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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게서 풍기는 '독재자'의 냄새, '민주적인 선거에서 선택된'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점점 닮아가는 행동 원리 / 3/2(일) / JBpress
(마스조에 요오이치 / 국제정치학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전을 향해 속속 손을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머리 너머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상하고, 친러시아적 정보에 놀아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의 이권을 입수하는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인 1938년~1939년의 상황 재현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 정치인의 개성이 과잉 반영
나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 즉 전간기 유럽 정치외교사를 연구하기 위해 젊은 시절 프랑, 스위스, 독일 등에서 유학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유럽에서 왜 20년 뒤 다시 전쟁을 시작했는지 그 원인을 찾는 게 목적이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의 사상과 행동에 큰 원인이 있었음은 틀림없다. 그 성과의 일부는 『히틀러의 정체』, 『무솔리니의 정체-히틀러가 스승으로 모셨던 남자』, 『스탈린의 정체-히틀러보다 잔학한 남자』 라는 3부작(모두 쇼가쿠칸 신서)으로 나온다.
당시 역사를 쓰는 데 이들 독재자의 연구는 필수적이었다. 지금 트럼프의 언행을 보면 전간기 독재자나 다름없다. 민주적인 선거로 선출되어 미국 헌법의 3권 분립의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리더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측근 각료들도 트럼프에 대한 충성 어필·아첨 싸움으로 시종 하고 있다. 비판하면, 즉 경질이다.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다. 처형되지 않는 것만 낫다는 것이다.
참고로 공산당 일당독재의 소련과는 달리 당시 바이마르공화국도 입헌왕제의 이탈리아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가 보장되어 있었고, 그 룰 아래 국민은 나치당을 제1당으로 선택해 무솔리니를 총리로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단 권력을 잡자 독재의 길을 걸어갔다.
독일도 이탈리아도 소련도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그 국민의 불만과 불안을 이용해 독재자들은 권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이자 지금도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다. AI 등 최첨단 기술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값싼 외국 제품 수입으로 국내 산업이 쇠퇴하고 있다며 관세 공세에 나섰다. 지구 온난화보다 국내의 석유·석탄 등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우선시하려고 하고 있다.
이 미국 제일주의에는 세계 제일의 대국으로서 자유무역이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하는데 그것은 거꾸로 미국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자유로운 민주주의나 자유무역을 지킨다고 하는 이념 등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 민족주의의 깃발
푸틴은 러시아인이 사는 지역은 러시아가 통치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하는 등 차별적 정책을 펴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3월에는 주민투표라는 수단으로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병합했다. 러시아인이 사는 지역이라는 논리다.
이 기법은 히틀러와 흡사하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이 한 나라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대독일주의)이었다.
1935년 1월 국제연맹 관리하에 있던 독일-프랑스 국경지대의 자르 지방은 대부분의 주민이 독일인이었고, 1935년 1월 주민투표 결과 독일에 병합되었다. 국제연맹 하에서의 주민투표이며, 이는 국제적으로도 비판받지 않았다.
그 다음 1938년 3월 히틀러는 대독일주의를 내세워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다(독일-오스트리아 합=안슐루스).
히틀러의 다음 표적은 체코슬로바키아다. 주데텐 지방에 사는 독일인이 안슐루스에게 힘을 얻어 독일로의 병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체코인과 주데이텐 독일인 간 중개에 나서 1938년 9월 15일 히틀러의 별장 베르히테스 가든에서 히틀러를 만나 주데이텐의 독일 할양을 승인했다. 프랑스 정부도 동조해, 영·프랑스 양국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그것을 승낙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주데이텐을 무조건 할양할 뿐 아니라 폴란드와 헝가리에 영토 할양도 요구했다. 과연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이를 거부해 단숨에 긴장이 고조됐다. 이에 영국 정부는 무솔리니에게 중개를 부탁했고, 9월 29일 영불독이 4자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이것이 유명한 뮌헨 회담으로 체임벌린, 달라디에, 히틀러, 무솔리니 등 4개 정상이 모여 체코슬로바키아 문제를 협의하고 독일이 주데이텐 지방을 10월 이후 접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게 확정된 새로운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선은 참가국들이 보증하게 됐다. 9월 30일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만나 영·독 공동평화선언에 서명하고 양국이 유럽의 평화를 협의(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높이 샀다. 귀국한 체임벌린과 다라디에는 군중의 이로써 전쟁의 위기는 갔다고 환희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뮌헨의 유화'이다
■ 체코슬로바키아의 해체
지금의 트럼프 주도 정전협상은 뮌헨의 유화 재현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체임벌린 역이 트럼프, 히틀러 역이 푸틴이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우크라이나다.
