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 연금
코로나 확산 여파로 전국 각 급 학교 개학이 일 주 연기되었다. 간밤 교무부장으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교사들은 3월 첫째 월요일 정상 출근 직원 모임을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근무지가 생활권과 떨어진 거제라 주말에 고현으로 건너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월 넷째 화요일이다. 며칠 남은 봄방학을 실속 있게 보내려고 마음 두었는데 비가 와 차질이 생겼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시내버스나 열차를 이용해 근교 산행이나 산책으로 시간을 보냄이 일상이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코로나 사태가 며칠 전 대구 특정 종교와 청도 병원에서 확진자가 대규모 발생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우리 지역에서도 감염자가 속출해 재난 문자로 확진자 동선이 어디어디라고 연이어 들어오고 있다. 집 바깥으로 나서려니 발길이 머뭇거려진다.
엊그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집에서부터 걸어 산행을 다니고 있다. 그제는 사격장 뒤로 올라 소곡고개를 넘어 소목마을 앞 볕 바른 곳에 자란 쑥을 캐 왔다. 어제는 용추계곡으로 들어 용추고개로 올라 진례산성 성터를 따라 비음산으로 올랐다. 잎맥이 파릇하게 윤이 나는 춘란과 노란 꽃잎을 달고 나온 양지꽃을 만났다. 비음산 정상에서 창원 시가지와 공단을 부감했다.
코로나 확산 사태로 지인을 만날 술자리를 갖자는 약속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내 백화점도 문을 닫고 재래시장도 열리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초등 교장을 재직하는 대학 동기는 관리자라 봄방학이라도 학교로 출근한다. 어제는 학교 바깥 식당으로 나가질 못하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웠고 오늘부터는 도시락을 싸 가 탁자에 신문지를 펼쳐 점심을 먹는다는 사진을 보내왔다.
이런 속 난 어제 저녁 한 친구와 내가 아파트단지와 인접한 상가 주점에서 두어 시간 마주 앉아 잔을 기울였다. 이웃 아파트단지에 사는 친구는 5년 간 김해로 출퇴근하다가 신학기 근무지를 바꾸게 된다. 시내 고교는 자리가 없어 마산 어느 여중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설날 전 만나고 한 달 가까이 얼굴을 못 봐 개학으로 내가 거제로 가기 전 한 번은 자리를 가져야 할 처지였다.
친구와 술을 드는 사이 예닐곱 개 테이블인 실비집은 우리 말고 한 자리만 채워졌다. 주인장은 마스크를 쓴 채 맞아주며 주말 이틀 아예 문을 닿았다고 했다. 평소는 저녁시간 늦게 가면 자리가 없어 돌아서야하는 주점이었다. 우리는 주꾸미 볶음으로 맑은 술을 비워나갔다. 나는 세 병만 비우고 일어나지니 친구는 오랜만에 만났다며 한 병이 늘고 또 한 병 더 보태 다섯 병 비웠다.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한 세대 전 얘기가 오갔다. 우리 젊은 날엔 야간 통금이나 장발 단속이 있었다. 이후 신군부 등장과 함께 대학가는 격렬한 시위로 최루가스가 난무하고 계엄군이 등장한 휴교령이 내렸다. 이제는 민주화 과정에서 겪던 진통은 없어졌다만 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황사보다 더한 미세먼지가 자욱하고 지진에 가슴을 쓸어내렸고 신종 코로나까지 창궐하고 있다.
새벽녘부터 비가 와 바깥나들이는 아예 마음을 접었다. 이른 시각 현관 앞에 종이신문이 도착했다만 집어만 놓고 펼치지 않았다. 방송도 외면한지 오래고 신문도 시들해졌다. 뭔가 생기가 돌고 밝은 소식을 접하기 어렵다. 서가에 꽂힌 책을 펼쳐볼 생각도 없다. 눈이 쉬 피로해지고 이 나이에 골똘히 연구해 본들 어디 쓰일 곳도 없어서다. 침침한 방안에 유폐되다 시피 하루를 지냈다.
오후엔 올 여름 정년퇴직을 앞둔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 긴 통화를 나누었다. 비가 와 드물게 집안에 칩거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자발적 가택 연금 상태라고 했다. 세상이 어수선하지 않으면 우산을 받쳐 쓰고라도 나다닐 곳은 많은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운전을 할 줄 모르고 차를 소유하지 않기에 행동에 제약이 따랐다. 새날이 오면 어둠이 가고 안개가 걷히려나. 20.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