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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 4. 큐티
에스겔 40:1 ~ 4
이상 중에 본 성읍
관찰 :
1) 일련의 종말론적 환상 예언 기사가 주어진 시점
- 1절a. “우리가 사로 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a. 에스겔서 전체를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볼 때 제40-48장은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제5부로서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목격한 새 성전 중심의 종말론적 선민 왕국의 대환상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성전에 관한 환상은 본서 제8-11장에서도 소개되었습니다. 제8-11장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이미 성전에서 자행된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 등 각종 죄악으로 인해 심판 집행자에 의해 대규모의 살육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가셨음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본장 이하에 나오는 성전 환상은 그 내용이 새 성전과 새 예배와 새 땅에 관한 환상으로 이전의 부정적 뉘앙스와는 전혀 다른 새롭고 긍정적인 뉘앙스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b. 제8-11장의 성전 환상에서 최정점에 해당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을 감안할 때 본 단락에서 성전 환상이 궁극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떠나셨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새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하신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주제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c.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과 그 백성을 떠나심이라는 에스겔서 초반부의 심각한 문제들이 풀리고 해결되고 있습니다.
d. 1-4절까지는 이러한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대한 일련의 종말론적 환상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왜 주어졌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서론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e. 본 절은 일련의 종말론적 환상 예언이 주어진 시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환산을 본 시기에 관해 본 절은 에스겔이 남유다의 제19대 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온 B.C. 597년을 기준으로 “이십오 년이 되는 해”라는 표현과 더불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B.C. 586년을 기준으로 “십사 년이 되는 해”라는 표현도 사용했습니다. 이는 여호야긴 왕이 사로 잡혀 온 해를 기준으로 해서 날짜를 계산하던 29:1이나 32:17과는 다른 방식입니다.
f. 에스겔은 자신들이 사로잡힌 지 몇 해라는 날짜 계산의 기준을 버리지 않으면서 본 절에서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기준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환상 중에서의 에스겔의 영의 예루살렘 이동
- 1절b.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a. 에스겔의 영을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이동시킨 주체는 “여호와의 권능”(야드 예호와)이었습니다. 직역하면 ‘여호와의 손’입니다.
b. 여호와의 권능이 에스겔을 데리고 간 곳을 이스라엘 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어상으로는 ‘그곳으로’이지만 2절에서 그곳이 이스라엘 땅임을 정확히 밝히고 있기에 ‘이스라엘 땅’이라고 의역을 한 것입니다.
c. “그곳으로”(촴마)는 나중에 “여호와 삼마”와 연결되는 단어이기도 합니ᄃᆞ.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임하여 그를 인도하시는 그곳이 곧 하나님께서 거라시는 곳이요 회복된 이스라엘의 이상적 처소임을 강조하며 전달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 2절. “하나님이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a. 에스겔은 자신이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서 이상을 본 장소를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b. "이상"(빼마르오트)의 원형 ‘마르아’는 구약에서 12회 사용된 단어입니다. ‘거울’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출 38:8을 제외한 나머지 용례는 어떠한 사안에 대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주시는 이상과 특이한 형상이나 모습을 보게 함으로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주시는 이상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직덥적인 메시지를 주는 이상의 실례로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라는 말씀이 제시되는 창 46:2의 말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엘리의 가문이 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시는 삼상 3:15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간접적인 메시지를 주시는 이상으로 사용된 용례는 다니엘의 이상과 에스겔의 이상이 있습니다. 단 10:7,8,16에 사용된 ‘이상’이라는 단어는 다니엘이 신적 존재를 본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이상"에 관하여 구약 성경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에스겔서입니다.
c. 에스겔은 이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자신을 인도하여 이르게 한 장소에 대해서 이스라엘 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그것을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렸다고 말하고 다시 거기서 남으로 성읍 형상 같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소의 배경을 넓은 범위에서 작은 범위로 축소하여 묘사하는 기법으로 그가 이르게 된 곳이 어디인지를 점점 더 구체화 시키기 위한 표현입니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장소적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언급된 “성읍 형상 같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수사적 기법입니다.
