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장성에서 근무할 때 숙직하고 나서 아침을 먹은 적이 있는 국밥집으로 간다.
난 옛 넝쿨식당이 황룡근처로 옮겨 함박으로 재개업했다는 걸 알고 가고자 하지만
택시를 타던지 차를 끌고 가야 해 포기한다.
사람의 인연이란 한 때 의지하며 고마워하다가도 세월이 지나면 그 시절이
언제인지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머리 검은 짐승에 정 줄 거 아니다.
술에 취해 편의점에 들러 다음날의 먹거리와 방에서 먹을 걸 신 선생께서 더 사신 것은 기억난다.
방에 와 또 소주와 맥주 술을 마셨다는데 난 기억에 없다.
아침 5시에 눈을 뜨니 난 양말도 벗지 않고 윗쪽에서 자고 있다.
방은 밤내 뜨겁게 타고 있다. 모두 감탄한다.
셋의 아침 움직이는 모습은 모두 다르다.
신 선생은 앉아 지도를 켜고 오늘 갈 길을 확인하고 난 화장실에 가 샤워를 한다.
이소방은 느리작거리며 출발 시각을 확인한다.
신선생은 계단 앞에서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길 건너에 백반 삼겹살 집에 불이 켜져 있다.
들어가니 아침 예약손님이 있다며 문 가로 앉으랜다.
이소방은 한참 후에 온다. 그리고 또 밥을 다 먹고 밖에 나와 차를 가져와 기다려도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모암마을로 가자는데 난 예전의 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다보니 황룡을 지나가던 추암 가는 길과는 다른 길이다.
저수지 위에서 통나무 팬션 쪽으로 올라간다.
오르막 길은 좁다. 민박집 앞을 내려와 길가에 차를 세우는데
저 쪽에서 아줌마가 차 세우지 말라고 한다.
더 아랫쪽에 세우고 올라간다.
지그재그 시멘트 길 양쪽에 늘씬한 편백들이 도열해 있다.
한참을 오르니 추암에서 금곡마을 가는 임도를 만난다.
이끼 낀 나무를 통해 흐르는 물도 마시고 편하게 나아가니 총제소가 있고
신선생이 산으로 오르자 하신다.
산길은 젖어 질척이기도 하지만 숲 사이에 상쾌한 아침 기운까지 힘이 난다.
군데군데 외기둥 정자가 우산살을 펼친 것처럼 가지를 벗어 서 있다.
두 분의 걸음을 의식않고 혼자 능선에 먼저 올랄가 기다린다.
1km 남짓 저쪽 능선 뒤 봉우리가 축령산일 듯한데 가고 싶지 않다.
조금 기다리니 신 선생이 오시고 이소방이 태평하게 올라온다.
고개 숙인 노루귀와 춘란을 보고 밋밋한 무래봉 봉우리를 보고 돌아온다.
신선생은 능선 입구에 리본을 걸으신다.
다시 안내소로 오니 안에 직원들이 앉아있다.
신선생의 무릎이 안 좋다고 파스로 안마를 하고 나는 모자란 물을 아까 마셨던 곳에서 채워 온다.
우리가 가려는 하늘숲 능선은 출입통제다.
통제소 쪽을 향해 이소방이 몇 번 절을 하고 우린 안으로 들어간다.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다가 모암마을가는 길을 갈라서서는 이제 길이 없다.
혼자 먼저 가서 안 보이면 앉아서 기다린다.
삼거리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배낭을 벗고 뾰족봉을 다녀와서 또 기다린다.
신선생은 뾰족뽕에서 내려간다고 가신다.
이소방은 뒤에서 전정가위로 가지를 자르고 있다.
작은 봉우리로 내려가니 배가 고프다. 10시 반이다.
7시 조금 지나 걷기 시작했으니 많이 걸었다. 쉬자고 하나ㅣ 다행이 신대장이 동의해 주신다.
내가 짊어지고 온 플라스틱병의 맥주와 조금 남은 소주를 타 마신다.
안주도 빈약하다.
다시 힘을 내어 내려가는데 신대장이 이 길이 오늘 코스 중 가장 힘든 곳이라 하신다.
바위끝에 서서 내리막길을 가늠하지만 어렵다.
엉덩이를 깔고 낙엽에 미끌어지며 내려간다. 다행이도 가까이 참나무들이 가득하여 몸을 받쳐준다.
난 그런대로 내려오지만 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급경사를 벗어나 모두 두세번 굴렀다 한다.
신대장은 구르면 죽는 곳인데 잘 살아왔다 하신다.
진달래와 생강곷이 핀 속에서 귿ㄹ이 내려오는 걸 난 느긋하게 구경하며 앞서 간다.
모암에서 금곡마을 가는 고갯길을 건너 정자에서 나만 쉰다.
다시 얼마의 길없는 길을 걸었을까? 건물의 지붕이 보인다.
마을인가 하는데 묘지의 관리사인 모양이다.
두개의 큰 무덤단지를 지나 도로 옆에 소송공원 가족묘원 탁자에 앉는다.
점심의 종류는 많지만 밥과 빵은 없고 과자부스러기들이다.
어제 남은 홍어가 있고 김치와 섞여 지멋대로인 떡갈비 조각이 몇 있다.
