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들어라!
사랑은 모든 걸 사랑한다. 사랑은 사랑 이외에 다른 걸 모른다. 따라서 나는 죽음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대가 죽음을 사랑할 수 있다면, 삶을 사랑하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 될 것이다. 그대가 죽음마저도 사랑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될 건 전혀 없다. 그대가 삶을 두려워한 나머지 뭔가를 억눌러왔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억압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계속해서 억누르면, 어느 날 그대는 모든 미적 감각을 잃게 될 것이다. 그대는 아름다움, 우아함, 신성에 대한 모든 감각을 잃고 만다. 그러면 그 억압이 열기로 바뀌어서 그대는 추한 짓을 저지르게 된다.
멋진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늘 멋진 농담을 했던 한 친구가 보내온 이야기이다.
해병 한 명이 외딴섬의 기지로 발령이 났는데, 그곳엔 여자들은 하나도 없고 거대한 원숭이 집단만 서식하고 있었다. 그는 동료 해병대들 모두가 예외 없이 원숭이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결코 그런 성욕을 발산하지 않겠다고 동료들에게 선언했다. 동료들은 그에게 굳이 마음을 닫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그 해병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행위를 하는 장면을 동료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동료 해병들이 박장대소하며 크게 비웃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그 해병이 동료들에게 말했다.
“왜 비웃는 거야? 너희가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했잖아!”
동료들이 말했다.
“맞아, 그런데 왜 제일 못생긴 원숭이를 고른 거야?”
억압하게 되면, 그대가 가장 추한 삶을 선택할 가능성만 커진다. 그러면 그 열기는 강해져서 그대는 의식을 못 차리게 된다. 그러면 그대는 거의 노이로제에 걸리고 만다. 억압이 커지기 전에 편하게 이완하고 삶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은 그대 자신의 삶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 그대 자신이 살아가고 사랑할 삶, 그대 자신이 알고 존재할 삶이다. 그리고 어떠한 본성이 그대에게 부여되었더라도, 그것은 그대가 가야 할 곳, 그대가 찾아야 할 곳, 그대가 자신을 성취하기 위해 발견해야 할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일 뿐이다.
나는 이런 물질적인 삶이 전부가 아니고, 육체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 뒤에 더 큰 것이 숨어 있다. 그러나 더 큰 삶은 육체의 삶 너머에 존재한다. 이런 삶을 반대해서는 더 큰 삶을 발견할 수 없다. 이 삶에 깊게 빠져듦으로써 비로소 더 큰 삶을 발견할 수 있다. 대양에 파도가 일렁인다. 대양은 그런 파도의 이면에 놓여있다.
혼돈과 혼란을 바라보기만 하고 파도를 회피하면, 그대는 대양으로부터 벗어나고 그 깊은 심연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뛰어들어라. 파도는 대양의 일부분이다. 깊게 잠수해 들어가라. 그러면 파도는 사라질 것이다. 대양의 깊은 심연과 완전한 침묵이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이다.
- 오쇼의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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