d. "이스라엘 땅“이라는 표현은 본서의 일차 독자들이 거주하는 바벨론 땅과 대조되는 개념을 지닌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방 땅에서 포로로 생활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이미 멸망당해 이방인들에게 짓밟힘을 당한 이스라엘 땅에 대한 이상은 그것이 주어졌다는 사실로도 독자들의 충분한 관심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이상이 주어진다는 표현을 통해 정치적, 국가적 회복의 말씀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환상이 단지 옛 땅으로의 지리적 이동이나 독립과 해방 등의 정치적 회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 높은 산이라는 장소의 제사를 통해 강조되고 있습니다.
e. "매우 높은 산“이라는 표현은 시온산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산입니다. 산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시온산은 주변의 산들보다 더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시온 산을 높다라고 표현한 것은 지리적 개념이 아닌 신학적 개념과 관련된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온산이 높다라고 한 표현에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높으신 분으로서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라는 신학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f. 에스겔이 천사에 의해 매우 높은 산 시온에 올라 성읍 같은 형상 즉 성전을 보았던 것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간 사건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그런 점에서 에스겔이 산 위에 올라간 것은 에스겔의 사역과 모세의 사역 사이의 몇 가지 공통점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첫째,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당신과 언약 관계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 만드실 성막에 관해 계시를 받은 것처럼 에스겔도 산 위에서 이스라엘과 새 언약 관계에 들어가실 하나님께서 거하실 새 성전의 모습과 새로운 형태의 예배에 관한 내용을 보고 들은 것입니다. 둘째, 모세가 가나안 땅에 대한 비전을 백성들에게 부여했지만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에스겔도 새 성전과 새로운 땅에 대한 이상만을 백성들에게 전하였을 뿐 정작 자신은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셋째, 출 40:34. 35에는 완성된 성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했다고 했고, 43:5을 보면 에스겔이 세 성전 둘러보기를 모두 마칠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성막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거하심으로써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언약 관계를 이루셨습니다. 그와 같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을 앞두고 있는 유다 포로 공동체로 하여금 바벨론을 떠나는 것이 단순히 정치적 해방이나 민족적 자긍심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 관계에 들어가기 위한 제2의 출애굽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에스겔의 사역은 모세의 사역과 비교할 때 분명한 연결점이 있는 것입니다.
g. "성읍 형상 같은 것“은 새 성전을 의미합니다. ”성읍“(이르)은 ‘도시’라는 의미이고. ”형상“(미브네)은 ‘짓다’, ‘세우다’란 의미의 동사 ‘빠나’에서 유래하여 구약 성경 전체에서 본 절에서만 사용된 단어로서 ‘건물’이나 ‘구조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읍 형상 같은 것’이란 건축된 도시의 구조물 같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에스겔이 본문에서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처음부터 성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45절에 가서야 사용한 것은 자신이 본 새 성전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성을 보는 것처럼 이전의 예루살렘 성전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h. 에스겔은 자신이 본 새 성전에 관해 묘사하면서 ‘이스라엘 땅’과 ‘매우 높은 산’과 ‘성읍 형상 같은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장소적 배경을 점점 더 좁혀 독자들의 관신을 이끌어 낼 뿐만 아니라 성전이 아닌 ‘성읍 형상 같은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더욱 궁금증을 갖게 만든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천사의 환상들에 대한 주의 촉구와 이스라엘 족속을 향한 전달 명령
- 3절.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더니”
a. 에스겔은 여호와의 권능에 이끌려 산 위에 있는 성읍 형상 같은 것으로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b. 높은 산이 의미하는 바는 여호와의 임재의 장소이며 하나니의 통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정치적 장소로서의 땅인 이스라엘 땅이나 종교적 장소로서의 성전도 중요하지만 이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의미를 갖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라는 상징성을 갖는 시온산인 것입니다.
