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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 이러지 말라” 무슨 일? 윤이나 화나게 한 윤이나 팬
카드 발행 일시2024.09.04
에디터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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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LPGA 투어에서 뛰는 한 유명 선수 A 얘기다. 특정 아이디를 가진 팬이 거푸 심한 악플을 달았다. 빈도가 너무나 잦고 정도가 심해 A 선수 측에서는 악플러가 누구인지 알아봤다고 한다. 놀랍게도 악플러는 이전 A 선수의 열성팬이었다. A 선수의 사인회에서 줄을 섰다가 자기 바로 앞에서 끝나 버리는 바람에 너무 화가 나서 안티팬이 되었다는 거다.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뛰는 하라 에리카는 지난달 열린 KLPGA 투어 한화 클래식에 초청 선수로 참가해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KLPGA 투어는 팬 문화가 뜨겁다. 상위권 선수들은 대부분 팬클럽이 있다. 골프장 곳곳에서 “파이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기 선수들이 한 조에서 경기하면 자리 차지 경쟁, 응원 대결로 후끈하다.
하라 에리카. 중앙포토
열정적인 팬들은 투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팬덤은 인기의 척도이며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준다. KLPGA는 월간 소식지에 각 선수의 팬클럽을 소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팬클럽은 선수가 버디를 할 때마다 회원들이 돈을 내 자선기금을 마련한다. 박현경의 팬클럽 ‘큐티풀 현경’은 코스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팬클럽 간 봉사활동 경쟁도 뜨겁다.
박현경 팬클럽의 한 회원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박현경이 컷 탈락했을 때와 내가 코로나 걸렸을 때를 빼고 모든 경기를 직관했다”고 했다. 선수들은 경기장에 자주 오는 팬을 이모 혹은 삼촌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박현경의 KLPGA 인기상 수상엔 팬클럽의 투표가 도움이 됐다. 사진 KLPGA
이가영은 가영동화라는 팬클럽이 응원한다. 사진 KLPGA
이가영은 7월 롯데오픈에서 우승한 후 “팬들에게 소고기를 사겠다”고 했다. 박현경은 옷에 팬클럽 ‘큐티풀’ 로고도 단다.
팬은 fanatic(광적인 사람)에서 파생한 말이다. 장점이 많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 열성팬이었다가 A 선수의 악플을 단 사람의 얘기처럼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다.
토니 스콧이 연출한 스릴러 영화 ‘더 팬’에서 길 레너드(로버트 드니로 분)는 야구 선수 바비 레이번(웨슬리 스나입스 분)의 열혈팬이다. 바비가 좋아하는 등번호를 쓰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알게 된 후, 길은 번호를 양보하지 않는 라이벌을 살해한다.
길은 야구에 미쳐 직업도 잃고 가족도 잃었다. 그는 바비를 위해 자신이 희생했다고 생각한다. 바비가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바비는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않고 접근한 길에게 “팬들은 루저다. 잘 칠 때는 달라붙다가 못 치면 침이나 뱉는다”고 모욕한다. 격분한 길은 바비의 아들을 납치한다.
영화 '더 팬'의 한 장면. 로버트 드니로와 웨슬리 스나입스가 출연한다. 중앙포토
영화 ‘더 팬’의 길처럼 도와준다는 게 오히려 선수를 망칠 수도 있다. 2022년 5월 KLPGA 두산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준결승 임희정과 홍정민의 경기 때다. 관중 한 명이 임희정이 짧은 퍼트를 넣지 못하자 “쫄았네”라고 했다.
이 일로 인해 임희정의 가족과 홍정민의 가족이 언쟁을 벌여 양쪽 가족이 출입 정지를 당했다. 이후 두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은 건 우연만은 아니다.
팬클럽들은 건전한 응원문화를 강조한다. “올바른 응원문화 정착” “신의와 품의 준수” 등을 내걸고 있다. 현장 응원지침도 있다. ▶동반 경기 선수에게도 응원 ▶응원 선수가 홀 아웃을 하더라도 마지막 선수 플레이가 끝날 때까지 이동 금지 ▶선수와 악수·하이파이브 등 신체 접촉 금지 등이다. 그러나 올바른 응원을 유달리 강조하는 건 현재 상황이 그리 건전하지 않다는 얘기다.
