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24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24 인간 본연의 심성
가수 하기와라 켄이치가 사진잡지사의 사진 작가를 때려 고소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작년 늦가을이었는지, 초겨울이었는지, 요즘처럼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으면 최근의 일들도 금방 구문에 속해 버린다.
뭔가로 풍문이 많은 하기와라 켄이치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또 그 스캔들장이 켄이치가..."
라는 선동적인 표제로 스포츠지와 주간지가 야단스럽게 보도하고 있었지만, 그후 고소관련 보도는 그기서 끊어져 버렸다.
가끔 만나는 매스컴 관계의 여성에게, 그 고소는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 봤더니 "글쎄요? 어떻게 되었지… 그런데 사토 선생님도 의외로 그 사람을 좋아하시나 봐요..." 라며 묘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고소사건에 흥미가 있는 것이다. 잡지사 측은 왜 고소했는지, 그 고소를 재판관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내가 궁금해 할 만큼 이 사건은 아주 기괴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말하면 이런 일이다. 어느 날, 가수 하기와라 켄이치가 영화인 회의인지 무언가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여배우 바이쇼 미츠코와 함께 나오는데, 허락도 없이 갑자기 사진을 찍혔다.
화가난 하기와라가 필름을 돌려달라고 하자, 카메라맨은 돌려주지 못한다고 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지며 하기와라는 카메라맨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연예저널에서는 예전부터 하기와라와 바이쇼미츠코 사이의 여러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뒷받침할 사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잡지사 쪽은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하기와라 쪽은 성가시기 때문에 싸움이 되었다. 하기와라가 화내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하기와라는 지금까지 예능저널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있었다.
그가 카메라맨을 때린 것은, 여태 쌓여 온 울분이 폭발하였음에 틀림없다. 아니 일부러 옛 고사를 들어 비유할 것도 없이, 무례를 당하면 화가 나게 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심리인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기괴한 발상이 아닌가. 남이 싫어하는 짓을 무리하게 하여 상대의 화를 유발시켜 놓고 오히려 피해를 당했다고 고소를 하는 것이다.
해코지쟁이가 약자를 해코지하자 돌연 참지 못한 약자가 역습해 온다. 그렇게 되면, 당한 해코지쟁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지 않으러고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아니면 사과하는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하겠지만 자신이 잘못해 놓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고자질하러 달려가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해코지쟁이는 자신의 행동이 나쁜짓이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햇코지쟁이 아이 만큼도 자기인식을 갖지 못한 잡지사의 독선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호치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를 하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메이지 34,5년경의 일이지만, 당시의 귀족원의장 고노에 아츠마로의 주창으로 국민동맹회가 결성되어 그 대회가 홍엽관에서 개최되었다.
아버지가 신문기자 자격으로 그 대회에 참석코자 입장하려 하니까 장사풍의 남자가 다가와 "어이, 신문장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못들은 척하고 있자 남자는 계속해서 불렀다. "어이 신문장이, 들리지 않나!" 나의 아버지는 청년일 때, 당시의 국수주의자로 일본신문 사주였던 쿠가카츠난(陸羯南) 으로부터 사사받고 있었다.
신문사는 장사를 위해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신문기자라는 것은 청빈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지도자로서 기사를 쓸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신문장이"라고 불려 화가 났다.
"신문장이라니 무슨 그런 무례한 말을..." 그렇게 나무라자 상대는 "신문장이니까 신문장이라고 했는데 뭐가 잘못이야!" 라며 대들자 아버지는 바로 그 남자의 빰을 세차게 내려쳤다. 빰을 앚고 비틀거리는 것을 다시 쓰러뜨린 후 그위에 올라 타고 계속 때렸다.
그러자 이를 본 다른 장사들이 달려들어 아버지를 에워쌌다. 이 광경을 본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몰려 와 홍엽관의 현관은 대난투극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소란함을 듣고 안 쪽에서 고노에 아츠마로가 나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츠마로는 말했다.