히틀러의 야심은 끝이 없고, 다음은 체코슬로바키아의 해체를 요구해 간다. 히틀러는 슬로바키아인을 독립으로 선동했고 1939년 3월 14일 슬로바키아는 독립했다. 또 히틀러는 헝가리 국경의 카르파토 우크라이나도 독립시켰다.
다음 날인 15일 베를린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은 히틀러를 만나지만 히틀러는 무력 위협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 통합을 강요하며 프라하 진군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6일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베멘 메렌(보헤미아 모라비아) 보호령으로 독일국에 통합했다. 이렇게 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지도상에서 소멸되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의 '무책'을 비판하며 이대로 가면 우크라이나가 소멸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발언을 듣고 나는 이 체코슬로바키아 해체가 뇌리에 떠올랐다. 그것은 체임벌린이 체코슬로바키아에 양보를 요구한 자세와 같다. 트럼프에게는 국가의 주권을 지키거나 무력에 의한 병합을 저지하는 등의 기본적인 원칙도 없는 것일까.
게다가 3월 22일에는 히틀러는 동프로이센과 인접한 리투아니아로부터 메멜(Memel 항구도시)을 반환받았다.
■ 폴란드의 해체
히틀러의 다음 표적은 폴란드다.
대독 유화정책의 기수인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도 193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해체로 과연 히틀러의 진의를 깨달은 듯 정책의 대전환을 꾀했고 3월 말 영국은 폴란드의 안전을 보장했다. 프랑스도 이를 따랐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탈취할 때 더 이상 영불이 묵인해 줄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거기서, 히틀러가 주목한 것이 소련이다. 폴란드를 공격했을 때, 그 동쪽에 있는 소련까지 독일에 칼을 겨누면, 전쟁 때에 2정면 작전을 강요당한다. 히틀러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어 소련과 비밀협상을 시작한다.
반면 영국이나 프랑스는 소련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독일을 협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련으로서는 독일과 영불을 저울질해 어느 쪽이 유리한지 판단하면 된다. 영·불측과의 교섭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데 반해 독일과의 교섭은 착실히 진척되어 8월 23일 밤,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어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의 트럼프는 이때의 히틀러, 푸틴은 스탈린의 입장과 많이 닮았다. 모두 세계의 평화라기보다는 자국의 국익만 염두에 두고 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광물자원의 이권을 요구하는 것은 그 전형이다. 젤렌스키가 요구하는 안전보장은 유럽 국가들을 의지하라고 한다. 푸틴도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광물자원의 공동 개발을 트럼프에게 제안한 바 있다.
