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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디오3040 원문보기 글쓴이: 스팅
Helloween (헬로윈)
헬로윈의 역사는 1979년 독일의 함부르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카이 한센(Kai Hansen, 1963년 1월 17일 함부르크 생)은 친구인 베이시스트 피트 실크(Piet Sielck)와 젠트리(Gentry)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세컨드 헬(Second Hell), 아이언 피스트(Iron Fist) 등으로 이름을 바꾸고 클럽 등지에서 연주를 하던 이들은 지역 내에서 점차 명성을 높여가고 있었다. 새롭게 베이시스트 마커스 그로스코프(Markus Grosskopf, 1965년 9월 21일 함부르크 생)와 드러머 잉고 슈비히텐버그(Ingo Schwichtenberg, 1965년 5월 18일 함부르크 생)가 가입을 했고 피트는 밴드를 떠나 이후 사운드 엔지니어로서 블라인드 가디언, 감마 레이 등과 작업을 하며 명성을 떨치게 된다. 파워풀(Powerfool)이라는 밴드를 이끌던 기타리스트 마이클 바이카스(Michael Weikath, 1962년 8월 7일 함부르크 생)가 가입하여 새로운 라인업이 완성된 후 밴드는 ‘헬로윈’이라는 이름으로 헤비 메탈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밴드 명에 대해서는 ‘지옥(hell)’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라는 등 오래 전부터 여러 말이 있어왔지만, 밴드의 의도는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단지 공포영화 [할로윈(Halloween)]과의 구분을 위해 ‘a’를 ‘e’로 바꾼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이들은 1984년 스래시 메탈 전문 레이블로 창립된 [노이즈(Noise International)] 레코드사의 데모 테이프 오디션에 합격하여 계약을 맺고 컴필레이션 앨범인 [Death Metal Sampler]에 ‘Oernst For Life’와 ‘Metal Invaders’를 수록함으로써 메탈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인 1985년 5곡이 수록된 미니 앨범 형식의 데뷔작 [Helloween](’85)을 발표한 밴드는 예상 밖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곧바로 데뷔작의 연장선상에서 역시 엄청난 스피드와 힘, 멜로디를 담은 두 번째 앨범 [Walls Of Jericho](’85)를 발표하여 평단의 높은 평가를 얻었다. EP [Judas](’86)가 발표될 즈음 카이 한센은 기타 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한다는 것이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투어 후 밴드는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 밴드가 생각하고 있던 인물은 타이런 페이스(Tyran Pace)의 보컬리스트 랄프 쉬퍼스(Ralf Scheepers)였지만 결국 그들은 일 프라퍼시(Ill Prophecy)에서 활동하던 탁월한 보컬리스트 마이클 키스케(Michael Kiske, 1968년 1월 24일 함부르크 생)를 선택했고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자신감에 넘쳐 있던 밴드는 더블 앨범을 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레이블 측은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들의 의견을 거절했고 앨범은 2장으로 나뉘어 발매될 수밖에 없었다. 유럽 헤비 메탈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든 걸작 [Keeper Of The Seven Keys Part 1](’87)은 밴드의 이름을 독일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미국에까지 알린 역할을 한 작품이다. 밴드는 MTV에서 주최한 [헤드뱅어스 볼 투어(Headbanger's Ball Tour)]에 참가하며 미국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전작의 성공으로 인한 대중적 인지도와 기대를 발판으로 한, 최고의 음악적, 상업적 성과를 거둔 [Keeper Of The Seven Keys Part 2](’88)로 세계적인 밴드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작품 역시 전작에 이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 모습을 드러냈고 다시 한 번 [헤드뱅어스 볼 투어]에 초청되어 엑소더스(Exodus)나 앤스랙스(Anthrax) 같은 거물급 밴드들과 투어를 행했다. 하지만 밴드의 화려한 행보는 1988년 12월, 밴드의 리더 역할을 했던 카이 한센의 갑작스런 탈퇴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랄프 쉬퍼스를 프런트맨으로 내세운 카이 한센의 새로운 밴드 감마 레이는 헬로윈과 더불어 멜로딕 메탈 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며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카이의 뒤를 이어 밴드의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자리한 인물은 램피지(Rampage) 출신의 뛰어난 테크니션 롤랜드 그래포우(Roland Grapow, 1959년 8월 30일 함부르크 생)다. 1989년, 카이 한센과 함께 했던 ’88년 유럽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라이브 앨범 [Live In The UK](이 앨범은 일본에서 [Keepers Live], 미국에서는 [I Want Out Live]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가발표되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몇 년 동안은 밴드에게 가장 고달픈 시기로 기록된다. 소속사였던 [노이즈] 측과의 심각한 불화를 겪던 밴드는 [EMI]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헬로윈은 [노이즈]가 로열티 문제에서 깨끗하지 못했다고, 즉 자신들이 돈을 덜 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이즈] 측은 계약의 불이행으로 밴드를 고소했고 결국 여러 차례의 법정 공방 끝에 헬로윈은 패소하게 된다. 밴드는 레이블 측에 벌금을 물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앨범 발매를 금지당해야만 했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밴드의 해체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1991년, 새로운 앨범 [Pink Bubbles Go Ape]가 발매되었다. 