"그것은 코이케가 나쁘다. 사토 군에게 사과해라." 그는 현양사의 코이케 헤이이치로라라는 장사였다. 그는 "두들겨 맞은데다 사과리니, 불공평하다, 나는 당신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지만 나의 말로 당신의 손읗 때렸다고 생각하니 화가 진정된다." 고 말하며 사과를 했다;
간단하고 명쾌한 사과이다. 참으로 메이지 시대다운 이야기이다. ---난 너에게 맞았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내 말로 너의 손을 때렸다고 생각하니 화가 진정된다... 그렇게 말하고 지금까지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웃으면서 헤어지는 것이 지금은 왜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일까?
웃고 싶을 때는 진심으로 웃고, 울고 싶을때는 마음껏 울고, 심기가 불편하면 화를 낸다. 그리고 화가 날땐 폭력을 휘두를 때도 있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인간의 자연스런 심리'가 비틀어지고, 왜곡되고 말았다.
현대에 있어서 무엇보다 나쁜 것은 폭력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하기와라 켄이치는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상대의 잘못을 상쇄시겨 버렸다. 이것이 메이지시대였다면 하기와라의 폭력은 당연한 행위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썼다고 해서 나는 여기에서 하기와라 켄이치의 폭력을 옹호하려는것은 아니다. 현대사회를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자신에 대한 감정의 억제와 관리를 통해서 우리가 이룩하여 온 것에 흠이 가는 것을 걱정할 따름이다.
몇 년 전, 가수 사와다 켄지가 신칸센열차 안에서 어떤 승객으로부터 자신을 비하하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 화가나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건이 있었다. 사와다가 때린 것은 그의 자부심 때문이다. 받은 모욕에 대해 싸우는 것은 남자로서의 사와다의 당연한 행위이다.
그러나 언론은 엄청나게 사와다를 비판하고, 그 때문에 수년간 사와다의 가수생활은 침체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어떤 잡지에 사와다의 행위를 옹호했는데, 여성 독자로부터 파로 편지가 왔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은 이후 삼가하여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나의 아이는 초등학교 5년생의 남자 아이로 폭력은 않된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아직 한 번도 누구와 싸운 적이 없이 여동생을 귀여워하는 마음씨 착한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을 읽고 나는 "그렇게 키워도 괜찮겠습니까?" 라고 묻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5년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싸움을 한 적이 없는 소년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문제가 있는 아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즉 싸울만한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는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과 같은 것으로 고통 받는 것이 아니고 건강한 소년이라면 그가 한 번도 싸움을 한 적이없다는 것은 '부자연스런 현상' 이다. 달리고, 뛰고, 소리지르고, 깨뜨리고, 장난치고, 그리고 싸움질도 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불타는 에너지를 이런 식으로 발산하고, 소화시킴에 의해 균형잡힌 성장을 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옛날의 어른들은 아이들이란 그러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든지 '폭력'은 모두 '악'으로 부정되고 있다. 그렇게 어른들이 교육시키고 있다. 옛날의 아이들은 맞고 때리며 싸움으로 에너지를 조절했는데, 지금의 이이들은 어떻게 에너지를 발산하면 좋을까.
아니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아이들의
'왕따괴롭힘'은 발산구를 잃은 에너지가 안으로 축적되었다가 발효하여 음습한 타인 귀롭힘의 형태로 분출되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린이의 자연스런 심성'을 억누르고 있으면서, 반대로 어른들은, 왕따괴롭힘에 대한 선생님의 주의가 부족하다고 힐책하거나, 아니면, 부모의 방임의 책임이라고 비난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린이의 자연스런 심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조차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헤메고만 있다. 그러나 그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른들 자신이 어떻게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회복시키면 좋을지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찾아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거역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기와라 켄이치는 카메라맨을 때린 후에, 자신은 카메라맨을 결코 때린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말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어쩌면 '폭력은 악이다' 라는 시대가 내린 정의 때문일 것이다.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은 사후 수습책으로 그러한 코멘트를 내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기와라는 모처럼(?) 때려 놓고는 스스로 자신을 치졸한 사람으로 바꾸어 버렸다.
"확실히 내가 때렸어! 그것이 어쨌단 말이야!" 라고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았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폭력은 예찬받을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겁이나 비열이 용서되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