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람 피 먹는 유일한 박쥐… 앞니로 피부 찢고 수십 분간 핥아 먹어요
흡혈박쥐
흡혈박쥐는 보통 돼지나 소의 피를 빨아 먹으며 살아요. 피를 먹을 때 아주 작은 상처만 내기 때문에 동물들은 흡혈박쥐에게 물린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답니다. /위키피디아
얼마 전 스페인에서 박쥐의 생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모여 국제회의를 열었어요. 회의에선 기후변화로 많은 박쥐들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흡혈박쥐가 지나치게 악마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죠. 포유동물의 피를 먹는 박쥐는 딱 한 종류뿐이고, 사람을 노리는 경우는 좀처럼 없는데 드라큘라 같은 전설과 영화·소설 때문에 공포가 부풀려졌다는 거예요.
다 자란 흡혈박쥐는 몸길이가 9㎝, 활짝 편 날개 너비가 20㎝, 몸무게는 45g 정도로 아담해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에 분포하죠. 오래전 유럽 사람들이 중남미로 탐험을 왔을 때, 이 박쥐를 발견하고 드라큘라를 비롯한 유럽의 흡혈귀 전설을 떠올려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어요.
흡혈박쥐는 주로 소·돼지·말 등 가축의 피를 먹어요. 아주 드물게 사람의 피를 노리기도 한대요. 흔히들 상상하는 흡혈박쥐의 모습이 있죠. 어두운 밤 날개를 펄럭이며 목표물의 어깨나 가슴 위에 내려앉아 날카로운 이빨을 목에 콱 꽂고 피를 빨아먹는 모습이요. 흡혈박쥐는 실제로 야행성이긴 하지만 식사 모습은 우리 상상과는 많이 다르답니다.
흡혈박쥐는 먹잇감을 찾기 위해 지면 위 90㎝ 높이로 저공비행을 해요. 그러곤 곤히 잠들어 있는 가축 근처 땅에 내려앉은 뒤 폴짝 점프하거나 기어서 몸으로 올라가요. 흡혈박쥐는 그 어떤 박쥐보다도 땅 위에서 능숙하게 걸을 수 있어요. 적당한 부위를 찾아낸 다음 날카로운 앞니로 피부를 찢어요. 그리고 흘러나오는 피를 혓바닥으로 핥아먹는 거죠.
흡혈박쥐의 혓바닥은 오목하게 홈이 파져 있어 흐르는 피를 들이마시기에 알맞은 구조예요. 흡혈박쥐의 침엔 피가 굳지 않고 계속 흐를 수 있게 하는 항응고 성분이 있어요. 이렇게 20분 정도 피를 핥아 먹는데, 한 번에 자기 몸무게의 40% 무게까지 먹을 수 있답니다. 너무 피를 많이 먹어 배가 빵빵해진 채 가축 옆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도 가끔 발견되죠.
흡혈박쥐가 만들어내는 상처는 아주 작기 때문에 가축들은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잠을 잔답니다. 흡혈박쥐에게 물렸다고 해서 목숨을 잃는 건 아니지만, 흡혈박쥐가 이리저리 가축을 옮겨다니면서 상처를 내고 피를 먹는 과정에서 감염병이 퍼질 위험이 있죠.
이들은 여느 박쥐무리들처럼 사회성이 아주 강해요. 수십 마리씩 모여 작은 무리를 이루고, 이 무리들이 다시 모여 수천 마리 규모의 집단을 만들어요. 무리 구성원들끼리는 동료애가 강한데, 마땅한 먹잇감을 찾지 못해 굶주린 동료를 위해 먹은 피를 게워주기도 해요. 흡혈박쥐는 영양분을 흡수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이틀만 피를 먹지 못해도 굶주려 죽을 수 있거든요. 암컷이 어린 새끼를 키울 때도 젖을 뗄 무렵이 되면 피를 게워서 먹인답니다.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