악몽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마스조에 요오이치
https://news.yahoo.co.jp/articles/d188a30dc40516248ef803d63a11c67d0928dacb?page=1
トランプから漂う「独裁者」の匂い、“民主的な選挙で選ばれた”ヒトラーやムッソリーニにどんどん似てくる行動原理
3/2(日) 11:32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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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press
(写真:Pool/ABACA/共同通信イメージズ)
(舛添 要一:国際政治学者)
トランプ大統領は、ウクライナ停戦に向かって、次々と手を打っている。ウクライナの頭越しにロシアのプーチン大統領と交渉して、ロシア寄りの情報に踊らされている。一方で、ウクライナの鉱物資源の利権を入手するようである。第二次世界大戦前の1938年〜1939年の状況の再現かとすら思えてくる。
【写真】ダブルのスーツに身を包んだヒトラー
■ 政治家の個性が過剰に反映
私は、第一次世界大戦と第二次世界大戦の間の時期、つまり戦間期のヨーロッパ政治外交史を研究するために、若い頃、フランス、スイス、ドイツなどに留学した。第一次世界大戦の惨禍を経験したヨーロッパで、なぜ20年後にまた戦争を始めたのか、その原因を探るのが目的であった。
様々な要因があるが、ヒトラー、ムッソリーニ、スターリンといった独裁者たちの思想と行動に大きな原因があったことは間違いない。その成果の一部は、『ヒトラーの正体』、『ムッソリーニの正体-ヒトラーが師と仰いだ男』、『スターリンの正体-ヒトラーより残虐な男』という三部作(いずれも小学館新書)として世に出ている。
当時の歴史を書くのに、これら独裁者の研究は不可欠であった。今のトランプの言動を見ていると、戦間期の独裁者と変わらない。民主的な選挙で選ばれ、アメリカ憲法の三権分立の仕組みの中で動いているリーダーとはとても思えないのである。
側近の閣僚たちもトランプへの忠誠アピール・ゴマすり合戦に終始している。批判すれば、即更迭である。ヒトラーやスターリンと同じである。処刑されないだけましだというのみである。
ちなみに、共産党一党独裁のソ連とは違って、当時のワイマール共和国も立憲王制のイタリアも自由で民主的な選挙が保障されており、そのルールの下で国民はナチス党を第一党に選び、ムッソリーニを首相に押し上げたのである。しかし、彼らは、いったん権力を握ると独裁への道を歩んでいった。
ドイツもイタリアもソ連も、第一次世界大戦の戦後処理に不満を抱いており、その国民の不満と不安を利用して、独裁者たちは権力を拡大した。
しかし、アメリカは第二次世界大戦の勝者であり、今でも世界一の大国である。AIなどの最先端技術でも世界をリードしている。ところが、トランプは、安価な外国製品の輸入によって国内産業が衰退しているとして、関税攻勢に出た。地球温暖化よりも、国内の石油・石炭などの資源を活用することを優先させようとしている。
このアメリカ第一主義には、世界一の大国として自由貿易や民主主義を守るという姿勢が見られない。「アメリカを再び偉大に(Make America Great Again)というが、それは逆にアメリカの威信を傷つけている。
トランプは、自由な民主主義や自由貿易を守るという理念などは持ち合わせていないようである。
■ 民族主義の旗
プーチンは、ロシア人が住む地域はロシアが統治すべきだとして、ウクライナ東部のドンバスを占領した。ウクライナ政府も、ロシア語を公用語から外すなどの差別的政策を展開し、住民の不満が高まっていたからである。2014年3月には、住民投票という手段によってクリミア半島をロシアに併合した。ロシア人の住む地域だという理屈である。
この手法は、ヒトラーと酷似している。ヒトラーは、ドイツ民族が一つの国にまとまるべきだという考え(大ドイツ主義)であった。
1935年1月、国際連盟管理下にあった独仏国境地帯のザール地方はほとんどの住民がドイツ人であり、1935年1月の住民投票の結果、ドイツに併合された。国際連盟の下での住民投票であり、これは国際的にも批判はされなかった。
次いで1938年3月、ヒトラーは、大ドイツ主義を掲げてオーストリアを併合した(独墺合邦=アンシュルス)。