스포츠 팬덤을 연구하는 머리 스테이트대학 심리학과 대니얼 완 교수는 “스포츠 팬이 되는 건 소속감과 자신의 브랜드화, 도피를 위한 측면이 공존한다”고 했다.
자신의 지역팀을 응원하면 외로움과 고립감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고리가 생긴다. 특정 선수 혹은 특정 팀을 응원하는 건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프로야구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 남들은 잘 모르는 비인기 팀을 응원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야구에 대한 지식이 많고 특별하다는 걸 자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때론 남루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영화 ‘더 팬’의 길은 선수에게 자아의탁을 하면서 실패한 인생의 공허를 집착으로 채웠다. 선수를 위해 자신이 희생했다고 생각하며 고맙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인정욕구다.
KLPGA 팬클럽 문화가 태동할 때 일부 운영진의 오버로 몇몇 선수가 골치 아파했다. 이가영은 “팬클럽 회원들에게 소고기를 사겠다”고 했는데 여기에 끼지 못한 팬은 서운함에 안티팬이 될 수도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 팬들의 내분으로 시끄럽다. AP=연합뉴스
팬클럽 간 충돌도 있고, 팬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 사이에서 ‘누가 콘서트를 볼 자격이 있느냐’로 내전이 생겼다. 얼마나 오래 스위프트의 팬이었나, 얼마나 스위프트에게 많은 돈을 썼나 등으로 팬은 갈라졌다.
중국 당국은 스포츠계 악성 팬덤 단속에 나섰다. 온라인 팬 전쟁과 댓글 조작. 오프라인 스타 쫓기, 현수막과 구호, 카메라 플래시로 경기 방해, 팬클럽 가입 시 맹목적인 충성심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등 문제가 많은 듯하다.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단식 우승자 천멍의 라이벌인 쑨잉사의 팬은 천멍과 코치를 성적으로 모욕한 글을 올려 구속됐다. 당국은 “선수를 공격해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며 주의를 끌었다”고 했다. 극단적인 팬 문화가 중국 스포츠를 위협한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골프는 관중과 선수가 매우 가까이 근접하는 스포츠다. 티잉 구역 등에서 관중은 선수 바로 옆까지 간다. 들릴 듯 말 듯한 대화 등으로 선수의 심기를 긁을 수 있다. 한두 명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샷에 영향을 미친다. 경기의 방향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KLPGA에서 라이벌 관계가 커지면서 팬들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네이버 중계 댓글을 보면 놀랍다. 성희롱, 외모 비하 등 자극적인 표현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골프 대회장에서도 분위기는 이어진다.
윤이나의 팬클럽은 회원이 4000명 정도다. 사진 KLPGA
최근 윤이나가 라운드를 마친 직후 한 팬이 다가가 동반자의 외모를 비하하는 표현을 쓰며 “저런 선수와 경기하느라 수고했다”고 했다. 윤이나를 응원하려 그랬겠지만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이 말을 들은 동반 경기자 B 측은 윤이나 측에게 “팬클럽을 잘 통제하라”고 요구했다. 윤이나 가족은 “수천 명이나 되는 팬을 우리가 어떻게 컨트롤하느냐”고 했다. 또 다른 동반자인 C의 가족까지 엉겨 시끄러웠다.
현장에 있던 일부 갤러리는 “윤이나가 이 팬에게 ‘이렇게 하면 팬클럽을 해체해 버리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윤이나 측은 “팬클럽을 해체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런 일이 다시 없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말을 했다”고 했다. 둘 중 어떤 경우든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본다. 그 팬이 윤이나를 나락으로 안내할 수도 있었다.
하라 에리카는 한국 골프대회 응원 문화에 놀랐다고 했다. 더 놀라운 건 그 짧은 대회 기간 중 하라의 팬이 생겼다는 거다. 영화 ‘더 팬’의 야구 선수 바비의 말처럼 일부 팬은 매우 변덕스럽다. 그들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
에디터
성호준
관심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5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