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사람
이혜미(李慧美)
윤달밤 태어난 아이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얻는다지
달에도 귀신이 있을까 줄지어 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들을 떠올린다 훔쳐 마신 바닷물에선 달에서 벗겨낸 비늘 냄새가 흥건했고
월출녘에 잠들지 못한 사람들은 달에게서 꿈을 대출하지 잠을 갚지 못한 밤의 창구에서 바다는 분주히 오가고 달빚이 쌓인 사람들은 눈꺼풀이 점차 투명해지네
밤을 저지른 탓에
다 쓰지도 못할 구덩이를
영예로이 짊어지고
달귀신들은 자정의 언저리를 따라 헤매네 잠이라는 다정한 폭력 속
달지옥엔 얼음 털을 가진 짐승들이 돌사막을 걷고
눈(雪)칼과 유리로 짠 그물이 있지
너무 많은 빛들
아직 이른 죄를
눈을 감아도 세계가 환히 보인다면 새로 얻은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리키면 돼 모두가 너의 손짓에 기뻐하지 그건 언제든 흉내내고 싶은 빚이었으니까
월간 『현대문학』 2021년 2월호.발표
이혜미(李慧美) 시인
1987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셍.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보라의 바깥』(창비, 2011)과 『뜻밖의 바닐라』(문학과지성사, 2016)와 『빛의 자격을 얻어』(문학과지성사, 2021), 『흉터 쿠키』(현대문학, 2022)가 있음. 2009년 서울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 제15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賞 수상.
[출처] ■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