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유난히 ‘명당’에 약하다.
그저 명당이라면 일단 ‘사놓고 보자’ 식이니 아직도 이 땅에 명당이 남아있기나 한 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바로 이런 명당에 대한 집착 때문에
‘추악한 한국인’이라는 책에는 한국이 ‘무덤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묘사돼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는 따지고 보면 저자가 모르고 한 말인 듯싶다.
저자는 일본인들은 대대로 화장(火葬)을 해왔기에 전혀 명당 따위에 집착하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반 서민들 얘기다.
일본 천황 가문과 소수 로열 패밀리는 풍수(風水)에 유난히 민감하여 땅에 관련된 모든 대소사를 일본 최고의 지관들과 상의해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그들 또한 우리처럼 명당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얘기.
한국과 일본의 경계를 넘어선 명당에 대한 고집은
좋게 말하면 땅에 대한 애정이요, 사람에 대한 관심이기에 이들의 집착이 때론 아름다워 보일 때도 있다.
얼마 전 일이다.
한 사업가 양반이 필자를 찾아와 구들장이 내려앉도록 한숨을 쉬어대며 말했다.
“아버님의 산소가 홍수로 봉분이 유실되어 좋은 명당 터로 이장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근방의 명당 터들은 다 사놓았지만 정작 어느 곳이 진짜 명당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법사님께서 진짜 명당 터를 골라 주십시오!”
나는 되물었다.
“유명하다는 지관(地官)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라고.
그러자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한국에 내로라는 7명의 지관들에게 이미 찍어놓은 명당 터들을 선 보여주었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분들 하시는 말씀이 하나같이 다 다른 게 아닙니까?
어떤 지관은 자손이 절손될 터라고 하지 않나, 또 어떤 지관은 죽을병에 걸려 조만간 사람이 죽어나가는 터라고 하지 않나, 이거 걱정이 돼서 잠도 못자고….”
결국 나는 그의 효심에 흔쾌히 그러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찍어 놓았다는 명당 터로 가는 날,
그 해 최대의 폭설이 내렸다.
전문 베테랑들까지도 산에 오르길 거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막무가내로 올라가야한다고 우겼다.
하는 수 없이 찾아간 그가 잡아놓은 명당 터.
그런데 막 눈이 그쳐 온 설원이 햇빛으로 가득한 그 땅에 그가 잡아놓았다는 명당 터에서만 눈이 녹아 있는 것이 아닌가.
말 그대로 눈까지 지기(地氣)를 받아 녹는 천하의 명당 터였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서슴없이 말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이곳으로 이장하십시오.”
며칠 후 다시 나를 찾아온 그는 말했다.
“아버님께서 현몽하셔서 차 법사의 말대로 따르라고말씀하시곤 사라지셨습니다. 곰곰이 생각하건대 명당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아버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던 바로 그 자리가 명당 터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어디에선가 명당 찾기 전쟁을 하고 있을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멀리서 찾지 말라고. 사람의 한 생각, 한 마음이 천하의 명당을 만드는 비결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상담하다보면 이장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다.
즉, 지관이 명당이라고 해서 이장할 예정 혹은 이미 이장했는데 영가가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이럴 때 구명시식을 해주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장했는지, 아니면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이장했는지다.
도시계획이나 댐으로 인한 수몰, 혹은 자연재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이장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만,
현재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 분들이 재운이나 권력을 더 갖고자 이장하려고 한다면 구명시식을 해줄 수 없다.
남들보다 성공했다면 지금도 충분히 그 터가 좋다는 얘기인데, 굳이 명당으로 옮기려는 것은 분에 넘치는 욕심이기 때문이다.
풍수가들은
‘땅은 살아있다’고 말한다. 즉, 땅은 사람의 생명처럼 살아있으며
어머니를 닮은 땅이야말로 최고의 명당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동감이다. 모든 생명의 원천은 땅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명당을 향한 짝사랑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명당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조선 왕조 25대 왕인 철종 재위기간인 1846년, 능을 이장하는 부서의 감독관으로 시간을 보내던 흥선대원군은 풍수지리설을 믿고 있었다.
그는 한 지관이 어느 절을 보고
‘몇 대에 걸쳐 왕이 나올 명당 터’라고 하자 당장 불을 질러 절을 없애고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그로부터 7년 후 얻은 차남이 바로 철종에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지금도 절터의 흔적이 남아있는 남연군묘 위쪽에는 몇 년 전 죽은 풍수학자가 몰래 묻혔다고 한다. 2대 쯤 후에 귀한 인물이 태어나리라는 예언 때문이었다고.
이를 안 행정당국은 당장 이장을 권했지만 지금은 이 풍수학자의 묘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많아 그냥 방치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도 명당에는 약해진다. 출마했거나 그런 욕심을 갖고 있던 정치인들은 대부분 이장을 했다.
몇 년 전 대선에 출마하는 모 정치인은 선친 묘를 선영에 안장한 지 1년 반 만에 이장을 한 것에 대해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이장 처음에는 뜬금없는 소문인줄 알았는데 확인해보면 모두 사실이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진다.
명당은 자기 복이며, 인품과 직결된다. 지기를 인간의 사욕으로 그르치면, 명당은 복이 아니라 화를 안겨준다.
몇 년 전 일이다. 공무원으로 꽤 높은 위치까지 오른 분이 구명시식을 청했다. 부모 산소를 합장하려는데 그 터가 좋은지 구명시식으로 묻고 싶어 했다.
단번에 그의 속마음을 알아챈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이장은 부모님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로 가고 싶은 마음으로 이장을 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그는 필자의 말을 듣지 않고 부모의 산소를 이장했고, 얼마 후 그가 고위직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이장하지 말라고 만류한 나를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이장을 안 했다면 고위직으로 가지 못했을 뻔했으니.
그러나 명당의 힘은 오래가지 못했다.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연일 언론의 집중화살을 맞으며 관재수를 톡톡히 겪었기 때문이다.
명당이 있다, 없다를 떠나, 자신의 출세를 위해 부모를 명당에 모셔야겠다는 생각은 명백한 불효다.
속된 말로 조상을 팔아먹는 행위다.
그런 마음을 갖는 이는 훗날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 있다.
더욱이 현재도 충분히 부자이며,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권력자임에도 더 큰 부자, 더 높은 권력자가 되기 위해 이장을 했다면
절대로 하늘이 용납하지 않는다.
인연 있는 자를 돕고, 욕심을 부린 자를 벌주는 땅, 그것이 바로 명당이다.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