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된 이후 국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이 실제 있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 직후부터 두 정상이 NLL 포기에 '합의'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北, 국방장관 회담에서 "약속 지키라" 주장
남북은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4 선언'에 따라 공동어로·평화수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07년 11월 27~29일 평양에서 국방장관 회담을 열었다. 북측 단장인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회담 첫날부터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며 NLL을 거론했다. 그는 "남측이 불법적 북방한계선을 유지하려는 입장에 매달리는 것은 남북 정상 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정상 간 약속을 지키라"고 반복해 얘기했다. 김정일이 회담에서 얘기한 대로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 경계선 사이에 평화수역을 설정하라는 요구였다. 우리 측 수석 대표였던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1953년 설정된 NLL은 정전 당시부터 지금까지 남북 간 해상 경계선으로 유지됐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현재 관할 구역을 인정한다고 돼있다며 맞섰다.
- 2007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오른쪽 끝·현 청와대 안보실장)과 북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왼쪽에서 둘째)이 서해 공동어로구역 구획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둘째 날에도 김일철은 회담장에 앉자마자 "북측이 준비해온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설정 지도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북측 최고사령관(김정일)에게 보고해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회담에 앞서 노 전 대통령에게 "(NLL에 관한 문제는) 마음대로 하고 오라"는 승인을 받은 김 장관은 "대통령과 국방위원장에게 추가적인 결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일철은 "북측의 방안을 양측 정상에게 보고해 결심을 받자"고 재차 말했다고 한다. 정부 소식통은 "당시 회담에서 북한이 정상 간 약속을 지키라고 거듭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번 회담록 공개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장성급 실무 대표 접촉에서도 북측은 정상회담 결과를 계속 거론했다고 한다. 북한 김영철(현 정찰총국장) 중장은 우리 측 정승조(현 합참의장) 중장에게 "쌍방 정상들이 말씀하신 기본 취지는 '서로가 주장하는 계선에서 물러나라'는 것인데도 남측(대표단)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2차 남북국방장관 회담 당시 NLL 관련 남북 입장 정리 그래픽
◇대선 직전에도 "NLL 고수는 無知의 표현"
북한은 대선을 80일가량 앞둔 작년 9월 29일에도 국방위 정책국 명의로 "10·4 선언 당시의 NLL 합의"를 거듭 강조했다. 북한은 "역사적 10·4 선언에 명기된 공동어로와 평화수역 설정 문제는 철두철미 '북방한계선' 자체의 불법 무법성을 전제로 한 북남 합의 조치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9월 13일 지방 일간지 공동 인터뷰에서 "기존 NLL이 존중된다면 10·4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 공동어로구역 및 평화수역 설정 방안도 북한과 논의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당시 박 후보의 발언 중 '기존 NLL이 존중된다면'이라는 전제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북방한계선 존중을 전제로 10·4 선언에서 합의된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박근혜×의 떠벌림이나 다른 괴뢰 당국자의 북방한계선 고수 주장은 그 어느 것이나 예외 없이 북남 공동 합의의 경위와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북한이 박 대통령의 이름 뒤에 비속어를 붙여 비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고 이후로는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에 따르면 김정일은 "서해 북방 군사분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그 옛날 선들 다 포기한다" 등 NLL '포기'를 수차례 언급했다. 김정일은 "그래 바다 문제까지 포함해서 그카면 이제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법을 포기한다, 과거에 정해져 있는 것, 그것은 그때 가서 할 문제이고 그러나 이 구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발표해도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고, 노 전 대통령은 "예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 정통한 군 관계자들은 일부 야권 인사와 언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당시 NLL 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