ヒトラーの次の標的はチェコスロバキアである。ズデーテン地方に住むドイツ人がアンシュルスに力を得て、ドイツへの併合を求めたからである。
イギリスのチェンバレン首相は、チェコ人とズデーテン・ドイツ人との仲介に乗り出し、1938年9月15日、ヒトラーの別荘、ベルヒテスガーデンでヒトラーと会見し、ズデーテンのドイツへの割譲を承認した。フランス政府も同調し、英仏両国はチェコスロバキア政府にそれを了承するように勧告した。
しかし、ヒトラーはズデーテンを無条件に割譲するのみならず、ポーランドやハンガリーへの領土割譲も要求した。さすがに、チェコスロバキア政府はこれを拒否し、一気に緊張が高まった。そのため、イギリス政府はムッソリーニに仲介を頼み、9月29日に、英仏独伊の4カ国首脳会談が開かれることになった。これが、有名なミュンヘン会談でで、チェンバレン、ダラディエ、ヒトラー、ムッソリーニの4首脳が集まって、チェコスロバキア問題を協議し、ドイツがズデーテン地方を10月以降接収することが確認された。
そうして確定された新しいチェコスロバキアの国境線は、参加各国が保証することになった。9月30日、チェンバレンはヒトラーと会談し「英独共同平和宣言」に署名し、両国がヨーロッパの平和を協議(話し合い)によって解決することを高らかにうたった。帰国したチェンバレンやダラディエは、大群衆の「これで戦争の危機は去った」と歓喜する声に迎えられた。これが、歴史上有名な「ミュンヘンの宥和」である
■ チェコスロバキアの解体
今のトランプ主導の停戦交渉は、このミュンヘンの宥和の再現のような様相を呈している。チェンバレン役がトランプ、ヒトラー役がプーチンである。チェコスロバキアがウクライナである。
ヒトラーの野心には限りがなく、次はチェコスロバキアの解体を求めていく。ヒトラーはスロバキア人を独立へと煽動し、1939年3月14日、スロバキアは独立した。また、ヒトラーは、ハンガリー国境のカルパト・ウクライナも独立させた。
翌15日、ベルリンでチェコスロバキア大統領はヒトラーと会見するが、ヒトラーは、武力の威嚇によって、チェコスロバキアのドイツへの統合を強要し、プラハへの進軍を開始した。そして、翌16日、ヒトラーは、チェコスロバキアを「ベーメン・メーレン(ボヘミア・モラビア)保護領」としてドイツ国に統合した。こうしてチェコスロバキアは地図上から消滅した。
トランプは、ゼレンスキーの「無策」を批判し、このままではウクライナが消滅すると述べたが、その発言を聞いて、私は、このチェコスロバキア解体が脳裏に浮かんだ。それはチェンバレンがチェコスロバキアに譲歩を求めた姿勢と同じである。トランプには、国家の主権を守るとか、武力による併合を阻止するとかいった基本的な原則もないのであろうか。
さらに、3月22日には、ヒトラーは、東プロイセンと隣接するリトアニアからメーメルを返還させた。
■ ポーランドの解体
ヒトラーの次の標的はポーランドである。
対独宥和政策の旗手、イギリスのチェンバレン首相も、1939年3月のチェコスロバキア解体で、さすがにヒトラーの真意に気づいたようで、政策の大転換を図り、3月末にイギリスはポーランドの安全を保障した。フランスもこれに倣った。
ヒトラーがポーランドを奪取するとき、もはや英仏が黙認してくれることは期待できなくなったのである。そこで、ヒトラーが目を付けたのがソ連である。ポーランドを攻撃したとき、その東側にあるソ連までがドイツに刃向かってくると、戦争のときに二正面作戦を強いられる。ヒトラーは、それだけは避けたいと考え、ソ連と秘密交渉を始める。
一方、イギリスやフランスは、ソ連を味方に引き入れることで、ドイツを挟撃できると考えた。
ソ連にとっては、ドイツと英仏を天秤に掛けて、どちらが有利か判断すればよいことになる。英仏側との交渉が思うように進まないのに対し、ドイツとの交渉は着実に進捗し、8月23日夜、独ソ不可侵条約が締結され、世界を驚愕させたのである。
今のトランプはこのときのヒトラー、プーチンはスターリンの立場によく似ている。いずれも、世界の平和ということよりも、自国の国益のみが念頭にある。
トランプがウクライナの鉱物資源の利権を求めるのは、その典型である。ゼレンスキーが求めている安全保障は、ヨーロッパ諸国を頼れという。プーチンも、占領しているウクライナ東部の鉱物資源の共同開発をトランプに提案している。
悪夢の歴史を繰り返してはならない。
舛添 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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