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령 (如夢令)
정 약 용
호수 위 늦봄 계절이 당도하니 湖上艶陽春至
보이느니 꽃은 지고 새잎이 돋아 滿眼殘紅軟翠
꽃구경하며 잔치하던 일 생각나서 細憶賞花筵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네 放下一雙淸淚
취한 것만 같은 如醉
취한 것만 같은 그게 벌써 십년 전의 일이라 如醉曾是十年前事
八. 이별(離別) - 긴 이별
약용이 천주교인이 된 일은 머지않아 조정에 알려졌다.
천주학쟁이를 몰아내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상소를 올린 자들은 노론이 아니었다.
공서파. 남인에서 갈려나온 무리였다. 서인과 남인의 시절부터 백여 년을 갈림 없이 이어온 당이었다.
선대왕 시절 노론의 득세에 벼슬한 번 못해본 그들임에도 그 파가 갈리는 일은 없었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노론이 시파와 벽파로 갈릴 때에도 남인은 그저 남인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분열하기 시작했다.
빛 한번 보지 못한 그들에게 갑작스레 쏟아진 주상의 관심이 그리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한 뿌리에서 자라난 그들이 약용을 치려한다. 노론과 서용보, 이기영 등이 거들었다.
그들은 약용이 조상을 버리고 종묘사직을 능멸했다 했다. 허무맹랑한 미신을 받들어 주상을 욕보였다 했다.
주상에게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사도세자를 몰아낸 사직이고 그 위패를 거부한 종묘였다. 종묘와 사직 따위 주상에겐 중요치 않았다.
주상이 천주학을 모를 리 없었다.
천주가 어떤 존재인지 야소가 어떻게 세상에 왔는지 주상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 종교를 약용이 받아들였다 한다.
이제 약용에게 자신은 더 이상 왕이 아닐 것이다.
약용이 주상을 거부했다. 주상은 버려졌다.
아비를 잃을 때와 국영을 버릴 때와는 또 다른 외로움이 찾아왔다.
믿기 힘든 현실이 거짓처럼 생생하다. 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떠나지 마라. 허망하게 가지 마라. 변하지 마라. 다치지 마라.
약용에게 당부한 전부였다. 신하로서 충성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상에게 신하의 충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 믿어온 자신과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현실 사이에서 주상은 길을 잃었다.
왕이 아닌 자신은 무엇인가. 무엇일 수 있는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길 잃은 주상에게 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네게 무엇이냐.
-…….
-무엇이냐 물었다.
-……, 주상 전하이시옵니다.
-너의 왕은 야소란 자가 아니냐. 나는 네게 무엇이냐.
-…….
-대답해라! 왕이 아닌 나는, 네게 무엇이냐.
짓눌린 음성이었다. 상처에 눌린 심장이 피를 짜내는 음성이다. 애써 비집고 나오는 목소리가 힘겨워보였다.
그 목소리에 약용은 아팠다.
-나는……, 네게……, 무엇이냐.
아비이더냐. 심성 굳은 네 아비가 저승에 있으니 그건 아니다.
스승이더냐. 어린 시절부터 성균관 때까지 너를 길러준 스승들이 있으니 그 또한 아니다.
형이더냐. 약현, 약전, 약종. 우애 깊은 형이 셋이나 있으니 그 또한 아니겠지.
친구이냐. 네게는 시를 읊고 마음을 통하는 벗이 있다지 않았느냐.
왕이 아닌 난, 대체, 네게 무엇이냔 말이냐!
전부이옵니다.
그 무엇도 아닌 전부입니다.
세상과 마음속의 주인마저 바꾸게 한, 그리해서라도 옆에 있고 싶은, 전부입니다.
차마 나오지 못한 그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터져 나오려는 그 말을 간신히 삼켰다. 약용이 물었다.
-전하. 전하께……, 저는……, 무엇이옵니까. 전하의 백성 되기를 거부한 저는 이제 무엇이옵니까.
-……!
-전하께서는 제게 사도세자처럼 허망하게 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홍국영처럼 변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
-사도세자가 아니고, 홍국영이 아닌 저는, 무엇이옵니까.
-…….
-과거에 얽매여 사시는 전하께, 현재에 있는 저는 무엇이옵니까.
약용이 얼굴을 들었다. 생각 깊은 그 눈이 울고 있었다. 비갠 하늘같은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주상은 차마 볼 수 없었다.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서로를 향한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약용이 긴 물음의 끝을 맺었다.
-제게……, 무엇이냐 물으셨지요. 저는 이미 대답을 갖고 있나이다.
이제 전하께서 제 물음에 답을 찾으시면 됩니다.
찾으시거든……, 그 때 불러 주십시오.
허망하게 죽지도 않을 것이고 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답을 찾으시거든……, 그 때 다시 찾아주십시오.
약용이 일어서 절을 올렸다. 깊이 엎드렸다. 주상의 무탈함을 빌었다.
-……모질게다. 무사해라.
대전을 나오자 의금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라에 묶여 형장으로 끌려갔다. 저항 없는 걸음이었다. 그대로 국문이 시작되었다.
혐의를 모두 인정한 약용에게 고문은 모질지 않았다. 모질게 아픈 것은 그의 마음이었다.
곁에 있고자 한 일에 곁을 떠나게 되었다.
긴 이별의 시작이었다.
첫댓글 역시 동성 소설은 보지 못하겠어요
으음~~ 그걸 왜 댓글로 -_-; 남기시는 지 그냥 혼자만 생각하면 될 것을.....
슬프네요...
우,우어엉-우엉,우엉,우어엉-삐걱-하고 어긋나버렸군요!쿠허어엉-정약용은...아마 이십년인가있었죠...이럴 줄알았다면 정조부분잘공부해놓을걸....
아우ㅠㅠ되게 아련해요ㅠㅠ두 분 사이가 벌어지는게 ..가슴아파요ㅠㅠ정조가 빨리 마음 좀 알아 챘으면 좋겠어요ㅠㅠㅠ
으앙~~~눈물이 찔끔....주르륵~
아.........이러면 안되요...ㅠㅠ 둘다 너무너무 힘들잖아요..ㅠㅠ 둘다..울잖아요..ㅠㅠ
분명 닮은 점도, 공유하는 생각도 많았지만 그들이 함께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있었다는 것, 그것이 진실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당시 정약용의 생각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합니다. 역시 훌륭하십니다. 매번 볼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감동이 밀려옵니다. 무엇보다도 예전 사람들의 생각이 전이되는 듯한 느낌, 아주 좋습니다. 건필하세요.^^
웅아아아ㅏ앙아 ㅜㅜㅜㅜㅜㅜㅜㅜㅜ이런 간절한마음이 너무나 잘나타있는 소설같아요 우앙 꼭 고전소설을 읽는것 같네요.놀라워요 글솜씨가 ㅜㅜㅜ오늘 이소설을 봤는데 우앙...놀라워요 가슴이 너무너무찡해요!!!
아악!!!!!!!!!!!! 이렇게 되면 안돼요ㅜㅜㅜㅜㅜㅜㅜㅜ 어떡해ㅜㅜㅜㅜㅜㅜㅜㅜ 오랜만에 찾은 정말 맛깔나는 소설인데ㅜㅜㅜ 아 너무 슬퍼요ㅜㅜㅜㅜㅜㅜ
바보주상!!!1
아 진짜 ㅠㅠ 너무 잔인하다. 진짜 몰입도 최고최고ㅠㅠ 저 막 숨참으면서 읽고 있잖아요
잘 되기를 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