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산타크로스’ 포대화상
우면산의 4계절을 지켜보는 게 3번째가 됐다.
일원동 대모산을 10여년 벗하다가 쫓기듯이 떠나와 아쉬었는데
3년동안 친해진 우면산이 대모산 만큼이나 정이 들었다.
우면산과 사귀기 시작한 첫 해에는
‘닭대신 꿩’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모산과 비슷한 규모, 지질, 코스에 만족했다.
대모산 기슭의 불국사, 우면산 자락의 대성사란 절이 있는 것도 같았다.
불국사는 태고종, 개성사는 조계종으로 종파는 달랐지만
똑같은 부처님이 살고 계셨다.
김천 직지사 포대화상(위사진 왼 편)과 원주 천은사 포대화상(오른 편).
우면산 대성사 포대화상(아래 사진)의 표정이 가장 너그럽고 푸근하다.
2년째에는 예술의 전당의 매력에 젖어 들었다.
광장 한복판의 춤추는 음악분수대, 한가람미술관의 아트샵 등
공짜로 문화혜택을 누렸다.
오페라극장에 화재가 나 수리중일 땐
그 앞 마당에서 무료 야외 공연도 펼쳐졌다.
입장료 때문에 감히 엄두도 못낼 공연은
명서 덕택으로 VIP석에서 보는 호사를 누렸다.
대모산에 대한 향수는 희미해져 갔다.
우면산에서 3번째 계절을 맞이할 즈음,
나는 대성사 입구의 포대화상(布袋和尙)에 흠뻑 빠졌다.
풍만한 얼굴과 몸, 풍선처럼 부풀다 못해 밑으로 늘어진 배에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너무나 천진난만해
동자승보다 더 귀여웠으며
보면 볼수록 푸근함을 더해 주었다.
가끔 동행하는 아내도
포대화상 앞에 서면
“어쩌면 저렇게 느긋하게, 편안하게 해주는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라며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우면산에는 여러 코스가 있어서
산책할 때마다 마음 내키는대로 발길을 선택했었으나
포대화상을 좋아하고 부터는
대부분의 하산 코스를 대성사 쪽으로 정하게 됐다.
대성사에 들러
우면산 약수(인도 고승 마라난타가 백제로 들어 오다가 수토병에 걸렸는데
병을 고치게 했다고 한다)를 떠 먹은 후,
대웅전, 산신각, 약사여래삼층석탑에 절은 못해도
포대화상 앞에선 꼭 합장을 했다.
포대화상이 나에겐 부처님이었다.
포대화상은 불교의 ‘산타크로스’이다.
서기 10세기 중국의 스님으로
중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항상 커다란 포대를 메고 다녔는데
그들에게 무엇이든지 베풀고 다 나누어 주었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많은 사찰에도
미륵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모셔져 있다..
달마 대사처럼, 복의 상징이 되어
각종 조각과 초상화들도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대성사 포대화상 만큼 잘 생기고, 훤한 것을 본 적이 없다.
포대화상과 화상(畫像)은 매한가지
지난 3월 17일 저녁, 우면산에 9명의 화상(畫像)들이 출현했다.
우선 오후 5시 강남, 잠실, 송파, 방배, 서초 등에서 소망탑에 모인 화상은 7명.
계무, 명진, 성오, 용철, 윤칠, 치복과 본인 등 7명.
아침부터 각자의 공간에서 세속의 일들에 묶여
갖가지 일들을 저질렀던 화상들이
황사 걷혀진 오후에 모든 일 툭툭 털고 가벼운 걸음으로 올라 온 것이다.
우면산 소망탑에서 만난 7명의 화상들. 대성사 포대화상을 닮아갔다.(사진 위)
뒤늦게 나타나 우사모를 파계시킨 두명의 화상.(사진 아래)
화상들은 우면산에선 포대화상으로 변신했다.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바로 포대화상이었으며
세상에서 떠드는 문제들에 초연한 것이
포대화상을 닮았다.
아닌게 아니라 나도 오전 미디어강의를 위해 준비했던 각종 뉴스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장자연 폭로문건, 정동영 재보선 출마, 박희태 불출마, 영세업자 도산, WBC 야구이야기, 양도세 중과폐지, 비정규직 개정, 개성통행 차단, 예멘 폭탄테러, 신영철 대법관 국회위증, 박연차 리스트, 육해공군사관학교 통합…
세상엔 얼마나 복잡하고, 난잡하고, 흥미롭고, 무섭고, 속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산 속의 포대화상과 어울리다 보니
그런 사건, 사고들이 무의미한 것이 되었고 떠 올려지지도 않았다.
