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찾아다녔지요. 내 손으로 탁 쳐서 놓쳐버린 시. 허공을 가르며 사라지는 재 냄새, 검은 새떼 사이를. 비명의 비명도 지르지 않고 한숨의 한숨도 쉬지 않고 도대체 뭘 찾고 있는 거지? 이토록 멀리 이웃들에게서 떨어져나와? 키득키득 폭주하는 세상의 눈물방울들을 지나 구멍 뚫려 줄줄 흘러내리는 머릿속의 열이 치닫는 대로 서슬 새파란 회오리바람 맥락도 칠 줄 모르는 탱고를 추며, 눈먼 바람 같은 탱고를 추며, 민들레 꽃씨처럼 겉돌아, 겉돌아 다녔지요. 내 손으로 탁 쳐서 놓쳐버린 시. 한꺼풀 걷어내면 가슴 자락 자락 가련한 기침 소리, 서글픈 잔돌같이 헤픈 시, 시를 찾으려. 야릇한 몸뚱이 굴리며 미친 듯 굴리며 돌아다녔지요. 나를 혹하게 만들 시의 끝, 그 황홀한 자세를 찾으려.
-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문학동네 / 2023 -
사진 〈Bing Image〉
김시인의 노래 2
김 상 미
언젠가는 나도 보고 듣고 말하는 걸 포기하고 깊은 우물처럼 뻥 뚫린 마음을 갖게 되리라 집 지을 줄 모르고 뿌리 내릴 줄 모르는 황야의 이리처럼 너를, 아니 내 밑그림들을 갈기갈기 찢게 되리라 그 옛날 누군가가 들려준 예언처럼 귀도 없고 눈도 없고 입도 없는, 가슴 가득 비명뿐인 그런 무존재가 되리라··· 미스 무존재, 미스 무존재··· 아무도 듣지 못하는 메아리 안에 갇혀 죽지도 썩지도 못하는 수렴성 인간이 되어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뭄밖의 미궁이 되어 희미한 옛 삶의 다리 밑으로 자꾸만 머리를 처박고, 처박고 싶어지리라
언젠가는 나도.
-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문학동네 / 2023 -
사진 〈Pinterest〉
김시인의 노래
김 상 미
1
도시는 자라고 나는 역류한다 방으로 책상으로 카펫 밑으로 침대 속으로 익사한 시들처럼 부풀려진 도시가 들어온다 흘러들어온다 내가 다니던 도시의 골목길 아스팔트가 차들이 건물들이 흘러넘친다 플래카드 한 장 붙어 있지 않은 내 가슴에서 눈에서 거울 속에서
2
나는 로봇이다 시키는대로 한다 도시의 외침 어두운 실험실 비정한 치유 그곳에 쭈그려 앉아 자라고 또 자라는 도시의 풀처럼 아무 곳에나 씨를 뿌린다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하는 구급차 내 피를 팔기 위해 먼 대양을 건너간 아버지 그래도 피는 남아돈다 깨끗이 씻을수록 더 붉어지는 피
3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도시의 계단을 오른다 상승은 아름답다 계단 끝에 서면 구두를 닦고 화장을 하고 최신 도시의 판매대 앞에 서서 한 권의 시집을 살 것이다 방금 인쇄소에서 꺼내온 신선한 시집 밥 대신 그 활자들을 씹고 씹을 것이다 더시는 나를 낳고도 계속 자라지만 나는 로봇이다 어린 소녀를 강간하지도 아이 밴 여자를 탐하지도 않는 도시의 칼끝에 찔린 평화이다
4
도시의 금고는 흘러 흘러넘치지만 내겐 방 한 칸뿐이다 그 방에서 나는 그레고리 잠자의 불안을 타이프로 친다 타이프지를 채우는 진지한 그림자 젊어서 죽은 시인들이 활자에 묻은 내 눈물방울들을 털어낸다 비틀거리는 책상 위로 심연의 겉칠들이 벗겨진다
5
그래도 나는 이곳이 좋다 어마어마하게 자란 도시의 거미줄에 걸려 충격도 없이 소리도 없이 벗겨지는 내 심연을 바라보는 것이, 그 무중력 상태의 위협에 몸을 굽히는 것이, 기웃기웃 잠들지 못한 시들이 수백 수십억의 점으로 나를 분리, 분산시키는 불같은 이 도시가, 타자기 위의 인공 낙원이, 텅 비어 말이 없는 친구들의 적의가, 그 축축한 백지들이 이 도시, 이 지옥의 사계를 비벼대는 것이, 비벼대면서 한 송이 거대한 무공 위를 천연덕스럽게 워킹, 워킹 스텝해 나가는 것이-
-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문학동네 / 2023 -
J. S. Bach - Partita in C moll BWV 997 - Evangelina Mascardi, Liuto barocco - Edoardo Lamberteng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