c. 여호와의 권능의 역할은 에스겔을 바벨론에서 시온산으로 인도하는 것이었고 본 절에서부터는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이 에스겔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람을 천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d. 천사가 넓은 길이를 재는 삼줄과 짧은 거리를 재는 장대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 것은 앞으로 에스겔이 천사에 의해 인도되어 보게 될 새 성전의 모습에서 성전의 치수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을 돌아보면서 한 일은 거의 성전의 치수를 재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에스겔이 새 성전에 대해 본 이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치수가 중요했다는 것은 에스겔이 환상을 통해 본 시각적 이미지를 청중 혹은 독자들에게 전달할 방법이 정확한 치수를 제시하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새 성전의 각 부분들에 대한 높이를 제외한 정확한 치수는 에스겔서를 대하는 이들로 하여금 새 성전의 평면도를 알 수 있게 했을 것이고, 세부적인 모습과 이전의 성전과 다른 치수는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을 바라는 이들에게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e. 측량 기구를 든 천사가 서 있던 본 절 하반절의 “문”은 에스겔이 북쪽 바벨론으로부터 와 남쪽을 향해 서서 바라본 문이므로 새 성전의 북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이 천사는 에스겔을 동쪽 문으로 데리고 성전의 바깥뜰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 4절.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 하더라”
a. 놋처럼 빛나는 천사가 에스겔을 성전 내부로 데리고 들어가기 전에 그에게 명령한 내용입니다.
b. 천사의 첫 번째 명령은 눈으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이 눈으로 봐야 할 것은 성전의 세부적인 모습과 천사가 성전의 각 부분을 측량하는 광경이었습니다. 제40-42장의 내용은 거의 성전 안팎의 치수를 재는 모습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에 눈으로 자세히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c. 천사의 두 번째 명령은 귀로 잘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45, 46절에서는 천사가 제사장들의 쓸 방의 용도에 대해 말로 설명했고, 42:13,14에서는 지성물을 먹거나 제사장의 의복을 보관해 두는 제사장의 방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비록 많은 부분은 아니지만 천사는 에스겔이 알아야 할 특별한 내용에 대해서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그 천사의 말을 놓치지 않고 잘 들어야 했습니다.
d. 세 번째 명령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바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할지어다”(웨심)의 원형 ‘숨’은 ‘두다’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즉 천사가 에스겔에게 요구한 것은 우리말의 생각하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처럼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NASB와 NIV는 ‘집중하라’(give attention to)고 번역했고, 표준새번역은 ‘보고 들은 것을 마음 속에 새겨 잘 기억하라’고 번역했습니다. 에스겔은 천사가 보여주는 것을 잘 보고 그가 말하는 것을 잘 듣는데 그쳐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그를 성전으로 데려온 것은 단순히 에스겔에게 성전의 모습에 대해 보여주거나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을 전달하게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멈추고 그가 보고 들은 것만을 그의 마음 속에 잘 간직해 두어야 했습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큰 계획과 작정 속에서 에스겔을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보내시고 천사를 통해 그에게 보여주실 것을 보여주시고 말씀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에스겔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를 마음에 새겨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했습니다.
2) 하나님은 새 성전을 세우실 것이고 이스라엘로 돌아간 선민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예배와 새로운 삶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품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일은 당장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고,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지지만 그것에 대한 환상이라기 보다는 말세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도래할 새 예루살렘 성에 관한 환상이었습니다. 모든 세대를 꿰뚫어 소망해야 하는 하나님의 비전이었습니다.
3) 에스겔은 잘 보고 잘 듣고 잘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새겨 전달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자칫 잘 보고, 잘 들고 잘 생각해서 자신의 판단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들이 잘 보고, 잘 듣고, 잘 집중하여 온전히 그 말씀을 새겨 전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에스겔을 하나님의 권능, 곧 하나님의 손으로 시온산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붙이셔서 새 성전의 식양을 알려주시고 그곳에서 펼쳐질 온전한 예배에 대한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참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2) 에스겔의 마지막 단락에서 하나님은 말세에 이루어질 놀라운 일들에 대한 환상을 에스겔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르게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부어짐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실제 지금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진짜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성령께서 조명해 주심이 실제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다루실 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