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영가
시내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고 있다.
알록달록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
나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간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아직도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을 기다리는 마음이 된다고나할까.
20여 년 전 내가 미국 뉴저지에 살 때 일이다.
마침 12월,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한국의 가족과 떨어져 지내려니 외롭고 울적해
지인과 함께 드라이브를 갔다.
집집마다 요란한 트리 장식을 보며
어느새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알파인'이란 동네에 도착하자
유난히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지붕부터 마당까지 온통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해 마치 예술 작품 같았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루돌프가 끄는 눈썰매를 타며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꾸러미를 매고 가는 모습이
크리스마스 트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잠깐 구경이나 하자며 차를 세웠다.
마침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집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트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 "역시 미국 사람들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좋아하는구나."
그 사람들을 비집고
한참동안 구경하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함께 트리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옷이 전부 옛날 옷이었다.
한 백여 년 전쯤에나 입었을 법한
구식 드레스와 망토를 두른 여인들,
또 박물관에나 전시될 법한
모자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트리 앞에서 깔깔거리고 웃고 있었다.
마치 가장무도회의 한 장면 같았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됐던 나는 설날에 한복을 입듯,
크리스마스에는 미국 사람들도
옛날 옷을 입는 줄 알고 같이 온 지인에게
--"미국 사람들도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나봅니다.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에는
다들 옛날 옷을 입는가보죠?"
그러자 지인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람들이 옛날 옷을 입고 다닌 다구요?
도대체 어디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순간 오직 내 눈에만
그들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사람이 아닌 영가였던 것이다.
등골이 오싹했다.
같이 간 지인은 겁에 질려 빨리 돌아가자고 재촉했다.
우리는 서둘러 그 동네를 빠져나왔다.
다음날 아침,
다시 찾은 그 곳은 어젯밤과는 딴판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이
모두 꺼져서 그런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오래된 동네였다.
--"혹시 어제 봤던 집이 저 집 아닙니까?"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으로 어렵게 찾아간 집.
놀랍게도 그 집 바로 옆엔 제법 큰 공동묘지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공동묘지였다.
세월에 마모된 비석들이 즐비한
공동묘지는 족히 백여 년은 넘어보였다.
어젯밤 이곳에 잠든 영가들과
크리스마스 트리를 같이 구경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영가들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외출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 트리만 보면
그 영가들이 생각난다.
한껏 멋을 부린 채
공동묘지 주변의 트리장식을 구경하던 영가들.
산자나 죽은 자나
크리스마스를 즐기고픈 마음만은 똑같았는데.
언젠가 인연이 되면 그때
그 영가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