내가 오후 강의를 후배에게 특강으로 넘기고
우면산 모임에 기를 쓰고 참석한 것은
우임산 모임 멤버들에게서 살아 있는 포대화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화상’ 두명의 등장
오후 6시 조금 넘어 서초약수터 앞 포장마차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 제자들과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진 바 있고
명서, 은이와도 들렀던
30년 전통의 운치 있는 ‘VIP 포차’다.
애초 바로 옆에 있는 버드나무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곳은 강남에서도 비싸다고 알려진 고기집이어서
회비 1만원으로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바꾼 것이다.
알탕 찌개 2냄비, 돼지불고기 2접시에 공기밥 7개, 소주 한병.
회비로 아직 소주 3병을 더 추가시킬 여유있는 저렴한 식단이었으나
푸짐하고 맛있었다.
그 때,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를 화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재한과 은이가 차례로 등장하자
‘우사모’가 지켜 온 절주모임의 파계가 시작됐다.
재한이 차를 갖고 왔다며 술을 절제하는 듯했지만
그의 등장 자체가 분위기를 역전시켰다.
공기밥 하나에 1만5천원짜리 파전 추가!
소주도 추가됐다.
이어서 은이기 나타나자마자
넥타이를 풀어제치고 의자에 앉자 분위기가 고조됐다.
해삼 멍게 한 사라에 계란 무침, 게다가 맥주 추가!
명진 회장과 성오 총무의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우사모의 취지가 이게 아닌데… 이 화상들이!’
그러나 한편으론 그러한 분위기를 오히려 즐기는 듯 했다.
덩달아 술잔을 기울였고 성오가 어색한 담배까지 피워 물었다.
우시모 취지에 따라 절제했던 윤칠이도 드디어 발동걸렸다.
2차 간 포대화상들
은이, 재한, 윤칠 화상들이 2차 생맥주 자리로 이동하기로 했다.
내가 속셈으로 추가 회비를 계산하고 있는데
은이 화상이 성큼 카운터로 걸어나가 지갑을 열었다.
우사모의 룰을 깬 ‘화상’이었으나
자기 것을 선뜻 풀었으니 포대화상이기도 했다.
2차 코스는 우사모에선 생각도 못한 파계였다.
회장, 총무와 계무, 성오는 단호하게 귀가했다.
나 역시 어지럼증과 다음날 아침 강의때문에 작별악수를 나눴다.
2차 가는 길.
서초동 골목 골목을 거쳐 남부터미널 생맥주 거리까지 가며
용철과 나도 그들 화상들의 자리에 합류하게 됐다.
솔직히 시원한 맥주 한잔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화상이 된 것이다.
둘둘치킨- 생맥주와 소주.
화상들의 대화가 무르익어 갔다.
우면산 숲 속에서의 대화가 연장되는 듯 했다.
사건, 사고 등 세상사 이야기를 초연했다.
사업상의 청탁이나 고민, 넋두리, 음담패설을 늘어 놓는 통상의 술자리 대화가 아니었다.
자전거 예찬 등이 주된 화제였던 것 같다.
자전거 선택법, 자전거와 관련된 인물들의 에피소드도 이어졌다.
윤칠이 재한에게 집에 있는 여분의 자전거를 주겠다고 했고
허리 아픈 명서에게 저전거를 권유해 허리를 고치게 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경산회 산행의 뒷이야기, 매화 꽃구경, 제주도 산행과 자전거 여행……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60%를 친구와 주변사람들에게,
30%는 가족에게 , 10%만 나와 내 사업에 쓰고 살아.
그게 즐겁고 그렇게 베풀고 사니 그 베품이 결국 나한테 다 돌아와!”
자리를 파할 무렵, 윤칠 화상의 말은 더 이상 화상의 말이 아니었다.
대성사 포대화상이 둘둘치킨 집에 내려와 술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뜯어보니 그의 모습이 포대화상을 닮았다.
둥그런 얼굴에 볼 살, 옆으로 퍼진 체형에 두둑한 배.
대성사 포대화상의 축소판이었다.
체중을 물어 보았다.
68Kg. 애게, 나보다 적네.
내 넓적한 얼굴과 체형이 윤칠보다 더 포대화상에 가까울 수도 있다.
오늘 12명의 포대화상들과(핸드폰으로 참가한 학준,재형,동일과 대성사 포대화상 포함)
어울려 지냈으니
나도 포대화상이다!
블로그와 포대화상
나는 최근에 만든 내 블로그의 프로필 사진에
대성사 포대화상을 넣을 예정이었다가
포대화상을 모욕하는 것 같아 케리커쳐로 대신했다.