밴드 내부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한 건 이 앨범의 음악적, 상업적 실패부터이다. 제작비도 못 건질 정도의 참담한 성적을 거둔 이 앨범으로 빚까지 떠안게 된 밴드의 심기가 편안할 리 없었다. 이어진 ’93년 작 더블 앨범 [Chameleon]은 마이클 키스케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그들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할만한 곡들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 전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혹평과 역시 상업적인 실패, 마이클 키스케와 다른 멤버들과의 불화, 잉고 슈비히텐버그의 우울증의 심화 등이 재난처럼 밀어닥쳤고 밴드는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이런 악재 속에서 마이클 키스케는 퇴출을 당해야 했고 잉고는 더 이상 밴드 활동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밴드는 1994년 [캐슬 커뮤니케이션(Castle Communications)]과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당시 마이클 바이카스가 가장 좋아했다는 밴드 핑크 크림 식스티 나인(Pink Cream 69)에서 활동하던 보컬리스트 앤디 데리스(Andi Deris, 1964년 8월 18일 카를스루에 생)와, 감마 레이(Gamma Ray)와 액스 라 샤펠(Axe La Chapelle) 출신의 드러머 울리 쿠쉬(Uli Kusch, 1967년 3월 11일 아헨 생)가 헬로윈의 새 식구가 된 것은 이 즈음이다. 새로운 힘과 에너지로 가득한 새 앨범 [Master Of The Rings](’94)는 그 동안의 외도를 충분히 커버해줄만한 음악적 성과를 담은 작품이었다. 말 그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밴드에게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1995년 3월 옛 동료였던 잉고 슈비히텐버그가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 것이다. 그 충격으로 밴드는 한동안 큰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이내 어느 때보다도 더 활발한 음악적 재능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앤디 데리스의 역량을 확연히 드러내주었던 ’96년 작 [The Time Of The Oath] 역시 팬들과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앨범이다. ’96년 가을에 발매된 더블 라이브 앨범 [High Live] 이후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에 몰두하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997년 롤랜드 그래포우의 솔로 데뷔작 [The Four Seasons Of Life]와 앤디 데리스의 앨범 [Come In From The Rain]이 발표되었다.
1998년 3월, 보다 진일보한 뛰어난 사운드를 담은 앨범 [Better Than Raw]가 발매되었다. 이듬해인 1999년은 밴드 멤버들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던 해이다. 마커스 그로스코프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쇼크머신(Shockmachine)의 앨범 [Shockmachine]과 울리 쿠쉬의 기획으로 (헬로윈을 포함한) 독일 헤비 메탈계에서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의 참여로 제작된 레인보우(Rainbow) 트리뷰트 앨범 [Catch The Rainbow: A Tribute To Rainbow], 앤디 데리스의 두 번째 솔로 앨범 [Done By Mirrors], 그리고 헬로윈의 멤버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옛 곡들을 리메이크하여 담은 커버 앨범 [Metal Jukebox]가 모두 1999년에 발매되어 팬들을 기쁘게 했다. 2000년 말에는 마커스 그로스코프의 새로운 밴드 킥헌터(Kickhunter)가 결성되었는데 이들은 2002년 첫 앨범 [Hearts And Bones]를 발표했다. 자신의 밴드 트라이브 오브 집시스(Tribe Of Gypsies)를 이끌며 높은 평가를 받아온 탁월한 프로듀서 로이 지(Roy Z)와 손을 잡고 제작한 헬로윈의 밀레니엄 새 앨범 [The Dark Ride]가 2000년 가을에 발매되었다. 전에 없이 무겁고 어두운 사운드를 담았던 이 앨범은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사운드 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었다.
앨범 발표 후 밴드 내부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전형적인 ‘헬로윈 사운드’를 창조해낸 주인공인 마이클 바이카스의 스타일과 울리, 롤랜드의 성향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마이클 바이카스는 울리의 입김이 강했던 [The Dark Ride]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결국 2001년 말, 울리 쿠쉬와 롤랜드 그래포우는 정식으로 밴드를 탈퇴했고 이들은 이듬해에 자신들의 밴드 마스터플랜(Masterplan)을 결성하여 2003년 초 데뷔 앨범 [Masterplan]을 발표했다. 밴드의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자리한 인물은 프리덤 콜(Freedom Call)의 사샤 거슈트너(Sascha Gerstner, 1977년 4월 2일 슈투트가르트 생)이다. 그리고 메탈리움(Metalium)과 킹덤 컴(Kingdom Come)을 거친 영국인 드러머 마크 크로스(Mark Cross)가 가입하여 새로운 라인업이 완성되었지만 앨범 작업 도중 그는 ‘단구(單球) 증가증’이라는 병으로 인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킹 다이아몬드(King Diamond)와 모터헤드(Motorhead) 출신의 미키 디(Mikkey Dee)가 잠시 머물렀고, 마침내 러닝 와일드(Running Wild)와 억셉트(Accept), 우도(U.D.O.)를 거친 슈테판 슈바르츠만(Stefan Schwarzmann, 1965년 11월 11일 에를랑겐 생)이 헬로윈의 정식 드러머로 자리하게 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발매된 2003년 앨범 [Rabbit Don't Come Easy]는 밴드의 과거와 발전된 현재의 모습을 잘 투영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유럽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
첫댓글 펌 해왔습니다..넘 길어서 읽다 말았는데 정확한 정보겠죠?-.-;;
넘 길어서 읽는거 지금은 패스~~~ 나중에 꼼꼼히 읽어주마... ㅋㅋ
띄어쓰기의 압박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