술이 없다. 신대장이 내 가져가라고 주신 마가목열매를 꺼내니
이소방이 막는다. 난 기어이 마시려 하니 이소방이 배낭에서 참이슬병을 꺼낸다.
어젯밤 한정없이 마시려 해 빼돌려 두었다 한다.
나나 앞으로 알콜공급 담당은 이소방이 하라고 한다.
술에 홍어에 과자부스러기 안주 등으로 점심을 먹은 그래도 든든해진다.
이제부터 동진하던 산길은 구부러져 남으로 향한다.
서삼면사무소 앞 합수점까지는 아직 절반도 못 왔다 하신다.
10여km가 너무 멀다.
난 차 가지러 간다는 핑계로 걸음을 맞추지 않고 혼자 간다.
대간을 걸을 때 동양이나 처음은 우리 두고 걸을 때 얼마나 빨리 걸었을까?
하지만 난 뒤를 계속 의식하며 걷는다.
지난번 오봉단맥에서 기다려본 경험이 있고, 어제도 안평역쪽으로 중간탈출하셨기에
덜 기다렸지, 내가 걸은 곳까지 오셨더라면 내가 차를 가져와서도 한참을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가는 길에 자신이 없다.
산은 결코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지 않고 작은 줄기를 나눠가지며 그 사이에 골짜기와 논밭과 마을을 둔다.
앞쪽의 큰 산을 보고 걸어도 어느 사이 그 산이 끊겨 다시 옆으로 돌아간다.
북일면에서 서삼면으로 넘어가는 2차로 아스팔트를 먼저 건넌다.
큰 취토장 위에 서서 기다려도보이지 않는다.
개가 짖더니 이소방이 먼저 나타나 파라솔 안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한참 후에 팬션 쪽에서 신대장은 내려오신다.
나도 길 쪽 묘지 쪽으로 와 합류한다.
그리고 또 길이 끊긴 산을 오르다 보니 나 혼자다.
갈 길이 자신이 없지만 무조건 앞의 산만 보고 간다.
3시 50분이 다 되어 아스팔트를 건너며 사진을 찍어 일행에게 보낸다.
한참을 지나도 그들은 카톡을 보지 않는다.
몇 개의 길없는 산을 넘었을까?
고창 담양간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는 차량의 소리가 가까워진다.
고속도로 너머에 작은 산이 버티고 있다.
이제 저 산만 넘으면 오늘 산행의 끝일 것이다.
차 둔 곳이 멀지 않으니 서서히 가도 되겠다.
산줄기 양쪽으로 교량의 교각이 길게 줄을 지어 돌아가고 있다.
산줄기가 왼쪽으로 굽어진 듯해 난 왼쪽으로 고속도로 철망을 따라 긁히며 걷는다.
난 길을 잘못 들었다.
건너는 길은 아에 보이지 않고 논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전에 큰 수로가 막고 있다.
그래도 내 한 발 디딜 곳이 없겠는가?
철망을 넘고 수로를 횡단하는 작은 다리도 넘고, 미끌리며 농사짓는 자투리 철망도 넘어
논둑으로 내려섰다.
저쪽 마을에서 개가 짖고 사람이 쳐다본다.
난 건너의 정자쪽으로 피하듯 논둑으로 걷는다.
해평이 큰 글씨이고 아래에 송현2구라고 씌여 있다.
장성개인택시로 전화하니 출발하면서부터 미터기를 작동한다고 한다.
만7,8천원 나올거라고 한다. 어제보다 싸다.
모암으로 가 차를 가져오며 전화하며 고속도로 건너지 말고 탈출하라고 한다.
그러겠다 하기에 고속도로 아래로 차를 운전한다.
길건너 못간 산길을 확인하고 끝까지 가 보니 길이 끊겼다.
차를 돌려 삼거리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산까지 가 보다 전화하니 이미 축령산정류장에 와 있댄다.
훔씬 지친 두 분을 태우고 송정역으로 온다.
8시 50분 KTX라는데 내일 설악산에 간다는 이소방은
신발 밑창까지 떨어져 1분이라도 빨리 성우로 가야 한다고 역으로 간다.
나의 스틱 하나를 딛고 다니던 그가 욕심을 내기에 망설이다가 내것까지 준다.
날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지.
차를 역주차장에 넣고 길 건너의 나주곰탕집에 가 신발을 벗고 앉는다.
신대장은 수육곰탕을 주문하고 잎새주 한병도 시킨다.
피곤한 나도 마시고 싶지만 운전으로 참는다.
그 분의 산 이야기는 끝이 없는데 참을성이 없는 나
광주에 들러 고흥으로 가야 한다고 일어서자고 한다.
그 분은 얼른 자릴 정리하시고 계산한다.
모든 경비를 1/N으로 하시자 하셨는데 난 택시비를 말하지 않았다.
내가 그 분들의 현지교통비를 부담한 것이 숙식비보다 싸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교동으로 운전하면서 바보에게 전화하니 피곤한 몸 집에 가서 쉬고 내일 내려오란다.
내 말을 먼저 해주니 고맙다.
집에 와 냉장고를 뒤져 소주를 잧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