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2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2 현대범죄에 대한 고찰
나의 어린 시절엔 "범죄의 뒤엔 여자가 있다" 라고 하며 죄를 저지르는 것은 오로지 남자라고 정해져 있었다. 여자는 언제나 남자의 뒤에 가려저 있고, 남자를 따르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등의 사회적(?) 위치에 설 수 없었던 것이다.
살기 위해 사회의 거친 파도와 싸우는 것은 남자의 역할이었다. 원시시대부터 여자는 집에서 사냥해 온 먹거리를 가지고 돌아오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성질 나쁜 여자라 해도 밖에서는 내색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남자에게 잔소리를 했다.
남자를 꼬드기는 성질 나쁜 여자 때문이 아닐지라도, 반한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하는 남자도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여자들은 남자의 범죄 때문에 괴로워 했던 것이다. 여자들은 상냥하고 연약하며 견실하고 성실했다.
그런 여자가 죄를 범할 때는, 화를 참지 못한 살인, 원한에 찬 살인, 혹은 정신불안정에 따른 충동적인 절도 등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 데는 납득할 수 있는 사유가 있었다. 계획적인 범죄는 드물었다.
계획적이지 않다는 것은 죄를 범하더라도, 그에 수반한 경험, 지혜, 사회적 입장 등과는 아무 관련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것이 쇼와 40년대(1960년대 중반) 무렵부터 변화해 왔다. '범죄 뒤에 여자 있음'이 아니라 '범죄 뒤에 남자 있음'이 되었다. 주역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젊은 여성이 남자에게 헌상하기 위해 근무처의 대금에 손을 대는 사건이 그렇게 드물지 않은 일로 되어 버렸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해방됨과 동시에 범죄면에서도 해방(?)되어 갔던 것이다.
옛날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헌상한다고 하면, 기껏해야 몸을 팔아서 얻은 돈을, 전봇대 그늘에서 돈뜯으러 온 남자에게 건네 주는 정도였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손에 쥔 주간지를 넘기다 보니 "가공의 갓난아이 천칠백명으로 3억엔 사취한 여사무원의 재테크." 란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대형 재봉틀회사의 건강보험조합에 근무하는 46세의 여성이 의료급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면서 이를 계기로, 가상의 출산을 허위로 조작하여, "배우자 분만비"를 7년간에 거쳐 약 3억엔 착복했던 것이다.
조합원은 4천7백명이 있지만, 본인이나 배우자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있는 조합원은 약 절반 정도라고 해도, 일년 평균, 2백4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는 계산이 된다.
이로 인해 노조의 재정이 악화되어 원인 분석을 시작했는데, 의료비, 특히 분만비가 폭증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다른 회사의 4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원인 규명을 다름아닌 이 여성에게 하게했다. 그 때문에 부정의 발견이 늦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녀는 조작된 보고를 상사에게 하고 있었다." 는 조합이사장의 답변을 읽고, 나는 그녀의 수완이 비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상사를 납득시키는 "조작된 보고"를 그녀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자도 영특해졌구나…" 라고 감탄하는 나는
"구 시대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사를 납득시키는 보고서 작성" 이란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용기도 없다. 우선 그런 주변머리도 없다.
그녀는 이렇게 훔친 돈으로 집을 짓고, 1억 수천만엔의 저당증권과 이자부 국채를 사고,, 일시불의 양로보험에 가입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쁜 돈은 수중에 머물지 않는다." 는 예전부터 전해 오는 말은 훔친 돈은 모두 유흥 등에 탕진하게 마련이라 하지만 지금은 재테크시대이다.
"훔친 돈으로 재산을 증식한다는 견실함을 보이고 있다. 그녀의 근무상황은 매우 성실하여 지각이나 결근은 거의 없었다고 이사장은 말하고 있다.
요즘은 여자 단독으로 자신의 생활설계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범죄 이면에 남자는 없다. 굶주림에 우는 아이도 없다. 병으로 고통받는 노모도 없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여자가 죄를 짓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예전의 여자들은 '상냥하고 연약하며 견실하고 성실하다' 는 이야기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지 않았다고 하는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이었을까?
"뇌물, 독직, 뒷거래는 남성들에만 해당하는 말" 이라고 강연한 여성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성이 뇌물을 받거나 독직을 하거나 뒷거래를 할 수 있는 직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지 않게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어제 2월 29일자 신문에는 전문대학 상학부의 교수가 현금 백만엔을 받고 위조 학생증을 작성해 주고 학생은 백만엔으로 보결 입학했다고 생각하고 수업에 나왔다는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그런 무적학생은 3명에서 5명은 있다고 한다. 1인 백만엔으로서 교수는 3백만엔에서 5백만엔을 손에 넣은 것이다. 요즘은 여자가 범죄에 진출했을 뿐만 아니라, 지식인이 죄를 짓고 있다.
나쁜 일을 한다는 것은 옛날에는 무지, 빈곤이 원인이었다. 적어도 지성과 교양을 몸에 지닌 사람은, 잔꾀를 부려 돈을 모으러는 따위의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돈이 궁해도 지성과 교양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대학교수라면 먹고살기에 곤란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무지하지도 않고 궁핍하지도 않다. 그런데 왜 그는 그런 잔꾀를 부리기까지 하여 돈을 모으러 했을까, 모두가 굶주림을 모르는 풍족한 시대가 가져온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부패인 것이다.
지금은 지성도 교양도 지위도 아무 의미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전 대장성 사무차관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주식 매매 이익 2억엔의 신고를 누락했다고 언론에 보도된 것이 지난 주인 것이다. 그것은 58년부터 60년의 3년간의 조사로 판명된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 이전의 신고 누락도 있을지 모른다.
한편, 나는, 59년도에 아사히라는 방송국으로부터 받은 4천엔의 사례금에서, 원천 징수세 10%를 공제하고 받은 3천6백엔의 수입을 '신고 누락'했다는 공지를 지금 세무서로부터 받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까지는 만화에 나오는 도둑은 알록달록한 얼굴가리개용 수건을 쓰고, 버선신을 신고 등에는 커다란 보자기를 메고 있었다. 나는 그 도둑이 그립다. 도둑질하러 들어 가기 전에 그집 주위에서 변을 본다.
그렇게 해두면 그집의 사람은 잠을 깨지 않는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너무 긴장해서 변의를 촉진해서라는 설도 있다).
개가 짖으면 쉬쉬하면서 엉덩이를 까고 변을 보면서,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처마 아래로 숨어 들어간다.
성공하든 말든, 절체절명의 시간이 지난 후 무사히(?) 큰 보자기를 짊어지고 나온 도둑, 그 도둑님이 나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