과밭》(1937) 《선운사 설경》(1979) 등이 있다.
저서로 원색판 《오지호작품집》과, 미술평론집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미학원론으로 《미와 회화의 과학》 등이 있다.
오지호는 우리나라 서양화의 제1세대에 속하면서 그 세대의 화가 대다수가 서구의 사실주의적 아카데미즘 혹은 사실주의와 외광파(外光派)의 절충 양식에 시종했던 것과는 달리 인상주의 및 그 후의 모던아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인상주의를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철저히 추구함으로써 한국 인상주의 회화(운동)의 기수가 되었고, 그 이념을 늘 새로운 눈으로 탐구하고 실현해갔다. 이는 그가 동시대 화가들에 비해 시대 정신과 시각이 앞서 있었음을 말해준다.
1950년 이전의 작품들을 잘 보면, 이후의 작품들과는 다소 경향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소재적 일관성은 여전하지만, 표현에 있어서 빛을 무척 고려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서구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한국 산하에 내리치는 빛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셨던 분이십니다. 1950년대 이후로는 빛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것을 캔버스에 담는 걸 포기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전남 광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셨기에, 광주시립미술관에 많은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아, 그리고 전남 보성에 있는 백민미술관에도 오 화백의 작품이 많습니다. 백민미술관은 조규일 화백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미술관인데, 조규일 화백이 평생 스승으로 모셨던 오지호 화백의 그림도 많습니다.
오지호의 작품세계는 그가 「구상회화선언(具象繪畵宣言)」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자연에 대한 감격의 표현이요, 그 감격을 대상의 데포르메를 통해 새로운 자연에 대한 감격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이러한 신념을 그는 추호도 흐트러짐이 없이 그러나 늘 새로운 눈으로 손(기법)으로 줄기차게 추구해왔다. 그리고 그가 그림에서 목표해 온 것은 『회화의 생리에서 나오는 회화, 회하의 생리에 가장 맞는 회화, 회하라면 그렇게 있어야 하는 가장 자연한 모습, 누가 보아도 언제 보아도 좋은 그림, 마음 편히, 즐겁게 볼 수 있는 그림』(「공간」, 1977, 11월 호)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50여년 동안 그림을 그려온 한 노작가의 예지의 말로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
오지호가 후반기에 선보인 양식은 데포르메를 기본으로 한다. 데포르메(Deformer)란 형태의 변형을 뜻한다. 회화에 있어서 형태의 변형은 회화 탄생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서 사람의 모습을 선으로만 변형시켜서 그린 것을 비롯해서, 이집트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변형들이 그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상파, 야수파를 비롯해 새로운 사조를 선보이는 화가들의 작품에서 데포르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지호는 1956년 조선일보에 <데포르메 론>을 발표했는데, 오지호에게 있어서 데포르메는 자연의 기본 형태를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자연을 재창조한다는 의미였다. 오지호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통해 데포르메 양식을 완성시켜 나갔다.
1 화면구성의 단순화
오지호는 화면의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배제해 버리고 그가 그리려고 하는 대상만 부각시키면서 화면을 단순화 했다. 꽃병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배경과 테이블을 단순화시킨다. 꽃병을 강조하는데 있어서 배경과 테이블을 불필요한 군더더기로 여겼던 것이다. 이렇게 자연 형태를 자유롭게 파악하면서 데포르메 양식을 선보이는데, 그렇다고 해도 전체적으로는 자연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데포르메 양식에 대한 오지호의 원칙이었다. 즉 화면은 단순화시켰지만 꽃이라는 자연형태를 유지시키고 있다.
2 색채를 통한 화면의 본질 표현
오지호는 꽃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서 화사하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했다. 꽃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서 색채보다는 선명한 원색을 사용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창조 본능과 의지에 따라 색채를 선택, 그것을 이용해서 화가의 사물의 본질을 표현해 냈다.
3 자율적인 공간구성
오지호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물의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화면을 보다 자율적인 공간으로 채우는데, 그런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큰 색면을 그렸다. 배경을 커다란 색면으로 그림으로써 공간감이나 원근감 없이 표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단순화된 형태를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사실적인 공간감 대신, 자율적인 공간감을 주었다. 또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에 윤곽선을 검은색 윤곽선을 그리면서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효과를 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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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 잘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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