그러나 포대화상의 사진이 너무 아까워 블로그 상단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의 제목은
‘예수믿으면 천당, 부처믿으면 극락간다’이다.
아내가 제목을 바꾸라고 야단이다.
그렇지 않아도 온갖 치부를 드러내는
우리 부부의 이야기기를 그대로 담아 놓아
검열을 하려 드는데
나는 언론탄압이라며 버티고 있다.
다만 제목 밑에 부제를 달겠다고 아내를 설득했다.
부제는 ‘일과 사업, 생활과 신앙의 아름다운 조화를 위하여’이다.
블로그 메뉴가
부부기도일지, 일상속 종교이야기, 책만들기, 카페이야기,
미디어강의록과 강의 단상,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
우리 부부의 일과 사업, 생활과 신앙 이야기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내 USB에 담아 놓았던 글들을
블로그에 옮겨 놓는 작업을 마치고
이제 막 새로운 글들을 올리기 시작한다.
수년동안 남의 이야기만 써 왔는데
이제부터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말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북내비게이터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블로그 구상을 해왔었다.
기초 작업으로 200여 포스트를 올려 놓았는데
블로그 방문자가 홈피 방문자보다 훨씬 많은 하루 500-600회를 기록했다.
몇일 동안 새로 올린 글이 없자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래서 ‘우면산 포대화상 이야기’를 구상해
블로그에 실을 겸 썼는데
우리 카페에도 올려 놓는다.
제목 자리에 등장하는 포대화상의 신고 겸
우사모 산행기념 등 일거양득의 글이다.
첫댓글 포대화상!! 사진으로 자주 봐온 상이었는데 그런 뜻이 있었구먼.. 오늘부터 내는 민형이가 점지(?)한 12명의 포대화상덕 좀 봐야긋다... 12명의 포대화상님들~!! 부탁해여~~ ㅋㅋ 아울러 네 블러그 주소도 부탁해여~~!!
집사람이 블로그 폐쇄시키라 압력넣고 있어서 양심상 공식적으로 알려줄수 없고....... 블로그 제목 치면 나올 걸세.그게 그건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재미있구나...
자네도 우면산 밑에 사니까 다음 번에 시간 나면 함께 재미보세. 그때 연락하겠네.
넉넉한 마음을 가진 민형이가 인자하고 푸근해 보이는 포대화상을 매개로 하여 울 친구들과 우면산 얘기를 재밌게 썼네. 글 선생의 재주를 맘껏 살려 앞으로도 재밌는 글 많이 실어주오~~~!
자네가 찍은 사진 허락안받고 도용했으니...저작권 위반인가?
본인 허락도 없이 모다 포대화상으로 만들어버렸으니 저작권보다 초상권이 더 문제되는거 아녀~~?? ㅋㅋㅋ
박기자가 먼저가니 원단 글쟁이가 확실하게 쓰는구만... 역시 글은 잘쓰는 재주가 따로 있는거로구만... 민형이의 항상 잔잔한 미소는 과연 포대화상이로구만... 윤칠이는 얼굴뿐만아니라 몸매까지 화상과 똑같구만... 은이와 나는 파계승이로구만... 나도 한때는 금복주로 불렸는데... 윤칠화상과 파계승은 악당들에게 호출되어 광장시장에서 늦도록 빈대떡,족발등을 안주삼아 막걸리에 흐물거렸구만...
그러고 보니 금복주가 포대화상이랑 가장 많이 닮았네.
이쿠 나도 졸지에 빡빡머리에 배 나온 산타가 됬네..낮은 봉우리에서의 만남도 이렇게 쏠쏠한 즐거움이 있구나..민형아! 글이 참 맛있다~~ ㅎㅎ
포대화상도 코가 막혔지.감기때문은 아니지만...
그 블러그 빨리 가봐야겠는걸? 무궁무진한 글들 많이 기대하며~~
집사람 검열로 지우고 있네.홈페이지엔 한번도 안들어왔던 사람이 왜 그리 민감한지.방문객도 10분의 1로 줄었네.
그 화상 참 걸게 생겼네. 그런데, 블로그는 잘 못찾겠네. 검열이라는 것은 원래 요령을 좀 부리면 피해갈 수 있는 거거든. 일단 없애는 척했다가, 검열이 느슨해지면 다시 슬쩍 올려봐, 노점상처럼.
일단 자발적으로 200포스트를 내렸네. 집사람이 자발적으로 올리라고 할 때가 조만간 올 것이네. 모든 내용을 민감하게 여기지 않게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